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Stroll In A Dream

2017.08.06

Stroll In A Dream

125주년을 맞은〈보그〉아카이브에서 채집한, 명화를 주제로 한 전시〈보그 라이크 어 페인팅〉이 문을 열었다. 꿈에서 산책하듯 황홀하게 펼쳐진 패션 사진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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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에 있는 사진이 명화와 다른 점은 뭘까요? 저는 다를 게 없다고 생각합니다.” 콘데나스트 스페인의 프로젝트 디렉터이자 큐레이터 데브라 스미스(Debra Smith)가 오프닝 파티의 하객들을 향해 전했다. “물론 몇몇 사진에서는 명화의 즉각적 레퍼런스가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전시하는 패션 사진의 의미는 그 ‘명화’라는 주제를 초월하는 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10월 7일까지 열리는 <보
그 라이크 어 페인팅>은 세계 22개국에서 발행되는 <보그>의 아카이브에서 길어 올린 사진 100여 점을 ‘명화’라는 공통 키워드로 묶은 전시다.

이를 위해 서울에 들른 그녀는 2015년 스페인 마드리드 티센-보르네미사 미술관에서 3개월간 38만 명의 관객을 이끌어낸 ‘대박’ 전시가 한국에서도 분명 통할거라고 확신했다. “한국 사람들이 정말 예술을 즐기고자 하는 욕구가 크다는 걸, 그리고 예술을 통해 소통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전시가 열릴 두 번째 장소로 서울만 한 곳이 없다고 생각했죠.” 한국 전시는 과거 마드리드에서 진행한 전시를 기반으로, 21년 역사의 <보그 코리아> 아카이브에서 엄선한 예술적 화보로 구성된 스페셜 섹션을 더했다.

‘초상화’ 섹션에 전시된 사진들.

‘초상화’ 섹션에 전시된 사진들.

과거와 현재, 국내와 국외가 <보그>라는 이름으로 한 자리에 묶인 전시의 오프닝 파티에는 화보에 등장한 패션 브랜드 관계자는 물론 <보그 코리아> 화보에 등장한 국내 톱 모델들이 초대됐다. 그들은 초상화, 정물화, 로코코, 풍경화, 아방가르드에서 팝아트까지 사조별로 분류된 사진을 차례로 감상했다. 또 2차원 평면 작품뿐 아니라 발렌티노와 빅터앤롤프 꾸뛰르 드레스, 그리고 앤디 워홀 ‘플라워 시리즈’에 영감을 얻어 변형된 액자를 드레스 형태로 재창조한 프라다 컬렉션, 정물화에서 영감을 받은 샘 테일러 존슨의 영상 등 패션을 다각도로 해석한 작품을 감상했다.

미국  2012년 9월호에 실린 피터 린드버그의 사진 ‘One Enchanted Evening’.

미국 <보그> 2012년 9월호에 실린 피터 린드버그의 사진 ‘One Enchanted Evening’.

그렇다면 모두들 박물관에 걸린 대형 회화 앞에서 넋을 놓은 채 구석구석을 살피는 것처럼 패션 사진을 찬찬히 감상하는 이유는 뭘까? A4 사이즈 남짓한 종이 잡지 사이즈로 접한 패션 화보가 수 미터의 대형 사진

액자에 걸린 덕분이다. “패션 사진을 이 정도 사이즈로 인쇄하기 위해서는 포토샵이라는 기술이 우선적으로 필요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사진 보정술에 반감이 있었지만, 이 전시를 통해 필수 불가결함을 정면으로 받아들이게 됐죠.” 사진에서 리터칭은 회화에서 색을 칠하는 것에 비할 수 있겠다.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그림을 그릴 때 스케치 하는 것과 비슷한 듯합니다. 사진을 찍고, 컬러를 바꾸고, 우리가 보는 사진 작업은 이런 리터칭 과정을 통해 완성되니까요.”

피터 린드버그, 세실 비튼, 파올로 로베르시, 팀 워커 등 <보그>와 작업한 세계적인 사진가들의 작품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다는 점 외에도, 이번 전시는 패션 사진이 지닌 기존 스펙트럼을 넓히는 계기가 된다고 데브라는 전한다. “사진 저널리즘적 관점에서, 패션 사진은 사회의 이슈와 문제를 담지 않는 걸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어떤 것에 무조건 반대(Anti-)한다고 문제를 다루는 건 아니죠. 세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날카로운 시선을 지니면서도, 복잡한 주제를 사진에 표현할 수 있습니다. 이 전시의 어빙 펜 사진처럼요.”

자신의 화보 앞에서 포즈를 취한 모델 한혜진, 송경아.

자신의 화보 앞에서 포즈를 취한 모델 한혜진, 송경아.

모델 김성희와 <보그> 이지아 패션 디렉터.

<보그 코리아> 화보 촬영을 위해 한국을 찾은 네덜란드 사진가 어윈 올라프도 명화와 패션 사진의 관계에 대해 설명을 보탰다. “전시에 걸린 제 작품은 얀 페르메이르의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에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어릴 때부터 미술관에서 네덜란드 초상화 등을 많이 보며 자랐습니다. 빛, 구성, 질감, 그림에서 풍기는 감정 등을 많이 배웠죠. 그때나 지금이나 중요한 건 바뀌지 않았습니다. 페르메이르 시대 사람들이 그림을 보고 느끼는 감정, 그리고 관객들이 제 사진을 보고 느끼는 감정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기 때문이죠.” <보그 라이크 어 페인팅>을 보기 전과 후, 패션 사진에 대해 당신이 어떤 생각을 지녔든, 그 생각은 달라질 것이다. 그게 이 전시의 목적이자 가장 큰 매력이다. “꿈속의 산책처럼, 관람객의 머릿속에서 뭔가 새로운 감정이 싹트길 바랍니다.”

    에디터
    남현지
    포토그래퍼
    PARK SEUNG RI, YANG SEUNG 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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