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 디자이너가 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방법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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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 디자이너가 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방법 #2

2020-12-01T21:20:37+00:00 2020.12.03|

전무후무한 2020년을 다들 어떤 심정으로 보냈을까. 록다운으로 작업실을 떠났던 슈퍼 디자이너들이 자기 집에서 패션의 미래를 숙고하며 침착하게 지내는 법을 <보그>에 고백한다.

 

RICK OWENS

현재 팽배한 포스트 아포칼립스 정신에 적합한 작품이 있다면 그것은 분명 릭 오웬스 작품일 것이다. 이 디자이너는 불길한 운명론을 규칙적으로 다뤄왔기 때문이다. “제가 해온 것은 세상의 현실적인 그림을 보여주고자 노력하는 것이었어요.” 그가 반박했다. “그것은 미의 추구죠. 하지만 현실의 숨은 뜻을 담고 있죠. 우리에게 친숙한 세상은 어두운 면을 지니고 있죠. 그리고 누군가는 그것을 무시하고 보기 좋게 꾸민 디즈니 버전을 만들기로 선택할 수도 있어요. 아니면 아름다운 면과 어두운 면 두 가지를 인정하는 방법도 있죠.” 이번 코로나 바이러스 팬데믹을 통해 오웬스는 파리 집에 쌓아두어야 했던 관심사를 되짚어볼 수 있었고, 에드먼드 화이트(Edmund White)의 ‘잔인할 정도의 솔직함’과 리하르트 슈트라우스(Richard Strauss)의 광상적 오페라 등의 분위기를 떠올렸다. “저는 만물의 균형을 지켜보고 있어요.” 그가 말했다. “패션은 지금 완전히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죠. 선정주의, 야함, 저렴함, 추잡스러운 출세주의에 광적 소비, 소비, 소비를 지향하죠. 이번 기회를 통해 저는 되돌아볼 시간과 함께 정적을 즐길 시간을 얻을 수 있었어요.” 그래서 과거 자신에게 명성을 안겨준 작품을 파헤치면서 배울 점을 찾아내고 지나치게 상업적인 요소, 지나친 타협점을 짚어보았다. “이제 무엇이 내게 전율을 느끼게 할까? 지금까지 모든 것을 지켜본 후 이 나이대의 나는 무엇을 보고 전율을 느낄까?”를 궁금해했다. 그렇지만 아웃사이더의 자율성과 확고한 자기 결단이 어느 때보다 매력을 어필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것은 바로 지금까지 그가 일궈온 그 브랜드의 핵심 코드다. “큰일이 벌어지지 않은 채, 그런 식으로 오랫동안 지내왔다는 것은 기적 같아요.” 그가 곰곰이 생각하며 말했다. “어쩌면 지금 우리가 살짝 혼나는 중인지도 몰라요. 희망하건대 이제 사람들이 예전과는 다른 소비 패턴을 고민했으면 좋겠어요. 하지만 누가 알겠어요? 모두가 자제와 겸손을 실천하고 있었기에 흥청망청 즐길 준비를 하는지도 모르죠. 아니면 한동안 그런 덕목을 배우다 점차 추잡한 욕심을 키워나갈 수도 있겠죠. 그리고 그 사이클이 처음부터 다시 시작되겠죠. 원래 그렇게 돌아가게 되어 있는 건지도 모르죠.”

 

KIM MIN JU

2020년의 시작은 디자이너 김민주에게 ‘희망찬 새해’나 다름없었다. 2월 넷플릭스 패션 서바이벌 프로그램 <넥스트 인 패션>에서 최종 우승을 차지하며 단숨에 한국을 대표하는 젊은 디자이너로 도약했다. 그러나 3월 팬데믹이 시작된 후 ‘집순이’였던 이 디자이너는 평소보다 더 많은 시간을 실내에서 보내게 되었다. “사실 집에서 오래 움직이지 않고 컬렉션 작업을 해오던 제게 ‘집콕’은 어렵지 않았어요. 동시에 우리가 사람들과 함께 할 일이 뭔지 고민했죠. 모두가 집에서 좀 더 의미 있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으면 하는 마음에 팬데믹 초반에 ‘Minjukim at Home’이라는 프로젝트를 시작했어요. 우리가 이제까지 사용하던 패턴을 컬러링 이미지로 만들어 웹사이트를 제작했죠. 사람들이 자유롭게 패턴을 다운받고 집에서 창의적인 시간을 갖길 바라는 마음에서요.” 디자이너에게 컬렉션 제작보다 어려운 건 의상학과 학생들을 가르칠 때다. “정말이지 새 시대가 왔다는 걸 느꼈습니다.” 가르치는 사람이 학생을 직접 만나 작품에 대한 크리틱을 할 수 없고 그림을 실물로 볼 수 없는, 전혀 새로 겪는 일이었다. “비대면 수업에서 중요한 건 스크린을 통해 느껴지는 서로에 대한 예의와 태도였습니다.” 미래가 성큼 다가왔다는 생각에 디자이너는 지속 가능성을 진지하게 고민했다. “변화에 함께하고 싶었어요. 100% 생분해되는 한국의 안동 삼베와 잉크로 소재를 개발했죠. 컬렉션은 360도 카메라로 촬영해 온라인 쇼룸에서도 바이어에게 더 자세히 보여주려고 했고요.” 2021 S/S 시즌 제작을 마무리하고 내년 F/W를 준비하는 지금, 김민주의 소망은 하나다. “모두 건강하고, 어려운 시기가 빨리 나아지는 거죠.”

 

JOHN GALLIANO

“이제 우리의 비전이 조금 더 투명해져야 합니다.” 존 갈리아노가 단호히 말했다. 지역 간 경계가 폐쇄되기 직전 그는 유카탄(Yucatán)과 멕시코시티를 돌아 LA를 여행하던 중이었다. 그래서 그는 우여곡절 끝에 파트너 알렉시스 로슈(Alexis Roche)와 반려견 브뤼셀 그리폰(Brussel Griffon) 두 마리와 함께 지내는 프랑스의 시골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여행길에 갈리아노는 매일 의례적인 일을 통해 위안을 찾았다. 이를테면 뉴스를 보고 아침마다 클래식 FM 라디오를 들었던 것이다. 이 시간을 통해 그는 세계적인 면역학 권위자 앤서니 파우치(Anthony Fauci)에 친숙해졌다. “그가 보내는 메시지는 굉장히 직접적이었어요. 저는 현실을 알아야 했고 그는 있는 그대로 알려주었죠.” 메종 마르지엘라의 이 디자이너가 그 당시를 떠올렸다. 갈리아노는 자택 대피령이라는 확대경을 통해 패션의 미래에 핵심이 될 공동체 의식의 투명성을 향한 우리의 욕구를 깨달았다. “모든 것을 중단하고, 멈추고, 재설정하고, 조금 더 유념하며 자각하라고 강요받은 것이 처음은 아니었어요. 처한 상황을 받아들이는 순간에야 앞으로 나아가고 진보할 수 있는 법이니까요.” 그는 10년 전 자신의 복귀에 대해 넌지시 이야기하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제가 패션계로 돌아왔을 때 ‘바뀐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너의 관점은 바꿀 수 있어!’라고 저 자신에게 한 말이 지금 생각나요. 저는 이 상황에도 그것을 적용하고 있는 거죠. ‘자신에게 친절하자, 인내심을 가지는 거야!’라고 말이죠. 이번 기회를 모든 것을 재설정하는 데 이용한다면, 우리는 앞으로 한발 더 나아갈 수 있어요. 저는 ‘덤벼보자, 존!’이라고 말합니다. 그런 것이 바로 디자이너의 임무죠.” 갈리아노는 투명성을 꾀하면서도, 자신의 모든 컬렉션에 투입한 진정한 오뜨 꾸뛰르 장인 정신을 지킬 것을 확신했다. “작업 하나하나, 저희가 쏟아부은 노고를 사람들이 직접 봤으면 좋겠어요. 그래야 고객이 매장에 들어섰을 때 메종 마르지엘라의 가치관과 윤리관을 알 수 있거든요.” 그가 말했다. “창의적 과정이 사라지고 진부한 패션으로 바뀌었다고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마지막까지 지켜낼 거예요. 옷 만드는 사람에게 시간이 없다고 하면 패션은 존재할 수 없어요. 그래서 이제 그 역할이 재평가될 거예요.” 갈리아노의 창의성을 향한 사랑은 분명히 확인되어왔다. “패션은 제가 사랑하는 대상입니다. 저를 조롱하고, 파괴하고,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라고 밀어붙이기도 하지만, 뭔가를 창조하고 숨 쉬며 살아가게 하죠!” 그가 웃어 보였다. “열정이자 에너지죠! 패션은 이 집이나 내 마음에 솟구치는 혈액 같아요.”

 

MARC JACOBS

“잠깐만요, 지금 신발을 신는 중이에요.” 줌 화상 전화를 연결했을 때 마크 제이콥스가 화면 밖으로 사라지며 말했다. “제대로 갖춰 입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거든요.” 잠시 후 다시 화면에 나타난 그는 릭 오웬스 통굽 구두를 신고 있었다. 진주 목걸이를 목에 걸고, 머리는 잘 손질한 상태였다. 옷도 잘 다림질되어 있었다. 그는 격리하는 동안 자신의 겉모습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주장하면서 매일 이렇게 정성껏 단장했다. 3개월째 뉴욕 머서 호텔의 한 객실에서 혼자 지내고 있으면서도 말이다. 그와 남편 찰리(Charly)는 봉쇄령이 내려지기 직전에 그들의 타운 하우스를 매각했고 찰리는 LA에서 옴짝달싹 못하는 실정이다. “저는 세상에 내보이고 싶은 대로 제 모습을 단장하는 것을 즐기죠.” 그가 웃으며 말했다. “제 정체성을 만드는 것이 정신 건강에 중요해요. 세상이 그것을 지켜보지 않는다 해도 절대 멈추지 않죠. 실제로 대부분의 모습을 세상이 지켜보기도 했고 말이죠. 제가 인스타그램에 포스팅했으니까요.” 봉쇄령에 임하는 제이콥스의 자세는 수많은 디자이너와 살짝 다르다. 그의 동료 상당수가 영상으로 피팅 작업을 하고 원거리 스타일링 회의를 하면서 격리 시간을 보내는 반면, 그는 앞으로 만들어갈 컬렉션을 추상적으로 생각하고 패션계에 대한 접근 방식을 전면 수정할 성찰의 순간으로 이 시기를 여겼다. 그는 첫 몇 주간 메이크업 개인 수업과 DIY 매니큐어를 하면서 정체성을 탐구했고, 그로부터 위안을 찾았다. 그리고 일주일에 세 번 정도 치료를 받았다. 그리고 라나 워쇼스키, 에디 슬리먼, 소피아 코폴라, 마일리 사이러스 등과 함께 창의성과 감사에 대해 뜨겁게 논쟁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Black Lives Matter’ 운동이 더 심화되고 있기에, 인종차별에 대해서도 공부하고 있다. 그는 이렇게 깨달았다고 한다. “자택에서 격리하는 동안 제가 배운 가장 큰 교훈은 ‘조용히 머물고 귀 기울이는 것’이었어요. 그리고 제가 알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배웠죠.” 그가 찾은 다양한 자료 중에서도 제인 엘리엇(Jane Elliott)이 특히 교육적이었다. 평생 인종차별 반대 운동을 해온 이 활동가의 영상이 최근 인터넷을 통해 확산되었다. “저는 앞으로도 완벽하진 않겠죠. 하지만 조금씩 발전하겠죠. 많은 개개인이 발전하면, 우리 모두 새로운 방식으로 나아갈 수 있을 거예요. 원래 상태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새로운 상태로 나아가고 싶어요.” 그가 말했다. “우리는 위기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어요. 그리고 격리 상태에서 벗어날 때 저는 다시 태어났다고 생각할 거예요. 저는 엄청난 것을 배웠고, 그것은 새로운 세상의 여명을 보며 큰 희망을 품게 하니까요.”

 

OLIVIER ROUSTEING

팬데믹과 벌이는 사투 그리고 반인종주의 운동에 대한 지지. 그 사이에서 올리비에 루스테잉은 한 가지 공통분모를 찾아냈다. “바로 유대감이죠.” 그가 말했다. “모두가 함께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어요.” 봉쇄령으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면서 발망의 디자이너는 그것을 몸소 체험했다. “남자 친구라도 있어야 했나? 아니면 반려묘나 반려견 같은 것을 키울 걸 그랬나? 이런 생각이 들었죠. 그렇지만 제 친구들은 격리 기간에 파트너와 함께 지내는 것이 그다지 쉽지만은 않았다고 하더라고요.” 혼자 지내던 루스테잉은 조부모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600만 명의 인스타그램 팔로워와 소통했다. “조부모님들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다른 가족의 생사도 모른 채 집에서만 지내며 그 시간을 극복했죠. 하지만 지금은 적어도 전화라도 할 수 있잖아요.” 루스테잉은 파리의 널찍한 집에 머물다 보니 불평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고 한다. “세탁기를 처음 돌려봤죠.” 그가 웃으며 말했다. “요리의 ‘요’ 자도 모르다 보니 두 달간 호박과 달걀만 먹었어요. 살이 4.5kg 정도 빠졌죠. 그런 것은 피상적인 것에 불과해요.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었으니까요.” 9월에 발표한 그의 컬렉션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발망의 탄생에 뿌리를 뒀다. “당시 ‘위기 이후 더 강하게 돌아오는 법’이라는 발망의 비전에는 뭔가 정서적인 것이 담겨 있었죠.” 그의 이번 컬렉션 절반은 지속 가능성을 띠었다. “패션을 선보이는 방법뿐 아니라 과거에 패션을 만든 방식 또한 미래에 대한 중요한 요소가 될 거예요.” 그러면서 그는 이렇게 내다봤다. “패션 이상의 것을 대변해야 합니다. 그러면 어떤 디자이너와 잡지가 유의미한지 알아보게 되겠죠.” 루스테잉은 패션계의 포용성을 위한 신호탄으로 지난 6월 ‘Black Lives Matter’ 운동에 참여해 시위에 나섰다. “모두가 그것을 이해하길 바랍니다. 그리고 단지 시대적 트렌드에 따라 참여하는 것이 아니길 바라죠.” 그가 말했다. “다양성을 추구하고자 패션쇼에서 힙합 스타를 기용했을 때, 패션업계가 그것에 의문을 제기했을 때 정말 이상한 기분이 들었죠. 저는 패션은 아방가르드해야 한다고 생각했죠.” 그는 이제 변화가 목전에 와 있다고 말했다. “6년 전 사람들은 오늘날과는 사뭇 다른 반응을 보였죠. 지금은 완전히 다른 세상이에요. 정말 하나님께 감사드릴 일이죠. 시간이 오래 걸리기는 했지만요.”

 

RICCARDO TISCI

팬데믹이 시작되던 때 리카르도 티시는 심각성을 간파하고 있었다. 이탈리아에 거주하는 누이 여덟 명이 모두 왓츠앱 단체 톡에서 “코로나 바이러스가 전 세계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라고 한목소리로 말했고, 이런 의견 일치는 굉장히 드문 일이기 때문이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티시는 코모 호수로 가서 부모님이 손수 지은 본가에서 92세 노모와 함께 지냈다. 티시에게 그 집은 굉장히 감상적인 면을 지닌 곳이다. 2005년 돈이 필요하던 어머니가 그 집을 팔려고 했고, 그 이유로 그는 지방시와 계약했기 때문이다. “저는 자유분방한 젊은이였기에 그 브랜드에서 일하고 싶지 않았어요. 제 브랜드를 운영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그쪽에서 제게 얼마를 받고 싶은지 물어오더라고요. 제 본가를 살 수 있겠다 싶어 계약하겠다고 말했죠.” 그가 웃으며 그때를 떠올렸다. 그 후 그는 크리스마스에만 본가를 찾았다. 그러다 보니 평생의 사랑이라 칭하는 여인과 보낸 지난 몇 주는 그에게 ‘꿈만 같은 기회’였다. 그는 오전에는 버버리 컬렉션을 디자인하며 시간을 보냈다. 아마 역대 가장 개인적인 스타일이 될 거라고 말했다. 그리고 오후가 되면 이 모자는 정원을 가꾸고 함께 요리하거나 부엌 식탁에 앉아서 어머니의 인생 이야기를 기록했다. 봉쇄령이 해제되자 마을로 달려온 누이들과 함께 정원에 모여 아침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사실 제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시절이었어요.” 그러한 목가적 ‘하나 됨’도 있었지만, ‘Black Lives Matter’ 운동의 시위 행진으로 다져진 결속 정신도 있었다. 이 디자이너 역시 처음에는 이탈리아, 그다음에는 런던에서 동참했다. 결국 이 시기를 통해 패션계의 속도(“정말 어리석을 정도로 미쳐가고 있었죠!”)를 재고하고 눈앞에 닥친 더 큰 사안을 고민할 기회를 얻었다는 것을 티시는 깨달았다. 지난 몇 달간 세상은 엄청난 충격을 받았고, 모두가 하던 일을 완전히 멈추고 생각하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고 그가 말했다. “지난 400년에 걸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을까요? 조지 플로이드처럼 죽어간 사람이 얼마나 많을까요? 그렇지만 결국 흑인 사회를 비롯한 이 세상을 이해하는 데 시간이 걸렸던 거죠. 조지 플로이드는 숨을 쉴 수 없었어요. 사람들이 코로나 바이러스로 죽어갈 때도 호흡할 수 없었죠. 그것이 바로 징조예요. 사람들은 조금 더 조용하고 사려 깊게 호흡하고 반응해야 해요. 그리고 저는 패션계에 엄청난 쇄신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이제 물러설 방법이 없어요.”

 

SILVIA VENTURINI FENDI

실비아 벤투리니 펜디는 가문의 임무에 얽매여 10대 시절부터 이 패션 브랜드를 위해 부지런히 일해왔다. “제가 아주 어릴 때 석 달 동안 휴가를 떠난 적이 있었죠.” 그녀가 그 시절을 회상했다. “이번에 그때와 같은 마음으로 돌아갔던 것 같아요.” 로마 몬테마리오(Monte Mario)산에 자리한 펜디 가문의 복합건물에서 손주 다섯 명에 둘러싸여 격리 생활을 하던 그녀는 다시 ‘어린 소녀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느꼈다. “이렇게 모든 것을 내려놓고 살까 싶기도 했어요.” 그녀가 말했다. “계획이나 책임도 없이, 그 긴 나날을 소파에서 뒹굴면서 말이죠.” 벤투리니가 말을 멈췄다. “그러다가 뉴스를 보면서 다시 현실을 자각했죠.” 그녀는 정서적으로 과거로 회귀했다. “어린아이처럼, 감정이 오락가락하게 그냥 두었죠. 웃었다 울었다 하면서요.” 어린 시절 그녀가 학교 공부할 때의 태도와 비슷했다. “저는 학교 공부는 부모님께 맡겼어요. 학교가 싫었거든요. 지금도 좋아하지 않죠. 학교에서 게임, 요리, 댄스, 텃밭 가꾸기 등과 같은 학습 이외의 시간만 즐겼죠. 봉쇄령을 거의 거둘 즈음 펜디는 거의 20명에 달하는 가족과 함께 지냈다. 격리 초기에 그녀는 크루즈 컬렉션의 영구 중단을 결정했다. “저는 그것을 멈추고 메인 컬렉션을 확대하고 싶었어요.” 그녀가 설명했다. “한 시즌에 쇼 한 번만으로도 차고 넘치니까요.” 지난 9월 그녀는 봉쇄 기간에 경험한 새 활력을 반영해 남성복과 여성복 패션쇼를 하나의 무대로 선보였다. “시간에 관한 우리의 의식이 정말 강해졌어요. 우리보다 더 오래가는 작품을 원하게 된 거죠. 저는 대가족의 일원이에요. 그러다 보니 뭔가를 전승하는 것이 중요하죠.” 이제 벤투리니의 패션 욕망은 ‘심플하고 순수하며 섬세한 것’을 향한다. 즉 사랑과 정성을 담아 한 땀 한 땀 만든 옷, 평생 입을 수 있는 옷을 추구하는 것이다. 그녀는 이 변화의 여름날 펜디를 제대로 활용하는 데 전념하고 있다. “저희는 나름의 특권을 부여받았죠. 그래서 그 권리를 어떻게 사용하느냐는 굉장히 중요한 일이에요. 유기적이고 실질적인 방법으로 꾸준히 잘 사용할 것입니다.” 그녀가 말하면서 업계에서 긍정적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 전망했다. “정원에서 저와 함께 놀던 그 아이들을 봐서라도 제가 자신감을 가져야겠죠!”

 

YOON CHOON HO

얼마 전 윤춘호는 YCH 컬렉션을 위해 모델 3인을 서울의 한적한 성당으로 모았다. 근대와 현대가 공존하는 서울 거리를 배경으로 최소라, 박희정, 이혜승이 런웨이 대신 새 시즌 옷을 입고 걸었다. “패션쇼를 하지 않는 것이 큰 변화였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텅 빈 성당에서 제가 좋아하는 모델들과 함께 컬렉션을 사진으로 남겼죠.” 브랜드 론칭 후 늘 분주하던 디자이너는 팬데믹을 계기로 강제적 휴식을 맞았다. “사람들과의 모임이 줄어들고 출장을 가지 않고 패션 위크에 불참하고… 이 모든 상황을 부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겠죠. 하지만 브랜드가 아닌 개인적 관점에서 브랜드와 제 자신을 분리할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아요.” 그는 ‘위기는 곧 기회’라는 신념으로 변화를 수용했다. 많은 브랜드가 문어발식으로 시즌을 확장하던 때가 있었고 이제 시즌을 줄이는 브랜드가 많지만, 그는 반대로 프리폴과 리조트 시즌을 추가해 1년에 네 번의 컬렉션을 공개했다. 해외 바이어들의 호응은 뜨거웠다. “기본에 충실하고 더 나은 품질에 집중하는 것. 코로나로 다시 깨달은 중요한 가치입니다.”

 

DANIEL LEE

‘뉴스 속보입니다! 봉쇄령 기간에 다니엘 리의 요리 실력이 하나도 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는 야심 차게 희망을 품고 시작했지만 결국 익숙하지 않은 집안일이나 생활에 싫증을 내고 말았다. 이를테면 트레이닝복만 입고 생활하는 것에 어느 순간 질린 것이다. “처음에는 아주 좋았죠. 집에 머물면서 편안히 지내니까요. 굳이 애쓰지 않아도 되고 말이죠. 그런데 얼마 안 가서 저 자신이 게으름뱅이처럼 느껴지기 시작했어요.” 브래드퍼드(Bradford) 출신이며 올해 36세인 이 디자이너가 인정했다. 그러다 완벽한 크루넥 스웨트셔츠의 디자인이 떠올랐고, 이를 계기로 여러 생각, 특히 패션 일정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다. “정말 1년에 네 번씩이나 대대적 컬렉션을 발표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죠. 두 번이면 충분하죠.” 그가 S/S와 F/W 컬렉션을 언급했다. 리와 그의 팀은 집에서 디자인 아이디어를 도출하며 록다운의 나날을 보냈다. 첫날에는 아틀리에에 몇 명만 모여 제안서를 검토하고 그들이 원하는 컬렉션 스타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자택 봉쇄령 이후 편안하고 안전한 느낌을 주는 디자인을 원하게 되었죠. 낙낙하면서도 노출하지 않은 느낌을 주는 그런 옷 말이죠.” 그는 지금 팬데믹 이후 이 세상에서 럭셔리 패션이 담아야 할 의미는 무엇인지, 어떤 방식으로 그 의미를 표출해야 할지 방향을 잡아가고 있다. “저는 패션쇼를 좋아해요. 꿈과 환상의 요소가 사람들을 기분 좋게 하니까요. 그리고 제 생각에 우리는 계속 패션쇼를 갈망할 것 같아요. 그러리라 믿고 싶기도 하고요. 패션쇼가 서서히 사라지지 않길 원해요. 물론 패션쇼가 ‘궁극적 목표’가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고, 매 시즌마다 패션쇼를 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기도 했어요. 다른 방식이 있을 수 있으니까요.” 그가 자신의 의견을 전했다. “사람들을 만난다는 아이디어가 마음에 들어요. 지금은 조금 더 친밀해지고, 한발 물러서는 시간이에요. 늘 앞으로 달려갈 수는 없잖아요. 뒤로 물러서서 자세히 관찰하는 것도 좋아요.” 한마디로 요약해 “우리는 아직 답을 찾지 못했지만”이라고 그가 인정했다. “지금 세상에는 많은 일이 벌어지고 있기에 패션계가 너무 요란 떨 일은 아닌 것 같아요.”

 

MARIA GRAZIA CHIURI

자가 격리하던 어느 날 밤, 마리아 그라치아 키우리와 그녀의 딸 레이첼 레지니(Rachele Regini)는 그녀의 오뜨 꾸뛰르 의상을 정말 우아하게 차려입고 자신의 로마 아파트에서 춤을 췄다. “여자애들이 매일 패션쇼를 하다시피 했다니까요.” 디올을 맡고 있는 이 디자이너가 격리 생활을 함께한 레지니와 딸의 친구를 떠올리며 말했다. “사람들마다 각기 다른 반응을 보인다는 것이 제게는 엄청 의미심장했죠.” 이번 사태는 그녀에게 희망을 심어주는 순간이 되었다. 사실 그녀는 이번 위기로 영향을 받는 젠더 역할에 굉장히 민감했다. “제가 이야기를 나눈 여성 모두 지쳐 있었어요.” 그녀가 말했다. “재택근무가 꽤 근사하다고요? 절대 그렇지 않아요. 여성들은 오전 내내 컴퓨터 앞에서 시간을 보내고 오후가 되면 아이들 공부를 봐줘야 하죠. 게다가 요리도 하고 청소도 해야 하잖아요.” 코로나 팬데믹이 발발했을 때, 키우리는 디올 크루즈 패션쇼를 기획하면서 이탈리아 풀리아(Puglia)에 있었다. 결국 그 패션쇼는 취소되고 말았지만, 어쨌든 당시만 해도 그 주변 지역의 장인들을 불러 모았기 때문에 그 협업을 끝까지 잘 마무리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꼈다. “이탈리아의 경기 불황이 금세 확연해졌죠. 이탈리아는 관광과 패션이 주요 산업이니까요.” 그녀는 혁신적 산업에 미치는 실업의 도미노 효과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제가 아파트에 앉아 울면서 영화나 봐야 하나요? 그렇지 않아요. 우리는 뭔가 해야 해요.” 몇 주간 화상회의를 하며 일하다 5월 말 자신의 파리 아틀리에로 돌아온 키우리는 컬렉션을 계속 발표하겠노라 다짐했다. “디올은 7,000명을 고용하고 있어요. 그러다 보니 뭔가 해야 한다고 느끼게 되죠.” 패션계의 속도에 변화를 주기 위한 포스트 팬데믹 계획 중에도 그녀는 특히 지속 가능성에 대한 요구에 귀를 기울인다. “그렇지만 우리는 일자리 제공에 대해서도 생각해야 합니다.” 키우리가 말했다. “우리는 디올처럼 규모가 큰 패션 브랜드에 효과적일 수 있는 지속 가능성을 창출하고 있어요.” 그녀가 설명하면서 그 브랜드가 취한 환경적 조치를 언급했다. 그러나 1년에 대략 여섯 번 정도 컬렉션을 진두지휘하는 키우리에게 속도를 줄이는 것은 옵션이 아니다. “디올 같은 브랜드에서 일하는 디자이너가 지나치게 점잔 빼고 있을 수는 없어요.” 그녀가 어깨를 으쓱였다. “무슈 디올이 이 브랜드를 처음 만들었을 때 그는 전쟁이 끝난 후 파괴된 프랑스에서 한 산업을 재개했죠. 그는 새로운 유행 스타일, 즉 뉴룩뿐 아니라 모든 것을 상실한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했기 때문에 중요한 인물이었던 거예요.” 키우리가 깊이 생각하며 말했다. “우리는 과거에 대한 생각에만 빠져 있을 수는 없어요. 지금 이 현실에 대해서도 생각해야 하니까요.”

 

ALESSANDRO MICHELE

“제 안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어요.” 알레산드로 미켈레가 2020 F/W 구찌 패션쇼가 열린 지난 2월 19일과 이탈리아 록다운, 즉 전국 봉쇄령이 내려진 3월 9일까지의 시간을 떠올리며 말했다. 그의 컬렉션은 런웨이 대신 백스테이지 준비 과정을 살짝 엿보이면서, 과부하에 걸린 패션계에 임하고 있었다. “제 위치를 생각하던 차였죠. 제가 늘 뭔가를 보여줘야 하는 이유를 고민하고 있었던 거죠.” 2015년 미켈레는 수십억 파운드를 쏟아부어 구찌의 혁신을 이끌어냈고, 그 후 끊임없는 패션쇼와 레드 카펫의 루프 속에 빠져들어야 했다. 그러다 갑자기 코로나 바이러스가 퍼지면서 그는 파트너 반니(Vanni)와 함께 자신의 로마 아파트에서만 꼼짝없이 지내며 뭔가를 깨달았다. “무슨 수도승처럼 느껴졌죠. 혼자서 상상 속을 여행하고 다녔죠. 혼자 그렇게 긴 시간을 보낸 것은 처음이에요.” 초기 르네상스 시대 삐삐 롱스타킹처럼 양 갈래로 머리를 땋은 미켈레는 글쓰기와 뜨개질에 흠뻑 빠져 있었다. 무슨 기도문을 외우는 것 같았다고 그가 설명했다. 미켈레는 온라인 경매에 참여해 소장 예술품의 수를 늘리기도 했다. 그리고 록다운 기간이 늘어 몇 주가 되자 10대 시절 록 스타를 꿈꾸게 해준 기타를 꺼내 연주를 하며 노래했다. “‘내가 조금만 더 가르쳐줄게요’라고 해리 스타일스가 말했죠. 그리고 자레드 레토는 ‘우리 함께 연주해야 해요!’라고 그러더군요.” 미켈레는 스타일스와 레토 이야기를 하며 웃었다. 미켈레는 자신의 테라스에서 새로운 시각으로 자연을 바라보았다. “제 장미처럼 저도 꼼짝 않고 있었죠. 그저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었어요. 정말 아름다웠죠.” 그는 땅에 뿌리를 내린 것처럼 느꼈다. “‘지금까지 우리가 무엇을 하고 있었던 거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바보처럼 정신없이 눈을 가린 채 살고 있었던 거예요.” 그렇게 영감을 받은 미켈레는 구찌를 위한 미래 철학을 구상했다. 작품 발표 횟수를 줄이고 지속 가능성 늘리기. 그것이 바로 그가 생각한 미래 철학이다. “제게는 늘 인류의 아름다운 작품이 필요할 거예요. 그리고 제가 지구에 존재하는 이유도 아름다움을 창의적으로 연구하기 위한 것이고요. 저는 멈출 수 없어요.” 그러면서 이렇게 다짐했다. “하지만 지구와 더 많은 연결점을 찾고 싶어요.” 그는 이번 록다운을 절대 잊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모두에게 똑같은 상황은 아니었기에, 똑같다고 말할 수는 없어요. 하지만 우리는 뭔가 강력한 일을 겪었죠. 아마 이 기술 시대 들어 처음으로 신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느꼈을지도 모르겠어요. 그리고 이 지구가 바로 그 신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