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n
사도 사도 입을 게 없는 옷장을 매 시즌 채우는 건 구멍 난 독에 물 붓기다. ‘프로젝트앤’은 시즌마다 최신 유행을 반영해 무한한 가상 공간의 옷장을 선사한다.
패션은 자고로 입는 것보다 사는 게 맛이다. 직장 상사가 내게 지른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가열차게 카드를 긁을 때, 얼마나 어떻게 입을지에 대한 고민은 집에서 기다리는 반려견의 몫이다(Feat. 개나 줘버려). 당신의 옷장 속에는 순간의 기쁨을 선사한 블링블링한 ‘패션 마약’이 무위도식하며 삶을 낭비하고 있다. 옷장을 열 때마다 펼쳐지는 환락적 장면에 벅차오름을 느끼나? 그렇지만 현실은 여전히 입을 옷이 없고, 순간의 기쁨보다 길고 고독한 마이너스 통장의 고통이 검은 입을 벌리고 있을 뿐. 무엇보다 이 모든 악순환은 시대착오적이다.
“패션 대여 시장은 이전에도 존재했습니다. 다만 여태껏 이뤄진 대여 사업은 특정 상품에 대한 필요에 기반했다면 ‘프로젝트앤’은 무한한 옷장과 패션의 경험에 대한 것입니다.” 프로젝트앤의 본부는 판교 에스케이 플래닛 본사다. 최신식 패션 소비 방식은 패션 전문 기업이 아닌 IT 회사에서 이뤄졌다. 프로젝트앤을 개발할 당시 시작점 역시 패션 마켓 진출이 아닌 일상 소비생활에 변화를 일으키고 유용하게 쓰일 수 있는 새 온라인 서비스였다. 어쩌면 그래서 이 모든 일이 가능했는지 모른다. 전통적으로 패션계란 보수적인 데다 새로운 시도에 꽤 냉소적이다. 어떤 면에서 프로젝트앤을 가장 잘 활용하는 그룹도 패션계 종사자일 테지만 가장 꺼리는 이들 역시 패션 전문가일 것이다. 1년 만에 가입자 35만 명, 이용권 판매 누적 건수 3만 건에 이르지만 누군가는 여전히 ‘대여는 대여, 중고는 중고일 뿐’이라며 어깨를 으쓱인다.
“사실 초기 단계에서도 부정적 인식에 대한 고민이 많았습니다. 어떤 이유에서든 사용을 망설이게 된다면 서비스로서의 가치도 없죠. 일단 대여한 제품은 무조건 세탁 과정을 거칩니다. 세탁 전후, 창고에 입고되기 전후에도 꼼꼼하게 체크하죠. 몇 번 입은 옷은 분명 흔적이 남을 거라고 생각하기 쉬워요. 그렇지만 프로젝트앤 상자를 받는 순간마다 새 옷을 받았다는 착각을 느끼도록 하는 게 우리의 원칙입니다.” 실제로 사람들은 종종 기분 좋은 착각에 빠지곤 한다. 오, 내가 이 옷을 개시하게 된 게 분명해! 두꺼운 박스 속에는 새침하게 개킨 옷이 포장지로 곱게 싸여 있다. 포장지를 고정하는 스티커와 빈틈없이 채워 넣은 충전재는 필수(해외 유명 온라인 편집매장의 포장을 연상케 한다). 더했으면 더했지, 부족함은 없다. 브랜드 매니저는 약간의 고민이 담긴 표정으로 말했다. “포장지를 낭비한다고 지적하는 분들도 종종 있죠.”
선입견에서 비롯된 의심은 꽤 끈질기다. 그렇다면 과연 이 옷은 어디서 오는 걸까? 결코 정상적 경로는 아닐 거라는 근거 없는 확신에 휩싸인다. 만약 입 밖으로 소리 내어 말했다면 충격에 빠진 바이어의 얼굴을 마주할 뻔했다. “모든 제품은 기존의 편집매장과 동일한 시기, 동일한 과정으로 입고됩니다. 해외 브랜드의 경우도 사입 방식이 아니라 패션 위크 기간에 직접 쇼룸을 방문해 아이템을 선택하고 주문하죠. 원래는 대여 가능한 제품 전부를 매 시즌 바꿀 계획이었지만 사용자들의 요청에 의해 지난 시즌 제품 일부를 계속 운영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시즌이 끝날 때쯤이면 패밀리 세일도 한다! “한국 사람들은 패션에 민감하고 잘 차려입고자 하는 욕구가 큽니다. 유행에 반응하는 속도도 빠를뿐더러 연예인을 보면 따라 하려는 경향도 강하고요. 유행을 따르지 못하면 ‘패알못’이라고 놀림감이 되는 게 한국이죠.” 프로젝트앤 팀은 끊임없이 옷을 사야 하지만 주머니 사정은 여의치 않은 현실의 괴리에 대해 말했다. 누군가는 사이트에서 제안해주는 대로, 간편하게 이것저것 입는 방식이 옷을 매개체로 구축할 수 있는 애착 관계, 삶의 한 측면을 방해한다고 비난할지 모른다. 당장 눈앞의 손익과 편리를 따져 삶을 더 비인간적으로 만든다고 말이다. “우리가 제공하는 경험은 단순히 저렴한 비용으로 많은 옷을 입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프로젝트앤을 통해 패션을 배우고 즐거움을 깨닫고 자신의 스타일을 구축하게 되죠. 무한한 공유 옷장에서 마음에 쏙 드는 브랜드와 옷을 발견하면 결국 그 옷을 사게 될 겁니다.”
이런 측면은 사용자뿐 아니라 프로젝트앤의 파트너에게도 유효하다. 저렴한 비용에 빌려 입을 테니 옷을 사는 사람들이 줄어든다든가, 브랜드 이미지에 타격을 줄 거라고 염려하는 건 일견 당연하다. 그러나 더 많은 사람들이 부담 없고 손쉽게 브랜드를 인지하고 경험할 수 있는 통로인 것 또한 사실이다. 프로젝트앤에서 자체적으로 파트너 브랜드를 홍보하고 콘텐츠를 생산하기 때문에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고, 실제 기반이 전무한 국내 브랜드가 프로젝트앤을 통해 인지도를 높인 경우도 있다. “독립 디자이너의 경우 한국 시장은 특히 초기 비용이 많이 들고 시장 진입이 어렵죠. 그런 면에서 우리는 아주 좋은 조력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어떤 옷을 빌려 입고 싶어 할까? “하의보다 상의를 선호하죠. 회사에 출근했을 때 사람들이 쉽게 알아챌 수 있으니까요.” 봄에는 결혼식장에 입고 가기 좋은 미니 드레스, 함께 매치할 카디건이 인기. 겨울에는 코트가 다양해야 한다. “프리미엄 패딩 제품이 불티나게 들락거리는 건 말할 필요도 없죠!” 제품 구성은 편집매장처럼 너무 튀어서도 곤란하고 입고 싶은 욕구가 사라질 정도로 무난해서도 안 된다. 일상적인 출근복부터 특별한 날, 드레스업하기 위한 아이템까지 매일 열어보는 가상 공간의 옷장은 만능이어야 하니까. 가장 열정적 사용자는 30대 워킹맘과 전문직 여성이다. 사회생활 TPO에 맞게 적당히 옷을 갈아입어야 하는 것도 있지만, 세탁 걱정만 덜어도 가뿐하니 말이다. 막 패션에 눈뜬 새내기들에게 추천하는 서비스는 찾아가는 스타일 컨설팅이다. 모두가 이 컨설팅이 얼마나 놀라운지에 대해 열정적으로 설명하기 시작했다. “내 신체 사이즈를 알게 된 순간 얼마나 충격적이던지!” 부위별로 치수를 재고, 맞는 옷 사이즈를 알려주고, 어울릴 만한 브랜드를 알려주고, 장점은 부각시키고 단점은 가려주는 디자인을 알려준다(꽤 강한 어조로). 패션 입문자라면 아마 큰 깨달음을 얻게 될 것이다.
“프로젝트앤의 뮤즈는 앤 해서웨이예요.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앤디는 패션을 접하고 변화하면서 자신의 스타일을 찾아가죠. 그리고 영화 <인턴>에서는 온라인 패션 업체 대표 줄스로 변신합니다. 서로 다른 영화, 다른 인물이지만 주인공이 패션을 통해 성장하고, 앤 해서웨이가 주인공을 연기한다는 공통점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죠.” 바잉 매니저는 여자가 옷을 잘 입는다는 것은 많이 입어보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마음껏 입어보고 그 과정을 통해 나만의 스타일을 찾게 되는 것. 패션 스트리밍의 시대가 열렸다.
촬영 장소는 경기도 이천에 위치한 프로젝트앤 물류 창고. 모델의 룩은 모두 프로젝트앤에서
대여 가능한 디자이너 의상. 퍼 슬리퍼는 로저 비비에(Roger Vivier),
귀고리와 반지는 빈티지헐리우드(Vintage Hollywood), 로퍼는 유니페어(Unipai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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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디터
- 송보라
- 포토그래퍼
- 차혜경
- 모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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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헤어
- 장혜연
- 메이크업
- 이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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