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y Party
연말 하면 파티, 그래서 ‘토이 파티’에 가기로 했다. 주인공은 섹스 토이, 초대 손님은 섹스토이를 알고 싶은 자들이다.
12월호에는 강박적으로 파티, 폭죽, 샴페인이 터지는 이미지의 기사를 기획하곤 한다. 한 해를 청승맞지 않게 자축하며 보내려는 마음이랄까. 올해는 토이 파티에 가기로 했다. 섹스 토이에 대해서 얘기 나누고 체험하며, 성 취향도 정리하고, 음식을 나눠 먹는 파티다. 페미니스트이자 섹스 칼럼니스트, 섹스 토이 덕후인 은하선이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연다. 물론 신청자가 있을 때만. 파티 장소는 상수동에 위치한 ‘은하선 토이즈’. 저녁 7시, 테라스에는 겨울이 오기 전에 칠링하려는 사람으로 북적이고, 곳곳엔 취향을 드러내길 주저 않는 바이크 숍, 의류 숍, 커피숍이 자리한 골목이었다. 그중 한 건물의 2층에 은하선 토이즈가 있다. 이곳은 음식점이다. 지인의 음식점 한쪽에 섹스 토이를 진열하고, 토이 파티를 연다. 호스트인 은하선은 이미 테이블에 섹스 토이를 늘어놓고 손님을 맞을 준비 중이었다. 실내는 향신료 냄새로 꽉 차고, 사람들이 동남아풍의 메뉴를 먹고 있었다. 우린 음식 대신 섹스 토이를 두고 앉았다. 음식과 섹스 토이, 그렇게 다른 군 같지는 않다.
토이 파티 손님들은 다양하다. 대학교의 여성주의와 퀴어 동아리에서 신청하는 경우가 많고, 50대 친구들끼리 기차를 타고 올라오기도 하며, 10대 여학생들, 장애 여성 연대도 있었다. “제가 섹스 토이를 설명하면 청각 장애인을 위해 옆에서 타이핑을 했죠.” 이들은 섹스 토이 쇼핑을 위한 목적도 있지만 그저 “궁금해서” “기분 전환”으로 오기도 한다. 제품을 구입하지 않더라도 이것들을 매개로 자신에게 솔직해지는 파티다. 때론 “나는 남편 있어서 그런 거 필요 없는데”라며 상황을 지켜보기만 하는 여성도 있다.
성에 당당하고 자립한 여성임을 드러내려고 나의 자위 경험부터 얘기했다. “<버자이너 모놀로그>에서 할머니가 욕조에서 처음 자위를 하며 오르가슴을 느끼고는 울잖아요. 그런 자위를 위해서 섹스 토이를 사용하려고요.” 은하선은 이렇게 답했다. “섹스 토이를 곧 자위로 연결시키면 안 돼요. 커플이 사용할 수도 있고, 자위와 섹스의 경계를 구분 짓기도 어렵죠.” 나는 섹스 토이의 기초 수강생이었다. 2015년에 부티크 형태의 ‘플레져랩’이 생긴 이후 여러 지역에 섹스 토이숍이 들어섰다. 후미지고 음습한 섹스 토이 숍의 시대는 갔다, 라고 말하기도 철 지났다. ‘레드컨테이너’가 이태원, 홍대, 성수동, 건대에 이어 이수, 강남에 지점을 넓힐 예정이며, 지난 10월엔 독일의 ‘베아 테우제’가 이태원에 생겼다. 1946년 설립한 베아테우제는 성인용품 하나로 독일 주식시장에 상장까지 한 업체다. 2014년 글로벌섹스 토이 시장은 150억 달러 규모다. 우리나라만 해도 2,000억 규모로 추정된다. 그만큼 섹스 토이는 다양하다. 그럼에도 섹스토이를 접하지 않았던 이유는 ‘굳이 그렇게까지?’ 싶었기에.
은하선은 섹스 토이를 마사지기에 비유했다. “손보다 마사자기를 사용하면 더 빠르게 이완되잖아요. 진동이 더 섬세하고 지속적이니까요. 저는 피곤한 날이면 숙면을 위해 바이브레이터로 자위를 하곤 해요.” 마사지 자위라니, 멋졌다. 1940년대 인기 있는 자위 기구도 두피 마사지기였다. 우수한 진동을 가졌다는 소문에 여성들이 바이브레이터로 사용했다(생김새는 진공청소기의 모터처럼 생겼지만). 1920년대부터 초창기 바이브레이터는 로봇의 잘린 다리나 가전제품 같다. 현재는 컵케이크만큼 귀엽거나, 애플 제품처럼 모던한 형태로 발전했다. 물론 진동은 섬세해지고 소리는 작아졌다. 내 앞에 놓인 섹스 토이도 컵케이크, 아이스크림, 토끼, 바나나 모양에 컬러풀하다. 성기를 노골적으로 본뜬 모양은 없었다. “박람회에서 섹스 토이를 펼치면 아이들이 장난감인 줄 알고 와요.”
섹스 토이를 구입하려고 지갑을 열고 온 상태였다. 물론 “가장 잘 팔리는 제품 하나 주세요”라고 말하지 않았다. 은하선은 내 성 취향을 물었다. “어느 정도 굵기와 길이를 좋아하죠? 진동 세기는요? 부드러운 촉감이 좋나요, 부드러우면서도 단단한 촉감이 좋나요?” 토이 파티는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가부터 시작한다.
딜도와 바이브레이터로 제품을 좁히고, 성능을 체험했다. 손을 내밀었다. 손에 기기의 진동을 느끼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졌다. 어떤 ‘친구’는 진동이 너무 세밀해서 간지러웠고, 어떤 ‘친구’는 헤드가 상모처럼 돌았다. 노랑 오리는 3단 고음도 아니고 10단 진동으로 방수까지 되어 욕조에서의 행복을 찾아주고 싶어 했다. ‘제품 특성상’ 환불 불가인 섹스 토이 쇼핑에 더 신중하게 빠져들었다. 중지 정도로 작고 얇은 딜도도 있었다. 은하선은 섹스 토이 숍에서 직원으로 일하던 5년 전에는 작은 사이즈의 딜도가 드물었다고 했다. “모두 이성애자라는 가정하에, 또 취향이 한결같을 거란 선입견으로 큰 사이즈가 주를 이뤘죠. 에널 섹스용이나 퀴어 여성들이 선호하는 손가락 크기 정도의 딜도를 만들고 싶었어요.” 이곳에선 하니스의 사이즈도 99까지 있다.
그래서 무엇을 샀느냐 하면, 21만원짜리 바이브레이터 겸 딜도다. 보라색의 손바닥만 한 사이즈로, 건전지로 작동하며 두 개 부분이 동시에 움직여 섬세하게 자극한다. 사은품으로 동물실험을 하지 않는 콘돔도 받았다. 섹스 토이계의 혁명, 노벨 평화상 수준이라는 우머나이저도 끌리긴 했다. 그동안 섹스 토이가 진동이나 삽입을 통해 오르가슴을 선물했다면, 우머나이저는 공기압으로 여성의 음핵을 빨아들여 단숨에 오르가슴으로 안내한다. 제조사에 따르면 사용한 여성의 절반이 1분 만에 절정을 느꼈다고. 온라인 숍에서 ‘베스트셀러’인 립스틱 모양의 섹스 토이도 우머나이저였다. 하지만 모든 제품을 사용해보고 좋은 것만 추천한다는 은하선은 “자신에겐 별로”라며 고개를 저었고, 나 역시 100m 달리기처럼 단숨에 절정으로 이끄는 우머나이저는 거절했다. 내 취향은 ‘과정’이니까.
이젠 섹스 토이 아이쇼핑도 한다. 스웨덴의 성인용품계를 이끈다는 ‘레로(Lelo)’가 내놓은 24캐럿 골드 딜도형 바이브레이터인 이네즈(Inez)처럼 섹스 토이계의 버킨 백이 존재했다. “기쁨에 가격을 매길 수 없는 이들”을 위한 제품이라고. 요즘엔 일본 브랜드인 ‘텐가(Tenga)’의 미니멀한 디자인을 좋아한다. 어떤 제품은 셀린처럼 우아하다. 키스 해링과 콜라보레이션한 제품도 있지만 도저히 성욕이 일지 않는다. 문제는 이들 쇼핑몰에는 회원 가입을 하지 않는 이상, 들어갈 때마다 성인 인증을 해야 한다는 것. 휴대폰으로 인증 번호를 받아야 한다. 매일, 매번. 성인용품점 역시 유해 시설로 분류돼 있다. 학교 근처 200m 이내에선 영업이 불가능하다. 성인용품 수입도 ‘성인용품 통관 심사위원회’를 거쳐야 하는데 ‘미풍양속을 해치는 물품의 수입을 금지한다’는 모호한 기준이며, 한 달에 한 번만 심사를 하는 탓에 빠르게 신제품이 들어오기도 어렵다. 21만원을 주고 산 섹스 토이에 만족해서 갑자기 섹스토이계를 걱정하는 예찬론자가 됐느냐고? 솔직히 그 제품은 실패다. 그저 다양한 토이들과 만나 어제보다 나은 밤을 만들고 싶을 뿐.
- 에디터
- 김나랑
- 포토그래퍼
- 이현석
- 스타일리스트
- 윤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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