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lcome back, 90’s
유행은 10년 주기로 돌아온다? 현재 유행의 시곗바늘은 20년 전으로 돌아간 게 확실하다. 2018 S/S 시즌 패션 인사이더들에게 가장 주목받은 컬렉션은 90년대를 평정한 질 샌더, 헬무트 랭, 캘빈 클라인이었으니까. 호랑이 가죽보다 대단한 이름을 남긴 ‘레전드’들에 대한 단순한 향수는 아니다. 그들이 남긴 유산을 창의적으로 계승한 상속자들에 대한 찬사로 공을 돌리는 편이 적절하다.
우선 질 샌더의 새 얼굴 루시, 루크 마이어 듀오는 밀라노 패션 위크에 가능성을 보여주었다는 평을 얻었다. 그 근거는 중성적이고 간결함으로만 대변되는 줄 알았던 질 샌더에 여성스러움과 긍정성을 찾았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질 샌더가 미니멀하고 차갑다고 생각하죠. 하지만 자세히 보면 이 브랜드는 아주 감성적이고 가벼운 데다 여성스럽습니다.”
다음은 헬무트 랭. 앤드로지너스 룩의 대표이자 ‘현대 도시의 유니폼’이라는 수식어를 얻었기에 누가 온다 한들 ‘랭 신드롬’의 왕좌를 한 명이 온전히 짊어지긴 무리처럼 보였다. 그래서일까? 그 흔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라는 직함 대신 패션 에디터 출신 이자벨라 벌리가 브랜드의 ‘전속 에디터’, 그리고 후드바이에어(HBA)의 셰인 올리버를 ‘전속 디자이너’로 지목했다.
이들은 1998년 랭이 패션 브랜드 최초로 뉴욕의 노란색 택시에 처음으로 내건 패션 광고 프로젝트를 부활시켰고, ‘리에디션(Re-Edition)’이라는 이름의 캡슐 컬렉션으로 랭을 대표하는 아이템 열다섯 개를 복각해 판매했다. 또 포토그래퍼 월터 파이퍼를 비롯, 1년간 비주얼 아티스트 열두 명과의 협업제품을 선보이며 강펀치 사이사이에 잽을 날릴 예정이다. 셰인 올리버가 뉴욕 패션 위크에 선보인 옷은 ‘헬무트 랭 신 바이 셰인 올리버(Helmut Lang Seen by Shayne Oliver)’라는 라벨을 달게 된다. 올리버가 바라본 랭이라는 뜻이다. 새 브랜드 이름처럼 그는 큰 그림자에 자신을 숨기기를 거부했다. 오히려 지금의 랭에 소속된 사람들은 세상 어디선가 미술 작업을 하고 있을(그는 은퇴 후 조각가의 삶을 살고 있다) 헬무트 랭을 신격화했다. 그리고 90년대를 살아보지 않았던 밀레니얼 세대에게 과거의 판타지를 새로 주입해 브랜드 이미지를 확장하는데 성공했다.
트로이카의 마지막 주인공은 90년대의 귀환을 한 시즌 먼저 알린 캘빈 클라인이다. 라프 시몬스는 사람들의 기억에 남은 캘빈 클라인의 이미지를 명확히 간파했다. 바로 데님과 언더웨어. 이 두 가지 분야에 집중하는 것을 제외하면 지금의 캘빈 클라인에서는 선대의 영향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윌리 반데페르가 소년 모델들을 내세워 찍은 캠페인은 과거 남성성을 강조한 캘빈 클라인 언더웨어의 젠더 이미지와는 대척점에 있으며, 라프 시몬스는 PVC와 깃털을 트렌디한 소재로 만들었으니까. 런웨이만 보면 오히려 과거와의 연을 끊어버리고 자기 색깔을 브랜드에 입혀 새로운 캘빈 클라인을 만들었다는 데 가깝다. 결과는? 성공!
질 샌더는 2000년(이후 2004, 2013 두 차례), 헬무트 랭은 2005년, 캘빈 클라인은 2003년에 브랜드를 떠났다. 이들의 브랜드가 권위를 되찾는 데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돌아오는 길은 외롭지 않았고 오히려 강력한 지원군을 얻은 셈이 됐다.
- 에디터
- 남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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