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곡돌이라 불러다오
아이돌이 작곡을 시작했다. 혹시 이 문장에서 ‘아내가 결혼했다’나 ‘뜨거운 아이스크림’ 같은 알 수 없는 인지부조화를 느낀다면 그것은 당신의 시계가 아직도 한참이나 과거에 머물러 있다는 증거다.
아이돌도 작곡을 한다. 심지어 단순히 무슨 그룹의 누가 곡을 쓸 줄 안다더라 하는 수준의 논의를 벗어난 지도 꽤 오래다. 이들은 이제 자신이 속해 있는 그룹이 부를 노래를 쓰는 것은 물론, 동료나 선후배 가수들에게 직접 쓴 곡을 선사해 히트 시키기도 한다. 팬들에게 띄우는 발라드 풍 팬 송이 대부분이던 초기에 비해 장르도 힙합, R&B, 일렉트로니카, 걸 팝까지 다양하게 진화했다.
스스로 곡을 쓰는 아이돌의 장점이라면 노래와 퍼포먼스를 하는 사람이 직접 곡을 쓴다는 싱어송라이터적 관점과 무대 위에서 직접 호흡해 본 이만이 가질 수 있는 동물적인 직관이라 할 수 있겠다. 자신이 부를 노래를 스스로 쓴다는 사실로 물아일체적 진정성을 인정받는 음악계의 유구한 싱어송라이터 사랑은 이 곳에서 더 이상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후자의 경우가 조금 특별하다. 크고 작은, 때로는 전세계를 상대로 한 무대 위에서 뜨겁게 쏟아져 내리는 조명과 환호를 기억하는 세포를 가지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으로 이제껏 세상에 없던 무언가를 써내려 갈 수 있다는 건 누구에게나 주어지지 않는 귀한 경험치다.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넓고 깊게 자신들의 음악세계를 확장해 나가고 있는, 기억해둬야 할 아이돌 작곡가들의 이름을 특성에 따라 그룹별로 묶어 보았다.
조상라인
지금 곡을 쓰며 활동하고 있는 아이돌이라면 누구나 지드래곤(빅뱅)의 영향 아래 있음을 거부할 수 없을 것이다. 이것은 비단 음악적 색깔뿐만이 아닌 ‘작곡하는 아이돌’의 위상과 대중의 평가에 대한 얘기다. 그가 있었기에 용준형(비스트), 정용화(씨엔블루), 종현(샤이니) 등이 비교적 온당한 평가를 받으며 작곡가이자 솔로 아티스트로서 순탄하게 활동을 펼쳐 나갈 수 있었다.
힙합이 쏘아 올린 작은 공
어느새 21세기 한국 대중음악시장의 중심이 되어버린 힙합은 아이돌 시장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특히 남자 아이돌 사이에서의 상승이 도드라졌는데, 이는 ‘강한’ 이미지를 어필하기 쉬운 환경과 언젠가부터 래퍼 포지션이 필수로 잡히기 시작한 구성상의 특징도 한 몫 했다 볼 수 있다. 초기 ‘힙합 아이돌’이라는 수식어를 전면에 내세웠던 방탄소년단(랩몬스터, 슈가 외), 지코(블락비), 아이콘(바비, 비아이 외) 등이 대표적이다.
그룹형 작곡가
그룹 내 한 두 사람이 아닌 거의 모든 멤버가 작곡을 하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다. 밴드로의 변신은 물론 마지막 미니 앨범 ‘Why So Lonley’를 모두 멤버들의 곡으로 채우며 완성도와 대중성 두 마리의 토끼를 동시에 잡았던 원더걸스와 멤버 임현식을 필두로 해가 갈수록 앨범 크레딧 내 멤버 지분율을 높여 가고 있는 비투비가 대표적이다. 앨범에서 멤버들이 쓰지 않은 곡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인 2PM과 갓세븐, 데뷔부터 실력파로 명성 높았던 위너도 빼놓을 수 없다.
새로운 피
작곡가 범주와의 환상적인 호흡으로 활동 초기 ‘자체제작돌’이라는 평가 아래 팀의 인지도를 빠르게 상승시킨 우지(세븐틴), 모그룹의 타이틀곡은 물론 독특하게도 걸그룹과의 상성이 좋은 곡들을 쏟아내 많은 관심을 모았던 진영(B1A4), ‘Never’, ‘에너제틱’의 공전의 히트로 단번에 2017년 최고의 기린아가 되어버린 후이(펜타곤)의 기세도 눈 여겨 볼 만 하다.
- 글
- 김윤하(음악 평론가)
- 포토그래퍼
- GETTYIMAGES, COURTESY PHOTOS
- 에디터
- 조소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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