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호가 제시하는 넥스트 코미디

Fashion

이창호가 제시하는 넥스트 코미디

2021-05-11T16:13:53+00:00 2021.04.26|

김갑생할머니김의 이호창 본부장, 한사랑산악회의 이택조 아저씨, 5월에 싱글 앨범을 내는 매드몬스터까지. 이창호에게서 코미디의 진로를 보다.

블루 니트를 입은 코미디언 이창호. 코미디의 블루오션은 하이퍼리얼리즘일까. 이창호가 세밀한 캐릭터 묘사와 탄탄한 세계관의 코미디로 인기를 얻고 있다. 니트 톱은 토즈(Tod’s).

밀레니얼 세대는 어디에서 코미디를 소비할까? 코미디란 장르는 예능 프로그램에 스며들었을 뿐 그 자체로 존립하는 프로그램은 거의 없다. 2001년에는 대학 신입생인 내 자취방에 토요일 밤 9시면 친구들이 소주를 들고 왔다. <개그콘서트(개콘)>를 함께 본방 사수하려고. 1999년 <개콘>의 등장은 센세이셔널했다. <웃으면 복이 와요>, <청춘만만세>, <유머 일번지>와는 형식이 크게 달랐다. 예를 들어 <유머 일번지>의 인기 코너인 ‘괜찮아유’는 시골집 세트장에 농민으로 분장한 최양락과 김학래가 등장했다. 세트와 분장은 정극처럼 리얼했고, 사전 녹화를 하고 편집해 방송했다. <개콘>은 하나의 무대에 코미디언들이 번갈아 올라 5분 내외로 빠르게 극을 선보였다. 무엇보다 관객을 앞에 두고 그들의 웃음소리와 표정까지 중간중간 삽입했다. 현장감이 살아 있는 공개 코미디 시대의 시작이었다.

전성기에 30%였던 <개콘> 시청률은 1~2%로 떨어졌고 결국 2020년 6월 종영했다. 많은 언론이 “공개 코미디의 말로”라고 해석했다. 마지막 방송에서 박준형은 앞니로 무를 갈았고 영광을 함께했던 동료들이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눈물에 공감하지 못한 시청자는 이런 댓글을 달았다. “박준형은 아직도 무를 가네?” 몇 년 전까지도 KBS 공채에 합격해 <개콘> 무대에 오르는 것이 코미디언에게는 대기업 합격과 비슷했다. 이창호 역시 2014년 KBS 공채 개그맨으로 <개콘>에서 ‘라스트 헬스보이’, ‘멜로가 필요해’ 같은 코너를 했다. “그나마 제 기수는 <개콘>이란 금광에서 금 부스러기를 얻을 수 있었죠.” <보그> 촬영을 위해 만난 그가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개콘>은 대중에게 점점 멀어졌어요. 마지막 녹화에서 슬픔보다도 ‘결국 이렇게 되는구나’ 받아들여지더군요.”

이창호는 설 무대가 없어지면서 2020년 5월 코미디언 곽범과 유튜브 채널 ‘빵송국’을 개설했다. 그 후 코미디언 이용주, 정재형, 김민수의 유튜브 채널 ‘피식대학’에 출연하면서 인생에서 가장 큰 주목을 받는다. 특히 두 개의 캐릭터가 인기다. 중년 산악회를 오마주한 ‘한사랑산악회’의 부회장 이택조, 소개팅하는 컨셉의 ‘B대면 데이트’ 속 재벌 3세 이호창 캐릭터다.

화이트 리넨 재킷은 돌체앤가바나(Dolce&Gabbana), 이너로 입은 톱과 실크 팬츠, 슬리퍼는 톰 포드(Tom Ford).

두 코너는 단막극이 아니라 장편 드라마처럼 서사가 이어지고 캐릭터의 세계관은 확장되는 중이다. 그 세계관은 대중이 함께 만들어간다. 피식대학에서 이택조는 (현)영등포상가번영회 회장, 영등포구청장배 게이트볼 최연소 13회 우승자로만 소개했지만, 네티즌이 배경을 추론하고 덧대 인물을 풍성하게 한다. 예를 들어 이택조의 큰 목소리는 인테리어 공사장에서 일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리 됐으며, 가끔 부리는 억지 역시 자수성가하느라 생긴 성격이라는 것이다. 또 다른 캐릭터인 이호창은 공식적으론 김갑생할머니김의 미래전략실 본부장 정도로 소개된다. 이호창의 인스타그램도 개설돼 있는데, 그곳에 이호창의 흉터 사진을 보고 “강도를 제압하느라 생긴 상처,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재벌가”라는 댓글이 달렸다. 더 재미있는 점은 댓글을 다는 이들도 ‘부캐’를 설정한다는 것이다. “저는 이호창 본부장님의 부하 직원입니다. 유튜브에서도 뵈니 좋으네요”라는 식이다. 많은 이가 이들의 세계관에 기꺼이 편입되며 즐거워한다.

이런 성공의 이유 중 하나는 캐릭터 묘사가 섬세하기 때문이다. 대중은 ‘하이퍼리얼리즘 코미디’라 부른다. “정말 저래!”라고 무릎을 치게 만드는 행동, 말투, 소지품이 등장하면서 공감의 웃음이 터진다. 이를 위해 이창호는 습관적으로 주변을 관찰한다. “미술 하는 사람이 어느 장소에 가면 구도와 컬러를 보는 것처럼, 저는 영등포에서 술기운에 일을 준비하시는 아저씨들, 스크린 경마장에서 나와 담배 피우는 아저씨를 그냥 지나치지 않죠.”

또 다른 포인트는 코미디언 이창호와 나머지 캐릭터를 철저히 분리하는 것. 인터뷰에서 이호창이나 이택조에 대해 물으면 이택조는 자신의 삼촌이며, 이호창은 잘은 모르지만 괜찮은 분이라고 답한다. 더 집요하게 물어보면 “~카더라 통신에서 들은 풍월을 얘기할게요”라고 말한 뒤에야 답을 한다.

사실 이들 캐릭터는 이창호가 이전부터 해오던 것들이다. <개콘>의 ‘멜로가 필요해’에서 박신양, 원빈처럼 잘난 남자 배우를 연기한 것이 이호창의 전신이고, 이택조 아저씨는 공채 시험 때 했던 캐릭터다. 이것이 공개 코미디 형식에서는 그다지 큰 인기를 얻지 못하다가 지금 와서 빛을 본 이유는 무엇일까?

“<개콘>은 짧은 시간 넓게 잡힌 화면에서 극을 선보였죠. 동작은 커야 하고 디테일은 생략되거나 방송에 잡히지 않았죠. 지금은 15초 동안 이택조 아저씨의 눈빛만 카메라로 잡기도 해요. 방송이라면 사고죠. 하지만 유튜브에선 디테일이 강조되면서 캐릭터가 강화됩니다. 무대형 공개 코미디가 약간 딱딱하고 평면적인 레고라면, 유튜브형 코미디는 찰흙으로 만든 인형 같아요. 여기저기 사방으로 살필 수 있죠. <개콘>이 맞는 선수가 있는 반면 저는 후자가 맞아요.” 그는 시대가 변했다고 덧붙였다. “20여 년간 비슷한 코미디 형식만 본 대중이 물리기도 했어요. 집으로 치자면 외관 말고 내부로 들어가보고 싶고 들어가선 벽지 무늬도 살펴보고 싶어진 거죠. 어느 것이 옳다의 문제가 아니라, 코미디의 형식은 돌고 돌지 않을까요.”

이들 코미디에서 높이 사는 또 다른 하나는 웃음과 더불어 다른 가치도 추구한다는 사실이다. 5분 내외의 짧은 콩트가 올라가는 공개 코미디는 웃음이라는 가치를 추구하기도 바쁘다. 하지만 한사랑산악회에는 이런 댓글이 달린다. “이전에 등산 가면 아저씨 무리들이 시끄러워서 피했는데 이제는 이해돼요. 그들도 우리처럼 친구랑 놀고 싶었을 뿐임을요.” 이창호 역시 “저희 콘텐츠를 보고 아버지가 그립다는 분들이 많아요”라고 했다. 한사랑산악회는 웃음에 드라마를 보태면서 팬이 더 늘어난다. 용길 아저씨는 미국에서 귀국 후 차린 LP 바가 잘되지 않지만 아르바이트생에게 가수의 꿈을 키워준다. 주식으로 돈을 날린 광용에게 친구들은 몰래 돈을 모아 그의 아들에게 전달한다. 그 회차는 아들의 독백 “나의 우상은 나의 아버지다”로 끝을 맺는다.

드라마와 더불어 각 캐릭터의 성정도 인기의 큰 요인이다. 이택조는 윽박질러도 속은 따뜻한 아저씨이고, 이호창 본부장 역시 상대를 배려하는 매너남이다. B대면 데이트의 또 다른 캐릭터인 카페 사장 최준 역시 “우유 좋아하세요? 아이 러브 유”라는 느끼한 대사가 싫으면서도 언제나 친절하고 배려 깊은 말투에 사람들이 ‘준며들었다’. 헐뜯는 개그와 캐릭터가 아니라 가상이지만 친절한 캐릭터에 마음이 가는 것이다.

사실 무대를 잃어버린 많은 코미디언이 유튜브로 갔으나 이들이 내놓는 콘텐츠는 실망스럽곤 했다. 몰래카메라 일색으로 황당한 장난을 치거나 야한 설정도 많았다. 조회 수를 위해서지만 너무 쉬운 길을 택했다. 아니면 코미디와 별개인 사생활 콘텐츠, 키즈 채널이었다. 그렇기에 이창호가 운영하는 빵송국, 그가 출연 중인 피식대학의 잘 짜인 콘텐츠가 더 빛을 발한다.

그들의 콘텐츠 준비 과정은 수평적이고 자유롭다. <개콘> 때만 해도 월·화는 리허설, 수요일 녹화, 목·금은 아이디어 회의였고, 선배와 제작진 층층시하에 검사를 받았다. “지상파다 보니 소재에 제약이 많았어요. ‘이런 코미디를 하면 어떻습니까?’ 하면 ‘이래서 안 되고 저래서 안 돼’라는 답변을 들었죠. 지금은 우리끼리 얘기 나누다 재미있으면 바로 실행해요. 선배들이 닦아놓은 코스를 똑같이 돌던 말을 자연에 풀어놓은 거 같아요. 자유롭게 달리다가 똥통으로 갈 수도 있지만 우리만의 길이 닦인다고 봐요.”

이창호가 키우는 꿈나무는 꽤 크다. 힌트를 주자면 <겟아웃>, <어스>를 만든 코미디언 조던 필을 좋아한다. 니트는 겐조(Kenzo), 분재는 오이타(Oita).

이창호가 세운 목표는 빵송국에서 선보이는 뮤지션 캐릭터 ‘매드몬스터’가 실제 싱글을 발매하는 것, 또 이들 캐릭터의 세계관이 더욱 확장되는 것이다. “이택조가 들고 다니는 빨간 바가지가 아이언맨의 수트를 깰 수도 있죠. 세계관이 어떻게 넓어질지 기대하고 있어요.” 최종 목표는 영화 제작이다. 그가 좋아하는 코미디언도 윌 페렐, 조던 필이다. 특히 조던 필은 영화 <겟아웃>, <어스>를 만들어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천만 영화 <극한직업>도 잘 짜인 코미디잖아요. 코미디뿐 아니라 연기, 제작, 연출도 좋아하니 동료와 스낵 무비를 만들고 싶어요. 개봉 못하면 유튜브로 내보내도 되니 방법은 찾으면 되죠. 그래 왔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