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기 좋은 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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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기 좋은 털’ 이야기

2021-05-11T18:56:39+00:00 2021.03.22|

저항의 수단에서 자기 긍정의 상징이 된 털. Z세대의 쿨한 애티튜드로 도약하지 못한 털은 애매한 처지에 처했다. 자유롭게 자라되, 남의 눈에 띄지 말 것.

2014년 사진가 벤 호퍼는 겨드랑이를 드러낸 여성의 사진을 촬영한 ‘Natural Beauty’ 프로젝트를 선보였다. 이 프로젝트는 세계적으로 여성의 털에 대한 논의를 촉발시켰고, 수천만 명 이상이 겨드랑이 털 제모를 멈췄다. 그리고 겨드랑이 털은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인식이 확산됐다.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 취임 당시 마음속으로 찐한 축하를 보내며 신변 검색에 들어갔다. 그리고 처음 마주한 건 의붓딸 엘라 엠호프의 겨드랑이 털이었다. 슬리브리스 원피스 차림에 양팔을 들어 바운스를 타는 듯한 포즈 속 그녀의 털이 반갑다는 듯 인사를 건넸다. 니트 디자이너로 활동하며 니트 비키니를 입고 가방을 내미는 사진에서도 그녀의 털은 꿈틀꿈틀 살아 움직이는 듯했다. 지나가다가 내 모니터를 본 동료는 “역시 어려서… 멋지군”이라 말했고, 파티션 너머의 동료는 “겨털 깎으면 지는 거예요. 엘라 엠호프 파이팅!”이라고 말했다. 드라마 <보건교사 안은영>에서 학생들의 겨드랑이 털을 잠자리매듭으로 묶던 장면이 떠올랐다. 위키백과 Z 제너레이션의 조건에 ‘겨드랑이 털을 기른다’ 추가가 시급해 보였다.

영국 <보그>는 2년 전 밀레니얼 세대는 수북한 털에 개의치 않는다는 기사를 실었다. 과거 세대가 여성성의 강요에 반발해 제모를 거부했다면, 이들은 브라질리언 왁싱을 비롯한 건강하지 않은 제모에 거부감을 느껴 제모를 하지 않는다는 내용이었다. 따라서 전시하듯 겨드랑이 털을 기르기보다 “내킬 때 가끔 제모를 해요” 같은 태도를 보인다고 덧붙였다. 그 배경으로 젠더 유동성을 지향하는 패션 브랜드, 다양한 외양을 보여주고자 하는 모델, “원하면 밀고 원치 않으면 하지 마”란 슬로건을 내세운 면도기 등을 들었다. “이 세대는 절대 원칙을 거부하기 때문에 제모에 대한 원칙도 거부한다”는 문장을 읽으며 완전히 새로운 세상이 도래한 듯한 인상을 받았다. 거기, 지구 맞죠?

긍정의 기운이 도래한 가운데 ‘겨털 스타’는 꾸준히 탄생했다. 엄마 마돈나와 함께 커플 겨털 샷을 올린 루데스 레온은 겨털 자유주의의 아이콘이 됐다. 이에 마크 제이콥스는 2021 S/S 광고 모델로 그녀를 발탁했는데 데님에 풍성한 헤어피스를 하고 카메라를 응시하는 그녀의 겨드랑이에는 여느 때처럼 털이 자라 있었다. 미우미우, 컨버스 등 다른 브랜드 앰배서더로서 찍은 사진에도 ‘어쩌라고!’라고 말하듯 겨드랑이 털을 노출하고 있었다. 앞서 언급했듯 제모를 하지 않고 카메라 앞에 서는 모델 역시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구찌 뷰티의 첫 번째 글로벌 모델 대니 밀러(Dani Miller)는 <보그 코리아>와 함께한 촬영에서 하늘하늘한 원피스 아래 메리 제인 슈즈와 삭스를 스타일링했을 때도 다리털을 그대로 드러냈다. 보컬리스트로 활동하는 그녀는 무대에서도 시원하게 겨드랑이를 공개하곤 한다.

이들의 행보는 가서 껴안아주고 싶을 정도로 바람직하지만 이로 인해 실제 우리 몸에 난 털을 바라보는 시선에 변화가 생겼냐고 묻는다면 현실은 ‘털 나름이다’에 머물러 있다. 겨드랑이 털은 한동안 자기 긍정의 상징이었다. ‘있는 그대로 자신의 모습을 사랑하라’는 보디 포지티브 운동이 퍼지며 ‘뚱뚱해도 괜찮아’, ‘털이 많아도 괜찮아’, ‘가슴이 작아도 괜찮아’ 하며 다독였기 때문이다. 원래 털이 없었던 것처럼 겨드랑이는 물론 다리, 등, 손가락, 발가락 털까지 제모하던 여성들은 이때 ‘털은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보편적 공감대를 형성했다. 일단 머릿속으로 말이다. 지금도 스스로를 사랑하라는 메시지는 두더지 잡기 게임처럼 불쑥불쑥 튀어나오지만 털만큼은 갈 곳을 잃은 채 갈팡질팡한다. ‘더 이상 고통스럽게 털을 깎진 않을 거야. 그런데 굳이 그 털을 남에게 보여줄 필요가 있을까? 나 역시 크게 보고 싶지 않은걸…’ 남의 털을 비난하진 않지만 자신의 털을 내보이긴 꺼리는 상태. 자기 긍정을 통과하지 못한 털의 현재 마음이다. 사실 개개인의 털 상태를 고려하지 않은 채 털까지 사랑하라고 하던 자기 긍정주의는 공허한 구석이 있었다. 평소 겨드랑이 털을 한 올 한 올 셀 수 있는 사람과 언더웨어 밖으로 까만 털이 속절없이 비집고 나오는 사람이 어떻게 똑같이 털을 대할 수 있냔 말이다. 전 세계에서 휴양하러 몰려가는 발리에 수년째 머물고 있는 지인은 아무리 SNS에서 털을 긍정하는 움직임이 일어도 현지에서 피부로 느낄 수 있는 변화는 없다고 말한다. 선베드에 누워 겨드랑이 털에 살랑살랑 바람을 쐬어주는 여자는 드물다고 말이다. 그리고 털을 긍정한다고 해서 공공 수영장에 그냥 갈 순 없지 않냐고 되물었다. 털이 빠질 수도 있고 무엇보다 주목받고 싶지도 않다고. 약품을 쓸 수 없는 닭살에 면도기를 쓰면 피가 철철 나는데 자기를 사랑해야 한다며 털을 긍정하라는 소리를 들으면 헛웃음부터 나온다고 했다.

루데스의 인스타그램에 달리는 “겨드랑이 털을 기르는 것은 본인 자유지만, 광고에서는 안 봤으면 좋겠다”는 댓글은 사회가 여전히 털이 있어야 할 자리, 그렇지 않은 자리를 구분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밀어버려야 하는 것’에서 ‘자연스러운 것’이 된 털은 TPO를 가려야 하는 처지가 됐다. 가족과 여름휴가는 괜찮고 친구들과 워터 파크는 안 되고, 수영 강습은 괜찮고 다이빙 강습은 안 되고, 학원 수강은 괜찮고 소개팅은 안 되고 등등. 주관적으로 정하는 듯하지만 TPO에는 사회가 정해놓은 미적 기준이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더불어 자신의 털을 내보이는 사람이 늘어날수록 ‘보기 좋은 털’에 대한 이미지도 만들어졌다. 아무렇지도 않게 겨드랑이 털을 드러내는 엘라 엠호프, 루데스 레온을 보며 나는 ‘보여줄 만한 털이다’라는 생각을 멈출 수 없었다. 적당하게 올라 붙은 브라운 컬러 털은 안정적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무엇보다 그녀들은 털 빼고 몸매와 얼굴이 모두 사회가 요구하는 미적 기준보다 우월했다. 그러므로 겨털 정도는 길러도 되지 않나 싶어지는 것이다. 어느덧 나는 ‘내놓아도 되는 털의 조건’을 꼽기에 이르렀다. 너무 까맣거나 분포 면적이 넓지 않을 것. 밖으로 삐져나오지 않아야 할 것, 무성해서는 곤란, 숱은 적을수록 좋지만 적당한 부피감은 강렬한 메시지가 되므로 오케이… 실제로 옆자리 후배는 제모의 이유로 ‘가지런하지 않고 듬성듬성 털이 나기 때문’을 꼽았다. ‘여자의 몸은 털 한 올 없이 매끈해야 한다’와 ‘여자의 몸에 털이 나는 건 자연스럽지만 보기 좋아야 한다’는 것 중 어떤 편견이 더 우리를 옥죄는가. 고통의 무게는 동일하다.

지난 1월 <글래머> 잡지는 셀프 러브 특집의 일환으로 ‘체모 운동가’ 퀸 에시(Queen Esie)를 표지에 실었다. 열한 살 때부터 가슴에 털이 났고 이로 인해 어두운 시간을 보냈다는 퀸 에시는 털을 비정상으로 여기는 사회에 아름다움은 언제든 해체되고 재구성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라벤더 프로젝트를 시작한 주인공이다. 자신을 파괴하는 행위에 가까웠던 제모를 그만둔 그녀는 직접 만든 라벤더 드레스를 입고 셀프 포트레이트를 찍어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그리고 체모를 다른 시각으로 보여주는 사진과 글을 작업하고 있다. 화가이기도 한 그녀는 그동안 경험을 바탕으로 털을 제거하지 않은 여자들을 그린다. 이 작업이 공허하게 느껴지지 않는 건 수년 동안 편견과 싸운 뒤 스스로 정한 삶의 방향이기 때문일 거다. 지금도 완결되지 않았지만 말이다.

원 마일 룩이 유행인 코로나 시대, 제모에 대한 압박은 잠시 소강상태다. 마스크를 착용하니 코로나 발발 전까지 엄청나게 유행하던 코밑 털 제모도 시들해졌다. 마스크를 쓰고 화상회의를 하다 보니 제모보다 모발 이식에 사람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는 뉴스는 풍선 효과를 떠오르게 한다. 보이는 털은 어디에 붙어 있든 끈질기게 사회적 기준의 아름다움을 요구한다. 그렇다고 털을 미는 건 구시대적이고 쿨하지 못하다고 주장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 식의 강요는 ‘겨드랑이에 털이 있는 여성은 여성답지 않다’던 과거의 고정관념과 다를 바가 없다. 그저 세계인 모두가 털에 시큰둥해지는 날이 오길 바라며 털 시즌 2를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