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shion

ON THE STREET

2019.02.01

by VOGUE

    ON THE STREET

    카메라 렌즈 속에 살아 움직이는 패션을 기록한 사진가 빌 커닝햄. 새로운 다큐멘터리가 카메라 뒤에 숨어 살던 그의 삶을 세상에 전한다.

    “고마워, 꼬마.” 빌 커닝햄(Bill Cunningham)은 뉴욕 패션쇼가 끝나고 돌아가는 길에 택시를 함께 타고 가자는 나의 제안을 정중히 거절하며 이렇게 말하곤 했다. 그는 맑은 날이나 비 오는 날이나 눈 오는 날이나 그를 대표하던 파란 작업복 재킷에 모자를 쓰고 자전거를 타고 사라졌다.

    80년대 뉴욕 거리에서 만난 재키 케네디와 캘빈 클라인.

    렌즈로 역사를 담아낸, 카메라를 든 이 남자는 나를 ‘꼬마’라고 불렀다. 사진작가로 활동한 60년 가운데 절반의 세월 동안 나와 알고 지냈는데도 말이다. 그는 기우뚱한 자전거를 타고 다녔다. 사교계 인사들과 다운타운의 별난 인물들을 카메라에 담아냈고 무엇보다 가장 좋아하는 57번가와 5번가 모퉁이에서 패션 트렌드를 귀신같이 찾아냈다.

    80년대 패션 아이콘이었던 보이 조지.

    “나는 파파라치였던 적이 없어요”라고 커닝햄은 말하곤 했다. 그러나 그가 유명인들(예를 들면 이탈리아 패션계의 전설인 안나 피아지와 함께 있던 젊고 뚱뚱한 칼 라거펠트)만 찍은 건 아니다. 그는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나 보수적인 미국 상류층의 사적인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내며 끊임없이 변화하는 사회의 조각들을 이어 붙이기도 했다.

    뉴욕 거리에서 포착한 재키 케네디.

    늘 미소를 지으며 카메라를 들고 다니던 이 작고 야윈 남자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우체국에서 일하던 아버지 밑에서 태어난 그는 모자 디자이너로 패션계에 첫발을 디뎠고 소박한 삶을 유지했다. 뉴욕 카네기홀에 있는 그의 스튜디오에는 사진이 쌓인 선반 사이에 소박한 싱글 침대가 하나가 놓여 있었다. TV도 없었고 욕실은 공용이었다. 그러나 그의 작품은 패션 그 이상이었다. 그가 따라가거나 창조하며 역사를 기록한 작업은 놀라울 정도였다.

    20세기의 인물인 윈저 공작과 공작 부인.

    마크 보젝(Mark Bozek)의 <The Times of Bill Cunningham>은 2018년 뉴욕 영화제 출품작으로 선정되었다. 이 감독은 1994년 짧은 기록을 위해 그와 얘기를 나눈 후 그의 캐릭터를 간파했다.

    “우리는 10분 정도 그곳에 있을 예정이었지만 결국 3시간 반 후에 테이프가 모자랐어요”라고 보젝은 말한다. “2016년 그가 세상을 떠난 날 집 지하실에서 그날 찍은 테이프를 꺼냈는데 25년 동안 보지 않은 상태였어요”라고 그는 말을 이었다. “하지만 저는 그것이 그와 저의 진솔한 모습이 담긴 작품이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는 아주 열정적으로 자신의 얘기를 들려주었습니다.”영화를 보면 그가 에이즈라는 재앙에 대해 공개적으로 얘기했을 때 양지에서 음지로 옮겨간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러나 빌은 사진과 패션의 기록, 거기에 포함된 사람들에게 온전히 초점을 맞추며 살았다.

    그의 자유로운 영혼은 늘 패션을 좇았고 <뉴욕 타임스>를 위한 르포 기사를 만들었다. 그의 관심을 끌기에 너무 작거나 너무 웅장한 쇼는 없었다. 그는 예기치 않은 것에서 자극을 받았다. 화려한 남성복의 귀환, 밀레니얼 세대들이 소화 해내는 비비드한 칼라의 테일러링, 헐렁한 로커 의상에서 스포츠웨어에 이르기까지 변화무쌍한 스트리트 스타일…

    그가 1973년 베르사유에서 열린 행사에서 파리 오뜨 꾸뛰르의 장엄함을 능가하는 뉴욕 디자이너들의 캐주얼하고 모던한 의상에 대해 즐겁게 얘기하던 것이 기억난다. “내가 본 것 중 가장 흥미진진한 쇼였어요” 라고 말하면서 미국의 빌 블라스, 할스턴, 오스카 드 라 렌타가 선보인 절제되고, 캐주얼하고, 간결한 의상과 디올, 지방시, 이브 생 로랑을 비롯한 프랑스 대가들 사이의 대조를 회상했다. 아프리카계 미국인 스티븐 버로우스가 정중하게 예의를 갖춘 프랑스 관객들을 놀라게 하는 한편 피날레 무대에서 라이자 미넬리는 ‘Bonjour Paris’를 힘차게 불렀다. 그가 계급과 피부색에 대해 열린 마음을 보여준 건 그때가 처음이었지만 결코 마지막은 아니었다.

    2008년 프랑스 정부로부터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고 같은 시기에 트럭이 자신의 자전거를 들이받은 후 보험 혜택을 받기 위해 <뉴욕 타임스>의 공식 직원이 되었다. 그리고 2016년 커닝햄은 87세에 세상을 떠났다.

    80년대 쇼에서 인사하는 마크 제이콥스. 왼쪽은 모델 크리스티 털링턴.

    커리어 말년에 이런 변화가 있기 전 그는 70년대에 나이트클럽 스튜디오 54의 거친 에너지에서 시작된 변화를 기록하기 위해 비주얼 노트를 사용했고 그 후 업타운과 다운타운의 의상 컨셉을 소개하면서 고집스럽게 독립적으로 활동했다. 커닝햄의 뛰어난 사진으로 이루어진 아카이브는 현재 100만 달러 이상의 가치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그는 이런 숫자에 감탄하지 않았을 것이다.

    “돈은 가장 싼 것이다. 자유(Liberty and Freedom)야말로 가장 가치 있는 것이다.”

      에디터
      손기호
      포토그래퍼
      Bill Cunningham
      글쓴이
      Suzy Menk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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