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Big body

2018.04.03

by VOGUE

    Big body

    넷플릭스의 자본과 기술력, 〈아바타〉 〈셔터 아일랜드〉의 각본가가 건설한 디스토피아 〈얼터드 카본〉. 그곳에서 주연배우 조엘 킨나만의 몸은 핵심 장치다.

    그레이 컬러 니트 재킷과 베이지 컬러 헨리넥 티셔츠는
    폴로 랄프 로렌(Polo Ralph Lauren).

    넷플릭스의 오리지널 콘텐츠 <하우스 오브 카드> 시즌 4에서 조엘 킨나만(Joel Kinnaman)을 처음 봤다. 프랜시스(케빈 스페이시)에 맞서 대통령을 꿈꾸는 젊고 야망 가득한 정치인, 윌 콘웨이. 긴 야욕의 세월만큼 늙어버린 프랜시스가 알약과 한숨으로 아침을 시작할 때, 윌은 부인과 부엌에서 섹스를 한다. 189cm의 키, 스웨덴 국적으로 게르만족의 골격을 타고난 조엘의 외형은 프랜시스와 대비되며 긴장감을 키운다. 조엘를 만나는 날 굽이 12cm인 싸이하이를 신었음에도 마주 서자 내 머리는 그의 쇄골까지만 닿았다. 고개를 들자 태닝한 듯한 황토색 피부의 목선이 드러났다. 그는 익숙하다는 듯이 허리를 숙여서 나와 눈을 마주쳤다.
    호박색 눈동자다. 조엘은 엄청난 제작비를 쏟아부은(액수는 밝히지 않았다) 넷플릭스의 기대작 <얼터드 카본(Altered Carbon)>의 주연배우로 내한했다.

    조엘 킨나만의 인터뷰 촬영은 무한대로 팽창할 것 같은 그의 어깨에 맞는 재킷을 구하는 것이 관건이었다. 본인의 옷을 입고 촬영하겠다고 요구할 만한 체격이었다. 하지만 파파라치에게 ‘얼굴 낭비 패션’을 선보여온 데다, 이번 공항 패션은 붉은색 꽃 자수의 데님 재킷이었다. ‘외모 자신감’이 빚어낸 참극이다. <보그>는 자체 스타일링을 고집했고, 촬영 당일 조엘은 흔쾌히 마 음을 바꿨다. 탈의실 문을 닫기도 전에 웃통을 휙 벗어젖혔다.

    그의 몸에는 문신이 많다. 타투이스트인 아내가 새긴 작품이다. 팔에 영화 <수어사이드 스쿼드>에 함께 출연한 윌 스미스가 직접 새겨준 ‘SKWAD’도 보인다. 본래 철자는 ‘Squad’다. 맞춤법 틀린 문신이 그 영화의 참패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 그는 이 문신을 지울 생각이 없다. 더 이상의 문신을 거절 할 뿐. 촬영 전에 2시간씩 문신을 지우는 메이크업을 해야 하는데 그 범위를 늘리고 싶지 않다. “게다가 아내보다 쿨해질 자신이 없거든요. 아내가 저보다 훨씬 많은 타투를 갖고 있죠.”

    데님 팬츠는 폴로 랄프 로렌(Polo Ralph Lauren),
    브라운 레더 스트랩 워치는
    페라가모 타임피스(Ferragamo Timepiece at Gallery O’clock).

    이 배우는 얘기할 때 모르는 척 유머를 툭툭 던진다. <얼터드 카본>의 충격적 포스터(나체의 남성이 마트의 상품처럼 랩에 싸여 있는)를 보곤 “치킨윙처럼 나오지 않았나요?”라고 했다. 포스터는 조엘의 멋진(!) 몸매를 3D 프린팅해서 스캐닝해 촬영했다. 그는 주 6일, 매일 12~14시간씩 촬영했고, 일요일에는 스턴트 리허설을 했기에 부족한 운동 시간을 철저히 식단으로 대체했다. “녹두, 완두콩처럼 정말이지 밋밋한 음식을 1년 동안 먹었죠.” <얼터드 카본>에서 ‘몸’은 비주얼뿐 아니라 스토리에서 중요한 요소다. 배경은 24세기. 의식을 저장하는 메모리 칩만 무사하면 얼마든지 육체를 옮겨가며 영생할 수 있다. 조엘이 분한 타케시 코바치는 강력한 전투부대인 엔보이의 일원이었지만 반역 혐의를 받고 살해당했다가 250년 만에 다른 육체로 부활한다(250년 전의 타케시는 한국계 배우 윌 윤 리가 연기한다). 타케시를 깨운이는 최고의 부자인 뱅크로프트다. 타케시에게 자신을 살해한 범인을 찾아 달라고 부탁하면서 SF에 미스터리가 더해진다. 언제든 새로운 몸으로 부활할 수 있는 억만장자도 ‘나를 죽인 놈’은 궁금하다.

    <얼터드 카본>의 크리에이터는 레이타 칼로그리디스다. 그녀는 <아바타>의 총괄 프로듀서이자 <셔터 아일랜드> <터미네이터 제니시스>의 각본을 썼다. 그해의 최고 SF 소설에 수여하는 필립 K. 딕 상을 받은 SF 작가 리처드 K. 모건의 <얼터드 카본>을 읽은 10여 년 전부터 영화화를 꿈꿨다. 소설의 분위기를 살리려면 R 등급의 수위여야 했기에 영화 투자를 받기 어려웠고, 결국 넷플릭스라는 새 매체와 10부작 드라마로 구현되었다. 영화와 드라마의 경계가 무너지고 OTT 서비스의 부흥이라는 제작 환경 변화에 승차해 자신의 꿈을 실현시킨 것이다. 외형은 10부작 드라마지만 돈과 기술력, 사이버펑크, 수사물을 총합한 장편영화를 보는 기분이다.

    특히 <블레이드 러너>를 오마주한 강렬한 디스토피아 비주얼이 인상적이다. “1982년에 나온 <블레이드 러너>는 굉장한 충격이었죠. 그에 영향을 받아 수많은 사이버펑크 작품이 쏟아졌어요. 우리도 그중 하나죠. 다른 점이 라면 <얼터드 카본>은 그 세계관에 엔터테인먼트 요소를 가미했죠.” 스트립 댄서는 손님의 취향에 맞춰 순식간에 몸을 바꾸고, 억만장자의 집은 사람들의 시선에서 벗어난 구름 위에 있다. 빈부 격차도 <얼터드 카본>의 주요 요소다. 구름 위의 집에는 탱탱한 가슴선과 유두가 드러나는 화이트 새틴 드레스를 입은 안주인이 산다. 가난한 사람은 늙고 병든 육체를 받는다. 일곱 살쯤 되는 아이는 다크서클로 미뤄보아 마약 중독자의 신체로 다시 태어난 게 분명하다. 어떻게 내 딸에게 저런 육체를 줄 수 있냐고 항의하는 가족에게 관계자는 그마저 싫으면 거두겠다고 말한다.

    조엘 킨나만이 필름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다.
    포근한 울 소재 재킷을 입고도 이렇게 섹시할 수 있다니.
    재킷은 폴로 랄프 로렌(Polo Ralph Lauren).

    <얼터드 카본>은 조엘 킨나만으로 하여금 현실의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제가 SF 작품을 좋아하는 이유죠. 우리가 잘못된 결정을 내렸을 때 미래가 어떨지 생각해보게 하니까요. 가끔 미래가 두려워요. 과학자조차 AI를 우려하잖아요. 환경문제나 여러 난제를 AI가 해결할 수도 있겠죠. 어느 방향으로 갈지 몰라요. <얼터드 카본>처럼 250년 뒤에 제가 다른 육체로 태어날 수도 있겠고요. SF는 미래에서 일어날 법한 단면을 보여주죠.”

    조엘 킨나만은 디스토피아에서 살인범을 수사한다. 크리에이터인 레이타의 뜻대로 R 등급의 액션을 수행하면서. “성인들만 관람하는 액션 대작을 촬영하기란 쉽지 않죠. 육체적인 도전이 요구된 작품이었어요. 세계 태권도 챔피언이기도 한 스턴트 더블이 태권도를 가르쳐줘서 가능했죠.” 겸손하게 얘기했지만 그는 무술 마니아다. 복싱의 오랜 팬이며, 지난 6개월은 주짓수에 빠져 살았다. “기회가 될 때마다 주짓수 훈련을 해요. 집에선 아내가 잠들기 2시간 전에는 주짓수 영상 시청을 금지했어요. 그걸 보면 흥분돼서 잠을 못 자거든요.” 그는 육체의 허들 레이스를 즐긴다. 그가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이기도 하다. “육체적인 도전을 이겨내면 정신적인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어요. 최소한 덜 어렵게 느껴지죠. 아침에 힘든 운동을 하는 이유죠. 나머지 시간 동안 난감한 일이 벌어져도 이겨낼 수 있거든요.” 그는 새로운 무술을 배우면서 삶의 방향성과 집중력을 키운다고 덧붙였다. “무술뿐 아니라 늘 새로운 무언가를 배우고 싶어요. 연기할 때는 행복하고 하지 않으면 왜 우울할까 생각해본 적이 있어요. 어떤 배역이든 도전하고 극복해내야 하잖아요. 그 상태를 유지해야만 살아 있는 것 같아요.”

    이번 작품이 준 또 다른 도전 과제는 ‘대형 프로젝트의 리더’가 되는 것이다. “배역에 영향을 굉장히 많이 받아요. 하지만 이번에는 의도적으로 배역과 나를 분리했어요. 조연이라면 캐릭터에 몰입해서 촬영 기간을 보냈겠지만 <얼터드 카본>에선 리더 역할도 해야 했거든요. 스태프들에게 긍정적인 에너지를 전달하고 싶었죠.” 그는 촬영 중 당한 부상도 웃으며 얘기한다. “다섯 번째 에피소드를 찍다가 다리가 부러졌어요. 액션 하면서 부러졌으면 정말 멋지겠죠. 근데 대사를 까먹어서 의자를 발로 찼는데, 의자 말고 제가 망가졌어요. 무거운 영국식 의자였거든요. 정말 대단한 액션 영화에 출연하면서 말이죠!” 심지어 주연작인 <수어사이드 스쿼드>와 <로보캅>의 흥행 참패에도 그는 침잠하지 않는다.

    “위스키 한 병 사 들고 집에 와서 흠뻑 마시면 되죠. 실패를 통해 성장하는 거 아니겠어요?(웃음) 사실 작품에서 배우가 통제할 수 있는 부분은 한정적이죠. 최종 컷에 대한 결정권은 감독에게 있잖아요. 배우로서 그 작품을 진실하게 대했다면 그걸로 충분해요. <수어사이드 스쿼드>는 지금도 너무 사랑해요. 그 작품에 내려진 가혹한 비판을 인정하지만, 내게 어떤 의미인지도 중요합니다. 타인의 의견 때문에 내 의견이 무시되어선 안 되죠.”

      에디터
      김나랑
      포토그래퍼
      주용균
      스타일리스트
      노해나
      헤어&메이크업
      이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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