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 etoile vianney
‘나의 스타’ 비안네. 지난 3년간 프랑스어권의 모든 대중음악상 신인상과 최고 인기 가수상, 올해의 음악상 등을 휩쓴 싱어송라이터 비안네와 그가 동경하는 수영의 만남.
지난해 프랑스의 칸 영화제에서는 진귀한 풍경이 벌어졌다. 영화제 70주년을 기념하는 매우 중요한 행사가 팔레 데 페스티발(Palais des Festivals) 메인 홀에서 열렸다. 영화제의 역사와 함께한 전 세계의 배우, 감독, 영화인을 국적과 언어, 세대를 초월한 의미 있는 행사에 초대했다. 분위기가 한창 무르익었을 때, 무대에 모습을 드러낸 뮤지션은 이제 막 26세가 된 프랑스 가수 비안네(Vianney)였다. 어디선가 빌려 입은 듯 어색한 턱시도 상의에 청바지… 읊조리듯, 속삭이듯, 푸념하듯, 그는 기타 하나만 의지한 채 거대한 객석을 향해 노래를 시작했다. 그것도 올림픽 이외에서는 진작에 공용어 자리를 잃어버린 프랑스어로 말이다(프랑스어처럼 들렸지만 실은 강한 프랑스어 악센트가 섞인 영어도 있었다). 그 자리에 있던 많은 사람들이 비안네의 노래를 이해했을까?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영화제 행사의 하이라이트 시간에 그를 초대했을 때는 분명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러나 초반 행사장의 카메라는 권태로운 표정의 데이비드 린치와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을 비췄다. 무표정한 박찬욱 감독이 살짝 등장한 것도 이때였다. 다행히 세계적 거장이라 불리는 감독들은 주최국의 인기 가수에게 무한한 인내심을 보여줬다. 아무리 프랑스어를 잘 이해한다 해도, 그 숨은 뜻을 알 수 없는 가사의 노래를 들어야 하는 것은 곤혹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카트린 드뇌브는 지루한 표정이었고, 우마 서먼은 진지하게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듯 보였다. 니콜 키드먼은 아예 카메라와 시선을 마주치길 거부하며 고개를 돌렸다. 그와 같은 모국어를 쓰는 마리옹 코티아르는 한참 동안 계속된 어색한 상황이 재미있었는지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나 비안네가 일으킨 마법은 영화제의 집행위원장인 티에리 프레모가 객석의 스타들에게 무대에 올라와달라 독려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60년대 이탈리아와 프랑스 영화계의 전설이었던 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를 비롯한 윌 스미스, 우마 서먼, 베니시오 델 토로 같은 수많은 영화계의 전설들이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도 비안네의 노래에 맞춰 춤을 추기 시작한 것이다. 쏟아지는 박수 속에 비안네는 불과 몇 분 만에 모든 관객을 자신의 열성적인 팬으로 만들었다. 그 생생한 변화의 과정이 TV로 고스란히 중계되었다. “영화제 측에서 저에게 70주년을 기념하는 영화 주제곡 메들리를 불러달라고 하더군요. 저도 이렇게까지 이 공연이 화제가 될 줄은 몰랐어요.(웃음) 제 노래에 맞춰 춤추는 스타들을 보는 즐거움도 인상적이었지만 제일 기뻤던 건 부모님이 객석에서 모든 광경을 감격스럽게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이었어요.” 이 행사가 바로 비안네의 세계 무대 데뷔였던 셈이다. 덕분에 세계 영화인의 기억 속에 비안네는 자신의 이름을 확실히 각인시킬 수 있었다.
자고 일어나보니 스타가 되어 있더라는 식의 경험이라면 비안네는 이미 익숙하다. 2014년, 더 이상 슈퍼스타가 존재하지 않는 프랑스 대중음악계에, 기타 하나만 든 그는 그야말로 혜성처럼 등장했다. 그리고 지난 2015년에는 프랑스어권의 모든 대중음악상 신인상을 휩쓸었으며 2016년과 2017년에는 올해의 아티스트 상, 올해의 음반상을 비롯한 모든 음악상을 받았다.
전 세계가 추구하는 음악의 방향이 있다면, 프랑스 음악계는 늘 엇박자의 길을 걸어왔다고 할 수 있다. 아무리 스트리밍의 시대가 되고, 유튜브 세상이 되었지만 여전히 가사의 전달력을 최고의 덕목으로 생각하는 프랑스는 제일 까다로운 대중 음악 시장 중 하나일 것이다. 그런 높은 장벽을 넘을 수 있었던 비안네의 유일한 무기는 바로 친밀감과 조르주 브라상으로 시작해, 막심 르 포레스티에로 이어지는 현대판 음유시인 같은 싱어송라이터라는 점이다. 명성을 얻게 되면서 그는 세계 여러 나라에서 공연을 했다. 영국과 더불어 프랑스는 여전히 많은 나라에서 문화적인 영향력을 과시하는 것이 사실이라, 프랑스 최고의 인기 가수인 그도 당연히 환영받았다. 특히 그 수많은 나라 중 그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곳이 있다면 한국과 일본이었다. 그는 꼭 다시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불과 1년 만에 지켰다. 마침 한국에서는 동계 올림픽이 열렸고, 이를 맞아 세계 프랑스어 협회가 그를 초청한 것이다.
비안네는 두 번째 발걸음한 서울에서 더욱 특별한 경험을 하고 싶었다. 이곳의 아티스트와 음악 세계에 대한 공감을 나누고 싶었다. 누구보다 프랑스어의 세계화에 애썼던 문화부 장관이었고 한국인 입양아 출신으로도 유명한 플뢰르 펠르랭(Fleur Pellerin) 여사에게 이 고민을 털어놓았다. 덕분에 프랑스 문화부를 통해 추천받은 아티스트가 바로 소녀시대 출신의 수영이었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 수영은 프랑스 젊은 층에게 압도적 인기를 얻고 있는 프로그램 <르 그랑 주르날(Le Grand Journal)>에 등장, 스튜디오를 초토화시키고, 다음 날 온 프랑스 전역에 신드롬을 만들어낸 바 있다. 아시아인이 TV에 등장하는 것 자체가 드문 일인 프랑스의 대중문화계를 뒤흔든 획기적 사건이었다. “엄청난 충격이었죠. 그 정도로 과격한 리듬의 춤을 절도 있게 추면서 멤버 아홉 명이 같이 그런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것 자체가 그저 멋있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할 정도로 근사했어요.” 비안네는 지금도 그때의 충격이 떠오른다고 했다.
미국이 주도하는 대중문화의 주류에 늘 반기를 들어온 프랑스에는 K-팝이 인위적인 완벽함이라든가 퍼스낼리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스타가 되기 위해 만들어진 마케팅의 승리라고 보는 비판적 시각도 물론 존재한다. 하지만 동시에 소녀시대를 시작으로 샤이니, 엑소가 세계 무대로 향하는 발판으로 활용한 곳이 엄청난 K-팝 응원 인구가 존재하는 파리였다.
수영은 파리에서의 공연을 여전히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공연이 끝나고 말로만 듣던 유명한 곳을 멤버들과 다니며 사진을 찍었어요. 그리고 우리 앞에서 한국어로 완창하면서 응원해주던 열성적 팬들이 잊히지 않아요.” 그녀는 몇 번이나 가봤지만 여전히 낯선 파리에서의 추억을 회상했다.
처음 프랑스 대사관으로부터 연락을 받았을 때, 수영은 매우 기쁘게 이 제안을 수락했다. “저희(소녀시대)를 기억해주는 것만도 영광이죠. 저도 외국에서 공연을 할 때면 항상 그곳의 아티스트들과 교류하고 싶고, 그곳 사람들이 사랑하는 음악도 궁금해요. 하지만 절차 때문에 매번 아쉬움을 뒤로하고 포기하게 되는데, 이 정도 위치의 뮤지션이 한국까지 와서 직접 용기를 내어 이런 만남을 제안했다는 사실이 더 신기했어요.”
수영이 좋아하는 샹송은 샬롯 갱스부르와 카를라 브루니로 대변되는 뉴에이지 프렌치 팝스다. “프랑스 문화의 많은 면이 그렇지만, 누구나 상상할 수 있는 뻔하고 안전한 길을 포기하고 늘 의외의 선택을 하는 프랑스 아티스트들을 부러워했어요.” 중도에 포기할까 봐 자랑하고 싶지 않지만, 사실 그녀는 최근 프랑스어 공부를 시작했다. 이미 수준급 영어와 일본어를 구사하는 그녀가 프랑스어에 도전한 이유는 최근 프랑스의 CNN이라 불리는 테베생크몽드(TV5Monde)의 프로그램에 출연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제가 1일 편집장이 되어서 프로그램 전체를 구성하는 거예요. 최수영의 눈으로 보는 파리의 가장 멋진 장소를 소개하는 거죠. 이제까지 프랑스 사람들의 시각으로 소개한 파리와는 다른, 외국인, 특히 한국인 수영의 시선으로 보는 파리의 아름다움을 살펴보는 프로그램이에요. 그런데 공부해야 할 게 너무 많네요. 일방적 예찬이 아닌, 가능하다면 한국과의 연관성, 한국 사람들이 좋아하는 이유, 그런 것도 얘기하고 싶어요.”
비안네가 스튜디오에 들어섰을 때, 두 사람은 오래된 친구처럼 서로를 반겼고 비안네가 먼저 프랑스 채널에서 소녀시대를 봤을 때의 충격과 경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부드러운 분위기를 만들어갔다. 하지만 이렇게 부드러운 남자, 비안네에게도 민감한 부분이 있었다. 촬영 시작 전
간단한 헤어, 메이크업을 하려고 하자 질색을 하는 것이었다. “비안네는 비안네여야 하니까요!” 결국 번들거림을 잡아주는 파우더를 조금 바르고, 헤어만 약간 정리하는 정도였지만, 준비한 재킷조차 “비안네답지 않다”는 이유로 정중히 거절한 후 자신의 후드 티를 입은 채 촬영했다. 수영은 이 모든 일련의 과정을 매우 흥미진진하게 지켜보았다. 수영뿐 아니라 그의 노래를 들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궁금해하는 뮤지션, 비안네와의 대화.
군인이었던 부모님이 당신에게 어떤 교육을 했을지 궁금해요. 아버지는 군인이었지만 반전(反戰) 운동의 노래를 스스럼없이 자녀들에게 들려주는 분이었고 파일럿이었던 어머니는 되도록 많은 시간을 세 아들(비안네는 3형제 중 막내)과 보내려고 노력하셨죠. 이런 끈끈한 유대 관계 속에 부족함 없이 자랄 수 있었던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 요즘 새삼 깨닫고 있어요.”
파리의 유명 패션학교인 에스모드를 다녔다는 특이한 경력이 있어요. 디자이너가 되고 싶었나요? 당신이 좋아하는 디자이너는 누구였나요? 어릴 때부터 이브 생 로랑의 그림과 작품을 매우 좋아했어요. 그때부터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는 꿈을 꾼 것 같아요. 그러다 마르지엘라 같은 미니멀리스트 디자이너에게 매료되었죠. 작품에서 늘 동심을 잃지 않는 장 샤를 드 카스텔바작 같은 디자이너도 좋아하고요.
패션을 계속했다면 비슷한 시기에 학교를 함께 다닌 올리비에 루스테잉 같은 세계적인 디자이너가 됐을 것 같나요? 아뇨, 이제 와 생각해보면 저한테는 어울리지 않는 전혀 다른 세계였던 것 같아요. 하지만 그림 그리는 것, 뭔가 만드는 것은 여전히 좋아해서 콘서트나 투어의 포스터를 직접 만들거나 음반 디자인에도 깊이 관여하고 있어요.
왜 샹송을 좋아하던 사람들이 모두 사라진 걸까요? 요즘 샹송은 더 이상 에디트 피아프 시대의 것이 아니에요. 모든 사람이 샹송에 대해 기대하는 그런 음악이 더 이상 나오지 않기 때문이죠. 하지만 여전히 샹송은 세계 음악계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고 있어요. 자즈(Zaz), 스트로마에(Stromae), 샬롯 갱스부르, MHD 같은 뮤지션들은 그 존재만으로도 전 세계 음악계에 대단한 영향을 주고 있잖아요.
당신의 음악이 전 세대에 걸쳐 고른 지지를 받는 이유를 생각해본 적 있나요? 유난히 음악을 좋아했던 부모님 덕분에 어릴 때부터 지난 세대의 음악을 충분히 듣고 자랄 수 있었어요. 행운이었죠. 자크 브렐(Jacques Brel)에서부터 리키 리 존스(Rickie Lee Jones)를 거쳐 막심 르 포레스티에(Maxime le Forestier)의 음악에 특히 빠져 살았죠. 물론 우리 세대에 유행한 노래도 많이 들었어요. 이런 다양한 경험이 제 노래에 고루 영향을 준 게 아닐까요?
당신이 생각하는 K-팝의 매력은 뭔가요? K-팝에 심취하게 된 건 최근의 일이에요. 절도 있는 안무와 다양한 가능성에 매우 깊은 인상을 받았죠. 하지만 한국어로 된 가사를 이해할 수 없다는 건 무척 안타까워요. 너무 궁금해서 구글 번역기를 돌려보기도 해요.
같은 아티스트로서 수영에게 기대하는 건 뭔가요? 수영과의 첫 만남은 아주 신선한 충격이었어요. 그녀의 쿨한 태도와 소탈함, 주변 사람들에 대한 배려, 내면의 아름다움, 그런 것들에 매료되었죠. 아티스트로서 이런 태도로 임할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솔직히 그녀가 많이 부러워요!
한밤중에 촬영을 마친 두 사람은 한남동의 유명한 북엇국집으로 이동해 민어전과 북엇국을 나눠 먹었다. 이 특별한 만남에 기분이 무척 좋아진 비안네는 직접 기타를 들고 즉석 공연을 선보이기도 했다. 평창 올림픽 개막식에 참가한 비안네는 다음 날 수영의 생일 파티에 참석하기 위해 KTX를 타고 서울로 올라왔다. 그리고 소녀시대 멤버들이 참석한 이태원의 프라이빗 파티에서 자신의 히트곡을 불러주었다. 서울의 어느 밤, 프랑스에서는 상상할 수 없었을 진짜 라이브 공연을 그곳에 있던 모든 이들에게 펼쳐 보였다.
- 에디터
- 윤혜정
- 포토그래퍼
- 김영훈
- 글
- 심우찬(칼럼니스트)
- 스타일리스트
- 서수경
- 헤어
- 김태훈(미장원바이태현)(비안네), 한수화(제니하우스 청담힐)(수영)
- 메이크업
- 김태훈(미장원바이태현)(비안네), 오윤희(제니하우스 청담힐)(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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