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가상의 뷰티라는 장르

Beauty

2021 가상의 뷰티라는 장르

2021-07-27T15:42:28+00:00 2021.07.28|

비용을 지불하고, 온전히 내 소유가 되었음에도 실체는 없다. 이름하여 2021 가상의 뷰티라는 장르.

어깨에 멜 수도, 소지품을 넣을 수도 없는 데다, 손으로 만져지지도 않는 럭셔리 가방 구입을 위해 몇백만 원을 투자한다. 엊그제 산 드레스는 내 방 옷장이 아닌 디지털 세계에만 존재하는 AR 형태로, 오로지 사진 파일 속 내 모습에만 입힐 수 있다.

한때 이런 이야기가 허무맹랑하게 느껴지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실물로 존재하지 않는 제품에 가치를 부여하다니, 그야말로 허상을 좇는 게 아닌가? 하지만 이 소비 형태는 가상 화폐와 디지털 수집품이 전혀 생소하지 않은 MZ세대를 사로잡고 있다. 몇 달 전 <보그>에서 다룬 바로 ‘NFT(Non-Fungible Token),’ 대체 불가능한 토큰이라는 신세계를 통해서 말이다.

비트코인처럼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한 암호 화폐의 일종인 NFT는 디지털 자산에 별도의 인식값을 부여하는 일종의 ‘소유권 증명서’다. 자산마다 고유하기 때문에 희소성을 갖고, 대체 불가능해 상호 교환이 어렵다는 특징을 지닌다. 예를 들어 일반 토큰은 수천수만 개의 똑같은 500원짜리 동전에 비유할 수 있다. 이 500원짜리 동전은 서로 다른 동전으로 대체될 만큼 동일한 가치를 지닌 반면, 여행 가서 빌린 렌터카를 반납한다고 가정할 때 빌린 차량을 비슷한 다른 차로 반납할 수는 없다. 이 렌터카가 바로 NFT를 설명할 수 있는 예다. 다시 말해 그 자산이 어떤 형태든 진정성과 희소성이 부여된다고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까.

서둘러 NFT에 뛰어든 미술·음악계에 이어 패션계 역시 게임과 협업하는 등 메타버스(Metaverse) 플랫폼을 통해 버추얼 매장과 컬렉션의 구현을 시도해왔다. 구찌는 최근 디지털 전용 ‘디오니서스 백’처럼 NFT 상품을 선보였고, 최근 리얼리티 예능 프로그램 <전지적 참견 시점>에 출연한 모델 아이린도 화상 미팅으로 자신의 패션 브랜드 ‘아이린이즈굿’을 위한 NFT 상품 론칭을 준비하는 듯 ‘사이키델릭’한 제품 생산을 팀원들과 고민했다. 이쯤 되면 더 궁금하다. 이토록 ‘핫’한 NFT, 뷰티 생태계는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말이다.

경험이 무엇보다 중요한 화장품의 특성상 디지털 자산으로 어떻게 변모될지 쉽게 상상이 가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직접 내 얼굴에 바르고, 코끝으로 향기를 느낄 수 없는 제품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기에? 하지만 그 회의적 시선에도 일부 뷰티 브랜드는 마케팅 의도와 제각기 다른 방식으로 NFT와 맞닿고 있다. 지방시 향수는 성 소수자를 지원하기 위한 디지털 아트워크를 판매하고, 그 수익금 전액을 LGBT+ 단체에 기부하는 캠페인 수단으로 NFT를 활용해 뷰티 브랜드 최초로 NFT와 만났다. 지난달 미국의 메이크업 브랜드 ‘엘프 코스메틱(E.L.F.Cosmetics)’의 경우엔 베스트셀러 세 가지(프라이머, 컨실러, 립밤)의 ‘크립토 코스메틱(Crypto Cosmetics)’ 컬렉션을 NFT 거래 플랫폼 ‘빗스키(Bitski)’에서 론칭했다. 제품별 각 세 개씩, 오직 아홉 개만 존재하는 이 화장품은 사실상 제품 패키지를 금으로 뒤덮은 디지털 아트워크. 구매자들은 소유권 증명서를 받게 되지만 화장품을 실제로 바를 수는 없다. 대신 엘프 코스메틱은 해당 제품 가격을 현실과 동일하게 적용해, 브랜드의 추종자들을 가상 세계로 유도하고 특별한 자격을 부여한다. 투기성 입찰자들이 의도적으로 몰리고 빠지면서 가격 거품을 만드는 NFT 시장의 허점을 의도적으로 겨냥했다. 마케팅 디렉터 코리 마르키소토(Kory Marchisotto)는 “정당한 가격의 NFT 컬렉션을 지속적으로 선보임으로써 팬층을 더욱 확고히 다질 계획”이라고 말했다.

향수의 접근 방식도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1904년 베를린 태생의 향수 브랜드 ‘크리글러(Krigler)’는 향에서 영감을 얻어 제작한 디지털 비디오를 실물 향수와 함께 구매하도록 서비스를 확장했다. 그리하여 향수를 다 사용한 뒤에도 그 보틀을 수집하듯, 향수의 기억을 보존하는 매개체로 NFT를 이용해 독특하고 감성적인 마케팅이라는 반응을 얻었다. 독일의 컨템퍼러리 스튜디오 ‘룩 랩스(Look Labs)’는 캐나다 베이스의 디지털 아티스트 숀 카루소(Sean Caruso)와 손잡고 향수 분자가 지닌 파장을 기록해 만든 NFT 향수 ‘사이버 오 드 퍼퓸(Cyber EDP)’을 세상에 내놓았다. 물체의 분자 진동을 측정하는 근적외선 스펙트럼 분석 시스템을 활용해 향수 보틀부터 라벨, 향기의 파장을 추출해 하나의 아트워크를 제작한 것이다. 보는 것만으로 어떤 향인지 느낄 수 있게 정교하게 계산된 이 신박한 작품을 구매한 고객은 전자 라벨을 통해 실물 향수로 교환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아트워크의 가격은? 10ETH(NFT의 거래 단위), 한화로는 약 2,412만원!

손톱이라는 작은 캔버스에 펼쳐지는 예술, 네일 아트 시장에서도 NFT는 발전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 네일 아티스트 그레이시 제이(Gracie J)는 팬데믹 이후 집에서 쉽게 붙일 수 있는 ‘프레스온(Press-on)’ 형태의 네일 팁을 제작하다가 색다른 방식을 시도했다. 네일 아트를 뽐내는 손의 애니메이션을 담은 GIF 이미지를 ‘민팅 (Minting)’해 NFT 거래 플랫폼 ‘라리블(Rarible)’에 판매 등록을 한 것이다. 물론 가상 이미지에만 그치지 않는다. 이 디지털 작품을 구매한 사람에겐 특별 에디션으로 제작한 그레이시의 ‘프레스온 네일 팁’을 실물로 전달한다.

AR 필터부터 AI 기술로 개인화된 서비스를 제공하는 디바이스 등 스마트 테크놀로지가 민첩하게 적용되는 뷰티 월드지만 NFT만큼은 오히려 패션계보다 보수적인 입장일 것이라는 의견과, 머지않아 국내 브랜드의 사례도 생겨날 것이라는 추측은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분분하다. 또 창의적 아이디어만 갖고도 누구든 뛰어들 수 있고, 한번 내놓으면 고유한 자산이 된다는 점에서 인디 브랜드에는 소문을 낼 절호의 기회다.

데이터가 기록되는 블록체인 기술은 브랜드와 제품의 투명성을 검증하는 신뢰의 기준으로 여기는 긍정적 시선도 있다. 반면, 화장품이나 향수는 향과 텍스처, 분사력, 발림성 등 경험을 무시할 수 없는 만큼 가상과 현실 두 세계에서 동시에 소유할 수 있는 제품이어야만 지속적인 상품 가치를 지닌다. 다만 소비자의 시각에서 볼 때 확실한 것은 제품이 대량 생산되고 주류 트렌드가 이끌어가는 뷰티 세계에서 ‘나만이’ 가진, ‘진짜’ 하나밖에 없는 NFT 화장품은 호기심을 유발한다는 사실이다. ‘니치함’이 결여되고 오직 판매 수익에만 혈안이 된 예쁘고 착한 제품이 가득한 요즘, 대체 불가한 특별함으로 무장한 신문물이 가상 세계에서 과연 나타날까? (V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