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렌의 아우성
‘엘렌 스퇴켄 달’은 여자의 몸과 성기를 바로 알리고자 〈질의 응답〉을 썼다. 가장 무서운 것은 처녀막 미신이며, 목표는 사회에 뺏긴 몸을 되찾는 것이다.
자궁은 어떻게 생겼고, 무슨 역할을 하나? 클리토리스 신화는 정말일까? 피임은 어떻게 해야 하고, 생리는 이대로 괜찮을까? 이런 질문에 제대로 답할 수 있는가. 나는 얼버무리며 참담함을 느꼈고, 내 자궁과 삶에 미안했다. 많은 여자가 공감할 것이다. 이 기본적 의학 정보가 왜 제대로 공유되지 않는지, 남자의 음경에 비해 여자의 음핵은 왜 베일에 싸이는지 의아하 다.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의학박사 겸 성교육자로 활동하는 엘렌 스퇴켄 달(Ellen Støkken Dahl)은 사회와 일부 남성이 우리를 통제하기 위해 잘못된 정보를 퍼트리고, 진실은 감췄다고 말한다. 엘렌은 의사로 활동하는 니나 브로크만(Nina Brochmann)과 함께 ‘운데르리베(성기)’라는 블로그를 열어 몸과 성에 관한 정보를 올리며 인기를 얻었고, ‘우리가 궁금했던 여성 성기의 모든 것’이란 부제의 책 <질의 응답>을 집필했다. 폴란드어, 러시아어 등 35개 언어로 번역됐다.
<질의 응답>이 국내에 출간되기 전인 2017년 테드(TED) 강연 <‘처녀막’에 대한 거짓말>에서 당신을 처음 봤다. 의학박사 겸 성교육자로서 설파하고 싶은 내용이 많을 텐데 ‘처녀막’을 선정한 이유가 궁금했다.
전 세계에 퍼진 여성에 관한 미신 중 가장 위험하기 때문이다. 잘못된 믿음으로 여성이 수치심을 느끼고 몸에 피해를 입고 있다. 심지어 살해까지 당한다. 여성이 자신의 몸을 지키고 선택할 자유를 얻으려면 처녀막 미신이 가장 먼저 없어져야 한다.
의대 학업으로도 벅찰 텐데, 노동자와 난민을 대상으로 성교육을 계속해온 이유는 뭔가?
몸과 성에 관한 정보가 부족해 정상적이고 멀쩡한 상황의 여성도 막연한 불안감을 갖고 있었다. ‘뭔가 잘못한 거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지만 실체는 모른다. 잘못된 정보로 수치심을 느끼기도 한다. 좀더 편안한 삶을 영위하려면 우선 자기 몸부터 알아야 한다.
고정관념일지 모르지만 노르웨이의 성교육은 보다 체계적이고 개방적일 줄 알았다.
사람들이 스칸디나비아라고 하면 성교육이 잘 이뤄질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충분하지 않다. 나만 해도 자전거를 타다가 처녀막이 파열될 수 있다는 얘기를 듣고 자랐으니까. 이런 미신을 깨는 데 10여 년이 걸렸다. 특히 여성이 성에서 얻는 쾌락과 긍정적 측면은 다루지 않는다. 부정적 면만 강조한다. 갈 길이 멀다.
기본적이고 중요한 정보임에도 왜 다루지 않았고 은폐하기까지 했을까?
사회가 여성의 삶을 통제하고 싶기 때문이다. 여성을 묶어두는 가장 쉬운 방법은 여성의 성을 긴장되고 불안한 상황에 몰아넣는 것이다. 진짜 정보는 감추고 거짓말을 해가면서 말이다. 정보 부재와 외부의 통제는 직결된다.
그 통제의 주체가 뭘까?
남성 중심의 사회다.
2015년 여성의 몸에 관한 정보를 공유하는 블로그 ‘운데르리베(성기)’를 시작하면서 노르웨이에서 큰 인기를 얻었다.
성교육 교사로 일하면서 성과 몸에 무지한 여성을 보며 안타까웠다. 특히 몸에 대해 자기 결정권을 가지려면 알아야 하는 중요한 정보가 거의 부재했다. 직접 만나 교육하고 강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많은 이에게 신속하게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블로그를 시작했다.
블로그의 인기에 힘입어 2017년 니나 브로크만과 함께 여성 성기와 몸을 다루는 책 <질의 응답>을 냈다. 블로그에 올린 많은 정보 가운데 우선적으로 책에 담은 것은 무엇인가?
블로그 포스팅 몇 개 안 했을 때부터 인기를 얻어서 책 집필에 들어갔다. 그러니 블로그 내용과는 별도로 내가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 여성이 알아야 하는 기본을 최대한 담으려고 했다. 특히 이번 책은 20~30대 여성에 대한 정보가 담겼다. 출산 전후의 과정, 폐경, 10대의 성은 별도의 책으로 다뤄야 할 분량이라 미뤄뒀다.
두 번째 책도 집필이 끝났다.
노르웨이에서 11월에 출간된다. 아홉 살부터 10대까지의 여성을 위한 책이다. 사춘기에 본인의 몸이 어떻게 변하는지, 성적으로 어떻게 활동할지에 대한 정보를 담았다.
한국 번역본인 <질의 응답>이란 작명이 센스 있다. 원제는 뭔가?
<Gleden med Skjeden>. 여성 성기의 기쁨이다. 외국에서 출간된 제목 중에 한국판이 가장 좋다. 중의적 의미면서도 책의 의미를 살렸다.
책에서 특히 생리 편이 좋았다. 저자로서 책에서 놓치지 말았으면 하는 부분을 꼽는다면?
한 가지를 꼽기는 어렵고 세 가지를 말하겠다. 첫째, 처녀막에 대한 미신. 그것이 미치는 피해가 심각하기 때문이다. 둘째, 클리토리스에 관한 해부학적 진실. 여성의 쾌락과 성은 밀접하게 관련이 있기에 알아야 한다. 셋째, 정상적인 생리는 어떤 것인가. 특정 형태의 생리만 정상적인 것이 아니며, 또한 생리를 숨기려는 행태를 바로잡고 싶다.
생리에 대해서는 한국에서도 다양한 움직임이 일고 있다. 자발적으로 생리를 중단하는 여성도 있다.
본인이 생리 중단을 선택한다면 그 자체로 인정해야 한다. 의사로서도 사람들이 자기 몸을 통제할 수 있기를 권한다.
한국에선 출산 장려 압박도 심하다. 미디어와 정부는 저조한 출산율이 미래에 심각한 인력난, 세금 문제를 가져올 것이라며, 이것을 여성의 직무 유기처럼 몰아간다. 한국뿐 아니라 세계적 추세 같은데 노르웨이는 어떤가?
노르웨이 총리도 최근 저출산 현상을 언급했다. 출산은 아주 개인적 일이기에 당사자 선택을 보장해야 한다. 피임약에 대한 접근권, 임신을 중단할 권리 모두 중요하다. 사실 아이를 키우기 너무 어렵다. 유치원도 부족하고, 특히 어머니와 아버지는 양육 부담을 불공정하게 떠안곤 한다. 국가가 저출산을 해결하고 싶다면 아이를 낳고 싶은 상황을 만들도록 애써야지, 개인의 선택권을 나무라선 안 된다.
<질의 응답>의 궁극적 목표는 여성의 몸에 대한 자긍심을 높이는 것이다.
오랫동안 여성은 몸과 성을 수치스러워해야 한다고 교육받았다. 앞서 얘기했듯, 그래야 통제가 쉬우니까. 타인의 시선, 남성, 사회로부터 우리 몸과 성의 주도권을 가져와야 한다. 그러려면 여성이 자신의 몸을 이해하고 알아야 한다. 정보가 바로잡히면 자신의 몸을 사랑하고 받아들이게 되고, 자연스레 주도권도 찾을 수 있다.
독자에게 들은 인상적인 평은 뭔가?
성폭력 피해자가 트라우마 때문에 자신의 몸을 멀리하다가 책을 읽은 후에 몸을 이해하게 되었다고 전해왔다. 자신이 몸의 주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는 말에 굉장히 감동받았다. 남성 독자도 평을 많이 남긴다. 남자 친구로서 여자 친구에게 도움이 되려고 읽었다, 아빠가 책을 읽은 후 딸과 편히 대화하게 되었다는 얘기가 뿌듯했다.
한국 독자에게 받은 평은 없나? 지난 6월 열린 2019 서울국제도서전에 참여하면서 ‘성교육에서 받지 못한 6가지 진실’을 주제로 강연했다.
한국 여성에게 솔직히 조금 놀랐다. 그들은 적극적으로 많은 질문과 이야기를 쏟아냈다. 그중 이 책을 읽고 여성으로서 ‘임파워링(Empowering)’이 됐다는 얘기가 기억에 남는다.
전 세계적으로 페미니즘이 수면에 떠오르기에 활동하면서도 힘을 받을 것 같다. 하지만 많은 페미니즘 운동이 그렇듯 다른 의견을 가진 이들에게 압박을 받은 적은 없나?
여성 권리를 위해 노력하는 많은 페미니즘 운동이 살해 위협도 받는다고 들었다. 나도 솔직히 엄청난 비난을 예상했는데, 실제로 그렇진 않았다. 제공하는 정보가 의학적 데이터이고 생물학적 정보기에 페미니즘 운동보다 비난하기 어렵다. 이런 정보는 일개의 의견이 아니라 사실이니까.
더 하고 싶은 활동은 뭔가?
성과 건강을 위해 책을 계속 쓰고 싶다. 특히 어린 여성이 정보를 접할 수 있게 하고 싶다. 그들이 자라면서 여성의 권익이 보다 신장될 테니까. 물론 의사로서도 활동을 하고 싶다. 뭘 하든 여성 건강을 위한 움직임이 될 것이다.
- 에디터
- 김나랑
- 포토그래퍼
- 김욱현
- 헤어 / 메이크업
- 김환
- 스타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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