Girl Crush
바람 불면 날아갈 듯한 청순가련형 미인들의 시대는 끝났다. 뷰티 월드를 장악한 여인들의 바로 그 매력!
한때 안젤리나 졸리의 연인이던 제니는 화장품 모델로는 한참 떨어지는 스펙을 지녔다. 하지만 아워글라스의 창립자 카리사 제인스는 “걸 립 스틸로를 대변할 얼굴로 제니만큼 확실한 적임자는 없다”고 말한다. “그녀는 자신감이 넘쳐요. 그리고 누구보다 올바른 신념의 소유자죠.” 촬영장 분위기도 색달랐다. “평소 메이크업을 즐기지 않아요. 진한 화장을 가면 삼아 본연의 매력을 가리는 것만큼 어리석은 짓은 없죠. 촬영용 화장은 평소와 다름없이 최소한으로 끝냈고, 이날 입은 화이트 톱과 티셔츠는 모두 제 옷이랍니다.” 아워글라스 인스타그램엔 제니의 인터뷰 영상과 더불어 #GIRLFORGOOD이란 해시태그를 붙여 강인한 여성의 아름다움을 온 세상에 전파하고 있다.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한 이목구비의 컴퓨터 미인만 대접받던 화장품 모델의 장벽이 허물어졌다. 개성 있고 강인하며 강렬한 개성 미녀가 주목받는 지금은 ‘걸 파워’ 시대. 이런 유행의 한복판엔 2016년 탄생한 신조어 ‘걸 크러시’를 빼놓을 수 없다. ‘소녀’를 의미하는 걸(Girl)과 ‘반하다’의 크러시 온(Crush on)의 합성어로 여성이 다른 여성을 선망하거나 동경하는 마음 또는 그런 현상을 말한다. 지난해 샤넬 코스메틱의 새 얼굴로 발탁된 행운의 주인공은 릴리 로즈 뎁이다. 바네사 파라디와 조니 뎁의 딸로 태어난 릴리가 ‘넘버 파이브 로’ 광고 영상에서 보여주는 여성상은 용감무쌍 그 자체다. 샤넬 로고가 새겨진 깃발을 펄럭이며 대중을 이끄는 그녀의 모습은 프랑스의 애국 소녀 잔 다르크와 꼭 닮았다. “모든 여성은 내면에 용감한 어린 소녀를 품고 있어요. 분방하고 상징적인 샤넬 숙녀가 어린 소녀들 안에서 성취의 순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17세 소녀 릴리를 역설의 화신으로 선택한 것도 이런 이유죠.” 샤넬 하우스의 설명이다.
버버리 뷰티의 새 얼굴은 주드 로의 딸 아이리스 로다. 폴로 버킷 햇과 후프 이어링을 즐기는 이 10대 소녀는 릴리와 더불어 패션계가 주목하는 ‘잇 걸’ 중 한 명. 틀에 박히지 않은 개성 만점의 옷차림과 자유로운 태도는 런던에서 촬영한 ‘리퀴드 립 벨벳’ 광고 촬영장에서도 발휘됐다.
오직 컴퓨터 미인들을 위한 리그였던 한반도에도 변화의 기운이 감지되고 있다. 대표 주자는 쓰리컨셉아이즈(3CE). 이들의 선택은 <언프리티 랩스타>의 히로인 래퍼 헤이즈. “최근 고객들이 예쁘고 맑은 이미지보다 당당하고 강한 여성상을 선호해요. 자신만의 특별함과 당당한 매력의 여성들이 대중적 워너비로 등극하는, 한마디로 개성의 시대죠.” 3CE 마케팅 팀 최미나의 설명이다. 사실 동시대적 여성이 주요 타깃인 뷰티 월드에서 적절한 모델 선정은 곧 제품 판매로 이어진다. 그래서 모델 선정에 있어 예쁜 얼굴만큼 중요한 것이 그녀가 살아온 방식이다. ‘롤모델’이냐 아니냐가 모델 선정의 키포인트로 작용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안젤리나 졸리를 향수의 새 얼굴로 발탁한 겔랑의 선택은 박수 받을 만하다. 언론에 공개된 그녀의 이미지는 향수 모델 특유의 여성스럽고 사랑스러운 모습과 다르다. 인형처럼 풍성한 속눈썹이 돋보이는 여성스러운 옆모습과 달리, 나체로 서 있는 그녀의 문신 가득한 등은 강인한 여성의 아름다움을 표출한다. 로라 메르시에의 모델 캐롤 산토스 역시 우리가 생각하는 미인과 정반대의 얼굴이다. 톡 튀어나온 광대뼈에 모델치곤 낮고 펑퍼짐한 코, 피부는 주근깨투성이다.
이처럼 뷰티 모델의 악조건을 극복할 수 있는 열쇠는 개성이다. 랑콤과 YSL 뷰티는 각각 테일러 힐과 스타즈 린데스를 브랜드를 대표하는 앰배서더로 발탁했다. 보이시한 매력의 그들은 록 시크의 대표 주자이자 밀레니얼 시대를 이끄는 디지털 인플루언서다. 매년 여성 아티스트와 협업을 통해 완성도 높은 뷰티 필름을 제작하는 메이크업포에버의 새 뮤즈는 영국의 싱어송라이터 제시 제이다. 일명 ‘게토 스타일’로 불리는 과감한 패션 & 뷰티 센스는 그녀만의 트레이드마크. 제시 제이가 평소 즐기는 립 페인팅 기법은 ‘아크릴 립’의 뮤즈로 선정되는 데 한몫 거들었다. 강한 아름다움이 박수갈채를 받는 시대에 당신을 사로잡은 ‘그녀’는 누구인가?
- 에디터
- 이주현
- 포토그래퍼
- COURTESY PHOT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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