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flection
패션은 시대를 반영한다. 요즘만큼 이 표현이 시의적절하게 느껴진 때가 있나? 지금은 다름과 다양성과 관용의 시대. 마음이 자유로워지듯 옷차림도 자유로워진다. 2017 F/W를 정의하는 트렌드 키워드 11.
영화 <우먼 인 레드>를 떠올려보자. 빨간 옷을 입은 여자는 섹슈얼하고 유혹적이다. 그리고 그 유혹은 사회적 금기를 넘어서라고 은밀하게 속삭인다. <주홍 글씨>에서 헤스터의 가슴에 찍힌 붉은색이 죄를 상징하는 것처럼 말이다. 2017 F/W 파리 컬렉션이 진행 중이던 지난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에 전 세계 곳곳의 여자들이 빨간 옷을 입고 거리로 나섰다. 이 ‘붉은 악마’들은 ‘여성 없는 날’ 총파업 시위 참가자들로 (대부분이 미쏘니 쇼에서 나눠준 것과 비슷한 핑크색 푸시 햇을 쓰고 있었다), 직장 내 성차별에 항거해 회사로 출근하는 대신 길거리 행진을 택한 이들이었다. 이 파업을 기획한 단체 ‘위민스 마치’는 “혁명적 사랑과 희생을 상징하기 때문”에 빨간색을 선택했다고 밝혔다. 세계 곳곳의 거리가 빨갛게 물드는 동안 F/W 시즌 런웨이도 아름다운 붉은 악마들로 가득했다. 가방만 빨갛거나 구두만 빨간 게 아니라 화염에 불타오르는 잔 다르크처럼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통 새빨갛다는 점이 중요하다. 방식은 여러 가지. 막스마라나 펜디처럼 톱, 팬츠, 아우터, 백과 슈즈까지 빨간색 아이템을 몽땅 긁어모은 ‘깔맞춤’부터 빨간 페인트를 뒤집어쓴 듯한 프로엔자 스쿨러와 지방시, 발렌티노 드레스도 있다. 레드 룩의 행렬은 무엇을 의미할까? 디자이너들은 여자들에게 움츠리지 말고 자신의 존재감을 당당히 드러내라고 종용한다. 진정 자신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잘 생각해보라고. 올 가을과 겨울의 빨강은 사랑, 열정, 악마, 분노, 용기 그리고 여자의 색이다.
잠깐, ‘여성 없는 날’ 총파업을 기획한 단체 위민스 마치라니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지 않나? 지난 1월에 위민스 마치 행사를 주최한 바로 그 단체다. 이 행사는 현재까지 가장 큰 규모의 트럼프 반대 시위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뉴욕을 대표하는 디자이너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일제히 2018 S/S 시즌 뉴욕을 떠나겠노라 선언했다. 물론 모든 것이 정치적인 이유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프로엔자 스쿨러와 로다테, 알투자라와 톰 브라운 모두 상업적이고 비교적 문턱이 낮은 뉴욕 패션 신보다 그들의 수‘ 준에 맞는’ 도시로 떠났다는 편이 더 적절한 설명일 것이다. 그리고 한 시즌이 될지 두 시즌이 될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뉴욕은 당장 가장 볼만한 쇼를 잃었다. 현실은 혼란스러운 미국의 모습을 투영하는 듯하다. 그리고 떠나는 대신 남아 있기로 결정한 이들의 방식은 있는 힘껏 미국의 전통을 되새기는 것이다. 라프 시몬스의 첫 캘빈 클라인 컬렉션은 청바지, 월 스트리트 금융가의 체크무늬 울 수트, 보안관 재킷, 카우보이 부츠, 성조기 스커트 그리고 과거 미국인들이 애용했던 투명한 소파 커버(소파를 보호하기 위해 투명한 비닐을 씌우곤 했다) 가 등장했다. 스튜어트 베버스는 웨스턴 룩과 미국 10대 특유의 경쾌함이 결합된 동시대적 코치를 이어나갔다. 한편 멀고 먼 곳에서 응원을 보내는 이들도 있다. 루이 비통의 니콜라 제스키에르는 더 이상 국경은 무의미하다고 말한다. “세상에는 사람들로 하여금 국경이 점점 강해지고 있다고 믿게 만들려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주장했다. “그러나 패션은 언제나 국경을 무너뜨려왔죠.”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도 모두가 희망을 가져야 할 때.
지금 패션계의 거대 키워드는 미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코카 콜라, 제임스 딘, 나이키만큼이나 미국의 대표 아이콘인 데님도 유행의 열차에 승차했다. 미국의 상징이라지만 사실 데님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글로벌’한 원단이다. 주위를 둘러보라. 당신뿐 아니라 당신이 아는 모든 사람들이 데님을 입고 있거나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흔히 ‘청청 패션’이라고 하는, 상의와 하의를 모두 데님으로 입는 게 이번 시즌 트렌드. 흥미로운 점은 이 청청 패션의 정식 이름이 ‘캐나디안 턱시도’라는 점이다. 그 기원은 195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요즘 젊은이들은 절대 모를, 그러나 매우 유명한 미국 가수 빙 크로스비는 친구와 함께 캐나다 밴쿠버의 어느 호텔에 묵을 예정이었다. 전 세계 귀족과 유명인들이 머무는 좋은 호텔이었는데, 크로스비와 그의 친구는 리바이스 청바지를 입고 있다는 이유로 입구에서 출입이 거부됐다(다행히 벨보이가 이 유명한 가수를 알아본 덕에 체크인을 할 수 있었다). 후에 이 이야기를 전해 들은 리바이스는 크로스비가 격식 있는 데님 룩을 연출할 수 있도록 데님으로 만든 턱시도 재킷을 선물했고 실제로 밝은색 라펠의 데님 턱시도 재킷과 청바지를 입은 그의 사진은 인터넷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여자들을 위한 2017년형 최신 캐나디안 턱시도는 매우 캐주얼하다. 얇은 샴브레이 소재의 디올은 활동하기 딱 좋을 정도로 가볍고 부드러운 ‘작업복’ 스타일, 스텔라 맥카트니와 캘빈 클라인의 뻣뻣한 로우 데님은 풋풋한 10대 시절을 떠오르게 한다. 갈기갈기 찢어서 거칠게 재해석한 사카이와 와이/프로젝트의 데님 룩을 캐나디안 턱시도라고 해도 될까? 상의와 하의가 모두 데님으로 만들어졌다면 어떤 것이든 상관없다.
깃털은 그 자체로 매력적이지만, 우리 자신에게 대입했을 때는 거의 반사적으로 평생 몸에 걸칠 일이 없을 거라 단정하기 쉽다. 그리고 그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사실이기도 하다. 지난 S/S 시즌부터 평상복에 깃털을 장식하는 데 몰두한 미우치아 프라다 여사조차 깃털이 달린 얌전한 스커트를 두고 “현실에서 입을 만한 가장 우스꽝스러운 옷”이라고 할 정도니까. 프라다 여사가 이 비현실적이고 우스꽝스러운 깃털에 두 시즌째 도전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깃털, 란제리. 만약 당신이 고학력의 페미니스트라면 거부감을 가질 만하죠. 이런 것들은 예나 지금이나 유혹의 무기로 사용돼왔으니까요. 그렇지만 어째서 그것들이 욕망하고만 연결될 수가 있죠?” 프라다는 여자들을 괴롭혀온 고정관념을 깨기 위해 그 매개체를 다르게 보여주는 방식을 택했다. 물론 깃털이 상징하는 여성스러움을 충분히 즐기라는 디자이너들도 있다. 유혹하기 위해 입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기분 좋고 여성스러운 기분을 만끽하기 위해서. 하지만 유혹하기 위해 입은들 어떤가. 결국 우리 모두는 누군가를 사랑하고 누군가에게 사랑받으며 살아가는 존재다.
지난 패션 위크 때 가장 주목받은 스트리트 패션은 달달한 총천연색 소다수 빛깔의 모피였다. 여기에 인타르시아 기법으로 온갖 무늬까지 짜 넣으니 모피 코트는 나이 들어 보인다는 말도 이제 옛말. 모피 코트의 대중화에 기여한 건 나날이 발전하는 페이크 퍼 소재다. “90년대만 해도 페이크 퍼의 합성 소재는 질 나쁘기로 악명 높았죠.” 쉬림프의 한나 웨일랜드는 싸구려 폴리에스테르로 만든 거친 가짜 털 코트를 떠올리며 말했다. 그녀가 요즘 사용하는 모다크릴릭 혼방 플러시 천의 촉감은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다. “부드럽고 따뜻하고 색도 훨씬 잘 표현됩니다. 쉽게 때가 타지도 않죠.” 김민주 역시 바이어들이 민주킴 F/W 컬렉션의 꽃무늬 인조 모피 코트를 만져보고 다들 감탄했다며 뿌듯해했다. 풍부한 벽돌색의 이 롱 코트는 실제로 시어드 밍크(일명 깎은 밍크)처럼 길이가 일정하고 촉감은 놀라울 정도로 보드랍다. 시몬 로샤의 인조 모피 코트는 진짜 빈티지 버금가는, 섬세하게 표현된 갈색 그러데이션이 일품. 한편, 최근 육스 네타포르테 그룹은 운영하는 사이트에서 더 이상 모피 의류를 팔지 않겠다고 공식 선언했다. 지속 가능한 패션을 위한 전략으로 특정 동물 털로 만든 품목을 금지하기로 한 것이다. 그렇지만 모피 제조업체는 오히려 인조 모피가 자연환경을 오염시킨 다고 주장한다. “동물 털은 자연 분해되는 자연 소재지만 인조 모피는 전부 화학섬유라서 자연 분해되지 않습니다.” 가족 경영 모피 브랜드 이브 살로몬의 토마스 살로몬은 엄격한 감독하에 동물 복지와 공정 무역을 위해 노력하는 농장에서 원단을 공수한다고 강조했다. 진짜든 가짜든 세상에는 아름다운 모피 코트가 너무도 많다. 선택은 당신의 몫이다.
지구가 자전하듯 패션도 끊임없이 움직인다. 구애하는 공작새처럼 화려한 차림의 사람들에 대한 설전이 벌어진 게 불과 몇 년 전인데, 지금은 모두가 심각하고 단정하게 차려입는 방식에 대해 말한다. “예전에는 몸매를 강조하는 옷에 관심이 많았죠. 요즘은 신체를 자각하는 것에 대해 흥미를 느낍니다. 몸의 특정 부위를 노출하는 것보다 몸을 가리는 방식에 더 강한 무언가가 있다고 생각해요.” 빅토리아 베컴은 자신의 브랜드를 운영하는 비즈니스 우먼이자 세 아이를 돌봐야 하는 엄마다. 그녀는 자신의 일상이 디자인에 반영되고 있음을 인정한다. “지난 몇 년 동안 디자인을 통해 여자들의 힘을 지지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해왔습니다.” 셀프리지 백화점의 여성복 디렉터 리디아 킹은 여자들이 금융권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말쑥한 팬츠 수트 룩에 끌리는 것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스마트한 룩은 더 이상 중역 회의실이나 여성 임원에 한정되지 않습니다. 점점 많은 여자들이 직업에 상관없이 자신의 스타일에 현실감각을 담고 싶어 하죠.” 현실감각이란 타인의 시선에 중점을 둔 비현실적인 쇼피스보다 온전히 나 자신을 위한, 실용적이고 업무에 적합한 수트 룩으로 눈을 돌렸다는 뜻이다. 동시에 이 트렌드는 패션이 사회의 거울이라는 점을 재확인해준다. 조셉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루이스 트로터는 전 세계가 그 어느 때보다도 정치에 관심이 높다는 점을 지적했다. “우리가 입는 옷은 언제나 정치적 기류와 이어져 있죠. 지금은 타인의 관심을 구걸하거나 과시할 때가 아닙니다. 스스로를 무장하고 보호하기 위한 전투복이 필요하죠.”
트렌드는 필연적으로 변화와 움직임을 수반하지만, 요즘 사람들은 그 속도가 지나치게 빠르다고 불평한다. 그렇지만 잘 들여다보면 몇 시즌 동안 꾸준히 등장하면서 사람들에게 익숙해지고, 익숙해짐에 따라 점점 더 많은 이들이 시도하게 되는 유행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벨벳. 몇 시즌 전만 해도 런웨이의 벨벳은 여전히 동유럽 성에 사는 뱀파이어의 고딕풍 드레스라든가 귀족의 ‘비로도’ 의상 같은 걸 떠올리게 했다. 영국 직물 회사 벡포드 실크(Beckford Silk)의 이자벨 와튼은 역사에서 그 이유를 짚어낸다. “19세기 빅토리아 시대에는 상류층만 벨벳을 입을 수 있었으니까요.” 그렇지만 최근 꾸준히 등장한 벨벳은 이전에 본 적 없던 브라 톱, 파자마 수트, 플랫 슈즈 등 모던한 모양새를 갖추고 있다. 가을이나 겨울에 적합하다는 인식을 깬 가볍고 낭창낭창한 여름용 버전은 놀라울 정도다. 미니멀리즘에 지친 디자이너들에게는 잠재적인 변화 가능성이 많은 소재라는 점이 가장 큰 매력.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예민한 소재가 아니에요. 지난 수년간 발전을 거듭해 왔죠.” 슈즈 디자이너 지안비토 로시는 자신의 말을 증명하듯 슬리퍼부터 하이힐, 부츠에 이르기까지 온갖 디자인의 슈즈에 벨벳을 사용한다. 벡포드 실크가 프라다와 런던의 독립 디자이너들에게 제공하는 실크 벨벳 원단 또한 실크 20%와 비스코스 80%로 이뤄져 관리가 쉽고 내구성도 좋다. 무엇보다 피부에 닿았을 때의 촉감은 한번 경험하면 결코 빠져나올 수 없다.
폴카 도트를 오드리 헵번이나 마릴린 먼로, 미니 마우스하고만 연관시킨다면 당신은 아주 중요한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꼼데가르송과 쿠사마 야요이,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시그니처 역시 폴카 도트라는 거다. 거부감과 고정관념은 깨끗이 날려버리자. 가슴과 허리를 강조하는 뉴 룩 드레스를 입고 인조 속눈썹을 깜박여야만 물방울무늬를 입을 수 있는 게 아니니까. “폴카도트는 일상복에 적용하는 게 더 모던합니다.” 몬스의 페르난도 가르시아와 로라 킴은 오스카 드 라 렌타의 아카이브에서 발견한 폴카 도트를 재해석하는 데 몰두하고 있다. 그들은 폴카 도트가 옷에 경쾌함과 재미를 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캐롤리나 헤레라 역시 폴카 도트를 사랑하는 대표 디자이너다. “폴카 도트에 대한 나의 첫 기억은 아주 어릴 때 본 플라멩코 댄서죠. 물방울 무늬 드레스를 입은 그녀는 정말 아름다웠고 그때부터 폴카 도트를 좋아하게 됐어요. 내 첫 향수 패키지에도 그 패턴을 사용했답니다.” 이 산뜻하고 여성스러운 패턴은 패션에 대해 지나치게 전문적이고 심각하게 접근하는 요즘 경향에 신선한 바람처럼 스미고 있다. 우리는 그동안 우아하고 정취 있는 패션에 대해 잊고 있었다. 가볍고 행복한 기분을 가져다주는 폴카 도트 같은 패션을. 조나단 앤더슨은 로에베 컬렉션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저는 드라마를 원했어요. 정서요. 그게 바로 패션이죠!”
비정상적으로 날씨가 추워진 최근에야 2월 패션 위크 쇼장에 패딩 파카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패션계 사람들의 기준에서 패딩 파카는 패션 행사에서 갖춰야 할 최소한의 격식에 미치지 못한다는 뜻이다. 그렇지만 벨벳, 새틴, 가죽과 모피로 무장한 채 런웨이에 등장한 패딩 덕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 가볍고 따뜻한 패딩에 비하면 울 코트는 무거운 데다 찬 바람이 옷깃을 파고든다. 재미있는 점은 우리나라 ‘고딩’들 사이에서 크게 유행했듯 패딩 파카를 처음으로 패션 아이템에 추대한 이들이 1980년대 밀라노의 10대라는 사실이다. 전 세계적으로 소비주의가 팽배한 당시, 밀라노에 사는 중상류층 젊은이들은 글로벌 브랜드에 열광했다. 이들의 유니폼은 팀버랜드 디키 부츠, 리바이스 501 청바지나 아르마니 진스, 알파 인더스트리 MA-1 봄버 재킷과 몽클레르 패딩이었다. 알록달록한 패딩 파카 무리는 베스파를 타고 다니며 햄버거 가게에 모여들곤 했는데, 이탈리아어로 햄버거 가게가 ‘파니노테카’여서 이들을 ‘파니나리’라고 부르게 됐다. 그때나 지금이나 패딩으로 멋 부리려면 경제적인 여유는 필수인 듯. 하이더 아커만의 가죽 패딩, 보기만 해도 땀이 날 듯한 토즈의 풍선 같은 패딩과 양털이 곱슬곱슬한 미우 미우의 패딩 정도면 21세기의 파니나리가 되기에 충분하다.
화사한 꽃무늬는 S/S 시즌의 단골 주제다. 그렇지만 실제로 꽃이 만개하는 시기에 꽃무늬를 입어야 한다는 발상은 고루하다. 디자이너들은 가을과 겨울을 위한 꽃무늬를 생각했고, 그것은 기존과 다른 방식으로 전개됐다. “패션에 새로운 것이란 없습니다. 이미 알고 있는 것을 다른 방식으로 연결 지으면 그게 새로운 게 되는 거죠.” 피엘파올로 피촐리는 정교한 빅토리안풍 꽃무늬를 멤피스 스타일로 재구성한 그래픽 꽃무늬를 선보였다. 발렌티노 드레스를 뒤덮은 꽃무늬는 사실 꽃보다 곤충이나 분열하는 세포에 가까워 보인다. 연금술사 알레산드로 미켈레는 평소 좋아하는 영국식 정원의 꽃과 곤충, 이국의 정취, 앤티크 장식품으로 완전히 낯선 방식으로 구찌를조합했다. 그것은 익숙하면서도 새롭다. “저는 패션에 규칙이 필요하다는 발상을 반대합니다. 패션계에서 수년간 일하다 보면 이게 패션인지 아닌지를 생각할 필요가 없어지죠. 그저 자신에게 맞는 걸 하면 됩니다.” 복잡하고 화려한 구찌 옷 위에서 서로 다른 요소가 와글와글 대화를 나누는 소리가 들리지 않나? 조셉 알투자라는 르네상스 시대 초상화 속 여인들과 레이디 맥베스를 소환했다. “순결한 꽃봉오리처럼 보이죠. 그렇지만 그 아래에는 뱀을 숨기고 있습니다.” 화사한 꽃무늬와 진주 단추, 리본 장식은 정숙한 여성미를 표현하고, 갑옷을 닮은 패턴과 컴뱃 부츠, 권력의 상징 같은 모피 칼라는 그 뒤에 숨어 있는 욕망을 반영한다. 여전히 아름다운 꽃이지만, 예전의 꽃이아니기에 이번 시즌 꽃무늬는 시도할 가치가 있다.
플래드 체크는 클래식하고 묵직하고 성숙한 인상을 준다. “강하고 힘 있어 보이길 원했어요. 그렇다고 풍요로움과 화려함을 포기할 순 없지만요.” 마이클 코어스가 제시한 1940년대 할리우드 글래머 스타일에는 캐서린 헵번이 즐기던 남성용 수트도 포함된다. 그리고 플래드 체크는 남성복에 자주 사용되는 패턴이다. 코어스에게 영감을 준 미국 모델 겸 배우 패티 핸슨은 프런트 로에서 이렇게 말했다. “저는 늘 ‘베프’가 될 수 있는 옷을 사려고 노력하죠. 오랫동안 계속해서 입을 수 있는 옷이오.” 체크무늬야말로 베프가 되기에 안성맞춤이다. BOF의 패션 저널리스트 팀 블랭크스도 마이클 코어스의 글렌 플래드 룩에 대해 모던 클래식이 될 만하다고 인정했다. 스트리트웨어의 대명사 버질 아블로의 F/W 컬렉션은 거의 다른 디자이너의 작업처럼 느껴진다. 그는 스트리트웨어라는 꼬리표와 칸예 웨스트의 그림자에서 벗어나려고 한다. “내 브랜드를 0에서부터 새로 시작하는 기분이에요. 마음에 듭니다.” 그는 패션계가 언제나 ‘새로운 것’에 집착한다고 지적하며 나 자신에게 새롭게 느껴지는 것을 하는 것이 새로운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래서 그가 선택한 건 지겹도록 익숙한 스웨트셔츠나 청바지가 아니라 수트 재단과 하운즈투스 체크였다. 아블로는 “스물두 살 여자아이가 호텔 로비에서 인증 검사를 받지 않아도 될 정도로 성숙해 보이도록” 컬렉션을 만드는 데 중점을 뒀다. 아블로와 오프화이트의 팬들이 나이를 먹어가듯, 플래드 체크는 패션이 스트리트웨어의 시기에서 벗어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 패션 에디터
- 송보라
- 포토그래퍼
- KWAK KI GON
- 모델
- 박희정, 선윤미, 정소현, 최은강, 한현민, 요(Yo@Platinummgt), 린다 영(Linda Young@Modeldirectors)
- 헤어 스타일리스트
- 이혜영
- 메이크업 아티스트
- 이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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