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에너지를 불어넣은 디올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마리아 그라치아 키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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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에너지를 불어넣은 디올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마리아 그라치아 키우리

2021-05-11T15:54:08+00:00 2021.05.05|

디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마리아 그라치아 키우리. 누군가의 딸이자 누군가의 엄마인 그녀가 유구한 역사를 지닌 이 패션 하우스에 불어넣은 현대적이고도 여성적인 에너지.

마리아 그라치아 키우리와 그녀의 딸 라켈레 레지니.

5년 전 마리아 그라치아 키우리(Maria Grazia Chiuri)는 크리스챤 디올 합류를 협상하면서 분명히 해둔 바가 있다. “계약서에 서명하기 전, ‘저는 이 브랜드의 가치관을 이해합니다. 그렇지만 그 가치관에 대한 제 나름의 특정 관점이 있어요’라고 말했죠. 그리고 그들은 마음을 열어 제 의견을 받아주었어요.” 그녀가 당시를 회상했다. 합류 몇 달 후 그라치아는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라는 영원의 슬로건이 새겨진 티셔츠를 런웨이에 발표했다. 그해 겨울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되면서 전 세계 여성들의 행진(Women’s Marches)이 촉발됐고, 뒤이어 #미투 운동과 정체성 정치(Identity Politics)가 세계적으로 확산됐다. “여성성에 관한 디올의 신념은 외형에만 국한되지 않아요. 저는 1946년에 이 기업을 설립한 크리스챤 디올이 아닙니다. 저는 여성이고 다른 시대에 살죠.” 그녀가 크리스챤 디올의 활동가다운 모습에 불을 지폈다.

얼마 전 <Her Dior: Maria Grazia Chiuri’s New Voice>가 출간됐다. 그라치아가 디올에서 여성의 시선으로 탄생시킨 컬렉션을 담은 책이다. 파리에서 걸려온 화상 전화 속 그녀는 시그니처인 탈색한 금발을 올백으로 넘겨 포니테일로 묶었고, 타이트하지 않은 블랙 상의에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 있었다. 그녀는 여성 포토그래퍼에게 재능을 발휘할 기회를 주고 싶다고 말했다. “패션업계 같은 시스템에서 편하게 일할 수 있는 여성 포토그래퍼가 많지 않다고 해요. 과거에 활동한 사진작가들은 주로 남자였죠. 제가 디올에 합류한 후 여성 포토그래퍼와 캠페인 촬영을 하겠다고 요구하자, 여성 포토그래퍼가 없다고 하더군요. 너무 충격이었죠. 그래서 저는 ‘에이, 농담하지 마세요’라고 말했죠.” 어느덧 5년이 흘러 브리짓 니데르마이르(Brigitte Niedermair)와 브리짓 라콤(Brigitte Lacombe) 같은 포토그래퍼들이 그녀의 캠페인을 촬영하고 있다. “뭔가를 하는 ‘첫 여성’들이 있어요. 이런 사례를 보면 굉장히 새로워 사람들이 놀라죠. 하지만 솔직히 이것은 우리가 여전히 가부장적 세상에 살고 있음을 의미하는 거예요.”

그라치아는 바로 이 점을 그녀의 고객이 이해하길 바랐다. “페미니즘은 남자와 여자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 가부장적 세상에 대항하는 거죠. 가부장적 사고방식을 지녔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여성이 많아요. 그런 사고방식이 우리 안에 내재하고 있는데도 말이죠. 그러므로 관점을 바꾸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합니다. 저도 매일 열심히 노력하고 있어요.” 그 과정에서 그녀는 디올의 뉴룩을 조심스러움에서 멋짐으로 탈바꿈시켜왔다. 디올 창립자가 고착시킨 완벽한 모습을 현실적인 스타일로 바꾸면서 말이다. 드레스 라인에서는 로마 출신 디자이너답게 긴 페플로스(Peplos) 드레스를 통해 자신을 표현했다. 이는 종종 플랫 슈즈와 히트 쳤던 가방뿐 아니라 북 토트백과도 자주 매치됐다.

첫 디올 컬렉션 발표 이후, 그녀는 페미니즘을 모든 패션쇼의 중심에 두었다. 이 브랜드의 역사를 재검토하고 철저한 학구적 조사와 더불어 융합시키면서 말이다. 정치 외에 그녀의 여성 중심적 패션은 팬데믹을 통해 새로운 타당성을 얻었다. 1년간의 록다운으로 옷에 대한 우리의 접근 방식이 대폭 바뀌었기 때문이다. 그녀가 말했듯, 우리는 ‘편안하면서도 기분 좋게 만드는 옷’을 원한다. 현실적인 디자이너가 여성들이 원하는 것을 합리적인 시각으로 만든 실용적이면서도 우아한 옷을 원하는 것이다. 올봄 컬렉션에서 그녀는 디올의 클래식 실루엣을 컴포트 웨어로 바꾸고, 재킷을 드레스 가운으로, 셔츠를 튜닉으로 탈바꿈시켰다. 그리고 낙낙하게 통을 넓혀 대담할 정도로 편안해진 바지를 만들었다.

파리와 로마를 오가며 지내는 그녀는 로마에서 나고 자랐고, 셔츠메이커인 그녀의 남편 파올로 레지니(Paolo Regini)와 함께 20대로 성장한 딸 라켈레(Rachele)와 아들 니콜로(Nicolò)를 그곳에서 키웠다. 그녀는 1964년 군인인 아버지와 재봉사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로마 출신다운 특징이 성격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또 페미니즘이 불타오른 1970년대에 청소년기를 보냈으며 자매들이 이끄는 펜디에서 커리어를 쌓았다. 그리고 디올에 합류하기 전 발렌티노에서 남녀 공동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일했다. 착실하게 쌓아온 캐릭터의 진화 과정이 한눈에 확인되지 않나! 이 사고방식은 팬데믹에 대처하는 그라치아의 모습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패션 시스템의 속도를 늦추고, 생산량을 줄이고, 패션쇼를 축소하자는 목소리가 패션계에서 나올 때 그녀는 과감하게 더 실용적인 접근 방식을 취했다.

물론 컬렉션도 취소하지 않았다. 오히려 디지털로 오뜨 꾸뛰르 프레젠테이션을 개최하고, 이탈리아 남부 풀리아(Puglia)에서 크루즈 쇼를(관객을 줄였다) 열었으며 전통적인 파리 패션쇼의 9월 개최를 약속하는 등 맹렬히 전진해나갔다. “지속 가능성에 대한 요구에도 귀 기울이고 있죠. 그렇지만 우리는 일자리 마련도 염두에 둬야 합니다.” 지난여름, 이탈리아 공장 근로자와 인도 자수 기능공을 비롯해 전 세계 소규모 가내 기능 보유자까지 그녀가 고용하는 수천 명을 떠올리며 말했다. “우리가 일을 멈추면 도미노 효과가 정말 심각하게 발생할 거예요.” 그녀는 자신의 결정을 돌이켜보면서 어떤 후회도 하지 않는다. “우리가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알아요. 하지만 결점을 줄여나가는 쪽으로 일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녀는 로마에서 피오루치(Fiorucci)를 입은 10대들로부터 영감을 받아 어느 때보다 활기 넘치는 컬렉션으로 2020년을 마무리했다. “저는 ‘색깔이 필요해!’라고 말했죠. 그래서 우리 패션 팀이 완전히 충격받았어요.” 그녀가 웃음을 터뜨리며 그때를 떠올렸다. 그녀는 모든 것을 망라한 컬렉션과 오뜨 꾸뛰르에 대한 더 금욕적인 해석으로 비치는 접근 방식을 취했다. 그리고 이는 더 드라마틱했던 전임자들의 방식과 강한 대조를 이뤘다. “마크 보앙, 존 갈리아노, 라프 시몬스 모두 달랐죠.” 그녀가 디올의 전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의 이름을 하나씩 예로 들며 말했다. “패션은 디자이너뿐 아니라 시대에 관한 것이기도 해요. 보앙 이전 시대, 즉 1970년대에는 아카이브에 바지가 없었어요. 미루어볼 때 보앙은 여성에 관한 색다른 견해를 지녔던 게 분명하죠.”

거대 패션 하우스에서 일하는 몇 안 되는 여성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중 한 사람으로서 그라치아는 ‘여성이 더 나은 여성복을 디자인한다’는 진부한 생각에 동의할까? “아니요. 절대 그렇지 않아요. 발렌티노, 아르마니나 디올을 생각해보세요. 그들은 여성들이 선망하는 아름다운 작품을 탄생시켰잖아요. 욕구가 의미하는 바에 대한 생각과 관련되어 있죠. 사람들은 ‘여성들이 여성이 만든 패션을 원한다면, 그 이유는 그들이 창의성은 떨어져도 ‘여성들이 원하는 것을 이해한 사람’, 즉 비즈니스 측면에서 더 낫기 때문이다’라고 여기죠.” 그녀가 잠시 말을 멈추더니 다시 이었다. “하지만 성별에 따라 좌우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에 딱 맞는 예를 들어보자. 패션 포럼에서 마리아 그라치아 키우리의 이름을 언급하면 누군가는 그녀가 얼마나 뛰어난 사업가인지 이야기할 것이다. “과거에 천재들은 모두 남자였습니다. 그래서 창의적인 천재는 남자라는 생각이 우리들의 머릿속에 박혀 있어요. 여자들이 남자들만큼 기회를 누리지 못했기 때문에 생긴 결과에 불과한데 말이죠. 우리는 생 로랑을 ‘여성들을 해방시켰던’ 디자이너로 인정한답니다. 하지만 샤넬도 여성들을 해방시켰어요!” 지난해 역사적으로 또는 최근 들어 여성들이 이끌었던 수많은 패션 하우스에서 남성 디자이너를 채용했다. 이로 인해 그녀는 럭셔리 브랜드를 이끄는 몇 안 되는 여성 리더 중 한 명이 됐다. 이 상황에 대해 묻자 그녀가 고심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다음 세대에는 조금 더 수월해지길 희망합니다.”

그녀는 그런 여성들을 위해 길을 닦고 있다. 라켈레 레지니(24세)가 런던 골드스미스에서 미술사 학사와 젠더, 미디어 & 컬처 석사를 마친 뒤 문화 자문위원으로 디올에 합류해 엄마가 향유하던 1970년대 페미니즘에 불가해한 Z세대 감성을 불어넣고 있다. 최근 키우리는 런던에서 활동하는 신세대 여성 듀오 디자이너인 초포바 로위나(Chopova Lowena)의 작품을 사들였다. 그 전에는 뛰어난 남성복 디자이너 그레이스 웨일스 보너에게 협업을 요청했다. “그녀는 정말 용감해요. 여성들이 브랜드를 론칭한다는 것이 굉장히 어려운 일이거든요. 게다가 가부장적 시스템에서 남성복 브랜드를 시작하는 것은 정말이지 용기 있는 일입니다.”

패션 산업의 보여주기식 행태와 정직하지 않은 모습에도 불구하고, 마리아 그라치아 키우리가 패션 산업이 계속 돌아가게 하겠다고 결단을 내린 것은 그녀의 디올 플랫폼이 미래 페미니스트 세대에 미치는 엄청난 영향을 인지했기 때문인 듯하다. “패션쇼를 취소하는 것은 TV가 있기 때문에 극장을 없애는 것과 같아요. 패션쇼 없는 패션 시스템은 사원 없는 종교와 같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