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상이 베를린으로 향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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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상이 베를린으로 향한 이유

2020-11-26T13:45:28+00:00 2020.11.26|

독일의 수도 베를린 중심 지역인 미테에 소녀상이 들어섰습니다. 공개와 동시에 철거 위기를 맞은 소녀상이 베를린으로 향하고 그곳에 머무는 까닭.

 

베를린에 설치된 소녀상의 정식 이름은 ‘평화의 상(Friedensstatue)’입니다(하지만 우리에게 익숙한 소녀상으로 통일합니다). 지난 9월 28일 꼭 다문 입술에 결연한 표정을 한 소녀상 앞에 생김새도 옷차림도 사뭇 다른 다양한 국적과 문화의 여성들이 모였습니다. 평화의 상 건립을 주도한 코리아협의회 한정화 대표, 라벤스브뤼크시 나치 강제 수용소 전시관 관장이었던 에셰바흐 박사, 전시 성폭력 여성 인권 단체인 메디카 몬디알레의 하 키엔니 박사, 야지디족 베를린 여성협의회 대표인 누지안 귀나이가 그들입니다. 평화의 소녀상 건립을 허가한 미테구청의 예술 문화 및 역사과 담당자 우테 뮐러 티슐러 박사는 “소녀상으로 인해 영혼이 파괴당한 어린 소녀를 보고 있지만 동시에 강한 여성인 그녀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죠. 이를 통해 여성 성폭력이라는 주제를 시민들에게 상기시킬 수 있어 기쁩니다”라는 축사를 건넸습니다.

 

 

그리고 열흘 후 코리아협의회는 미테구청장으로부터 평화의 상 철거 명령을 받았습니다. 한국과 일본, 독일 간에 갈등을 일으킨다는 이유에서죠. 즉각 철거 명령 철회를 촉구하는 시위가 있었습니다. 국적, 남녀노소 구분 없이 제막식이 있던 날보다 더 많은 사람이 시위에 참가했고, 여성 및 인권 단체, 대다수 현지 미디어와 많은 정치인도 같은 편에 섰습니다. ‘과거에 대한 기억과 청산을 중요시하는 독일에서, 예술과 표현의 자유를 중시하는 베를린에서 이런 일이?’ 소녀상에 대한 입장은 달라도, 이것만큼은 모두 같은 마음이었을 겁니다.

결국 미테구청장은 철거 명령을 철회했습니다. “이번 사례는 부당한 외압으로써 반(反) 여성 인권적, 제국주의적 역사를 지우고 어떻게 생존자들을 침묵하게 하는지 보여주었습니다. 소녀상은 과거 일본군 위안부 피해 생존자들의 목소리만이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아직도 진행되는 전시 성범죄의 실상을 알리는 상징으로 여성 인권에 관한 문제를 베를린 시민과 전 세계인이 생각해보았으면 합니다.” 코리아협의회 한정화 대표의 말처럼 지구 어딘가에선 아직도 전쟁이 발발하고 그로 인해 여성 인권이 유린당하는 일이 일어나고 있죠. 11월 25일 ‘국제 여성 폭력 추방의 날’을 맞아 소녀상에서 다시 만난 여성 단체와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중동의 집시 쿠르드족

쿠르드족은 현재 터키와 시리아, 이라크, 이란, 아르메니아 국경 지대에 넓게 퍼져 살고 있는 원주민입니다. 고유의 문화, 언어를 가진 중동에서 네 번째로 인구가 많은 민족이지만 한 번도 자신들만의 국가를 세운 적이 없죠. 독립된 나라와 자치권을 원하는 쿠르드족은 각 나라로부터 탄압을 받고 있습니다. 특히 쿠르드족 인구가 15%에서 20%를 차지하는 터키의 경우 갈등이 심합니다. 쿠르드족이 미국과 함께 이슬람 수니파 급진 무장 세력 ‘이슬람 국가(IS)’ 소탕에 혁혁한 공을 세우자 견제가 더 심해졌죠. 터키의 문화 탄압, 세속화 정책이 거세지자 터키 남동부의 쿠르드족은 무장 단체를 설립했지만 터키는 그들을 테러 단체로 규정해 군사 공격을 감행합니다. 이 과정에서 군대뿐 아니라 여성들과 아이들이 희생되고 있습니다. 베를린에 위치한 쿠르드 여성위원회 ‘데스트 단(Dest Dan e.V.)’은 이런 실상을 세계에 알리고 전쟁으로 고통받는 여성들의 인권 신장과 함께 이주민 여성들을 돕고 있습니다.

성 노예로 팔리는 이라크 야지디족

야지디족의 사연은 더욱 참혹합니다. 이라크 북부 모술에 살고 있는 야지디족은 고대 페르시아 종교인 조로아스터교 계열의 종교를 가진 소수민족입니다. IS에 이단인 야지디족은 인종 청소의 대상이었죠. 무차별 살해는 물론이고 여성을 강간하고 성 노예로 삼거나 거래하는 등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2018년 노벨평화상을 받은 여성 운동가 나디아 무라드가 그 산증인입니다. 2014년 8월 IS는 야지디족 여성과 아이 6,000여 명을 납치했는데, 그녀도 그중 한 명이었죠. 나디아는 3개월 만에 탈출해 위험을 무릅쓰고 IS의 만행을 세상에 알렸습니다. 나디아를 비롯해 많은 야지디족 난민들이 독일에 정착했고, 2015년 독일 하노버 근교에 야지디 여성위원회가 설립됐습니다. 이들 또한 난민의 이주와 현지 적응을 돕고, 전쟁과 폭력으로 고통을 겪는 여성을 지원합니다.

최악의 인종 청소, 수단의 여성들

중동과 함께 내전이 끊이지 않는 곳이 아프리카 대륙입니다. 특히 수단 내전은 1955년부터 시작된 만큼 그 역사가 꽤 깁니다. 북부의 아랍계 이슬람 정부와 자치를 주장하는 남부의 아프리카계 기독교도의 분쟁으로 2011년 남수단이 독립한 이후에도 여전히 지독한 내전에 시달려왔죠. 그중 2003년부터 2004년까지 벌어진 다르푸르 사태는 ‘대학살’, ‘21세기 국가가 자행한 최악의 범죄’로 불릴 만큼 처참했기에, 국제형사재판소(ICC)가 이에 관련된 전 대통령과 군부 관계자를 제소했습니다. 당시 다르푸르에선 30만 명이 목숨을 잃었고 민간인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강간을 자행했다고 합니다. 베를린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수단 부흥을 위한 여성들(Women of Sudan Uprising)’은 수단에서 여성들과 청년들로부터 시작된 ‘수단 혁명’을 독일과 연대해 지원하는 단체입니다. 반식민주의, 이민, 페미니즘 관련 이슈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