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건축가 피터 마리노의 샌프란시스코 저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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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건축가 피터 마리노의 샌프란시스코 저택

2021-06-01T16:12:34+00:00 2021.05.31|

수식이 필요 없는 패션 건축가 피터 마리노. 역사적인 샌프란시스코 저택에서 그의 로맨틱한 소울을 발견했다.

피터 마리노 건축 스튜디오에서 보수한 1916년에 지어진 샌프란시스코 주택. 마당은 동남아시아 조각품으로 장식했다.

믿거나 말거나, 피터 마리노(Peter Marino)는 로맨티시스트다. 건축과 인테리어를 전문으로 다루는 <AD> 선정, ‘AD100’ 명예의 전당에 오른 건축가이자 디자이너, 예술적인 문신을 몸에 새기고 매끈한 할리데이비슨과 두카티 오토바이를 타고, 바이커 시크 패션을 고수하는 그 남자가 맞다. 건축계의 마에스트로인 그에게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간직한 역사적인 건물 리모델링을 맡기면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까? “가슴이 벅차올라 아무 말도 못했어요. 그저 침을 꼴깍 삼키기만 했죠.” 피터 마리노는 3년 넘게 열과 성을 다해 보수해온 1916년생 샌프란시스코 대저택 프로젝트를 설명했다. 그는 미국 동쪽 해안 지역에서 이주해온 열정 넘치는 가족을 위해 이 저택에 있는 24개 방을 모두 분해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집의 새로운 주인이 된 부부는 내진 요건에 맞추기 위해 집의 내부를 모조리 부수다시피 하고 콘크리트 파일을 땅에 30피트 깊이로 박아야 한다는 통보에도 눈 하나 깜짝 안 할 만큼 침착한 인물들이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든 작업이었어요.” 피터 마리노는 당시를 회상하며 말한다. “지붕도 없었고, 외부 벽은 판자에 둘러싸여 있었고, 바닥판도 없는 상태였어요. 지금이야 매우 아름답지만, 당시에는 앞이 캄캄했죠.” 그가 웃으며 덧붙였다. “밴쿠버에서 테오티우아칸에 이르기까지, 북아메리카 어디에서든 지진이 나면 이 집으로 달려와 피신하시면 될 거예요.”

개방감 있는 마당의 위층.

이 집은 샌프란시스코 퍼시픽 하이츠의 고급 거주 지역에 위치할 뿐 아니라, 천재 건축가 윌리스 포크(Willis Polk)가 건축한 가장 극적인 거주 공간 중 하나라고 꼽히는 건축물이기도 하다. 거대한 유리 지붕이 덮여 있는 2층 높이의 마당을 한가운데에 둔 대저택은 오랫동안 피터 마리노의 친구였던 조제트 ‘도디’ 로즈크랜스(Georgette ‘Dodie’ Rosekrans)의 집이었다. 그녀는 아주 작은 몸집에 꾸뛰르 의상을 즐겨 입는 극장 소유주의 상속녀였고, 그녀의 남편 존은 설탕으로 유명한 스프레켈스(Spreckels)사의 자손으로, 지금은 훌라후프와 프리스비 제조 관련 일을 하는 인물이었다. 그들이 1979년부터 사망 당시(남편은 2001년, 부인은 2010년)까지 거주했던 이 4층짜리 저택은 미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집으로 평가받았다.

집 뒤편에 위치한 모로코 스타일 라운지에는 손으로 조각한 목공예와 가죽, 스투코 패널, 마크 브레이저 존스(Mark Brazier-Jones)의 조디악 거울과 화이트 체어, 버버 카펫이 놓여 있다.

이 집의 새 주인들은 9년 후 이 집이 매물로 나오자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구입을 결정했으며 전에 그들이 살던 맨해튼 집의 인테리어를 담당한 피터 마리노에게 새 단장을 부탁했다. 샌프란시스코의 건축물과 역사를 존중할 줄 아는 피터 마리노는 이 집이 가진 고택의 매력과 특징을 보존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프랑스 호텔 건축물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는 거실의 우아한 신고전주의 벽 패널 역시 마찬가지다. 집주인들이 포기해야 했던 유일한 공간은 로즈크랜스 부부가 거주할 당시 있던 흡연실이었다. 이 방은 마이클 테일러(Michael Taylor)가 디자인한 공간으로, 아프리카 조각품으로 장식된 곳이었다. 하지만 벽에 부착된 갈포벽지가 살릴 수 없을 정도로 해진 상태여서 허물 수밖에 없었다.

다이닝 룸에는 또 다른 데미언 허스트 작품이 걸려 있다. 18세기 오스트리아 마루가 눈길을 끈다.

“오리지널에 현대적 요소를 더하는 것이 제 스타일이에요.” 피터 마리노는 자신의 디자인 철학 ‘보기에는 클래식한 마티니 같지만 사실은 클래식하지 않은 마티니를 만드는 것’에 비유한다. “여기에서 전통적 요소는 진, 현대적 요소는 베르무트, 예술이라고 할 수 있는 조미료 같은 요소는 올리브예요. 아주 작고 톡 쏘는 듯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조미료 맛을 가장 오래 기억하죠.” 이 집의 도서관을 살펴보면 이해가 쉬워진다. 포크의 깊이 있는 격자 천장과 거기에 새겨진 별자리 모티브가 특징인 이곳에 마리노는 마르얀 판 아우벌(Marjan van Aubel)과 제임스 쇼(James Shaw)의 의자와 적벽돌색의 하이글로스 메탈 테이블, 1960년대 한스 앙네 야콥손(Hans-Agne Jakobsson) 샹들리에 두 개, 텍스처가 돋보이게 직접 제작한 청동 소재 책장을 매치했다. 고전미를 놓치지 않으면서 예상하지 못한 가구를 배치해 공간 자체를 미래형으로 만든 드라마틱한 인테리어다.

게스트 스위트에는 여러 개의 린 보트랭(Line Vautrin) 거울로 장식한 타원형 거실이 보랏빛 다마스크로 벽을 바른 침실로 이어진다. 침실에는 영국계 인도식 앤티크 침대가 놓여 있다.

더 대담한 것은 피터 마리노가 이 저택의 북쪽을 완전히 탈바꿈한 방법이다. 포크의 시대에는 야외를 전체적으로 조망하는 전경이 지금처럼 집주인이나 건축가에게 각광받지 못했다. 그래서 이 저택의 북쪽에는 최소한의 채광과 환기의 역할만 하도록 창문을 아주 조금 내놓았다. 지금은 그 벽이 4층 높이의 유리로 교체되어 샌프란시스코만과 금문교, 앨커트래즈섬과 다른 많은 랜드마크까지 영화처럼 시원하게 볼 수 있게 되었다. “집 뒤쪽을 완전히 개방했어요.” 피터 마리노가 설명을 이어갔다. “말이 안 나올 정도로 멋져요. 이제는 이 저택의 거대하고 화려한 오락 공간은 모두 물가를 바라보게 되었죠.” 그중 하나는 다이닝 룸으로, 데미언 허스트(Damien Hirst)의 거대한 도트 미술 작품과 함께 오스트리아의 어느 궁전에 한때 깔려 있던 18세기 그래픽 원목 마루를 볼 수 있다.

저택에서 완전히 새롭게 디자인한 공간 중 하나는 부인용 욕실로, 피터 마리노는 이곳에 화이트 클라우드 오닉스와 거울을 덧댄 기둥을 매치했다. 화장대는 표면을 은박으로 처리했다.

또 다른 공간은 19세기 프랑스의 오리엔탈 스타일 벽난로 맨틀로부터 영감을 받아 디자인한 모로코 스타일의 라운지다. 피터 마리노는 벽난로 맨틀에 어울리도록 목공예 작업을 한 블랙 컬러 벽도 제작했는데, 이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모로코 마당을 제작하던 장인들이 손수 조각한 것이었다. 장인들이 만든 패널은 설치를 위해 샌프란시스코로 옮겨졌고, 손으로 짠 검정 가죽 패널, 송진과 왁스, 질감이 느껴지는 스투코 패널을 함께 세팅했다. 패널을 조각한 모로코 장인들은 호화롭게 조각한 천장과 빛이 일렁이는 듯한 황동 바도 함께 제작했다.

거실에는 웬델 캐슬(Wendell Castle)의 조각품과 동남아시아 조각이 어우러져 있다. 사이드 테이블은 필립 히킬리(Philippe Hiquily), 스툴은 롤랑 멜랑(Roland Mellan), 카펫은 피터 마리노 건축 스튜디오에서 맞춤 제작한 것이다.

“저는 인테리어 작업에 아티스트가 참여하는 것을 좋아해요. 그들은 일반인과 다른 시각을 갖고 있거든요. 아티스트처럼 사고하는 사람은 쉽게 찾아볼 수 없어요.” 그가 웃으며 덧붙였다. 샌프란시스코 저택을 개조하면서 마리노가 영입한 아티스트는 더 특별했다. 그들 중에는 프랑스의 슈퍼스타급 현대미술가 장 미셸 오토니엘(Jean-Michel Othoniel, 마리노의 샤넬 부티크뿐 아니라 베르사유 궁전, 파리 지하철 개통 100주년 기념 작품으로도 유명하다)도 있다. 그는 이 집의 게스트 스위트에 있는 초현실적으로 큰 벽난로 맨틀을 디자인했다. 이 맨틀도 마리노가 자주 사용하는 인테리어 소재인 베니스의 베니니(Venini) 유리공예 제품으로 꾸며졌다. 샌프란시스코만과 밀라노에 사무실을 운영하는 디자이너이자 아티스트 요한나 그라운더(Johanna Grawunder)는 계단 위에 겹겹이 겹쳐진 은색 비늘처럼 물결치는 모양의 조명을 디자인하고 설치했다.

계단 위에는 요한나 그라운더가 만든 조명을 설치했다. 계단을 오르면 벽면에 걸린 데미언 허스트의 메디신 캐비닛과 마주하게 된다.

마리노의 스태프 중에서도 또 다른 능력자가 있다. 사람들은 그녀를 대리석 위스퍼러라고 부른다. “조용하고 젊은 그녀는 찬양받아 마땅한 숨은 조력자예요. 대리석 한 판 한 판을 모두 사진으로 찍고 몇 시간이고 이미지를 레이아웃하고 맞춰본 후에야 조립을 시작하는 완벽함을 보여주죠.” 피터 마리노가 감탄하며 말했다. 그녀가 제작한 대리석 작품에는 부인용 욕실에 사용하기 위해 손수 고른 화이트 클라우드 오닉스도 포함되었다. 부인용 욕실은 스노우와 실버 컬러가 공존하는 공간으로, 벽을 타고 쏟아지는 수은 줄기 같은 거울을 덧댄 기둥을 설치했다.

이 지역의 주민들은 아직도 이곳을 로즈크랜스 저택이라고 부르는데, 현재 주인들은 이를 전혀 개의치 않는다. 새 안주인은 새로운 활기가 넘치는 모습으로 개조했지만, 여러 방면에서 이상하게도 전혀 바뀐 것이 없는 것 같은 이 공간에 대해 말했다. “이전 주인이 천국에서 마티니를 마시며 우리를 내려다보는 모습을 자주 상상해요. 그녀가 흐뭇해했으면 좋겠군요. 그녀가 이곳을 사랑한 것만큼 우리도 이 집을 사랑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