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평창동입니다
부동산 패잔병이 되어 평창동으로 이사 갔다. 낙엽 태우는 냄새를 맡고 풀벌레 소리를 들으며 중얼거렸다. ‘그때 그걸 샀어야 했는데..’
‘팬데믹’ 하나로 설명 가능한 2020년. 물놀이는 물 건너갔다고 생각했다. 앞집에서 초대하기 전까진. 지나칠 때마다 자연 풍광이 어우러진 붉은 벽돌집이구나, 했던 이웃이었다. 그런데 그 집 대문을 통과해 마당으로 들어서자 구석에 비밀스러운 계단이 보였다. 가파른 계단을 내려간 끝에 자그마치 계곡이 있었다. 입구가 오로지 이웃집뿐인 계곡이. ‘자연이 선사한 개인 수영장’에는 청설모의 앙증맞은 분홍빛 혀나 개구리의 미끌미끌한 발길밖에 닿지 않았을 태초의 물이 기세 좋게 흐르고 있었다. 여섯 살 된 이웃집 손자는 거북이 튜브를 타고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조심스레 신발을 벗고 계곡물에 발을 담그자 워터파크 근처도 못 간 올해의 억울함이 조금 씻겨 내려갔다. 이웃집의 신비로운 수영장 얘길 단톡방에 꺼내자 친구들은 난리가 났다. ‘친하게 지내라’부터 ‘대체 그런 집은 얼마에 살 수 있느냐’까지. “잠실 너희 집 전세금 빼거나, 반포에 부모님 아파트 팔면 두 채는 살걸?” 지역 차를 건드리는 민감한 한마디에 단톡방은 고요해졌다.
나는 택시를 타면 10번 중 9번은 “공기 좋은 곳에 사시네요”라는 소릴 듣는 행정동은 평창동이자 법정동은 구기동인 곳에 산다. 김수현 작가 드라마에서 “네, 평창동입니다”라고 전화 받는 동네와는 몇 블록 떨어진 북한산 깊은 산자락 초입이다. 창문을 열어놓고 자면 곤줄박이와 박새, 딱따구리 소리에 잠에서 깨고, 저녁이면 여치와 베짱이, 귀뚜라미 소리가 돌비 시스템 사운드로 펼쳐진다. 비 냄새, 낙엽 태우는 냄새, 풀 비린내가 계절의 변화를 알린다. 여름이면 개구리 합창이 소란해 창문을 닫아야 하고, 겨울이면 꿩이 먹이를 찾아 앞마당으로 내려오는 집. 매일 아침 나는 창밖 산봉우리를 배경 삼아 뜨끈한 국에 밥을 말아 먹는다. 말로는 부러워하지만 내 선택을 따라 이곳으로 이사 온 지인은 없다. 대자연의 거친 품으로 들어간 대가는 불편함이다. 떡볶이 떡을 사려면 슈퍼마켓까지 2km를 걸어야 하고, 버스 정류장에서 집까지 가파른 언덕을 식식거리며 올라야 하며, 병원에 가려면 이웃 서대문구나 은평구로 나서야 하는 수고. (그 이하는 생략한다.) 3년 전 이곳에 집을 사겠다고 했을 때 재무 컨설턴트는 말했다. “평창동 빌라로 이사 가면 부동산 앱 삭제하고 부동산 뉴스에서는 귀 닫으세요. 공기 좋은 환경에서 부모님 잘 모시고 아이 잘 키우세요.” 65%가 개발제한구역인 이 동네에 지하철, 명문 학교와 학원가 그리고 한강 조망권은 없다. 무엇보다 브랜드 대단지 아파트가 없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집값이 오를 일은 없다. 평창동 빌라로 이사는 ‘부동산 전쟁에서 나는 이만 빠지겠소’ 하는 선언과 같다. ‘먼저 가시오. 소자에겐 아파트 갭 투자로 수익을 올릴 총알이 없소. 부동산으로 신분 상승은 불가능하오…!’
21세기를 통과하고 있는 우리 세대에게도 억울한 순간 ‘그때 그걸 샀어야 했는데’가 존재한다. 나는 부동산 시장에 어두웠고 언젠가 옮겨야 하는 전셋집, 월셋집인 남의 집에서는 내내 붕 뜬 느낌을 받곤 했다. 터전을 옮길 때마다 동네에 대한 흥미가 일었지만 소아과부터 하나하나 알아가며 뿌리를 내리는 과정은 고단했다. 아파트 키즈로 자랐음에도 수백 가구가 똑같은 구조의 공간에서 먹고 잔다는 점이 불쑥 섬뜩하기도 했다. 가스통 바슐라르는 한국의 아파트에 살아본 적도 없으면서 아파트에 사는 일은 작은 비극이라고 했다. 그래서 아파트 살 돈도 없는 김에 가족과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 같던 이곳으로 왔다. 집은 우리를 존재하게 하는 적극적 수단이자 자기 정체성을 확인하는 중요한 방법이라던 마르틴 하이데거의 말을 믿었고, 원하는 삶의 형태와 노선을 ‘선택’했노라고 여겼다. 공간은 습관을 바꾸고 생각을 바꾼다. 관계에도 영향을 미친다. 예전보다 자주 가족과 얼굴을 마주하고 밥을 먹는다. 수시로 보수해야 하는 1990년대 빌라라는 공동 과제로 가족 사이는 끈끈해졌다. 물론 문방구와 키즈 카페를 향한 아이의 마음은 더 간절해졌다. 그리고 이곳으로 온 3년 전부터 지금까지 숨 쉬는 내내 서울 아파트값이 올랐다.
특수하게도 한국 사회에서 집은 주거와 투자가 뒤섞인 의미다. 사교육 환경과도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 사이 부모와 은행 대출의 힘으로 아파트를 마련하고 수억 원씩 버는 친구들이 생겼다. 부동산 투자로 핵의 중심 강남 3구로 입성하는 지인들도 등장했다. 월급으로 절대 모을 수 없는 자산을 아파트가 척척 벌어주는 광경을 목격했다. 아파트라는 괴생물체가 주인을 대신해 밤낮없이 경제활동을 하는 모습은 어떤 SF 영화보다 비현실적으로 보였다. 가족 중 한 명이라도 경제활동을 그만두면 이사를 가야 할 만큼 대출금을 짊어지고 있는 우리와 애초에 장르가 달랐다. 그즈음이었다. 과묵한 남편의 중얼거림이 들린 것은. “그때 어떻게 해서든 그 아파트를 샀어야 했는데.”
사돈, 아니 친구가 산 아파트와 방향을 잃은 정부의 부동산 정책보다 분노가 치미는 건 투자 활동을 ‘구질구질한 것’ 정도로 여기던 나의 과거다. 누구보다 자립적 인간이 되길 꿈꿔왔으나 근로로 획득한 돈만 유의미하게 생각했다. 특히 부동산은 먼 훗날 저절로 해결될 일쯤으로 여겼다. 우리는 돈 얘기를 터부시해왔다. 아이가 섹스 없이 하늘에서 뚝 떨어지고 돈 버는 과정 없이 원래 부자만 존재하는 것처럼. 투자 활동을 잘해낼수록 고단한 노동으로부터 조금이라도 자유로워질 수 있음을 몰랐고 신경 쓰지 않았다. 그토록 추구해온 존엄성을 잃지 않으려면 돈이 필요하다. 나이가 들어 노동을 못하게 되었을 때를 대비하지 않으면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 홈리스가 된 여성의 이야기를 그린 소설 <신을 기다리고 있어>는 남의 일이 아니다.
무엇보다 다시 깨닫는 건 여성들의 투자 활동이 폄하되어왔다는 사실이다. 대한민국의 많은 가정이 여성의 안목으로 부동산 성공 신화를 일궈왔는데 무슨 소리냐 묻는다면 그 이미지가 과연 전문적인가 반문하게 된다. 돈을 쓸 줄만 아는 소비의 주체 혹은 부동산 투기에 몰두하는 복부인. 사회가 만들어낸 여자 ‘상’ 안에서 우리는 돈에 관심을 가지고 돈을 얘기하고 돈을 모으는 행위를 ‘궁상맞다’, ‘지독하다’, ‘천박하다’, ‘욕심이 많다’, ‘야무지다’고 보게 됐다. ‘3년 안에 1억을 모은 여자들’이 대단하게 느껴졌지만 멋져 보이진 않았다. 그 결과 나는 경제를 이해하지 못하고 돈을 모을 수 있는 타이밍을 상당수 놓쳤으며 경제적 자립성이 있었다면 펼쳐졌을 기회를 경험하지 못했다.
‘경제학의 아버지’ 애덤 스미스가 정작 어머니가 차려준 저녁 식사의 경제적 가치를 간과했다는 흥미로운 주장을 편 카트리네 마르살은 저서 <잠깐 애덤 스미스 씨, 저녁은 누가 차려줬어요?>에서 ‘경제적 인간’의 특징으로 여겨지는 이성, 독립성, 이기심 등은 모두 남성성과 동일시하면서 여성은 누군가를 위해 희생해야 하는 비경제적인 존재로 규정하고 있다고 말한다. 여성의 노동을 비가시적으로 여겼음은 물론이다. 지금 평창동 빌라에 밀려오는 후회는 완전한 선택이 아니어서다. 부동산을 이해하고 상황을 정확하게 인지하며 삶의 방식에 맞춰 도달한 온전한 결론이었다면 지인들이 모두 빌딩 한 채씩 소유하더라도 배가 아프지 않았을 것이다. (아, 비유가 적절치 않은 것 같다.)
오랜만에 재무 컨설턴트에게 전화를 걸어 영화 <인터스텔라>처럼 3년 전으로 돌아간다면 똑같이 조언하겠느냐 물었다. “물론입니다. 감당 가능한 범위까지 대출은 자산이거든요. 투자가 아닌 거주 목적이었고요. 강남에 입성한 친구분. 실제로 통장에 찍혔나요? 거주하고 있다면 아직 결과는 아무도 모르는 거예요. 그 친구분은 양도세 엄청 내야 할 수도 있습니다.” 재무 컨설턴트는 사는 동네가 만날 경제 뉴스에 나오면 얼마나 심리적으로 불안하겠느냐며 위로 같지 않은 위로를 건넸다. “부동산 뉴스나 주변 이야기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딱 한 가지가 있어요. 그들과 다른 형태의 자산을 만드셔야 해요. 대출만 갚다 보면 계속 나만 뒤떨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 마련입니다. 비록 ‘영끌’을 했지만 덕분에 거주가 안정되었고, 낮은 금리로 대출금을 갚고 있으니 오히려 이득을 본 겁니다. 대신 줄어든 대출이자만큼 투자를 시작하면 좋겠죠.” 전화를 끊고 해야 할 일은 하나였다. 주식거래 통장을 개설했다. 내 삶을 스스로 책임지기 위한 미약한 시도. 오늘도 대한민국에서는 <잭과 콩나무> 속 콩나무처럼 고층 아파트가 솟아오르고, 가을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평창동 소쩍새는 그리도 운다.
- 에디터
- 조소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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