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트렌드

Vintage Revisited

2018.03.08

by VOGUE

    Vintage Revisited

    빈티지가 하나의 유행이 됐다. 진짜 빈티지인지, 빈티지처럼 만든 새 제품인지 헷갈릴 정도다. 이 유행에 동참한 당신은 실제로 그 시대를 경험했을 수도, 혹은 한참 후에 태어났을 수도 있다.

    루이 비통 × 슈프림 모노그램, 버버리 노바 체크(이 익숙한 무늬는 2018 S/S 시즌부터 ‘빈티지 체크’로 불릴 예정이다)에 이어 젊은 멋쟁이 뮤지션들의 다음 사냥감은 펜디 주카 패턴이다. 2018 S/S 여성 컬렉션에 재등장한 이 패턴은 지난 1월, 2018 F/W 남성 컬렉션에서 스웩 넘치는 밀레니얼 젊은이들이 이 무늬를 어떻게 소화해야 할지에 대한 비전을 제시했다. 물론 벨라 하디드나 켄달 제너, 리한나 같은 셀럽의 스트리트 패션을 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세상에서 제일 핫한 그들은 미켈레가 먼지를 털어낸 GG 로고와 마리아 그라치아 키우리가 인공호흡 중인 디올 오블리크 백을 경쟁하듯 메고 다니니 말이다. 그리고 밀레니얼들은 디자이너들이 재해석한 신상 버전보다 고색창연한 진짜 빈티지를 선호한다.

    “루이 비통에 대한 수요가 가장 많습니다.” 빈티지 디자이너 부티크 ‘왓 고즈 어라운드 컴즈 어라운드(줄여서 WGACA)’의 공동 설립자 세스 와이저(Seth Weisser)는 구찌의 구찌시마, 펜디 주카 프린트 백과 옷도 인기라고 덧붙였다. 바로 지금 WGACA 온라인 사이트에 새로 입고된 제품을 살펴보면 루이 비통 다미에 패턴 백과 멋지게 색이 바랜 펜디 주카 프린트의 베니티 케이스, 구찌시마 백팩과 벨트 백, 갈리아노 시절의 로맨틱한 디올 백 등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아이템이 전면에 배치돼 있다. 트레데시(tradesy.com)의 CEO 트레이시 디눈지오(Tracy DiNunzio)에 따르면 빈티지 마켓의 요즘 트렌드는 2000년대 초 <섹스 앤 더 시티>와 패리스 힐튼 스타일. 한때 브랜드가 드러나지 않는 조신한 디자인을 선호하던 시절도 있었지만 사람들은 무라카미 다카시, 스티븐 스프라우스와 협업한 루이 비통 컬렉션처럼 요란한 스타일로 다시 돌아섰다. “로고가 잔뜩 들어가고 엄청나게 화려하죠!”

    여기서 잠깐. 70년대부터 2000년대 초까지 각 시대의 유행을 재구성하는 게 트렌드인 요즘, 반짝반짝한 새 제품이 도처에 널렸는데 굳이 낡고 색이 바랜 빈티지에 열광하는 건 왜일까?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빈티지의 기원으로 거슬러 올라갈 필요가 있다. 노스캐롤라이나대학의 물질문화학 교수 제니퍼 르 조트(Jennifer Le Zotte)는 <스미소니언> 매거진에 ‘빈티지 의류의 발명’이라는 기사를 기고했다. 그녀의 조사에 따르면 1920년대 미국 중산층 출신의 아이비리그 대학생들 사이에서는 부유해 보이면서 가격은 합리적인 라쿤 모피가 엄청나게 유행했다. 20년대 말 세계 대공황의 신호탄인 주식시장 폭락 사태가 일어났고, 백화점과 의류 매장에는 미처 팔지 못한 라쿤 모피 코트 재고가 산처럼 쌓이게 됐다.

    시간이 흘러 1957년 여름, 건축가 스탠리 샐즈먼은 자신의 아내 수 그리고 몇몇 지인들과 함께 저녁 식사 중이었다. 수는 중고 가게에서 발견한 멋진 라쿤 코트를 보고 망설이는 바람에 결단력 있는 다른 손님에게 뺏기고 말았다는 이야기를 늘어놨다. 마침 그 자리에 있던 스탠리의 제자 진 퍼터맨은 1920년대 그 코트가 최초로 유행할 당시 미처 팔아 치우지 못한 라쿤 코트 수십 벌이 쌓인 곳을 알고 있었다. 테이블 앞에 앉아 있던 모두가 그 창고로 달려가 낡은 모피 코트를 각자 한 벌씩 가졌고, 샐즈먼 부부는 여전히 남아 있는 30년 묵은 코트 재고 더미로 사업을 시작했다. 오래지 않아 잡지 지면과 백화점 광고에 등장할 정도로 선풍적 인기를 끈 이 코트에 대한 당시의 묘사는 다음과 같다. “너무도 아름답게 황폐해진 빈티지 라쿤 코트.” 엄청난 인기로 물량은 금세 바닥났고 복제품까지 등장했지만 낡으면서도 고풍스럽고, 속물 같으면서도 초라한, 여기저기에 구멍이 난 진짜 묵은 코트만큼의 인기는 절대 얻을 수 없었다.

    르 조트는 자신의 저서 <From Goodwill to Grunge>에서 중고 의류는 진짜 가난한 사람이 아닌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보헤미안들이 입었을 때 비로소 패셔너블한 아이템이 됐다고 설명하고 있다. 반체제주의 지식인 그룹이 입은 낡고 오래된 옷은 50년대 전형적인 부르주아와 차별화하기 위한 ‘선택적 가난’의 룩이었다. 허름함이나 빈곤이 아닌 로맨틱한 스타일로 받아들여진 중고 의류는 취향 있는 화려함의 표식이 되면서 정식으로 빈티지라는 명칭까지 얻게 됐다. 이러한 기원은 신제품이 빈티지 같고 빈티지가 신제품 같은 요즘, 사람들이 왜 빈티지를 선택하는지, 그리고 절대 흉내 낼 수 없는 그 매력은 무엇인지에 대한 명분과 해답을 준다. 모든 것이 너무나도 빠르게 바뀌어서 그 어떤 것도 정확한 가치를 매기기 어려워진 시대에 오랫동안 변치 않는 가치의 대상을 찾는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또한 주류를 거부하고 남과 다르기를 원하는 성향은 21세기 젊은이와 20세기 보헤미안 사이의 공통점이기도 하다.

    럭셔리 재판매 사이트 베스티에르 콜렉티브(vestiairecollective.com)의 마리 블랑셰(Marie Blachet)는 빈티지와 아카이브를 재해석한 최신 제품이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비슷하지만 여전히 빈티지를 사는 쪽이 더 가치 있고 매력적으로 느껴진다고 말한다. “무엇보다 가장 좋은 점은 새 제품을 사는 것보다 훨씬 싸다는 거죠.” 빈티지가 지금처럼 유행의 선두에 서기 전에는 제스키에르의 발렌시아가나 마르탱 마르지엘라의 마르지엘라처럼 생산량 자체가 적고 마니아층이 있는 아이템을 제외하고는 새 제품보다 가격대가 낮은 게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빈티지에 대한 수요가 증가함에 따라 가격대가 점점 오르는 추세. 그라치아 키우리가 아카이브 백 디자인을 되살리면서 베스티에르 콜렉티브에서 60유로대였던 빈티지 디올 백은 이제 300유로대에 이른다. 블랑셰는 빈티지 패션이 시간이 멈춘 듯 먼지 쌓인 다락방 안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시대의 흐름에 반응한다고 말한다. “인기 있는 빈티지 아이템 또한 패션 브랜드를 다시 빛나게 하는 요즘 트렌드의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유행의 흐름과 막강한 인플루언서의 영향 등 여러 가지 요인이 있지만 밀레니얼 세대를 비롯해 패션계 전반이 과거에 향수를 느끼고 있다. 빈티지 패션 전문가들은 특정 시대에 반응하는 사람들은 그 시대를 직접 경험하고 당대 대표 디자이너 덕분에 패션에 눈을 뜨게 된 경우가 많다고 설명한다. 파페치의 캔디스 프래지스(Candice Fragis)에 따르면 2012년부터 운영해온 파페치 빈티지 섹션의 주요 타깃은 30대 중·후반이며, 그들이 20대였던 90년대부터 2000년대 초 헬무트 랭 컬렉션에 대한 반응이 매우 좋다고 한다. 2014년부터 빈티지 스트리트웨어를 판매해온 런던 ‘웨이비 가름(Wavey Garms)’의 공동 설립자 리애넌 배리(Rhiannon Barry)는 매장을 찾는 사람들의 90년대부터 2000년대 초 패션에 대한 열정과 해박한 지식은 놀라울 정도라고 말했다. “아주 잘 알아요. 그 문화에 완전히 빠져 있죠. 그중 몇몇은 그때 겨우 세 살에 불과했지만요!”

    이처럼 그 시대를 직접 경험하지 못한 나이 어린 세대가 과거에 대한 일종의 환상이나 경외심으로 흥미를 느끼는 케이스도 있다. 인터넷과 온라인의 발달은 그 어느 때보다도 간접적이지만 생생하게 과거를 경험할 수 있도록 해준다. 1970년대 스타일에 열광하는 밀레니얼들은 당시 이브 생 로랑이 직접 디자인한 수트를 입고 로큰롤 문화를 이끌던 롤링스톤스처럼 보이고 싶어 한다. 그들 사이에 인기인 미켈레의 취향이 70년대 젯셋족에 기원하는 것처럼 말이다.

    일부에서는 이 현상에서 좀더 심리적인 이유를 찾기도 한다. 사우샘프턴대학의 심리학과 부교수 팀 와일드슈트는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경험이나 느낌을 갈망하는 것에 대해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지만 그중 하나는 외로움이나 삶의 무기력 같은 정신적 고난을 극복하는 데 도움을 주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렇지만 이 모든 것은 단순히 젊은 세대가 직접 경험해보지 못한 과거에 대해 신선함을 느끼는 데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다. 소셜 네트워크의 발달은 과거를 한 개인의 기억 속에 남겨두지 않는다. 개개인의 추억은 온라인을 통해 접근 가능한 모두와 공유되고 확장되며 재생산된다. 다음은 뭘 해야 할지 망설이는 디자이너들은 SNS에서 부유하는 과거의 조각에서 힌트를 얻고, 패션은 또 다른 방식으로 돌고 돈다. 빈티지 옷처럼.

      에디터
      송보라
      사진
      GETTYIMAGESKOREA

      SNS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