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누가 웰빙을 모함했나!

2017.09.27

by VOGUE

    누가 웰빙을 모함했나!

    최신 헬스 트렌드가 건강한 삶의 지름길일까? 웰빙 유행에 시달리는 당신을 구원할 〈보그〉의 직설적 조언.

    UK Archive British Vogue July 1965 p64 Helmut Newton Model lies across bed sleeping, wearing printed crepe jumpsuit, ceiling fan, holiday heatwave fashion shoot.

    누군가 내게 명상을 권한다면 난 그 사람 면전에 절인 양배추를 던져버릴지도 모르겠다. 왜 하필 양배추냐고? 우리 집 부엌 한쪽엔 썩어가고 있는 발효된 양배추가 잔뜩 쌓여 있다. 최신 디톡스 트렌드에 잠시 혹했기 때문이다. 양배추 주위엔 망가져버린 최고급 블렌더 바이타믹스의 칼날, 미처 뜯지 않은 채칼, 견과류가 널려 있다. 앞으로 영원히 사용할 일 없는 ‘무쓸모’한 것들이다.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일에 대한 환멸을 느끼고 좌절감에 빠지거나 기진맥진한 상태로 돌변할 때가 있을 것이다. 극도의 피로감을 지칭하는 현대인의 질병 ‘번아웃’이다. 이런 번아웃 증후군은 비단 업무 현장에서만 적용되는 의료 용어가 아니다. 끝없이 이어지는 헬스 트렌드의 노예가 되어 제대로 된 효과를 보기도 전에 감정적으로도 녹초가 되고 집 안 곳곳에 쓸데없는 기구가 쌓이는 현상, 이 모든 것이 바로 ‘웰빙 번아웃’의 참혹한 결과물이다. 미리 말하지만 난 육체와 정신 건강을 최적화하는 웰빙 자체를 반대하는 입장은 아니다. 전 세계적으로 슈퍼푸드 열풍이 불어닥칠 때나 새로운 건강 진단법이 나왔을 때 난 누구보다 먼저 도전하는 얼리어답터였다. 작년엔 설탕, 글루텐, 곡물, 유제품 섭취를 일절 금했으며(비록 지금은 절반 이상 다시 시작했지만) 웰빙이라는 명목으로 유전자부터 수면 패턴까지 내 몸을 이루는 모든 기관에 대해 정밀 분석을 의뢰했다. 하지만 이젠 지쳐버렸다.

    건강이라는 이름의 함정 알고 보면 건강 분야는 몸집이 거대한 산업이다. 수치로 따지면 전 세계적으로 약 3조7,200억 달러 규모에 달하며(1조 달러가 넘는 산업을 통틀어 가장 역사가 짧다) 매년 14%씩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이런 기하급수적 성장을 포착한 헬스 전문 브랜드에선 ‘건강’에 초점을 맞춘 온갖 상품과 유행을 쏟아냈다. 명상, 슈퍼푸드, 건강 보조제 등의 주류 산업부터 다섯 마리의 아기 염소와 함께 운동하는 ‘고트 요가’ 따위의 비주류까지(NBC 뉴스에 따르면 300명의 웨이팅 리스트를 보유한 뉴햄프셔주의 가장 핫한 운동법!) 우리가 건강한 삶에 도달하는 방법은 헤아릴 수 없이 다양하다. “무엇을 먹어야 하는가, 어떤 운동 수업을 들어야 하는가에 대한 정보가 시대의 흐름에 따라 계속 바뀌기 때문에 사람들은 건강한 라이프스타 일에 대한 왜곡된 사고방식을 갖게 됩니다.” 런던 나이팅게일병원 임상심리 학자 비잘 체다 바르마(Bijal Chheda-Varma) 박사의 말이다. 그는 “사고방식이란 어떤 대상에 대한 생각의 집합이며 행동과 태도를 규정하는 데 중대한 역할을 한다”고 설명한다. “왜곡된 사고방식이 주는 가장 미미한 피해는 혼돈과 양가 감정입니다. 가장 큰 폐해는 병적인 건강식품 탐닉, 운동 중독 같은 극심한 육체적, 정신적 장애죠.” 그래서일까? 요즘 웰빙에 목맨 라이프 스타일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현상이 그리 놀랍지 않다. 평소 규칙적으로 운동하는 친구는 내게 “팔로우를 끊어버린 인스타그램 헬스 계정이 수두룩하다”고 고백했다. 대중들의 웰빙 추구 방식이 어처구니없는 수준에 이르렀다는 게 이유다. 내친김에 메신저로 간단한 설문 조사를 해보니 내 친구 같은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들은 입을 모아 “최신 건강 이슈는 저녁 식사 도중 나누는 대화 주제로 최악”이라고 말한다. 인스타그램 해시태그에 ‘#real’을 추가한 인증샷을 올리며 지나친 웰빙 문화를 적극적으로 부정하는 친구들도 적잖다. 글루텐 함유 제로의 곡물 빵에 아보카도를 얹어 먹는 보여주기식 라이프스타일? 더 이상 매력적이지 않다. 안타깝게도 최근 피트니스 트래커와 웨어러블 장비의 판매율은 급감하고 있다. 실시간 심박수로 활동량, 운동량, 수면 패턴을 모니터링하는 스마트 밴드 출시로 디지털 헬스 시장을 주도해온 ‘핏비트(Fitbit)’는 재작년에 6,400억 달러의 흑자를 기록했지만 작년 4/4분기엔 무려 1억4,600만 달러 상당의 씁쓸한 손실을 입었다. 경쟁
    사 ‘조본 업(Jawbone UP)’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이들은 회복 불가능한 손해를 보고 소비자 시장에서 발을 빼버린 지 오래다.

    진정한 웰빙의 시작 헬스 시장의 처참한 패배를 지켜보면서 머릿속에 한 장면이 떠올랐다. 낡은 전자제품이 들어 있는 정리함이다. 그 안엔 당찬 포부로 구입했지만 기껏해야 몇 주 정도 착용하다 만 조본 업 밴드 하나, 핏비트 둘, 웨어러블 자세 교정 장치, 자외선 측정 팔찌가 들어 있다. 사회적 분위기를 반영하는 장소가 또 있다. 최신 유행하는 옷차림의 늘씬한 모델들이 줄을 지어 걸어 나오는 런웨이다. 유명 디자이너들은 최신 헬스 트렌드를 둘러싼 피로감을 스타일링에 적극 반영하고 있다. 지난 시즌까지 럭셔리 스포츠 트렌드를 주도해온 알렉산더 왕은 시원시원한 스트라이프 패턴의 레이서 백 드레스, 야구 모자, 스웨트 팬츠를 선보였다. 하지만 2017 F/W 쇼에선 어땠나? 스터드, 프린지 레더, 체인 장식 등 헬스장에는 어울리지 않을 법한 펑크 룩이 등장했다. 해먹 대신 훌라후프에 매달려 운동하는 ‘에어리얼 후프’와 요가와 필라테스를 접목한 요‘ 가라테스’ 등 온갖 괴상한 유행이 많이 출몰하는 장소는 헬스장이다. 이렇듯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헬스 트렌드에 염증을 느낀 이들은 대체 어떤 방식으로 건강을 지킬까? 전통 운동법으로의 회귀다. 쉽게 설명하면 학창 시절 체육 시간을 떠올리게 하는 추억의 운동이 그것이다. 대표 종목은 수영과 자전거. 일례로 2014년 정기적으로 수영을 하는 영국인은 고작 17%에 불과했지만 2016년엔 그 두 배에 달하는 31%로 늘었으며 같은 기간 자전거를 타는 사람도 두 배 이상 늘었다. 한국도 자전거 열풍이다. 2016년 서울시는 자전거 이용의 생활화를 통한 시민 건강 증진을 실현코자 무인 대여 시스템 ‘따릉이’를 구축, 운영 1년 만에 회원 수 21만 명, 누적 대여 건수 172만 건을 돌파했다.

    진정한 웰빙은 웰빙을 추구하고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지 않을 정도로 어디에나 있어야 한다. 긍정적이고 건강한 라이프스타일로 산다는 것이 인스타그램에서 칭송받는 대단한 일이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쉽게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는 소리다. 유명 크로스핏 센터에 6주 전 예약을 걸어놓고 수업에 뭘 입고 갈지 온종일 고민하는 게 웰빙일까? 주위를 둘러보라. 한때 디톡스 주스와 EMS 트레이닝에 열광하던 이들이 유행이라는 굴레를 벗고 자전거로 출퇴근을 하기 시작했다. 아침 출근 전 가까운 수영장을 찾고 주말엔 기본 성능의 자전거를 눈여겨본다. 꼭 거창할 필요는 없다. 일상 속 작은 운동, 브로콜리를 얹은 신선한 샐러드 한 접시, 한낮의 달콤한 낮잠이야말로 진정한 웰빙의 시작이다.

      에디터
      이주현, LOTTIE WINTER
      포토그래퍼
      HELMUT NEWTON

      SNS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