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의 전부인 샤넬의 모든 것

Fashion

여자의 전부인 샤넬의 모든 것

2021-05-11T15:46:35+00:00 2021.05.10|

샤넬과 30년간 협업해왔고, 2019년엔 칼 라거펠트의 뒤를 이어 아티스틱 디렉터로 임명된 버지니 비아르는 샤넬의 모든 것을 알고 있다. 수줍음 많고 매우 감정적인 그녀가 특히 원하는 것은 샤넬의 보물과 샤넬을 이끄는 팀, 샤넬만의 노하우로 고급스럽고 정교한 특정 아이디어가 영원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여전히 신비로운 그녀를 만났다.

샤넬의 아티스틱 디렉터 버지니 비아르와 그녀의 아들 로빈슨 파이요.

버지니 비아르(Virginie Viard)는 앞에 나서기를 싫어한다. 그녀는 ‘필’에 따라 일하며 산다고 말한다. 아무런 장식 없고 꾸밈없는 심플함이 그녀를 대표하는 스타일이다. 잘난 체하거나 자신을 중요한 사람으로 여기는 것도 거부한다(자신이 하는 일은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패션 하우스 중 하나를 이끄는 이 수장은 신중한 인물이다. 충직한 사람이기도 하다. 샤넬 그리고 칼 라거펠트와 30년을 동고동락한 버지니는 라거펠트와 가장 가까운 협력자였다. 라거펠트가 버지니를 “내 오른팔이자 내 왼팔이다”라고 말한 비유는 익히 알려져 있다.

자연스럽게 버지니는 2019년 칼 라거펠트의 뒤를 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어떤 인물인지 잘 아는 여자의 모습을 담은 쿨하고 자유로운 모습을 샤넬에 더하면서도 샤넬 고유의 역사를 이어나가는 방법을 누구보다 잘 안다. 이런 그의 모습을 완성한 것은 리옹과 부르고뉴 지방 시골 마을에서 외과 의사인 아버지와 옷을 좋아하던 어머니, 형제자매 네 명과 함께 보낸 유년기, 핵심을 꿰뚫는 직감,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 신중함, 타고난 우아함인지도 모른다.

패션 사진가 유르겐 텔러가 촬영을 맡은 2021 메티에다르(Métiers d’Art) 쇼가 열린 슈농소 성에서 막 돌아온 버지니 비아르를 캉봉가 31번지에 있는 샤넬 스튜디오에서 만났다. 긴 갈색 머리를 늘어뜨린 채 평소 스타일대로 줄무늬 청바지와 트위드 점퍼를 걸치고 검은 부츠를 신은 그녀는 라거펠트와 오랜 세월 협업하며 다져온 관계와 샤넬에서의 삶을 이야기한다. 샬롯 카시라기가 모델로 선 2021 S/S 시네마 컬렉션 캠페인 사진을 눈물을 글썽이며 우리에게 보여주기도 한다.

칼 라거펠트의 후임으로 선정되었다는 사실을 언제 알게 됐나요? 라거펠트가 세상을 떠나기 전 당신에게 이에 관해 직접 언급한 적 있었나요? 없습니다. 칼이 아프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 때도 우리는 그가 활동을 멈출 것이라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한 적 없어요. 칼도 그런 이야기를 한 적 없었죠. 입원한 칼의 전화를 받은 날이 기억납니다. “사랑하는 버지니, 걱정하지 마. 다 괜찮아…” 그렇게 말한 뒤 그는 다음 날 세상을 떠났지요. 칼은 늘 저를 안심시키려 했습니다. 제가 병원이나 집으로 자신을 보러 가는 것도 원하지 않았어요. 제가 몇 번이나 찾아가 도와주겠다고 말했는데도. 칼이 자신의 후임자에 대해서는 누구에게도 말한 적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가 브루노 파블로브스키 샤넬 패션 부문 CEO에게 ‘버지니가 이 일을 잘 알고, 알아서 잘할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라는 식으로 말했을 모습은 상상이 갑니다. 칼이 세상을 떠난 직후, 브루노는 제게 그의 뒤를 이어 아티스틱 디렉터를 맡아달라고 했어요. 저는 “알겠습니다. 대신 컬렉션 하나를 끝내고 다시 이야기해요. 잘 안 되면 그만할게요”라고 말했어요. 제안을 수락한 뒤에는 너무 많이 고민하지 말고 할 일을 해나가자고 결심했죠.

홀로 첫 컬렉션을 진행한 기분은 어땠나요? 샤넬은 하루아침에 칼을 잃었어요. 가족 같은 사이인 팀원들은 평소보다 훨씬 더 힘차게 단결했습니다. 다들 슬퍼했어요. 팀원 모두가 칼과 특별한 관계를 맺고 있었거든요. 칼은 정말 따뜻한 사람이었어요. 매일 작업실에 와서 모두에게 관심을 갖고 애정 어린 말을 건넸지요. 샤넬은 그의 가족과 같았어요. 2020년 크루즈가 그 없이 진행한 첫 컬렉션이었어요. 그래도 데코 작업은 함께 해둔 상태였습니다. 리옹 역의 레스토랑 르 트랭 블루(Le Train Bleu)를 그랑 팔레에 구현해놓았죠. 남은 일은 그 없이 컬렉션을 완성하는 것이었어요. 저는 각 팀원이 전에 하던 일을 계속 맡아주기를 바랐습니다. 스테판은 데코를 맡고, 킴은 원단을 고르고, 각 팀원이 컬렉션에 일조했어요. 중요한 것은 제가 혼자가 아니었다는 거예요. 샤넬 작업은 팀워크예요.

칼은 그림을 많이 그렸지요. 당신은 어떻게 작업하나요? 칼은 그림을 그렸지만, 저는 아닙니다. 칼은 책에서 영감을 얻을 때가 많았어요. 책에서 발견한 드레스를 다시 그리곤 했어요. 반면 저는 자르기를 합니다. 콜라주를 해요. 옷을 입을 여자 모델을 떠올리기도 합니다. 스튜디오에서 모든 것을 만들어내죠. 칼은 아틀리에에서 작업하는 여성 장인들에게 그림을 주는 걸 좋아했어요. 그들과 나란히 앉아 그는 “여기 보세요. 제가 다 써놨어요. 치수는 여기에 써놨고, 다른 것도요”라고 말하곤 했어요. 이분들과 더불어 칼에게 같은 방식으로 배웠기 때문에 거의 대화를 나누지 않아도 서로를 이해해요. 이분들은 제 콜라주를 아주 정확히 읽어내죠. 가끔 칼이 그렸던 크로키를 다시 꺼내 보기도 합니다. 작업을 시작하기에 좋은 기초가 되거든요. 칼의 그림을 본 뒤 다시 작업하러 돌아가죠. 코코 샤넬과 칼 라거펠트는 우리에게 사전과 같아요.

가브리엘 샤넬은 샤넬에 코드를 만들었고, 칼도 자기만의 코드가 있었습니다. 당신도 당신만의 코드가 있나요? ‘버지니 코드’는 없어요. 제 코드를 만들고 싶지는 않습니다. 서로 다른 사람이 각자의 코드를 갖고 일해요. 제게 많은 도움을 주는 이들은 칼이 세상을 떠난 후 저와 함께 작업하기 시작한 사진가들입니다. 그전에는 칼이 모든 캠페인 촬영을 맡았어요. 이제 우리는 사진가들을 작업에 초청합니다. 할리우드 컬렉션(2021 S/S)에는 이네즈와 비누드, 얼마 전 슈농소 성에서 열린 2021 메티에다르 컬렉션에는 유르겐 텔러가 함께했죠. 완전히 자유로운 가운데 작업에 참여하는 사진가들이 샤넬에 제시하는 비전으로부터 얻는 것이 많습니다. 컬렉션 기획 단계에서도 사진가들을 생각할 수 있어요. 예를 들어 메티에다르 컬렉션을 준비할 때는 요정이 쓴 작은 모자를 틀림없이 유르겐이 좋아할 거라는 것을 미리 알았어요. 제가 맨 먼저 초대한 사진가는 카림 사들리였습니다. 이후에는 장바티스트 몬디노, 미카엘 얀손과도 작업했어요. 다음에 함께 작업할 사진가는 영화 <Control>을 연출한 안톤 코르빈입니다. 저는 안톤이 오뜨 꾸뛰르를 좋아하리라는 것을 알아요. 그와 함께 캠페인 작업을 하며 보낼 2~3일간의 강렬한 시간이 정말 좋아요. 어제는 크리스틴 스튜어트, 유르겐 텔러와 함께 작업했는데 셋 다 서로에게서 떨어지지 못했어요. 저는 감정적인 사람입니다. 칼도 그랬고요.

작업할 때 특정 여성의 모습을 떠올리나요? 혼자 스토리를 생각한 뒤 다른 작업으로 넘어가요. 코코 샤넬처럼 남성적 코드도 좋아합니다. 물론 제가 샤넬의 본질이라 여기는 여성들에 대해서도 생각하죠. 크리스틴 스튜어트나 어릴 때부터 저와 알고 지낸 릴리 로즈 뎁처럼. 바네사 파라디는 샤넬의 뮤즈이기에 릴리 로즈 뎁까지 이어지는 스토리가 있어요. 가수 앙젤도 제가 떠올리는 여성 중 하나예요. 앙젤이 해변에서 촬영한 뮤직비디오를 보고 한눈에 반했어요. 아프리카, 아시아 출신 모델들도 떠올립니다. <안젤리크, 천사들의 후작 부인(Angélique, Marquise des Anges)> 시리즈를 보며 자랐기에 ‘귀부인’ 느낌도 좋아해요. 숨 가쁘고, 감정의 폭이 넓고, 기사도 정신이 느껴지면서 로맨틱한 것들을 좋아해요.

2021 S/S 시네마 컬렉션의 중심 인물은 샬롯 카시라기였지요? 2019년 모나코 라 비지에서 샬롯 카시라기가 결혼한 모습을 보고 확실히 내린 결정이에요. 게다가 그때 샬롯이 샤넬 드레스를 입기도 했고. 샬롯의 남편 디미트리는 샤넬의 뮤즈인 캐롤 부케의 아들이기도 하죠. 완전한 원이 완성되는 느낌이었어요. 이번 캠페인 작업을 하면서 감정이 북받쳐 눈물이 났습니다. 이번 캠페인에도 스토리가 있어요. 저는 서로 다른 시대가 섞여 연속성을 만들어내는 것을 좋아해요. 이런 연속성을 보면 안심이 돼요. 칼, 캐롤라인 모나코 공주와 라 비지에서 수많은 파티를 함께 했습니다. 추억이 아주 많아요. 사진 속 샬롯의 모습을 보면(이 말을 하며 버지니는 긴 드레스를 입은 채 촛대를 들고 있는 샬롯의 사진을 보여준다) 그녀의 어머니가 같은 포즈를 취한 모습을 여러 번 봤던 기억이 떠올라요. 이브닝 드레스를 입고 촛대를 든 채 테라스를 가로지르던 캐롤라인의 모습. 칼과 관련된 모든 것이 제대로 자신의 자리를 찾아간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캐롤라인은 칼이 가장 사랑한 사람 중 한 명이에요. 칼은 캐롤라인에게 수많은 책을 넘겨줬지요. 그가 세상을 떠난 직후 칼과 캐롤라인이 함께한 모습이 담긴 모든 사진을 휴대전화에 저장했어요. 그런 사진을 계속 다시 보며 용기를 얻었죠. 캐롤라인은 크나큰 영감을 주는 인물이에요. 너무나 아름다워요. 자태나 몸매를 비롯해 그녀의 모든 것은 꿈만 같아요. 캐롤라인은 우아함의 극치입니다. 심성, 인간성, 타인을 바라보는 시선에서 우아함이 느껴지죠. 크나큰 감동을 주는 여자예요. 샬롯은 우리를 위해 문학 행사를 기획 중이에요. 인테리어 디자이너 자크 그랑주의 손에서 다시 태어난 캉봉가 오뜨 꾸뛰르 살롱에서요. 여러 여배우와 여성 작가가 이번 행사에 참여합니다.

시네마 컬렉션은 코로나19로 인한 격리 기간 중 완성되었지요. 칸 영화제도 취소됐는데, 이번 컬렉션은 어떻게 구상했나요? 안나 무글라리스, 크리스틴 스튜어트, 마리옹 코티야르, 릴리 로즈 뎁, 바네사 파라디, 소피아 코폴라, 페넬로페 크루즈, 마고 로비, 키이라 나이틀리 등 샤넬의 뮤즈들을 볼 수 없었어요. 영화 촬영도 전부 중단됐고, 같은 기간에 개최하던 샤넬 전시와 영화 상영도 취소됐죠. 영화 의상 작업을 많이 해온 샤넬은 로미 슈나이더, 잔 모로 등 여러 여배우를 이미 뮤즈로 선정한 상태였어요. 칼도 그랬죠. 하지만 우리는 아카이브를 들여다보며 영화에 담긴 모습을 재현하려는 생각은 없었습니다. 제가 더 하고 싶은 일은 영화 바깥에서 여배우들의 애티튜드를 보여주는 거였어요. 레드 카펫을 지난 뒤 포토콜에서 보여주는 모습. 이런 생각을 하다 짧지만 우아한 트위드 스커트, 네온 티셔츠 등의 아이템을 떠올렸어요.

라거펠트는 막대한 장식을 총동원한 웅장한 쇼를 강조했습니다. 당신은 그보다는 더 간결하고 인간적인 차원의 것을 추구하는 것 같아요. 칼에 비하면 그렇지요!(웃음) 시대가 달라졌기 때문에 아직 살아 있었으면 칼도 같은 방향으로 나아갔을지 몰라요. 칼과 함께였을 때는 수많은 것을 구현해낼 수 있었죠. 하지만 제 자신이 ‘우리 로켓 하나 만듭시다’라고 말하는 모습이 상상이 안 되네요(웃음). 그리고 장식에 둘러싸인 환경을 좋아하지 않아요. 그것에 질식된다는 느낌을 받는 것도 싫고. 그랑 팔레의 장식에서는 갇힌 느낌이 나지 않아 좋아요. 가벼움이 느껴지는 게 좋습니다. 소피아 코폴라와 함께 코코 샤넬의 아파트와 캉봉가 31번지의 거대한 계단을 그대로 재현하는 아이디어를 의논한 적 있는데, 사실 그것도 규모가 큰 장식이었죠. 하지만 우리에게 그건 우리 집을 만드는 것과 같았으니 무리가 없었죠.

옷과 스타일에 처음 관심을 두기 시작한 순간을 기억하나요? 늘 옷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싶었어요. 어릴 때는 뜨개질을 하고, 여기저기에 단추를 끼워 달고, 목걸이를 만들었어요. 바느질은 할머니에게 배웠죠. 할머니는 늘 소니아 리키엘을 입으셨어요. 가족 모두가 패션을 좋아했어요. 이모 중 한 분은 생 로랑을 즐겨 입었고, 다른 분은 할머니처럼 리키엘을 입었죠. 찰스 쥬르당, 엠마누엘 칸, 꾸레주를 비롯해 웅가로 이브닝 드레스까지 가족이 즐겨 입던 옷이 전부 기억나요. 어머니와 이모들이 입은 옷 중 많은 옷을 제가 간직했어요. 우리 가족은 끌로에와 리키엘을 특히 좋아했죠. 패션을 좋아하는 우리 가정의 환경이 좋았어요. 부모님이 외출하실 때는 정말 즐거웠어요. 부모님 방의 침대에 누워 어머니가 긴 드레스를 입고 화장을 하고 보석 장신구를 착용하고 향수를 뿌리는 모습을 지켜봤죠. 부모님은 세련된 액세서리도 많이 갖고 계셨어요.

현재 파리에서 가장 아름다운 꾸뛰르 하우스 중 하나를 이끄는 수장으로서 럭셔리에 대해 어떤 아이디어를 갖고 있나요? 럭셔리와 관련된 특정한 아이디어를 보존해가려고 노력합니다. 이니셜이 새겨진 뒤퐁 순금 라이터를 간직하는 일이 샤넬 백에도 비슷하게 적용된다고 봐요. 작은 보물을 간직하는 거죠. 그리고 가브리엘 샤넬과 칼 라거펠트 사이에는 스토리가 있어요. 럭셔리에 대한 아이디어는 아티스트들에 둘러싸여 살아가며 삶과 일에 크나큰 의미를 부여한 세련된 존재였던 두 거장에 관한 아이디어이기도 해요. 일에 크나큰 의미를 부여했다는 관념은 아주 중요한 거예요. 코코 샤넬의 삶에서는 일이 아주아주 중요했습니다. 칼도 그랬고.

칼과 오랜 세월 함께하며 무엇을 배웠나요? 무척 오랜 시간을 함께 보냈어요. 제가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낸 사람도 바로 칼이죠. 그러니 제가 뭘 배웠는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은 것 같군요. 칼을 만나지 않았다면 패션계에서 일하지 않았을 거예요. 패션계에서 일하고 싶었던 게 아니라 칼과 계속 함께 일하고 싶었어요. 칼과 함께일 때면 패션계에서 일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어요. 저는 ‘크리에이터’가 지닌 모든 거만한 측면을 싫어해요. 칼도 “됐어, 나는 크리에이터가 아니야. 드레스를 만드는 사람이지”라고 직접 말한 적 있어요. 칼은 자기만의 차원과 자기만의 기상천외한 방식으로 드레스를 만든 거죠. 개인적으로 앞에 나서고 싶지 않아요. 거리에서 사람들이 알아보는 것도 싫어요. SNS를 보면 한숨만 나오고. 언젠가 사람들이 저를 알아보는 날이 오면 그때는 제가 떠나는 날일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