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여름의 신인 작가전

2021.05.14

여름의 신인 작가전

이번 여름 가장 반가운 소식은 ‘젊은모색’의 부활입니다. 국립현대미술관의 ‘젊은모색’은 1981년 출발한 국내에서 가장 오래되고 권위 있는 신진 작가 발굴 프로그램입니다. 이불, 최정화, 서도호, 문경원 등의 유명 작가들 모두 이 프로그램을 통해 이름을 알렸는데요. 미술관이 신진 작가 수용 방법을 고민하는 사이에 벌써 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네요. 그리고 그 끝에 다시 돌아온 ‘젊은모색’의 올해 정식 타이틀은 ‘젊은모색 2019: 액체 유리 바다’. 김지영, 송민정, 안성석, 윤두현, 이은새, 장서영, 정희민, 최하늘, 황수연이 참여했습니다.

‘젊은모색 2019: 액체 유리 바다’ 전시 전경.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액체, 유리, 바다는 참여 작가 아홉 명에게 발견한 공통의 키워드입니다. 그들은 액체처럼 자유롭고 유동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죠. 그 태도를 바탕으로 유리처럼 현실 안팎의 장면을 섬세하고도 선명하게 반영하는데요. 이러한 모습이 제시하는 그들의 가능성은 바다와 같이 넓고 창창합니다. 

이은새, ‘픽처 1′(드로잉), 2019.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전시작에는 젊은 작가들의 기발함과 진지함이 동시에 담겨 있습니다. 아이폰, 유튜브에서 파생한 정서를 통해 시대적인 고민을 토로하고, 가족이라는 복불복으로 맺어지는 관계에 의문을 던지기도 하죠. 안성석의 ‘나는 울면서 태어났지만, 많은 사람들은 기뻐했다'(2019)는 제목만으로도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데요. 물침대에 누워서 관람하며 보는 이가 감각 전환을 경험하도록 설치한 영상 작업입니다.

안성석, ‘나는 울면서 태어났지만, 많은 사람들은 기뻐했다’, 2019.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젊은모색 2019: 액체 유리 바다’ 개막 이후 두산갤러리에서도 ‘두산아트랩 2019: Part I’을 개최했습니다. 두산아트랩은 두산아트센터에서 2010년부터 만 40세 이하의 젊은 예술가들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입니다. 2013년부터 두산갤러리는 2년에 한 번씩 전시를 열어 잠재력 있는 미술 작가를 발굴하고 있는데요. 올해는 전시를 두 개로 나눴습니다. Part I에서 회화와 조형 작품을 매체로 한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하고 Part II에서는 영상을 매체로 한 작가들의 작품을 선보입니다. 

‘두산아트랩 2019: Part I’ 전시 전경. 두산갤러리 제공

이번 전시에서는 권현빈, 림배지희, 배헤윰, 이가람의 작업 세계를 만날 수 있습니다. 권현빈이 만들어낸 조각에 흐르는 하늘색 물감은 분수이자 하늘입니다. 이가람이 설치한 조형물은 걷다 보니 발이 하나 빠지거나 천장에서 물이 새는 작은 불운의 시간을 남겼는데요. 개인의 우울과 불안, 불행한 상황 등을 사회의 부조리한 사건과 재난에 연결해 표현했습니다.

이가람, ‘작은 불운(걷다 보니 발이 하나 빠졌다)’, 2019. 두산갤러리 제공

권현빈, ‘분수의 꼭짓점, 하늘 그리고 기타 등등’, 2019. 두산갤러리 제공

송은 아트스페이스에서는 ‘Summer Love’ 전시를 열었습니다. 2017년부터 2019년까지 송은 아트큐브 전시 지원 공모 프로그램을 통해 선정한 작가 16인의 신작으로 구성한 자리죠. ‘Summer Love’는 젊은 시절 서로를 헌신적으로 사랑한 후, 가슴 한편에 아련하게 남아 있는 사랑을 의미합니다. 전시를 준비하며 작품에 자신을 쏟아붓는 작가의 모습과 닮아 있네요. 전시장 외부 공간에서 보이는 기민정 작가의 작품이 특히 인상 깊습니다. 공간과 공간을 잇는 계단의 독특한 공간성에 주목해 설치한 작품입니다. 

‘Summer Love’ 전시 전경. 송은 아트스페이스 제공

언젠가 한 젊은 작가가 ‘신진 작가’라는 단어에 불만을 토로한 것이 잊히지 않습니다. ‘신진 작가’라는 미명 아래 요구하는 새로움이 부담으로 느껴졌다고 했죠. 부조리한 대우에 목소리를 내려는 순간 목에 걸리는 것도 그 단어였습니다. 그렇지만 ‘신진 작가’라는 단어 아래 열리는 전시는 분명 나름의 의의가 있죠.

기민정, ‘조용해서, 유리를 문지르고’, 2019. 송은 아트스페이스 제공

여름에는 모든 것이 더 선명하고 생생해집니다. 신진 작가라고 불리는 젊은 미술가들의 모습도 그러하고요. 미술계에서 비수기라고 부르는 계절이지만 그들과는 크게 상관없어 보입니다. 자기 안에 발견할 것이 더 많은 이들에게는 여전히 가능성이 열려 있는 시간이죠. 한여름의 사랑처럼 전시는 9월이 지나면 모두 끝이 나겠죠. 그래도 진실한 사랑의 기억이 삶을 유지하듯 작가들이 작업을 이어가는 힘으로 남으리라 믿습니다. 

    에디터
    김미진
    컨트리뷰팅 에디터
    김한들(큐레이터, 국민대 겸임교수)
    포토그래퍼
    Courtesy Phot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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