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표준을 제시하는 토인 오지 오두톨라

Living

새로운 표준을 제시하는 토인 오지 오두톨라

2018-11-29T10:16:03+00:00 2018.11.29|

나이지리아계 미국인 아티스트 토인 오지 오두톨라가 파스텔과 볼펜으로 그린 흑인 가족 연대기를 보자. 왜 흑인 피부색 묘사의 혁신가로 불리는지 알 수 있다.

나이지리아에서 태어나 미국 앨라배마주 헌츠빌에서 성장기를 보낸 아티스트 토인 오지 오두톨라(Toyin Ojih Odutola)는 ‘비주얼 스토리텔러’다. 현재 토인은 나이지리아의 두 가족을 주인공으로 자신의 소설 3부작을 위한 드로잉에 한창이다. 한 가족은 대대로 귀족 가문이고, 다른 가족은 근대에 무역과 포도원으로 부유해진 신흥 부유층이다. 두 가족은 남자 계승자인 지데오포르와 테미토페 간의 결혼으로 결합했다. (지데오포르는 둘째 아들이었는데, 그의 형이 하이에나의 공격을 받아 죽으면서 가문의 계승자가 됐다.)

“제가 쓴 이야기에 드로잉을 함께 하면서 시작한 작업이죠.” 토인은 말한다. 이 이야기는 확장돼 “우리가 자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릴 둘러싼 자본에 대한 일종의 소유권을 다루는” 회화적 내러티브가 탄생했다. 다시 말해 이것은 아프리카가 식민지가 되지 않았더라면 가능했을 상황에 대한 고찰이다.

토인은 일찌감치 휘트니 미술관과 다른 박물관에서 풍부한 색감과 생동감 넘치는 나이지리아 가족 드로잉으로 단독 전시를 열었다. 토인은 드로잉을 즐겨 한다. 첫 번째 작품 ‘A Matter of Fact’를 2016년 후반에 샌프란시스코의 아프리카 디아스포라 박물관에서 전시했을 때, 버클리 역사학자 리 레이포드(Leigh Raiford)는 잡지 <아트포럼>에 이렇게 쓴 적 있다. “한 예술가가 ‘흑인성’의 경계를 실험하고 확장해가는 모습을 목격할 수 있다.” 옛 거장들처럼 추상화 기법으로 아프리카계 미국인이란 피사체의 정체성을 표현한 케힌데 와일리(Kehinde Wiley)나 타이터스 카파(Titus Kaphar)와 다르다. 토인은 ‘흑인성’이 무언가에 갇히지 않고, 그 자체로 표준이 되는 시대를 바란다. 그녀는 오히려 예술가이자 영화 제작자인 아서 자파(Arthur Jafa)와 비슷하다.

토인은 아름답게 삭발한 미인이다. 거리낌 없고 유머러스하며, 종종 폭소를 터트린다. 맨해튼 미드타운의 공장 건물을 개조한 스튜디오를 두 군데 갖고 있다. 작업실에 조수는 없다. 그녀는 10층 ‘인큐베이터’라는 스튜디오에서 웹 서핑을 하고 책을 읽고 스트리밍 서비스로 영화를 본다. (영화 <블랙 팬서>를 아주 좋아한다.) 그곳에서 글도 쓰는데, 반드시 거기에 어울리는 그림도 함께 그린다. (자신이 쓴 글을 아무한테도 보여주지 않는다.) 그녀는 “6층에 있는 스튜디오는 성지”라며 웃었다. 막바지 단계의 드로잉이 자리하는 공간이다. 벽에는 실물 크기의 인물 아홉 명을 스케치한 300cm 정도의 화폭이 두 점 세워져 있다. 그녀는 “테미토페 일가예요”라고 설명한다. “옛 가문은 모두 공식 초상화가 있지 않나요? 지데오포르 일가도 그릴 텐데 이처럼 규모가 크진 않을 거예요.”

인터뷰가 끝나고 이 작품은 첼시에 있는 잭 샤인먼 갤러리에 전시됐다. 갤러리 대표인 샤인먼(Shainman)은 토인이 캘리포니아예술대학에서 대학원생으로 공부하던 시절부터 그녀를 눈여겨봤고, 2011년에 첫 번째 단독 전시회를 제안했다. 당시 작품은 볼펜으로 여러 겹 그린 흑인 얼굴이었다. 그때부터 토인은 흑인 피부색 묘사의 혁신가로 올라섰다.

요즘 토인은 자메 티소트(James Tissot)의 1868년 작 ‘The Circle of the Rue Royale’에서 영감을 얻어 대형 그룹 초상화를 작업 중이다. 그림에는 갓 결혼한 게이 상속자 커플이 빳빳하게 다린 셔츠를 입고 구부정하게 서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나이지리아에서는 동성애가 불법이다.) 관객은 그림 속 이야기로 빠져든다. 마치 넷플릭스 시리즈물을 보는 것 같다. “이 정도로 완성도 있는 드로잉 작품을 만나기란 쉽지 않아요. 특히 1985년생이 만들기는 더 어렵죠. 무엇을 드러내고 무엇을 숨겨야 하는지 아는 작가예요.” 지난해 10월 휘트니 미술관에서 토인의 전시회를 선보인 큐레이터 루제코 호클리(Rujeko Hockley)는 말한다.

토인은 나이지리아 남서부 고대 요루바족의 도시인 이페에서 태어났다. 그곳의 정치 상황은 매우 불안해서 1990년에 어머니 넬레네 오지(Nelene Ojih)는 토인과 남동생을 데리고 버클리의 대학에서 화학을 가르치던 아버지 J. 아데올라 오두톨라(J. Adeola Odutola)에게 갔다. “아버지는 요루바족이고 어머니는 이보족”이라고 토인은 말한다. “나이지리아 여성을 사랑해요. 어머니는 간호사면서 문학 관련 학위도 갖고 계셨죠. 우리 가족은 가부장적이었지만 어머니는 달랐어요. 제가 태어날 때 많은 이들이 기뻐했지만 남동생이 태어날 때는 마을 전체가 난리였죠. 아버지는 남동생에게 ‘너는 내 이름을 이어받았으니 특별하다’고 자주 말했어요. 그럴 때면 어머니가 저를 한쪽으로 데려가서 ‘네 아빠가 무슨 말을 하든 상관하지 마라. 너는 내 이름 ‘오지’를 이어받을 거야’라고 말씀하셨죠.” 2015년에 토인은 공식적인 이름으로 ‘오두톨라’에 ‘오지’를 덧붙였다.

‘Newlyweds on Holiday’, 2016. Charcoal, pastel and pencil on paper, 63×41inches(paper) / 69 1/2×47 3/4×2 1/2inches(framed).
©Toyin Ojih Odutola. Courtesy of the artist and Jack Shainman Gallery, New York.

버클리에서 4년을 보낸 후 그녀의 가족은 앨라배마주 헌츠빌로 이사했다. 아버지가 역사적으로 흑인들의 학교인 앨라배마A&M대학교의 종신 교수직을 제안받았기 때문이다. 그 당시 아홉 살이던 토인은 겁이 났다. “이제 갓 영어를 익힌 이주민의 자녀니까요. 게다가 노예제도와 마틴 루터 킹 목사, 버밍엄 폭동에 대해서 배우던 참이었죠.” 당시 어머니는 가여운 딸을 위해 <라이온 킹> 컬러링 북을 사줬다. 파산 상태인 터라 큰맘 먹고 산 선물이었다. 토인은 “그 책을 보며 예술에 관심이 생겼죠”라고 회상한다. “아무도 티몬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지만, 그는 유일하게 상식적인 존재예요. 냉소적이고 험담을 잘하는 성격마저 그저 좋았어요.” 그 당시까지만 해도 헌츠빌은 미 육군의 우주 로켓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지역이었지만 그녀는 난생처음 인종차별과 집단 따돌림을 당했다. ‘마치 집중 훈련 과정’ 같았다고 토인은 말한다.

험난한 성장 과정에서 미술은 도피처였다. “본 것을 종이 위에 옮기는 너무나도 간단한 작업에 매료됐죠. 마법 같았어요.” 토인의 고등학교 미술 선생님은 그녀의 재능을 알아보고 케리 제임스 마셜(Kerry James Marshall)과 카라 워커(Kara Walker) 같은 흑인 예술가의 작품을 소개했다. 토인은 고등학교 졸업 후 앨라배마대학에서 스튜디오 아트와 커뮤니케이션을 전공했다. 그곳의 교수는 코네티컷 노퍽에 있는 예일대학교의 여름 아트 레지던시에 그녀를 추천했다. 사실 교직원들 반대가 심했다. “제가 학교에서 유명한 말썽쟁이인 데다 입이 거칠었거든요.” 결국 레지던시에 들어갔지만 ‘인생 최악의 경험’을 하고 만다. “그곳 사람들은 인종차별주의자가 많았어요. 저에게 전공을 바꾸라고까지 했죠. ‘빌어먹을! 당신들이 틀렸다는 걸 증명할 거야’라고 다짐했어요.”

그녀의 부모는 미술로 먹고살기 힘들다며 로스쿨 진학을 원했다. 그러나 캘리포니아예술대학에서 전액 장학금을 탔고 MFA 학위도 받았다. 재학 중인 그녀의 볼펜 드로잉 작품을 잭 샤이먼이 모두 구입했다. 토인은 2013년에 뉴욕으로 옮겨 갤러리 전시회를 치르고, 유럽현대미술 비엔날레인 마니페스타 12 작가에 포함되었으며, 이탈리아 팔레르모에서 열린 인터내셔널 노마딕 비엔날레에 참여하는 등 혜성처럼 떠올랐다. 드로잉 작품을 구매하려는 대기자 명단도 생겼다. 토인은 점점 더 놀라운 작품을 선보였다. 2015년 얼굴이 까매서 자신들의 백인성(즉 그들의 ‘중요성’)을 강탈당한 저명한 백인 43인(찰스 왕세자,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J. 에드거 후버, 마틴 에이미스, 파블로 피카소, 베네딕트 컴버배치)의 두상을 볼펜으로 드로잉한 ‘The Treatment’도 그중 하나다.

그녀는 브루클린에 살지만, 깨어 있는 시간 대부분은 맨해튼 스튜디오에서 보낸다. 여행도 많이 한다. 16세에 엄마와 다시 나이지리아를 방문한 후 자주 그곳을 찾는다. 도쿄, 피렌체, 런던, 앨버커키, 조슈아트리, 요하네스버그, 라고스, 그 밖의 여러 장소에서 시간을 보내고, 아이폰으로 찍은 여행 사진을 드로잉 작품에 활용한다. 대체로 채식을 하고 아프로비트에 맞춰 춤을 추며, 스튜디오에서 하는 스쿼트로 건강한 몸매를 유지한다. 그녀가 사생활에 대한 질문을 거절했음에도 전 남자 친구를 의식해 스튜디오 벽에 걸어둔, 유쾌하면서도 다소 폭력적인 느낌의 ‘Hello Love’ 텍스트 드로잉에 대해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일종의 농담 같은 거죠.” 토인은 말한다. “그걸 그 지질한 남자에게 보낼 뻔했다니까요.”
휘트니 전시 이후, 일부에선 토인이 흑인 문제 해결책으로 부를 거론한다며 비난했다. “부가 목표인 적은 한 번도 없어요”라고 그녀는 말한다. “부를 하나의 플랫폼으로 사용할 뿐이에요. 어떤 이들은 제가 흑인의 고통을 무시한다고 생각해요. 저는 흑인의 고통만 묘사하는 예술가가 되고 싶지 않을 뿐이에요. 사람들이 우리의 고통과 투쟁만 안다면, 그게 더 이상 뭘 의미하나요? 젊은이들이 이야기할 수 있는 방법이 그것뿐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으면 해요. 흑인 이야기도 우스꽝스러울 수 있어요. 바보 같을 수 있고, 평범할 수 있고, 비범할 수 있어요. 때로 지루할 수도 있어요. 우리도 이제 그런 특혜를 누려도 되지 않나요? 우리 이야기가 항상 고통일 필요는 없지 않나요? 이게 바로 제 작품의 대서사가 추구하는 목표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