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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 19인이 보낸 하늘

2023.02.20

by VOGUE

    아티스트 19인이 보낸 하늘

    2020년 9월 7일. 첫 번째 ‘푸른 하늘을 위한 국제 맑은 공기의 날’을 맞아 국내외 아티스트 19인이 각자의 삶에서 가장 결정적이던 하늘을 꺼내 보입니다. 그들의 맑은 시선으로 바라본 하늘은 그저 경이롭기만 합니다. 이토록 푸른 하늘이 영원하도록 마음을 모아야 할 때입니다. 하늘은 예술입니다. 그리고 우리 삶이자 희망입니다.

    김중만 | “대한민국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독도리 1~96 DOKDO-RI ULLEUNG-EUP ULLEUNG-GUN GYEONGSANGBUK-DO KOREA”

    <보그> 영국 | <보그> 영국은 한 세기가 넘도록 국가 정세와 문화를 반영하는 창의적인 표지를 선보여왔다. 1945년 10월호의 표지는 ‘평화와 재건(Peace and Reconstruction)’이라는 제목의 하늘이었다. 당시 어시스턴트 아트 디렉터였던 제임스 드 홀든 스톤(James de Holden-Stone)이 평화 주간 행사를 기념해 마감일에 맞춰 다급히 그렸지만 역사에 길이 남는 표지가 되었다.

    구본창 | “밀라노에서 마드리드로 향하는 비행기에서 촬영했다. 유난히도 푸르고 깨끗한 지중해의 하늘이었다. 햇살로 인해 생긴 한 조각 구름의 그림자가 마치 떠다니는 배처럼 바다 위에 투영된 멋진 장면이었다. 투명하고 깨끗한 공기가 느껴진다.”

    몬스타엑스 아이엠 | “때가 되면 차차.”

    노상호 | “장마에 불어난 물과 하늘이 서로 비추는 장면을 상상하며 만든 작업이다.” ‘장마’, 2017, 수채화, 29×21cm.

    한성필 | “하늘과 바다가 맞닿은 아득한 그곳은 뫼비우스의 띠와 같이 풀어도 영원히 풀리지 않는 신비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라운드 클라우드 026’, 2002,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 121×162cm.

    강혜원 | “쪽빛이라는 색을 개념적으로만 알았는데 왜 쪽빛 하늘이라고 하는지 알았다. 쪽빛의 다채로움만큼 우리 하늘이 예전엔 좀 달랐나 보다.”

    장근석 | “푸른 하늘과 쭉 뻗은 잣나무 사이로 햇빛이 내리쬐었다. 이렇게 평온하고 고요한 하늘을 훗날 나의 가족에게도 선물할 수 있을까. 예고 없이 툭 떨어지는 잣송이는 덤으로.”

    마이클 케나 | “병중이지만 지구 환경을 살리자는 취지이기에 ‘보그 스카이’에 참여하기로 했다. 이 작품은 뉴질랜드 해안가에서 11시간 장노출로 별들의 궤도를 촬영한 것이다. 청정 지역 뉴질랜드의 맑고 푸른 하늘을 도화지 삼아 별들이 그려낸 자연의 명작을 보여준다.” ‘Eleven Hours, Eastlands, New Zealand’, 2014.

    대런 아몬드 | “보름달의 반사광 아래 자연의 모습을 50분가량 장노출로 포착한 사진 작품이다. 바위에 부딪혀 거품으로 흐르는 파도의 흔적과 유성우처럼 보이는 별의 자취를 우리는 뭐라 해석할 수 있을까. 대자연을 바라보면 우리는 본능적으로 평소보다 더 깊은 수준으로 사유할 수 있다.” ‘Fullmoon above the Sea of Fog’, 2011, C-print, 121.2×121.2cm.

    박찬욱 | “워너 브라더스 회사 주차장에서 누가 하늘을 배경으로 영화를 찍으려는 모양이다. 가짜 구름과 진짜 구름 사이에 대화가 한창이다.”

    신세경 | “아침 운동 쉽지 않다. 그래도 해야지.” ‘아침 운동’, 서울, 2020.

    신선혜 | “모로코 마라케시에 도착한 첫날 밤이었다. 낯설고 이국적인 도시보다 더 낯설던, 밤하늘을 가득 덮은 별들이 기억난다.”

    바이런 킴 | “2001년에 처음 매주 일요일 그날의 하늘을 그리는 연작을 시작했을 때, 창밖으로 내가 보는 하늘이 나의 어머니가 보는 하늘과 같은 하늘일지 궁금했다.” , 2016, Acrylic and Pen on Canvas, 35.5×35.5×3.2cm.

    강운 | “청년기에 마주한 구름이 마음에 품은 꿈과 방랑이었다면, 장년기의 구름은 인간이라는 미약한 존재로서의 고백과 겸손이다.” ‘순수형태-여명’, 2002, 캔버스에 유채, 333.3×218cm.

    <보그> 브라질 | 사진가 이크 두아르치(Hick Duarte)가 촬영한 브라질의 우베를란지아의 하늘을 2020년 6월호 커버로 선보였다. 이크는 상파울루라는 대도시와 그렇지 않은 공간 사이의 균형을 생각하던 중 영감을 얻었다. “한동안 자연 속에서 머무는 특권을 누렸다. 이 시간은 우베를란지아에서 보낸 내 유년 시절을 떠올렸다. 자연에서 머무는 행위는 나를 괴롭히는 문제에 빛을 비춘다. 우리는 서로 분리될 수 없음을 이해할 때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시간, 삶의 리듬과 규모에 대한 고찰은 우리를 이 자리에서 다른 곳으로 데려가줄 것이다.”

    <보그> 스페인 | 1988년 이래 처음으로 사진이 아닌 그림으로 2020년 5월호 표지를 장식했다. 세계는 곤경에 처했지만 희망을 보여주는 사람들 덕분에 서로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가까움을 느낀다. 작가 이그나시 몬레알(Ignasi Monreal)의 작품은 푸른 하늘 아래 발코니에 서서 희망을 기다리는 우리를 상징한다.

    우고 론디노네 | “나는 일기를 쓰듯 살아 있는 우주를 기록한다. 지금 내가 느끼는 태양, 구름, 비, 나무, 동물, 계절, 하루, 시간, 바람, 흙, 물, 풀잎 소리, 바람 소리, 고요함 모두.” ‘Sechzenteraprilzweitausendundneunzehn’ 2019, Acrylic on Canvas, 91×61cm.

    홍장현 | “로스앤젤레스 어느 바다를 새벽에 다녀왔다. 동이 틀쯤 일생에 처음 보는 색이 보였다. 사진에 다 담기지 않았지만 저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얼마 전 나는 일곱 살 아들의 스케치북에서 ‘하늘색’이 하늘을 표현하는 데 사용되지 않음을 깨달았다. 때 묻지 않은 예술적 허용에 흥미를 느끼며 “하늘에 상상력을 발휘했네?”라고 말하자, 아들은 의아한 얼굴로 “본 대로 그렸는데?”라고 답했다. 스모그가 극심하던 1990년대 멕시코시티에서 열한 살 아이들에게 하늘의 색을 조사했을 때 80%가 회색, 10%가 갈색이라고 답했다는 일화가 떠올랐다. 인간이 더럽힌 공기로 하늘에서 죽은 새가 툭툭 떨어지던 끔찍한 시절이었다. 그로부터 20여 년이 지난 지금, 대기오염으로 하늘은 더 이상 파랗지 않고, 하늘 색깔은 다시 재정의의 기로에 서 있다.

    폭우가 수십 일째 이어지는 2020년 대한민국의 여름과 가을 사이. 하늘에서 푸른빛이 사라진 이유가 단순히 폭우 때문이 아님을 우리는 모두 어렴풋이 느끼고 있다. 실제로 기후 전문가는 장마가 길어진 이유로 올해 북극해의 얼음이 많이 녹았기 때문으로 분석했다. 비가 많이 내린 이유 역시 이상 기후로 높아진 바다 온도로 보고 있다. 장마 끝에 우려대로 찜통더위가 찾아온다면 우리는 다시 한번 ‘사상 최악’, ‘이상 기후 현상’이라는 표현을 꺼내 들어야 한다. 사실 자연은 계속 신호를 보냈다. 사계절의 경계가 무너졌고 장마는 동남아 지역의 스콜처럼 변했으며 포획하는 어종과 재배하는 과일이 달라지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자주 “예전엔 안 그랬는데 날씨가 왜 이러지?”라는 식의 대화를 나누고 있다. 하릴없이 번져나가 우리를 애태운 호주 산불, 아프리카 일 대를 파괴한 메뚜기 떼 출몰은 모두 올해 일어난 일이다. 초월적 힘으로 일어난다고 믿었던 ‘자연재해’가 ‘오늘의 날씨’처럼 가까이 다가와 있음을 우리는 미처 몰랐을까, 모르는 척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사실 우리는 코로나19로 얻은 자연의 자기 회복력의 경이로움을 목격한 참이었다. 올해 초 코로나19 발발로 어쩔 수 없이 인간이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하자 세계 곳곳에서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인도 뭄바이 샛강에서 15만 마리의 홍학 떼가 나타났고, 멕시코 카칼루타 해변에는 돌고래 떼가 단체 수영을 즐겼다. 브라질 한 해변에서는 바다거북 50만 마리가 알을 낳기 위해 해변에 어슬렁어슬렁 올라왔고, 베네치아 운하와 필리핀 팔라완 해변에는 핑크빛 해파리가 두둥실 떠다녔다. 집 안 구석구석 숨어 있다가 사람들이 잠들거나 외출하면 신나게 노는 동화책 속 요정들 같았다. 자연은 원래 자리에, 원래 모습으로 돌아와도 될지 인간에게 묻고 있었다. 코로나의 역설은 자연의 질서를 태초의 순서대로 복구하는 듯했다.

    코로나19는 뿌옇기로 악명 높은 서울 하늘에도 기적을 선사했다. 초미세먼지 농도는 지난해와 비교해 두 자릿수로 줄었다. 가시거리가 20km가 넘는 날도 등장했다. 위성사진을 확인할 필요도 없이 일상생활에서 우리 시야부터 환해졌다. 눈을 비비지 않아도 광화문에서 N서울타워가 보이고 망원경이 없어도 파주에서 북한이 보인다. 몇 달 동안 우리는 매일 눈뜨자마자 미세먼지 앱을 켜서 농도를 확인하고 집에 오면 공기청정기부터 켜던 일상을 조금 내려놓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일상으로 복귀하면 대기오염으로부터 벗어나던 짧은 자유는 신기루처럼 사라질 것이다. 비대면 상황 가운데 폭발적으로 증가한 국내외 배송 물류량은 새로운 차원의 탄소를 배출하고 있다. 지금 지구는 그 어떤 긍정주의에도 기댈 수 없고 어떤 낙관론도 기대할 수 없다.

    전례 없는 팬데믹 한가운데 UN은 매년 9월 7일을 ‘푸른 하늘을 위한 국제 맑은 공기의 날(International Day of Clean Air for blue skies)’로 지정했다. 지난해 문재인 대통령이 “대기질 개선을 위해서는 공동 연구와 기술적 지원을 포함한 초국경적인 국제 협력과 공동 대응이 필요하다”며 세계 푸른 하늘의 날 지정을 제안한 결과다. 이로써 세계 푸른 하늘의 날은 유엔 제2위원회에서 채택한 최초의 대기오염 관련 결의가 됐다. ‘푸른 하늘’이 전 지구적 목표가 되어버린 현실 앞에서 우리는 창간 이래 20여 년 동안 <보그>와 활발히 협업한 아티스트들과 각자의 삶에서 가장 결정적이던 하늘을 꺼내보기로 했다. 하늘이 곧 우리 삶이기에 ‘희망’을 믿고 싶었기 때문이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에도 영국 <보그>가 평화와 재건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표지에 실은 건 하늘 드로잉이었다. 높은 하늘에 스쳐 지나간 듯한 층운 드로잉은 삶이 제자리로 돌아왔음을 보여주는 어떤 안심의 증표였다.

    몇 달에 걸쳐 <보그> 지면 갤러리에는 첨예하게 다른 19개 하늘이 도착해 진열되었다. 마이클 케나는 뉴질랜드 해안가에서 11시간 장노출로 별들의 궤도를 촬영한 작품을 보내며 “맑고 푸른 하늘을 도화지 삼아 별들이 자연의 명작을 보여준다”는 이야기를 전해왔다. 대런 아몬드는 보름달의 반사광 아래 50분가량 자연을 담은 작품에서 바위에 부딪혀 거품으로 흐르는 파도의 흔적과 유성우처럼 보이는 별의 자취가 작품의 주인공임을 명백히 했다. 늘 그 자리에 있지만 하늘은 멈춘 적이 없었다. 아티스트 19인이 포착한 하늘에는 서로 다른 생명력이 생동한다. 하늘이 지속 가능할 수 있다면 우리 삶도 함께할 수 있다는 믿음 역시 같이한다.

    지금도 대기오염으로 사망하는 인명은 매일 1만 명이 넘는다. 2050년이면 기후 난민이 수억 명에 달할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개개인이나 기업의 의지만으로는, 어떤 특정 국가의 노력만으로는 지금 지구가 직면한 기후 재난을 막을 수 없다. 하지만 모두가 마음을 모은다면 하늘은 분명 어떤 식으로든 대답을 들려줄 것이다. 그 대답으로 일곱 살 아들의 스케치북에서 다시 ‘하늘색’을 볼 수 있다면 그것이 곧 ‘희망’이다.

    에디터
    조소현, 김나랑
    포토그래퍼
    Courtesy of the Artist and Arario Gallery, Courtesy of the Artist and MMCA, Courtesy of the Artist and Gallery K.O.N.G., Courtesy of the Artist and PKM Gallery, Courtesy of the Artist and MMCA, Courtesy of the Artist and Kukje Gallery Photographer Studio Rondin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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