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디 아트 디렉터, 킴 존스의 18세기풍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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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디 아트 디렉터, 킴 존스의 18세기풍 집

2022-04-25T21:06:16+00:00 2022.04.26|

펜디 일을 하지 않을 때 킴 존스는 E.M. 포스터의 소설에 나올 듯한 18세기풍 서식스의 집에서 보낸다.

Green Party 격리 기간에 존스는 등나무가 에두르고 붉은색과 회색 벽돌로 지어진 목사관에서 기분 좋은 주말을 보냈다. 강아지 롤라가 망을 보고 있다.

펜디 여성 컬렉션의 아트 디렉터 킴 존스(Kim Jones)는 14세라는 어린 나이에 두 가지 깨달음을 경험했다. 하나는 패션이었고, 다른 하나는 블룸즈버리 그룹(Bloomsbury Group)이라는 20세기 영국 예술과 사상을 형성한 진보 지식인들의 모임이었다. 존스의 열정은 서식스에 있는 찰스턴 팜하우스에 수학여행을 떠날 때부터 시작됐다. 찰스턴 팜하우스는 블룸즈버리 그룹 멤버들이 삼각관계와 충만한 창의성을 공유한 공간으로 널리 알려진다. 고등학생 킴 존스는 집을 둘러보며 겹쳐진 패턴과 페인트, 장식을 구경하고, 무성한 식물로 유명한 정원에 들어가보면서 여러 색상의 레이어로부터 영감을 얻었다. 존스는 ‘다 같이 모여 살되 자유롭게 사는 것’에 대한 아이디어에 빠져들었고, 그렇게 살고 있다. “진보적인 생각을 하며 사회를 바꿀 수 있는 삶에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인생에서 늘 주지해온 바이기도 하고요. 제 삶의 방식대로 살고 싶죠.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상관없습니다.”

킴 존스는 펜디를 재정비하면서 블룸즈버리 그룹을 본받아 펜디의 전설적인 아틀리에 장인들과 협업하기도 하고, 음악 제작자와 여러 아티스트, 그들의 뮤즈와도 어울렸다. 패션에 대한 열정은 존스의 누나가 <i-D> 매거진을 한가득 물려주면서 시작됐다. 이 잡지는 음악, 예술, 패션이 조우해 크리에이티브의 불을 지피던 1980년대 런던에서 나타난 혁신적이면서도 무모한 유행 선도자들의 연대기와도 같았다. 그 시대의 시너지가 디자인 작업에 불을 지폈고, 존스는 당시의 반항적인 디자이너들, 이를테면 리 보워리, 레이첼 오번, 크리스토퍼 네메스, 미스터 펄, 비비안 웨스트우드, 주디 블레임(루이 비통 남성복 라인에서 존스와 협업했으며, 그 협업이 가장 중요한 요소였다)의 컬렉션을 목도하며 그 시대를 계속 기려왔다.

그 후 캠버웰 예술대학에서 그래픽 디자인을 전공했지만, ‘너무 평범했다’고 그는 얘기했다. “하나의 세계를 창조할 수 있는 뭔가를 하고 싶었어요.” 그리하여 존스는 그 유명하고 완고하기로 이름난 센트럴 세인트 마틴의 학장 루이스 윌슨을 찾아갔다. 윌슨은 어덤 모랄리오글루, 크리스토퍼 케인, 마리 카트란주, 시몬 로샤, 조나단 선더스와 같은 유명 디자이너를 사사했다. 윌슨은 존스의 포트폴리오를 검토했다. “담배를 한 대 뽑아 들고, ‘그래, 취향이 좋구나. 수업을 들어도 되겠어’라고 하셨죠. 자신감을 얻고 용감해질 수 있었어요”라고 존스는 덧붙였다. 두 사람은 2014년 윌슨이 갑작스레 세상을 떠날 때까지 좋은 친구였다. “제가 패션을 좋아하는 이유는 패션 안에서 모든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이에요. 사진, 영화, 음악… 모든 게 있죠.”

존스는 2001년에 ‘펑키한 재활용 청바지’를 이용한 컬렉션을 선보이며 졸업했다. 존 갈리아노가 컬렉션의 절반 정도를 구매했고, 존스는 자체 브랜드를 시작했다. ‘잠자는 숲속의 미녀’라고 묘사한 알프레드 던힐에 2008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합류하기 전이었다. 던힐에서 그는 영국패션협회가 선정한 ‘올해의 남성복 디자이너 상’을 두 번째로 수상한다. 세계적인 럭셔리 그룹이 이에 주목했고, 2011년 존스는 방랑벽을 DNA로 가진 루이 비통 남성복 라인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됐다. 세상을 보는 그만의 시각은 이미 어린 시절 형성되었다. 수문지질학자인 아버지를 따라 에콰도르, 탄자니아, 에티오피아, 케냐, 카리브해 인근 지역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좋은 디자이너는 관찰을 좋아하고, 여행을 떠나고, 호기심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무엇을 해야 할지 잘 이해할 수 있거든요.”

2018년 존스는 크리스찬 디올 남성복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됐고 얼마 되지 않아 여성들에게도 어필할 만한 작업물을 만들어냈다. 이를 통해서 약 2년 뒤 펜디의 여성복 라인에 참여할 기회가 왔을 때, 이탈리아가 한창 코로나로 격리 체제였음에도 불구하고 바로 뛰어들 수 있었다. 일이 많아졌지만 개의치 않았다. “그냥 다른 날에 다른 일을 하는 거였죠.” 그는 이 두 나라의 성향이 매우 다른 점이 사고방식을 바꾸는 데 도움을 주었다고 말했다. 존스는 남성복과 액세서리 라인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실비아 벤투리니 펜디 그리고 쿨하기 그지없는 그녀의 딸 델피나 델레트레즈와 함께 일했다. “펜디의 살아 있는 역사이자 백과사전이죠. 펜디는 제 이름을 내건 브랜드가 아니니, 이 패션 하우스의 뜻을 당연히 존중해야죠. 펜디 패밀리가 자랑스러워했으면 했어요. 그게 저의 첫 번째 목표였습니다.”

델레트레즈의 증조부모 에도아르도 펜디와 아델 펜디는 브랜드의 창립자로, 모피와 짐 가방에 특화된 제작자들이었다. 1925년 로마의 비아 델 플레비시토에 큰 상점을 냈지만,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친 것은 1965년 이 부부의 현명한 다섯 딸 파올라, 프란카, 카를라, 알다, 안나(실비아 벤투리니 펜디의 어머니)가 젊은 임시직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를 고용하면서부터다. 실비아 벤투리니 펜디는 그를 두고 “불가능이란 없는 사람”이라고 칭하기도 했다. 라거펠트는 모피 시장에 혁명을 일으켰고, 펜디에 혁신을 일으킨 첨병인 동시에 즐거움을 불어넣으면서 여름용 모피라는 개념도 만들어냈다. 하지만 오늘날 존스는 펜디의 방향성을 패션과 실비아 벤투리니 펜디의 액세서리 라인으로 잡았다. “모피는 점점 덜 쓰고, 재활용하려 하고 있습니다”라고 그는 설명했다.

펜디에는 7만 점이 넘는 라거펠트의 서면 스케치가 보관되어 있다. 이미 50여 년도 전에 만들어낸 디자인도 있다. “도대체 제가 어떻게 여기까지 온 걸까요?” 존스가 이야기했다. “칼 라거펠트 같은 사람의 일을 이어서 하다니요? 살면서 들을 수 있는 최고의 찬사입니다.” (윌슨처럼 벤투리니 펜디는 재능 있는 디자이너를 기용하는 데 엄청난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었다. 펜디를 거쳐간 디자이너는 알레산드로 미켈레, 마리아 그라치아 키우리, 피엘파올로 피촐리, 지암바티스타 발리가 있다.) “펜디에는 늘 한 명의 남자와 여러 명의 여자들이 만드는 스토리가 있습니다.” 벤투리니 펜디가 어머니, 이모들과 라거펠트 간의 관계를 회상하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킴과 델피나가 펜디에 옴으로써 이런 ‘케미스트리’가 오늘날에도 재현된다는 것이 아주 좋아요. 킴은 깊은 우정을 쌓는 방법을 알죠. 킴의 친구들은 곧 가족이고, 이 가족 정신이 바로 늘 펜디가 보여주는 것입니다.”

패션 스타일리스트이자 뮤즈 아만다 할레치는 라거펠트가 샤넬과 펜디에서 수십 년을 일하는 동안 함께해왔는데, 이제는 존스와 긴밀히 협업하고 있다. 할레치는 “킴이 팀 전체를 끌어모으고 의견을 내게 하는 방법은 더 자유롭고, 크리에이티브한 에너지를 줍니다. 모두가 최고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죠. 세트, 음악, 조명 같은 모든 것에 대해서 말이죠.” 라거펠트와 존스 간의 닮은 점이라도 발견한 것일까? 할레치는 재빨리 대답했다. “에너지, 정확성, 전략 그리고 백과사전 같은 엄청난 기억력이 공통점이죠.”

“사람들에게 자율성을 주는 것을 선호하는 편입니다”라고 존스는 말했다. 그의 팀은 열정 넘치는 젊은 친구들뿐 아니라 존스가 ‘금손’이라고 부르는 인물인 루시 비든(존스와 16년을 일했다), 네 살 때부터 알고 지낸 친구이자 세인트 마틴 졸업 쇼부터 함께 일해온 사이먼 패리스까지 아우른다. 존스는 이 핵심 팀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했다. “일하는 방식에서 한 몸이나 다름없죠. 휴가도 함께 보내고, 모든 것을 함께 하죠. 가족이나 다름없습니다. 이것이 패션이 흥미로운 점이기도 한데요. 아웃사이더로 보일지라도 패션 학교에 입학한 날부터 자기 인생에서 무엇을 성취할 것인지에 대해 이미 마음속에 품고 있죠.”

가족이라는 것은 존스의 펜디 라이프에서 아주 큰 부분을 차지한다. 존스의 첫 펜디 기성복 컬렉션은 2021년 가을 시즌이었는데 가장 먼저 한 일은 ‘델피나와 펜디 패밀리가 무엇을 입는지 관찰한 것’이었다. 존스는 인생에서 마주친 전 세대의 여성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작업을 하기도 한다. 실제로 데미 무어부터 케이트 모스, 케이트 모스의 딸 릴라 그레이스를 펜디 쇼에 캐스팅하기도 했다. 펜디에서 그의 디자인 철학은 이렇다. “현명하고 강하며 독립적인 여성상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여성은 살짝 원숙해져 자신감을 얻을 때 더 아름다워지죠. 각 나이대의 여성을 기리고자 합니다. 여러 나이대의 친구들이 있는데, 제각기 자연스러워요. 다들 저를 놀리는 데 아주 집착해서 멈추지를 않죠. 코트니 러브부터 릴리 알렌까지 다 그래요! 이런 것이 또 저를 설레게 하죠. 제가 좋아하고 존경하는 사람들에게 옷을 입힌다는 것은 매우 중요해요.”

존스의 모든 컬렉션이 음악으로 시작하는데, 이 첫 컬렉션에서는 발화로 시작했다. 버지니아 울프의 깎아놓은 듯 명료한 “단어, 영어 단어는 울림과 기억과 관계로 가득 차 있다. 자연스럽게도 말이다”라는 편지의 한 대목을 읊조리는 것으로 시작했다. 그리고 버지니아 울프가 작가이자 원예가 비타 색빌 웨스트(Vita Sackville-West)와 나눈 이 열정적인 서신의 문장에 틸다 스윈튼, 이사벨라 로셀리니, 크리스티 털링턴, 케이트 모스의 목소리를 입혔다. 존스는 1928년 출간된 버지니아 울프의 <올랜도>라는 작품의 주인공에게서 컬렉션의 영감을 얻었다. 색빌 웨스트를 모델로 한 인물로, 수 세기 동안 성별을 바꾸며 살아간다. 존스는 게스트들이 즐겁게 읽기 바라며 자신의 서재에서 직접 가져온 책과 소장한 블룸즈버리 그룹 관련 보물로 세트장을 꾸몄다. 이 컬렉션은 라이브 스트림으로 존스의 전 연령대에 걸친 친구들과 델피나 델레트레즈를 포함한 모델 뮤즈들을 통해 라이브 스트리밍으로 선보였다. “킴은 아주 열심히 일하면서도 유머 감각이 있어요. 늘 펜디에 있는 사소한 아이러니 같은 거죠”라고 델레트레즈는 말했다.

존스는 디올에서 작업을 하는 동시에 펜디를 재정비하는 데 매진하는 동안, 서식스에서 전원생활을 즐길 만한 집을 찾고 있었다. 미칠 듯한 업무 스케줄에도 주말을 보낼 곳으로, 결국 온라인으로 완벽한 장소를 찾아낼 수 있었다. E.M. 포스터의 소설에 나올 법한, 아름다운 18세기풍의 붉은색과 회색 벽돌로 지어진 목사관이었다. 빅토리아 시대의 물건으로 가득했고, 등나무가 에두르고 있었으며, 크로케 경기장 같은 잔디에 집 뒤편에는 수풀이 무성했다. 한때 블룸즈버리 그룹의 사람들이 살았던 유서 깊은 마을에 있었다. “완벽했죠. 강아지들과 함께할 공간도 충분했고요(존스는 덱스터, 룰루, 롤라, 쿠키라는 이름의 개 네 마리를 키운다). 그렇게 별장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내부는 분필같이 새하얀 색으로 칠해져 있었다. 존스는 이를 바꾸지 않기로 결정했다. “밝으면서도 고요하고 차분한 분위기가 좋았거든요.” 그가 설명했다. 그리고 전원과 다소 거리가 먼 발깔개를 놓고, 공용 공간뿐 아니라 개인 공간에도 가구 배치를 다소 줄였다. 완벽주의자를 자청하는 존스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미니멀한 방에서 더 잠이 잘 오더라고요. 너저분한 데서는 못 자요.” 이런 차분한 배경에서 존스가 수집해온 여러 자잘한 물건 소리는 더 크게 들린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컬렉션이란 것 아니겠나. “1910년에서 1930년 사이에 아주 많은 일이 있었어요. 세상이 급변했죠. 특히 제가 관심을 갖는 분야인 회화에서도 그렇고요.” 다이닝 룸에는 덩컨 그랜트(Duncan Grant)가 제1차 세계대전 전날에 그린 수련 작품을 마치 키네틱을 이용한 위장처럼 장식했다. 탁자 위에 있지만 탁자 표면처럼 보이는 것이다. 그리고 오메가 워크숍의 의자는 양귀비 그림으로 가득하다. 석재 벽난로 선반 위에는 바네사 벨의 초상화가 걸려 있다. 반면 명랑한 분위기가 가득한 존스의 부엌에는 동일한 화가가 인근 로드멜 마을에서 남편 레너드와 함께 살았던 여동생 버지니아 울프를 색칠한 통통한 찻주전자가 있다.

존스의 서식스와 런던 서재는 그야말로 대단하다. 이 서재에는 구멍 뚫린 콘크리트, 철망 메시, 작은 실내 수영장, 프랜시스 베이컨이 디자인한 눈에 띄는 모던한 러그(태피스트리로 걸려 있다), 더 당황스러운 블룸즈버리 관련 물품으로 가득하다. 물론 버지니아 울프가 비타에게 보낸 <올랜도>의 초판본뿐 아니라 사본도 있다. 다른 책은 버지니아가 연인 비타에게 선물한 것으로, 진지하기로 유명한 버지니아 울프의 성격에서 예상치 못한 유머를 보여준다. “내 생각에는 내가 쓴 최고의 소설이다”라고 메모했는데, 모든 책의 페이지가 슬프게도 텅 비어 있다.

펜디에서 첫 번째로 선보인 블룸즈버리 꾸뛰르 컬렉션(그리고 일반 소비자 대상의 실용적인 기성복 컬렉션 데뷔도 있었다) 이후 존스의 작업은 라거펠트와 일러스트레이터 안토니오 로페스의 우정에서 시작됐다. 펜디의 붓글씨로 휘갈긴 로고는 로페스가 제작한 것으로, 존스가 로마의 팔라초 델라 치빌타 이탈리아나(Palazzo della Civiltà Italiana) 지하에 있는 펜디의 아카이브에서 발굴했다. 이 아카이브는 로마의 중심에 자리해 1943년 제2차 세계대전으로 허물어졌던 건물로 무솔리니가 복원했고, 이 지역은 로마 제국의 새로운 상징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조르지오 데 키리코의 환상적이면서도 영웅적인 신고전주의 조각상이 2015년 이래 펜디의 심장이라고 할 수 있는 석회 아치로 감싸인 이 6층 건물에 있다.

지난해 7월 2022년 봄 시즌 기성복 라인의 첫 피팅을 위해 내가 존스를 만났을 때였다. 9월에는 밀라노에 있는 펜디 본사를 방문하기도 했다. 팻 클리블랜드나 제리 홀 같은 안토니오 로페스 시대의 스타 스타일로 피팅한 어린 소녀들이 캔디 스태턴의 1976년 히트송 ‘Young Hearts Run Free’나 1978년 블론디의 ‘Heart of Glass’에 맞춰 워킹을 하고 있었다. 존스는 어떻게 ‘패션 모먼트’가 생겨나는지 잘 이해하고 있다. 2017 F/W 루이 비통에서 보여준 슈프림과의 콜라보레이션은 인터넷을 달궜고, 첫 디올 쇼에서는 카우스(KAWS)의 아티스트들이 제작한 7만 송이의 거대한 꽃 조각상을 사용했으며, 덴마크 왕자 니콜라이를 캐스팅해 유명해졌다. 로페스에 영감을 받은 멋진 컬렉션을 선보인 지 4일 만에 존스는 밀라노 패션 위크 일정의 막판에 추가된 쇼에서 펜디와 베르사체의 콜라보레이션을 공개하면서 또 다른 쿠데타를 일으켰다. 원격으로 선보인 존스의 첫 번째 오뜨 꾸뛰르 컬렉션 이후(다음 꾸뛰르에서는 가까운 거리에서 체험해야 한다는 점을 인식했다), 2021년 가을 시즌에는 18세기 파리 센강 좌안에 있는 호텔 파르티퀼리에(Hôtel Particulier)에서 꾸뛰르 패션쇼를 선보였다. 고객들은 로마 양식의 모자이크 바닥을 모피 조각으로 표현한 볼레로 재킷과 타조 깃털 다발로 장식한 시폼 컬러 드레스를 만끽했다. 그리고 옹브레 색상이 들어갔으며, 바닥까지 끌리는 시폰 소재 장식을 단 돌체 비타 칵테일 드레스는 그 후 11월에 존스가 로열 앨버트 홀에서 열린 영국 패션 어워드 올해의 디자이너 상을 수상할 때 데미 무어가 입은 것이었다(존스는 갑작스레 세상을 떠난 친구 버질 아블로에게 이 상을 헌정했다).

존스가 1월에 2022 S/S 오뜨 꾸뛰르를 선보이기 위해 파리의 옛 증권 거래소 내부에 ‘로마 건물이 폭발한 것 같은’ 미래지향적 세트장을 꾸몄다. 꾸뛰르를 공개하기 며칠 전에 존스에게 전화를 걸었다. 준비가 약간 지체되는 듯했다. 존스는 “크리스마스의 악몽을 좀 겪었죠”라고 설명했다. 코로나 감염으로 인해 스튜디오 인력 전원이 근무할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기적적으로 꾸뛰르 드레스는 구체화되고 있었다. 30가지 룩이 로마에 대한 존스의 비전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고대의 지워진 기록이 현대의 승려복과 펜디 건물을 지키는 조각상에서 영감을 받은 핸드 페인팅 토가로 되살아난 듯했고, 고객들이 쉽게 즐길 수 있는 미니스커트도 있었다.

존스는 이렇게 이야기를 맺었다. “최근 시공간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고 있어요. 공상과학 장르에 빠져 있죠. 프랭크 허버트의 <듄>이라든가, 조지 루카스의 <스타워즈> 같은 겁니다. <스타워즈>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기도 하고요. 저는 늘 과거, 현재, 미래를 좋아합니다.” (V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