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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o Blood

2020.08.21

by 김나랑

    Bloo Blood

    블루, 너는 우리의 다운타운 베이비야.

    오버사이즈 데님 재킷은 마틴 로즈(Martine Rose), 리본 셔츠는 생로랑 바이 안토니 바카렐로(Saint Laurent by Anthony Vaccarello).

    “뭐라고 불러야 하죠? 기자님? 차장님? 아니면 누나?” 나의 <보그> 명함을 받아 든 ‘블루(Bloo)’가 물었다. 편한 대로 부르라 했다. 블루는 곤란한지 그 후 호칭을 붙이지 않았다. 인터뷰가 익숙하지 않을 거 같아 그를 테라스로 데리고 가 편히 담배를 피우라 했다. “정말요?” 재차 물었다. 그는 담배 연기를 뱉을 때마다 내게 닿을까 고개를 틀었다. 인터뷰의 익숙함 여부는 기우였다. 블루는 꾸미지 않고 하고 싶은 말을 하니까. 이렇게 솔직하고 직관적 답변은 오랜만이다. 그런 블루에게 “이효리가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 ‘다운타운 베이비’를 불러서 역주행한 소감이 어떠냐”고 묻지 않았다. 그 답변은 인터넷에 여러 버전으로 떠돈다. 처음엔 “내가 뭘 잘못했나, 왜 ‘실검’에 뜨지?”라고 놀랐고, 그다음엔 좋으면서도 허무하다는 내용이었다. 그보다는 부쩍 홀쭉해진 얼굴이 더 궁금했다.

    가죽 라이더 재킷은 7 몽클레르 프래그먼트 히로시 후지와라(7 Moncler Fragment Hiroshi Fujiwara), 스트라이프 티셔츠는 앤 드멀미스터(Ann Demeulemeester), 부츠 컷 데님 팬츠는 GR-유니포마 × 디젤 레드 택(GR-Uniforma × Diesel Red Tag), 각진 로퍼는 마틴 로즈(Martine Rose).

    블루의 ‘Hennessy’란 곡을 즐겨 들어요. “목에 또 부어 Again / 내일은 없듯이 Anyway.” 술, 특히 헤네시를 굉장히 좋아하죠. 혹시 어제는 과음 안 했나요?
    어제… 했죠!

    레이블에서 살 빼라고 금주령을 내렸던데요.
    밥을 포기하고 술을 택했어요. 보다시피 많이 빠졌어요. 그리고 금주령은 다이어트 때문만은 아니에요. 공연할 때 술에 취해 몇 번 실수했거든요. 가사도 까먹고…

    술 먹었을 때 작업이 잘되는 편이라 회사에서도 무작정 금주시키기 곤란하겠군요.
    맞아요. 제가 술 먹는다고 여기저기 놀러 다니지도 않고, 네 명이 넘어가는 술자리는 좋아하지 않아요. 술을 먹으면 작업이 잘되니까 조용히 마시는 편이죠.

    저는 술 먹고 쓴 글을 다음 날 읽어보면 너무 감성적이라 버리게 되던데. 술 먹고 작업한 열 곡이 있다면 얼마나 살아남나요?
    다 발매하려고 해요. 아깝거든요. 근데 너무 징징댔다 싶으면 일단 넣어둬요. 오그라듦과 시적 가사의 경계를 찾으려고 많이 노력해요. 시적이라 해도 은유보다 직설적인 게 좋아요. 예를 들어 ‘지금 헤어졌어, 나는 길거리에 깜빡이는 가로등 같아’는 너무 은유라 싫고 ‘나는 지금 기분이 이래’라고 직설적이면서도 시답게 쓰려고 해요.

    새소년의 황소윤이 어느 인터뷰에서 “자신은 연예인이 아니라 예술가”라고 소개했어요. 블루는 누군가요?
    저는 예술가도 뮤지션도 아니에요. 노래 쓰는 애주가 정도로 해두죠. 노래보다 술을 더 좋아할 수도 있고. 흠… 그냥 노래로 일기 쓰는 사람이 낫겠군요. 저는 저를 노래하거든요. 그래서 제가 아닌 모습이 되어야 할 때는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요. 거짓 퍼포먼스를 해야 한다든가, 방송 욕심을 내야 한다든가.

    하고 싶지 않은 일도 많이 들어올 텐데요.
    그래서 많이 거부했어요. 오늘도 <보그> 유튜브에서 ‘Downtown Baby’ 라이브를 하라는데 싫더라고요. 생각해보니 공연도 못하는데 온라인 공연인 셈 치고 한 번만 부르자 싶었죠. 어떨 땐 내가 ‘오버’하는 것 같기도 해요.

    하고 싶지 않은 일 덜 하며 사는 모습 응원합니다. ‘노래로 일기 쓰는 사람’이란 결국 내 얘기를 하는 건데요, 그렇다면 뮤지션들이 흔히 얘기하는 “노래로 사람들에게 위로와 공감을 주고 싶다, 선한 영향력을 주고 싶다” 이런 소망을 가진 적 없나요?
    재미있어서 음악을 해요. 내가 원하는 노래를 쓰고 부르고 그걸로 돈 벌고 공연하고 사람들을 만나서 좋아요. 그뿐이에요.

    불면증이나 우울증이 있는 아티스트가 많아요. 자신의 창작물에 쏟아질 세간의 평가나 외면이 두려워서죠. 블루는 어떤가요?
    안 그래 보여도 피드백에 굉장히 영향을 많이 받아요. 저는 전혀 쿨하지 않거든요. 내 것을 너무 과대평가하거나 너무 쉽게 말해버리면 싫어요. 방송을 꺼리는 것도 내가 아닌 모습으로 나올 텐데 그걸로 이상한 평가를 받을까 봐서예요. 이상하게 댓글도 칭찬 백 개 중에 욕 한 개가 먼저 눈에 들어와요.

    흔들리는 ‘멘탈’은 어떻게 잡죠?
    우울증 약이나 술을먹고 자요. 알아요, 굉장히 좋지 않은 버릇이죠.

    레오퍼드 프린트 코트는 라프 시몬스(Raf Simons), 셔츠와 타이는 프라다(Prada), 레더 팬츠는 육스(Yoox), 스웨이드 부츠는 릭 오웬스(Rick Owens).

    이전에 <쇼미더머니>에 나갈까 고민한 적 있어요. 같은 레이블 ‘메킷레인(MKIT RAIN)’의 나플라와 루피가 그 프로그램을 통해 스타가 됐으니까 제안받았겠죠.
    지금은 나갈 이유가 없죠. ‘쇼미’가 할 수 없는 것들마저 이뤘으니까.

    무엇을 얻었나요?
    우선 유명해졌어요. 사실 와닿진 않아요. 공연해야 직접적으로 체험하는데 지금은 집에만 있으니까요. 저는 멜론이 아닌 애플 뮤직을 쓰니 차트 순위에 어느 정도 올랐는지도 모르고. 친구들이 말해줘서 알아요. 그런데 솔직히 ‘Downtown Baby’는 예능 프로그램에서 화제 되기 전부터 수입을 바꿔주는 곡이었어요. 물론 더 잘됐죠. 끌어당김의 법칙이라고 ‘싸가지’란 곡에서 “내 친구들이 한 달 동안 일해 번 돈 / 내가 지금 입고 있는 / 프라다 구찌 재킷이지”란 가사가 있어요. 솔직히 그때까지 프라다, 구찌 재킷 없었거든요? 으하하. 이제 살 수 있어요.

    유명해지고 나서 뭐가 가장 당황스러웠나요?
    이 ‘사건’이 나고 사람들이 블루가 누구냐고 궁금해들 하는데 ‘와, 내가 이 정도로 안 떴었나?’ 했다니까요. 방송에도 안 나가고 곡을 전투적으로 마케팅하지 않으니 팬이 아닌 사람들은 모르겠구나. 어떻게 보면 저도 대중이 뭔지 몰랐죠. 아, 그리고 하나 더 얻었어요. 걱정!

    지금 가장 큰 고민은 뭔가요?
    ‘Downtown Baby’를 너무 믿거나 기댈까 봐요. 블루의 ‘Downtown Baby’가 아니라 곡 자체가 나보다 커져버린 느낌이에요. 앞으로 ‘차트 인’을 노려 곡 작업을 해야 하나 그딴 생각도 들고. 그래서 더 내 식대로 작업하려고 해요. 7월 말에 새로운 두 곡을 넣어 앨범을 냈어요.

    앨범 <Hey, Go Smile>의 컨셉은 뭔가요?
    딱히 없어요. 그 곡을 쓰던 그날의 기분이에요. 말했다시피 일기처럼 곡을 쓰거든요. 앨범의 컨셉을 구성하는 방법은 형들에게 배워야 해요.

    “나보다 곡이 커져버렸다”란 말을 들으니 이전 인터뷰가 생각나요. “‘쇼미’의 경우 사람 인지도에 비해 곡이 못 따라온다. 캐릭터가 먼저 오고 음악이 못 따라오면 그 생명은 끝난다.”
    ‘쇼미’를 보면 가수는 커지는데 곡이 가수를 못 따라오잖아요. 그 가수를 대표하는 세 곡만 불러보라면 생각 안 나죠. 그들을 아티스트라고 할 수 있나요? 연예인을 말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아티스트라고 자부하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어요. 반대로 저는 곡은 떴는데 가수가 못 따라간 경우죠. 차라리 제가 나아요. 음악이 나보다 커진 거니까.

    음악보다 자신의 이미지 구축이 먼저일 수 있죠.
    무엇이 먼저 앞서기보다 음악과 자기 이미지가 하나가 될 때 아티스트이고, 아이콘이 될 수 있어요.

    그 완벽한 사례가 데이비드 보위 아닐까요.
    맞아요. 본인의 세상, 음악, 이미지란 세 박자가 다 맞았죠.

    블루가 가져가고 싶은 이미지는 뭔가요?
    매번 바뀌어 모르겠어요. 그냥 하던 대로 하려고요.

    오버사이즈 코트는 릭 오웬스(Rick Owens), 러플 셔츠는 프라다(Prada).

    “사람마다 받은 기프트(Gift)가 있다”고 말했어요. 블루가 받은 선물은 뭔죠?
    목소리요. 가수의 피지컬은 목소리잖아요. 발음이나 발성을 교정할 순 있지만 타고난 목소리는 바꾸기 어려워요. 가창력이나 노래 기술과 상관없이 듣는 사람에게 감정을 전달하는 목소리가 선물이죠. 제 목소리를 인정하고 받아들인 지는 얼마 안 됐어요. 초등학교 때 SG워너비의 두꺼운 목소리가 유행이라 따라 해보고, 시아준수를 보며 미성도 꿈꾼 적 있어요. 래퍼가 돼서는 말만 해도 완전히 잡아끄는 몇몇 래퍼가 부러웠죠.

    언제부터 자신의 목소리를 사랑하게 됐나요?
    사랑은 아니고, 인정하고 받아들였어요. ‘Drive Thru’(2016)나 ‘싸가지’(2018)를 부를 때 즈음.

    블루에게 패션은 타투 같아요. 몸을 마법서처럼 만들고 싶다고 했죠.
    남들에겐 권하지 않아요. 저는 스트레스가 풀리기도 하고, 같은 반소매 옷을 입어도 남들과 다르게 보이니까 했던 거 같아요

    가장 좋아하는 타투는 뭔가요?
    동생이 해준 말 “Fear not, for I am with you”를 새겼어요. 목 부분의 달 타투는 다른 래퍼들이 많이 따라 했어요. 달 모양도 그렇고 이 부위는 그전까진 시도를 잘 하지 않았나 봐요.

    달이 뜬 밤에 즉흥적으로 했다는 타투군요.
    ‘중2병’ 비슷한 게 있어서요, 주인공보다 주인공 라이벌이 더 멋졌어요. 뱀파이어보다 늑대 인간, 해보다 달, 해가 쨍쨍한 날보다 비 오는 날이 더 좋아요. 겉멋인가요?

    계획 중인 타투가 있나요?
    없어요. 지난번에 손 쪽에 영화 <콘스탄틴> 문양을 새겼는데, 더 이상 보이는 데 하고 싶지 않아요. 숨길 수 없다는 사실이 스트레스더라고요. 이제 가족도 저에게 타투로 뭐라 하진 않지만… 손, 얼굴, 목에 하는 타투는 생각해보려고요.

    레더 재킷은 벨루티(Berluti), 블리치 데님 팬츠는 아워레가시(Our Legacy), 롱부츠는 2 몽클레르 1952(2 Moncler 1952).

    루피, 나플라, 오왼, 영웨스트와 함께 메킷레인 소속이에요. 나플라가 이전에 “메킷레인이 나고 내가 메킷레인이다” 할 만큼 크루 간의 애정이 깊기로 유명해요. 블루에게 크루는 어떤 의미인가요?
    크루라기보다 가족이에요. 오디션 봐서 들어가는 회사가 아니라 즐거워서 함께한 사람들끼리 차근차근 회사를 키워왔잖아요. 다툼과 화해를 반복하면서. 가족끼리는 아무리 싸워도 어쨌든 가족이잖아요. 그처럼 우린 싸워도 걱정 안 해요. 언제든 다시 서로에게 돌아갈 테니까.

    LA에서 알고 지내던 나플라, 영웨스트, 블루가 ‘42 크루’였고, 오왼과 루피가 합류하면서 메킷레인이 됐죠. 루피가 확신을 줘서 한 달 만에 학교를 접고 2015년 한국에 들어왔어요. 어떤 확신이었나요?
    모두 비슷했을 거예요. 당시 미국에서 학교 다니며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다른 곳으로 떠나 음악으로 돈을 벌자니 무서웠어요. 이민 와서 이제 겨우 적응했는데 다시 한국으로 이민 가는 거잖아요. 한국에선 초등학교 때 기억밖에 없었거든요. 루피가 우린 할 수 있을 거라며 기운을 많이 줬어요. 멋있는 사람이에요.

    블루는 피처링을 안 쓰기로도 유명하지만, 어쨌든 크루 간의 피처링은 무조건 함께 하기로 약속했죠.
    맞아요. 음악적인 일을 할 때는 돈 얘기는 꺼내지 않기로 했어요. 제가 피처링을 안 쓰는 이유는 특별하지 않아요. 처음에 ‘Downtown Baby’에도 ‘쇼미’로 인기를 얻은 나플라나 루피 형의 피처링을 넣자는 얘기가 나왔어요. 하지만 이건 내 얘기고 내 음악이니까 혼자 하는 게 맞다고 여겼어요.

    미국과 한국에서 음악 하는 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다르다”고 했어요.
    형들도 많이 느꼈대요. 일단 날씨부터 그래요. 캘리포니아는 내내 온화한 날씨가 주는 편안함이 있거든요. 거기서는 술 생각이 별로 나지 않아요. 마셔도 와인이나 맥주 정도. 그런데 한국은 소주가 어울려요. 친구들과 한인타운에서 소주를 마시면 이상하더라고요. 왜 야자수를 보며 소주를 먹고 있지? 날씨뿐 아니라 말(가사)에서 오는 제약도 있고요.

    10대를 미국에서, 20대는 한국에서 보내고 있으니 두 문화의 혼재로 어지러울 때가 있겠어요.
    미국에 처음 갔을 때 유학생이라고 놀림받았어요. 거기에서 1.5세대였는데, 한국에서도 1.5세대예요. 미국인도 한국인도 아니죠. 장단점이 있어요.

    장점이라면 그런 혼란스러움을 창작에 활용할 수 있다는 것?
    때론 뮤지션들이 그래요. 이별이 너무 슬픈데, ‘이거 언젠가 곡에 쓸 수 있겠다’란 생각에 슬며시 기쁘다고요. 글쎄요, 그렇게까지는 잘 모르겠어요.

    한국 음악 산업에서 인상적인 변화는 뭔가요? 단편적으로 앨범 순위 차트가 없어지거나, 챌린지를 신곡 홍보 수단으로 사용하는 등 여러 현상이 있는데. 하지만 틱톡 챌린지 등 이미지에 매몰되고 음악은 차순위가 됐다는 문제도 제기돼요.
    그 덕에 내 음악이 잘됐다고 생각해요. 그런 챌린지에 질리던 차에 이효리 누나가 내 노래를 불렀고, 타이밍이 맞아 시너지를 냈지 싶어요. 사실 엄청난 가수들 뒤에는 엄청난 프로덕션이 있잖아요. 저는 인터넷에서 산 비트로 내가 하고 싶은 음악을 만들어서 1위를 했어요. 그냥 음악이 좋으면 사람들이 언젠가 듣는 거 같아요. 이번 경우가 저와 비슷한 친구들에게 좋은 영향을 줬을 거예요.

    이전에도 그런 말을 했죠. “음악이 좋으면 성공한다, 그뿐.”
    아티스트가 노래를 잘하는 것, 좋은 음악을 만드는 건 당연해요. 내가 좋은 음악을 썼다고 칭찬받을 게 아니죠. 그러니까 음악은 당연히 잘해야 하는 거고 그다음에 캐릭터, 이미지가 따라와야죠. 음악은 제게 당연한 일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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