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에이터들이 구독하는 추천 채널은?!
뮤직비디오 감독부터 일러스트레이터까지. 콘텐츠 최전선에서 뛰고 있는 크리에이터들은 뭘 볼까요? 다양한 분야의 콘텐츠 크리에이터들에게 넷플릭스부터 유튜브까지. 요즘 관심 있게 보는 것에 대해 물었습니다.
1 세상에서 제일 멋지게 구슬을 굴리는 사람, Kaplamino
“구슬이 굴러가는 영상을 4~5분 동안 홀려서 본 적이 있을까? 이 계정은 우연찮게 알게 되어서 즐겨 구독하는 유튜브 계정이다. 초반엔 도미노를 멋지게 쓰러뜨리더니 점점 갈수록 여러 재료를 이용해 구슬을 굴리는 영상이 업로드되는데, 별게 아닌 것 같지만 보면 볼수록 빠져든다. 치밀하게 계산된 각도와 위치, 다양한 재료가 어우러지는 과정이 마치 나에겐 하나의 예술 작품이 완성되는 듯 보였다. 몇 번의 클릭을 통해 이런 창작자의 노력이 깃든 작품을 볼 수 있어 감사하다.”
-섭섭(일러스트레이터)
2 반복되는 인생 속 빛나는 디테일의 변주, <러시안 돌>
“서른 살 생일을 기념해 뉴욕 여행을 앞두고 있다. 여행지를 배경으로 한 콘텐츠를 찾아보다가 발견한 명작 <러시안 돌>에 요즘 푹 빠졌다. 주인공의 생일 파티로 드라마가 시작되는데, 반복되는 장면을 뻔하지 않게 연출하고 매력적인 디테일을 살려냈다. 납작하지 않은 여성 캐릭터와 사운드트랙 선정 센스, 자신을 구원하는 일에 대한 교훈을 주는 엔딩까지 완벽 그 자체다. 러닝타임도 길지 않아서, 주말 반나절 동안 정주행하기를 추천한다.”
-손꼽힌(스틸북스 큐레이터)
3 장인에게 듣는 인터넷 강의, ‘마스터 클래스’
“마틴 스콜세지에게 배우는 연출, 헬렌 미렌에게 배우는 연기, 스테판 커리에게 배우는 농구, 제인 구달에게 배우는 대화, 아론 소킨에게 배우는 각본 쓰기, 한스 짐머에게 배우는 작곡까지. 요즘 즐겨 보는 채널은 ‘마스터 클래스’다. 각 분야에서 활약해온 쟁쟁한 명사의 인터넷 강의를 한곳에서 볼 수 있고, 한 편당 시간도 짧아서 생각보다 부담 없이 볼 수 있다. 항상 무언가 쏟아내기만 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창작자에게 추천하고 싶다.”
-이인훈(새가지비디오 감독)
4 기분 좋은 일상이 내 손에서, in living
“‘in living’은 브이로그라기보다는 일상의 단편을 단정하게 정리한 영상을 볼 수 있는 유튜브 채널이다. 채널을 운영하는 모델 겸 배우 리리카를 처음 본 건, 밴드 YeYe의 노래 ‘ゆらゆら(흔들흔들)’ 뮤직비디오였다. 연인과 이별한 현실의 공기를, 자신의 삶과 방 안에서 조금씩 빼내는 듯한 연기가 인상 깊었다. 양치를 하며 옛 연인의 짐이 가득 담긴 수박 박스를 발로 건드리고, 옛 연인에게서 키를 건네받고는 홀로 유원지에 가고, 심야에 방에서 영화를 보다 웃고 울다가, 다음 날 아침에 새로운 수박을 예쁘게 잘라 먹는 모습이 좋았다. 그 모습은 연기라기보다는 실제에 가까운 공기를 데려온 느낌이었다. 마치 뮤비 속 주인공의 일상을 보는 마음으로 in living을 즐겨 보게 되었고, 여러 영상은 어느새 내 일상에 가깝게 자리 잡았다. 모닝 루틴을 소개하는 영상을 틀어놓고 아침 청소를 하거나, 냉장고 속 소개 영상을 본 날이면 괜히 냉동실 청소를 하기도 했다. TV를 보지 않는다는 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지낸다는 의미일지도 모르지만 그러는 편이 삶의 건강에 이롭다는 생각이 든다. 그도 그럴 게 in living의 감자 샐러드 레시피를 보고 난생처음 감자 샐러드를 만들기까지 했다. 기분 좋은 일상이 내 손에서 생겨나는 게 그렇게 어렵지 않다는 것을, 부럽다고 생각하던 어떤 생활이 이미 방 안에 있었다는 것을, 타인의 일상 영상을 보며 매일 실감하고 있다.”
-임진아(일러스트레이터, 에세이스트)
5 우당탕탕 브나나네! <브루클린 나인-나인>
“언제부턴가 금요일 밤이 시작되면 모든 활동을 종료한 후 넷플릭스를 보는 게 낙이 되어버렸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주 심오하고 어두운 장르를 좋아했는데 요즘에는 글쎄, 그런 장르가 별로 보고 싶지 않더라. 그래서 찾지 않았던 조금 가벼운 장르물을 하나둘씩 보다가 결국 이 드라마를 만나게 됐다. 바로 <브루클린 나인-나인>. 뉴욕 브루클린 99지역을 관할하는 경찰서에서 발생하는 좌충우돌 사건에 대한 이야기다. 범죄 사건에 대해 다루지만 시종일관 가벼운 캐릭터, 페랄타(앤디 샘버그) 때문에 진지할 틈이 없다. 웃음에 조금 야박해진 나를 무너뜨린 앤디 샘버그에게 고마울 뿐이다. 매일 많은 생각에 치인 분들께 생각을 버리고 웃을 수 있는 이 드라마를 추천한다.(넷플릭스는 어서 시즌 6를 데리고 들어와주세요. 부탁입니다.)”
-임정연(29CM CULTURE MD)
6 약물에 취한 듯 보게 되는 <미스터 로봇>
“<미스터 로봇>을 보게 된 계기는 ‘짤’에서 시작되었다. 주인공 엘리엇이 직장 동료가 필요 이상으로 건네는 대화에 건조하게 대응하는 짤을 트위터에서 보고, 재미있는 오피스 드라마겠거니 가벼운 마음으로 1화를 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웬걸. 알고 보니 해킹을 다룬 스릴러 장르 드라마였다. <보헤미안 랩소디>에서 프레디 역을 맡은 배우 라미 말렉이 주연을 맡았다. 낮에는 사이버 보안 기술자, 밤에는 해커. 이중인격, 약물중독자로 완벽한 두 명의 주인공을 연기한다. <미스터 로봇>은 여태 내가 봤던 그 어떤 시리즈물보다 최고의 연출을 자랑한다. 주인공의 불안한 심리를 시각적, 청각적으로 완벽하게 묘사했는데, 특히 환각 상태에 있는 주인공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장면이 압권이다. 보는 나까지 불안장애, 우울증에 걸린 듯한 느낌을 받을 정도! 시즌 3의 5화는 에피소드 전체가 원 테이크로 촬영됐는데, 스릴러물에 흥미가 없는 사람이라도 과감하고 세련된 연출을 보는 재미로 도전할 가치는 충분한 듯.”
-박지혜(딩고 스타일 PD)
7 꾸준히 즐겨 보는 나의 <프렌드>
사실 넷플릭스가 없던 시절부터 꾸준히 사랑하는 드라마다. 다양한 형태의 배경을 가진 주인공들이 첫 시즌부터 마지막 시즌까지 다사다난한 인간사를 겪어나가는 과정, 그리고 나이가 들어가는 20대 후반부터 30대 후반에 이르기까지의 디테일이 어릴 때는 무슨 이야기인지도 모르고 재미있었지만, 이제는 점차 알아가며 함께 웃는 기분으로 보고 있다. 긴 에피소드 사이 다양한 직업을 가진 주인공들의 삶 속에서 벌어지는 해프닝과, 지금은 나이가 들고 너무나도 유명해진 할리우드 스타들의 젊은 시절 카메오 출연을 마주하는 것 또한 큰 즐거움 중 하나다. 특히 영어 공부 대용(?)으로 , 영문 자막을 놓고 보다가 자막 없이 보기도 하고, 가끔 정말 이해가 되지 않을 때 한글 자막을 두고 번갈아가며 봐오던 나에게는, 넷플릭스 같은 스트리밍 플랫폼을 통해 여러 시즌을 편하게 돌아볼 수 있는 환경 자체가 선물과 같다.
-정진수(VISUALS FROM. 감독)
8 아름답고 잔혹한 문학 서사, <그레이스>
<그레이스>는 캐나다 작가이자 여성주의자, 활동가인 마거릿 애트우드가 쓴 원작 소설의 탄탄한 서사와 섬세한 디테일을 딱 6편으로 재구성한 미니시리즈다. 여기에 캐나다 배우 사라 가돈의 맑고 매혹적인 얼굴, 누군가의 나약한 인생 정도는 기꺼이 깨뜨릴 것 같은 악마성까지. 어떤 장면은 베일 듯 날카롭고 또 다른 장면은 마냥 아름답다. 두 사람을 살해한 혐의로 종신형을 선고받은 하녀 그레이스 마크스의 일생이 그 얼굴에 말갛게 담겨 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의 감각적인 다큐멘터리, 탁월한 로맨틱 코미디, 도전적인 드라마와 예능 사이에서도 <그레이스>는 단정하게 빛난다. 오랫동안 서가에 꽂혀 있었지만 차마 못 버리는 책처럼, 넷플릭스 재생 목록에는 늘 <그레이스>가 있다.
-정우성(더파크 대표)
- 포토그래퍼
- Courtesy Photos
- 프리랜서 에디터
- 이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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