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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계상은 난해한 게임을 하고 있다

2022.06.02

by 권민지

    윤계상은 난해한 게임을 하고 있다

    윤계상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초월적 존재보다는 이웃집 훈남 같은 느낌을 주는 스타다. 그런데 막상 생각해보면 우리 이웃에는 그런 훈남이 없다. 어딘가 있을 것 같지만 어디에도 없는 남자, 너무나 현실적이라 판타지임을 인식도 할 수 없는 판타지. <키스 식스 센스>의 민후는 그 매력을 강조하는 캐릭터다.

    <보그> 5월호 화보의 B컷. 사진: 채대한

    윤계상은 성실한 배우다. 단지 다작을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오랜 팬들은 그가 god 멤버들과 주변인들에게 지켜온 의리, 어지간한 손해는 참고 견디는 진중한 면모를 칭찬하곤 하지만 이건 그의 성격에 관한 얘기도 아니다. 오직 직업인으로서 그가 내놓은 결과물에 대한 이야기다. 

    윤계상은 <발레 교습소>(2004)의 주인공으로 데뷔한 이래 다양한 미디어와 장르, 캐릭터를 소화했다. 그 자신이 인식하는지는 모르겠으나 18년 동안 거의 매년 주연으로 드라마, 영화, TV 쇼를 내놓았다는 건 희귀한 업적이다. 흔들리는 청춘이었다가 위기의 탈북자였다가 다시 평범한 도시 직장인이 되었다가 다음 순간 미친 범죄자가 되었다가 아무렇지 않게 로맨틱 코미디로 돌아갈 수 있는 배우는 또 몇이나 될까. 예전이라면 깊이 각인된 이미지나 크게 성공한 작품이 없어서 오히려 변화가 쉬웠을 거라 평할 수도 있겠지만 <범죄도시>의 너저분한 범죄자 장첸 캐릭터가 밈이 될 정도로 성공한 후 로맨틱 드라마를 찍는 건 그저 놀랄 일이다. 여기서 윤계상이 업계와 시청자에게 쌓아둔 믿음의 성격이 드러난다.  

    <발레 교습소>에서 처음으로 주연 ‘강민재’ 역을 맡은 윤계상은 제 41회 백상예술대상에서 영화 부문 신인 남자연기상을 수상했다.

    <범죄도시>에서 윤계상은 하나의 밈이 될 정도로 강렬한 모습을 보여줬다.

    한때 소년의 장난기처럼 보이던 그의 눈웃음은 배우가 된 이래 애잔함, 허탈함, 온화함, 광기 등 다양한 뉘앙스로 활용되었다. 윤계상은 타인의 에너지까지 흡수하며 과감하게 작렬하기보다 맥락을 아우르며 신에 스미는 타입의 연기자다. 그것이 멜로나 로맨스에서는 일단 사귀면 안정적이지만 그러기까지가 지루하거나 어려운 건조한 연인을 그리는 데 효과적이다. <키스 식스 센스>의 민후는 이런 매력의 조합으로 탄생했다. 이 드라마는 상대의 몸에 입술이 닿으면 미래를 볼 수 있는 여자 예술(서지혜)과 오감이 예민해 신체 접촉을 하면 앓아눕는 남자 민후(윤계상)의 만남을 그린다.

    @disneyplu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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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후는 예술의 광고 회사 선배다. 광고주에겐 무한 신뢰를 받지만 회사에선 악당으로 통한다. 직원들에게 버거운 성취를 요구하고 막말을 해대는 완벽주의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신공격이 몇 마디씩 섞여서 그렇지 민후의 막말에는 틀린 내용이 없다. 그는 직원들이 자기만큼 훌륭한 결과물을 내놓기를 기대할 뿐 과로를 요구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부사수인 예술이 좌절하거나 건강을 망칠까 봐 억지로 쉬게 하거나 병원에 끌고 간다. 부사수에게 자기가 아는 것을 다 가르치려 하고, 광고주 앞에선 전폭으로 지지를 보내면서 남몰래 실패에 대비한 안전장치를 마련해주는 사람이다. 이런 완벽한 팀장을 미워하는 예술이 오히려 이해가 안 될 지경이다. 거기엔 인간관계에서 예민한 관찰자이되 섣불리 개입하지 않는 정중함이 있고, 감성적이되 그에 속수무책 매몰되지는 않을 것 같고, 직선적이되 악의를 품지 않을 것 같은 윤계상 고유의 이미지가 큰 몫을 한다. 여주인공이 좌충우돌하면서 이런 긍정적 이미지로 포장된 견고한 사적 거리를 깨뜨리고 그를 무장 해제시키는 게 이 로맨스의 목표가 될 것이다.

    <보그> 5월호 화보의 B컷. 사진: 채대한

    남자 배우들의 로맨스 연기는 자주 과소평가된다. 남자 배우가 40대나 50대에도 대중의 연애 판타지를 자극할 만큼 매력을 유지하는 게, 강렬한 캐릭터로 장르물을 지배하는 일보다 희귀한 성취라는 점도 흔히 잊힌다. 인력 풀이 좁으니 소화할 수 있는 연령대가 정해진 성공한 직장인의 연애담 같은 것도 리얼하고 깔끔하게 혹은 트렌디하게 나오기 어렵다. 길에서 마주치면 피하고픈 지저분한 폭력배와 해사한 연인이 번갈아 튀어나오는 윤계상의 커리어는 그래서 더 주목받고 논의될 필요가 있다. 그는 의외로 난해한 게임을 벌이는 중이고, 이 게임은 아주 오래 지속될 것이다. 

    이숙명(칼럼니스트)
    사진
    채대한(화보 B컷), 디즈니+ 코리아 인스타그램, 영화 스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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