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이란 여성 예술가들의 분노

2022.10.12

by 이숙명

    이란 여성 예술가들의 분노

    지난 9월 이란에서 시작된 ‘히잡 시위’는 진압은커녕 반정부 학생 시위, 소수민족 시위로 확산되고 있다. 비정부기구 이란휴먼라이츠(iranhr.net)는 10월 2일 시위 관련 사망자가 133명에 이를 것이라 발표했다. 이 사태의 핵심은 히잡이 아니다. 자유다.

    ‘히잡 쓸 자유’를 요구한 스포츠 스타 이브티하즈 무하마드. @ibtihajmuhammad

    9월 중순, 22세 이란 여성 ‘마흐사 아미니’가 히잡을 제대로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도덕 경찰에게 끌려가 의문사했다. 성난 이란 여성들이 해명을 요구했으나 정부는 무응답으로 일관했다. 여성들은 시위를 시작했다. 그들은 공공장소에서 히잡을 벗어 던지고 머리카락을 잘랐다. 이란 정부는 강경 진압에 나섰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배후에서 분란을 조장한다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사태의 확산을 막기 위해 인터넷도 끊었다. 하지만 먼저 이란을 탈출한 여성 스피커들이 곳곳에서 당사자로서 발언하고 있다. 이것을 살펴보기 전에, 속단을 방지하기 위해 최근 히잡을 둘러싸고 벌어진 또 다른 논쟁을 기억해두자.

    2021년 프랑스 정부는 18세 이하 소녀들이 공공장소에서 히잡 쓰는 것을 금지했다. 프랑스의 정교분리 원칙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보기에는 그들에게도 원죄가 있다. 프랑스는 과거 식민지 알제리에서 무슬림 두건을 금지하고 현지 여성들이 이를 환영한 것처럼 흑색선전을 했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두건이 저항의 상징이 되어버렸다. 2009년 프랑스 일부 지역에서 공중위생을 이유로 부르키니(무슬림 여성이 입는 전신 수영복) 착용을 금지했을 때, 2011년에 공공장소에서 니캅(얼굴을 가리는 베일)을 금지했을 때, 번번이 가톨릭이나 유대교 등 다른 종교 상징물과의 형평성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히잡 금지가 단지 정교분리의 문제가 아니라 이슬람 혐오이며, 여성해방이 아니라 여성의 자기 결정권을 무시하는 처사고, 소수민족에 대한 탄압이자 종교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반발에도 충분한 맥락이 있는 것이다.

    이브티하즈 무하마드 @ibtihajmuhammad

    지난해 프랑스 의회가 공공장소 히잡 착용 제한을 표결에 부쳤을 때 미국 올림픽 스타 이브티하즈 무하마드는 적극적으로 반대 목소리를 냈다. 이브티하즈 무하마드는 리우 올림픽에 히잡을 쓰고 미국 펜싱 대표로 출전해 메달을 땄다. 그는 “종교 자유는 인권이고 우리는 모든 대가를 지불해서라도 그것을 보호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진 사람이다. 유명해진 후에도 히잡을 썼다는 이유로 공항에서 억류되는 일을 겪었지만 종교가 아닌 박해가 문제라는 입장을 고수했고, 그에 맞서 싸우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의 자서전은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그를 본떠 히잡 쓴 바비 인형을 만들었다. 그는 지난해 “My hijab is not your business”라는 푯말을 든 사진과 함께 이슬람 여성들의 자유를 억압하지 말라는 주장을 펼쳐 큰 호응을 받았다. 아이러니하게도 최근 이 포스트에는 “왜 이란에서 벌어지는 문제에는 발언하지 않는가?”라는 질문, “당신의 목소리가 필요하다”는 호소, #mahsaamini라는 해시태그가 댓글로 이어진다.

    히잡 자체는 절대 악이 아니다. 이란에서는 20세기 중반에 히잡을 금지했다가 오히려 국민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반면 유럽 여러 국가의 이슬람 상징물 금지 정책을 단지 이민자 박해, 종교 박해로 보기에도 불편한 구석이 있다. 국가가 강제하지 않는다면 가정과 작은 집단에서 벌어지는 종교 강요와 개인의 희생은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그러나 복잡한 문제라고 방관해서도 안 된다. 사회문제에는 늘 여러 맥락이 얽혀 있고, 그러다 보면 누이 좋고 매부 좋게 적당히 잘 해결되길 바라는 온건파들이 아니라 제 뜻을 관철하려는 경향이 강한 소시오패스들에 의해 중요한 결정이 내려지기 마련이다. 건전한 원칙을 가진 시민의 감시가 필요하다. 히잡은 문화, 인종, 종교 다양성이 떨어지는 한국에서는 체감하는 바가 적으니 원칙을 갖기 어려운 문제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폭력은 정당화될 수 없다는 간단하고 절대적인 원칙이 이 사태를 직시하는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여기 이란 여성들의 호소도 결국 반폭력, 반독재, 인권, 자유, 여성의 신체 결정권 등 보편적 가치에 관한 것이다.

    골쉬프테 파라하니

    골쉬프테 파라하니는 시위 중 다치거나 사망한 여성들의 사진을 포스팅한다. @golfarahani

    이란 시위 전 골쉬프테 파라하니의 평온한 피드. @golfarahani

    골쉬프테는 1983년 테헤란에서 태어난 배우다. 15세에 데뷔한 후 출연작 여러 편이 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되며 이란을 대표하는 배우로 떠올랐다. <어바웃 엘리>(2009)는 베를린영화제 은곰상을 수상했다. 그는 리들리 스콧 감독의 <바디 오브 라이즈>(2008)로 ‘할리우드 메이저 상업 영화에 출연한 첫 이란 배우’라는 타이틀을 갖게 되었다. 최근에는 <엑소더스: 신들과 왕들>(2014), <캐리비안의 해적: 죽은 자는 말이 없다>(2017), <익스트랙션>(2020) 등에서 이국적인 매력을 뽐냈다. 특히 짐 자무쉬의 <패터슨>(2017)에 시인의 아내로 등장해 ‘너무 아름다운 나머지 사라질까 봐 불안한 행복’을 표현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골쉬프테 파라하니는 어릴 때 히잡을 쓰지 않으려고 남자처럼 머리를 밀고 가슴을 붕대로 동여매고 다닌 적이 있다고 한다. 여성의 록 밴드 활동이 금지된 이란에서 비밀리에 음악을 하기도 했다. 골쉬프테 파라하니는 2011년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정권의 영화계 탄압에 반발해 파리로 거처를 옮겼다. 칸영화제 황금카메라상,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 베를린영화제 은곰상을 수상한 이란 대표 감독 자파르 파나히가 반정부 활동을 이유로 감옥에 끌려가고 영화 제작 금지 처벌을 받은 직후다. 2012년 골쉬프테 파라하니는 이란의 여성 억압에 항의하는 의미로 프랑스 패션지에 누드 사진을 공개했다. 이로 인해 이란 입국이 금지되었다. 한 인터뷰에서 그는 “추방된 사람들은 두 가지 유형이 있다. 피해자가 되어 센강에 몸을 던지는 사람들과 전사가 된 사람들. 후자는 슬픔을 이용해 날개를 만들어 날아간다”고 했다. 히잡 시위가 시작된 후 그는 팔로워 1,420만 명에 달하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꾸준히 이란 상황을 전하며 연대를 호소한다. 최근에는 학교 관리자에게 단체로 항의하는 이란 여학생들의 영상을 올리며 “이것은 내 나라 여성들의 DNA에 깊숙이 박힌 분노다. 그들은 나를 위해, 우리의 어머니들, 우리의 할머니들을 위해 소리를 지르고 있다”고 했다. 골쉬프테 파라하니 인스타그램_https://www.instagram.com/golfarahani/

    나자닌 보니아디

    LA에서 열린 이란 연대 시위에 참가한 나자닌 보니아디. @nazaninboniadi

    나자닌 보니아디와  <홈랜드>에 함께 출연한 클레어 데인즈가 보니아디의 인스타그램에 연대를 표했고, 셀마 블레어가 호응했다. @nazaninboniadi

    나자닌 보니아디는 현재 방영 중인 아마존 대작 <반지의 제왕: 힘의 반지>에 브론윈 역으로 출연하고 있다. 미드 팬들에게는<홈랜드>의 CIA 분석가 파라 역으로 이미 유명하다. 그의 부모는 이슬람 혁명 때 이란에서 영국으로 망명했다. <보그 US>와의 최근 인터뷰에서 나자닌 보니아디는 “난민의 자녀로서 같은 역사가 반복되는 것에 두려움을 느낀다”고 밝혔다. 그는 국제 앰네스티 활동가이기도 한데, <보그>에 자신이 사회운동가가 된 계기를 밝혔다. “내가 테헤란을 방문한 것은 열두 살 때였다. 나는 히잡을 쓰지 않은 채 쉰 살 먹은 삼촌과 길을 걷고 있었다. 도덕 경찰이 나를 잡아 세우더니 (삼촌이 남편인 줄 알고) 결혼 증명서를 요구했다. 열두 살이 받을 만한 질문은 아니었다. 뭔가 바뀌어야 한다고 느꼈다. 1979년 전까지는 여성들을 위한 가족 보호법이 있었고 그들은 원하는 대로 입을 수 있었다. 현재 여성들은 그 권리를 빼앗겼다. 그들은 공공장소에서 춤을 출 수 없고, 노래도 못하고, 자전거를 탈 수도 없다. 그들은 교실, 직장, 해변에서 남자들과 분리된다. 히잡은 여성 박해의 상징이 되었다. 여자들은 판사, 대통령, 의회의 대표가 될 수도 없기 때문에 자신들의 미래를 바꿀 영향력이 없다. 나는 그 순간 결심했다. 만약 나에게 그 소녀들을 위해 변화를 일으킬 기회가 주어진다면 하겠노라고.” 이란에 인터넷이 끊긴 현재, 나자닌 보니아디는 시위대를 위한 중요한 스피커가 되고 있다. <보그>뿐 아니라 CNN, BBC, NBC 등 뉴스 미디어와 각종 영화지를 통해 시위 소식을 전하고, 미국에서 열리는 프리 이란 시위에 참가하고, 동료 배우들에게 연대 발언을 요청하고 있다. 나자닌 보니아디 인스타그램_https://www.instagram.com/nazaninboniadi/

    쇼레 아그다쉬루

    마흐사 아미니를 추모한 쇼레 아그다쉬루. @saghdashloo

    시위 기간 총을 맞고 사망한 이란 여성, 하나네 키아를 추모하며. @saghdashloo

    1952년 테헤란에서 태어난 쇼레 아그다쉬루는 1970년대 20대의 나이로 이미 이란의 스타였다.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알리 하타미 등 이란을 대표하는 작가주의 감독들과 작업을 했다. 그러나 1978년 이슬람 혁명 때 이란을 떠나 영국으로 이주했다. 1987년 연기를 위해 LA로 다시 이주했지만 이란 악센트에다 인종 때문에 큰 역할을 맡기 어려웠다. 그러다 <24> 시즌 4에 주부로 위장한 테러리스트 역으로 출연해 주목을 받았다. 영화 <모래와 안개의 집>(2005)으로 오스카 여우조연상에 노미네이트되기도 했다. 그는 이란 출신으로 오스카 후보에 오른 유일한 배우다. 국제 관계를 전공하고 사회운동가로 활동하기도 했다. 그는 이란 시위가 발발한 후 <뉴스위크> 인터뷰에서 “이것은 수백만 이란인의 목숨이 달린 문제이며, 협상을 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400만 명이 벌이는 랠리를 방관하는 국제사회와 언론의 행태에 분노를 표하기도 했다. 쇼레 아그다쉬루 인스타그램_https://www.instagram.com/saghdashloo/

    파리아 파르자네

    이란에서 받은 영감을 자랑스러워하던 파리아 파르자네의 피드. @pariafarzaneh

    파리아 파르자네의 슬픔이 담긴 메시지. @pariafarzaneh

    이란계 영국 디자이너 파리아 파르자네는 자신의 출신에 자부심을 가진 인물이다. 그는 이란 전통 문양과 색감에서 영감을 얻은 컬렉션으로 늘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방탄소년단이 그의 의상을 입어 화제가 된 적도 있다. 그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Free Iran’이라는 메시지를 계속 남긴다. 프로필에 국제 앰네스티의 이란 지원 링크를 걸기도 했다. 파리아 파르자네 인스타그램_https://www.instagram.com/pariafarzaneh/

    시린 네샤트

    시린 네샤트의 ‘알라의 여인’ 시리즈. @shirin_neshat

    이란 여성과의 연대를 표시한 시린 네샤트. ‘I stand with the women of Iran’ @shirin_neshat

    비디오 아티스트 시린 네샤트는 이란 여성 문제를 꾸준히 기록하고 고발해왔다. 그것은 때로 아름다웠고 때로 처절했다. 그의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을 비롯해 한국에서도 여러 곳에서 전시되었다. 최근 그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감동적인 메시지를 남겼다. “마흐사 아미니의 끔찍한 죽음은 너무나 오랫동안 종교와 이데올로기를 위해 자신들의 몸을 전쟁터로 만들어온 정부에 대한 이란 여성들의 분노를 치솟게 했다. 이제 그 여자들은 말한다. 충분하다면 충분한 줄 알아라, 당신들의 손과 종교를 우리 몸에서 치워라!” 그는 변화를 위해 목숨을 내건 이란 여성들이 자랑스럽다고 밝히며 인권 수호를 위한 예술계의 연대를 요청했다. 그에 대한 호응으로 아트 그룹 CIRCA가 10월 1일부터 4일까지 유럽에서 가장 큰 전광판인 런던 피카딜리 라이츠에서 시린 네샤트의 ‘알라의 여인’ 시리즈(1993~1997) 가운데 ‘문 송(Moon Song)’과 ‘언베일링(Unveiling)’을 전시했다. 시린 네샤트 인스타그램_https://www.instagram.com/shirin__neshat/

    프리랜스 에디터
    이숙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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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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