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겔랑의 핵심 코, 티에리 바세와 나눈 대화

2022.10.21

by 송가혜

    겔랑의 핵심 코, 티에리 바세와 나눈 대화

    겔랑의 핵심 코, 마스터 퍼퓨머 티에리 바세(Thierry Wasser)와 <보그>가 나눈 신작에 관한 대화.

    THIERRY WASSER
    Guerlain

    겔랑의 마스터 퍼퓨머입니다. 당신 이전에 하우스 향수를 이끌어온 사람들은 모두 겔랑가(家)의 사람들이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를 것 같군요.

    물론입니다. 이토록 역사가 깊은 브랜드와 일하는 것은 영광스러운 일이죠. 장 폴 겔랑(Jean-Paul Guerlain) 밑에서 2년간 견습생 생활을 했는데, 그때 원료의 조달부터 향료 제조, 제품의 소싱 과정까지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마스터 조향사로서 가장 중요한 역할은 새로운 향을 창조하되, 브랜드를 온전하게 보존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창조적인 재해석에 제약을 두지는 않습니다. 재조명된 상징적인 향기는 여러 세대의 더 폭넓은 고객을 수용할 수 있죠. 또한 고전 애호가들이 독창적이고 장난스러운 방법으로 그 향기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도 하고요.

    어릴 적 꿈이 조향사였나요?

    사실은 요리사였습니다. 놀랍지 않나요? 열다섯 살 때 스위스의 호텔 주방에서 인턴으로 일한 적도 있죠. 하지만 요리사와 조향사가 생각하는 방식 사이에는 많은 유사점이 있습니다. 원료와 그 품질로부터 영감을 받고, 상상력의 불꽃을 피우죠.

    매우 설득력 있는 이야기군요.

    어릴 때부터 요리와 제빵을 좋아했습니다. 지금도 절 즐겁게 만드는 기억 중 하나는 오븐에 살구파이를 굽는 거죠. 달콤한 반죽과 강렬한 과일 악센트가 어우러진 향기는 정말이지 너무도 사랑스럽거든요. 조향사가 된 건 아주 우연한 계기로부터 시작됐습니다. 제네바의 한 회사가 향수를 제조한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호기심으로 지원하게 됐습니다. 지바우단에서 만난 수석 조향사에게 발탁되고 4년간 그들의 방식대로 향수에 대한 교육 프로그램을 따랐죠.

    당신의 ‘첫’ 향수가 궁금합니다.

    겔랑의 ‘아비 루즈(Habit Rouge)’. 아직도 생생히 기억합니다. 열네 살 때였죠. 어머니의 친구에게서 그 향을 맡은 후 첫눈에 반해 직접 구매하기까지 했습니다. 제 몸에 입힌 최초의 향기로, 지금까지도 1년 내내 사용하곤 합니다. 운명적이죠.

    향수의 컨셉을 향기로 구현하기까지, 그 여정을 설명해줄 수 있나요?

    간단한 아이디어에서 시작되기도 하고, 개발하는 데 몇 년이 걸리기도 합니다. 저는 향기를 만드는 작업을 음악에 비유하곤 하죠. 각자 다른 음을 가진 향에 대해 고심하고, 셀 수도 없는 테스트 과정으로 조합을 바꾸며, 가장 이상적인 향을 찾습니다. 작곡가의 머릿속에서 탄생한 그 완벽한 하모니를 찾기 위해 음을 몇 번이고 조정하고 고치는 것처럼 말이죠.

    취미도 남다를 것 같은데요?

    특별한 것은 없고, 보통 사색을 즐기는 편입니다. 조용히 명상을 하고, 클래식 음악을 듣고, 그저 숨 쉬는 행위만으로 여가를 보내죠. 백일몽은 훌륭한 스포츠입니다.

    새로운 컬렉션을 공개할 예정입니다.

    ‘라르 & 라 마티에르 컬렉션’은 원료에 대한 조향사만의 예술적인 해석을 담아냈습니다. 우리는 이 컬렉션을 2005년부터 선보였죠. 단일 성분을 기반으로, 조향사만의 시각을 담았기에 더없이 특별합니다. 화려하게 큐레이션된 향기의 집합체를 느낄 수 있죠. 10월에 선보이는 세 가지 신작은 동료 조향사이자 수제자 델핀 젤크(Delphine Jelk)와 합작으로 탄생했습니다. 이 가운데 ‘오드 누드(Oud Nude)’, ‘체리 오드(Cherry Oud)’만 아시아엔 선보일 계획이고요.

    ‘오드(Oud)’에 대한 해석이겠군요.

    침향나무의 심장에서 추출한 수지로, 본질적으로 검은색을 띠는 ‘오드’는 가장 신비로우면서도 귀중한 향료로 여겨집니다. 피부에 스며드는 듯한 향이죠. 원료가 가진 본질적인 검은색에 음영을 더해 하나의 색상 팔레트와 같은 세 가지 향기를 완성했습니다. 피부처럼 부드럽고 둥근, 우윳빛을 연상시키는 샌들우드로 감싸 베이지색으로 해석한 향기가 ‘오드 누드’, 붉은빛 옷칠을 더해 체리 레드 빛깔을 띠는 향기가 ‘체리 오드’입니다. 향기를 맡으면 같은 향료로 이토록 다른 색을 가진 향을 표현할 수 있다는 사실을 느낄 겁니다.

    각각의 향기를 특정 작품에 비유해본다면?

    ‘오드 누드’는 콩스탕탱 브랑쿠시(Constantin Brâncuşi)의 표현주의를 담은 누드 스케치. ‘체리 오드’는 제프 쿤스(Jeff Koons) 특유의 글로시한 루비색을 입은 작품.

    작품만으로도 어떤 향일지 조금은 상상이 되는군요.

    ‘오드 우드’는 인체의 곡선, 피부 텍스처에서 오는 관능을 담아낸 따뜻하면서도 스파이시한 향입니다. ‘체리 오드’는 반짝이는 과일 향이지만 그와 동시에 미스터리하고 다크한 면이 있죠. 색으로도 빗대어보죠. 전자가 깊은 호박색이라면, 후자는 강렬한 풍미를 가진 과일의 붉은색입니다.

    요즘과 더 어울리는 향은요?

    글쎄요, 전 향기의 계절성을 크게 믿지 않습니다. 봄에는 플로럴, 추운 계절이면 따뜻한 우드나 앰버 등의 공식도요. 누군가가 향기를 선택하는 것은 그저 그 순간에 그 향과 사랑에 빠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사랑에는 따로 계절이 없죠.

    겔랑은 오래전부터 지속 가능성을 추구해온 브랜드이기도 합니다. 대표적인 예로 꿀벌을 보호하는 캠페인 등이 있죠.

    향수 역시 마찬가지로, 1828년부터 지속 가능성을 실천해오고 있습니다. ‘라르 & 라 마티에르 컬렉션’은 전체적으로 모든 향수를 리필해서 사용할 수 있도록 고안했습니다. 원료 역시 환경을 염두에 두고 간택한 것들이고요.

    예술에도 조예가 깊을 듯합니다. 가을에 추천해줄 만한 작품이 있나요?

    가을은 조용하고, 내성적이죠. 스스로 성찰해볼 수 있는 영화나 음악을 권하고 싶군요.

    지금 이 계절, 프랑스의 가장 큰 매력은?

    전 세계 많은 곳이 그렇듯, 프랑스 역시 한 해의 농작물을 수확하고, 그것을 기념하죠. 특히 포도 수확이 끝나고 포도주를 제조할 때입니다. 맘껏 즐기고, 축하하는 계절이죠. (VK)

    에디터
    송가혜
    COURTESY OF
    GUERL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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