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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그’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

2022.10.28

by 민용준

    ‘도그’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

    때때로 경로를 벗어나는 재미와 길을 잃지 않는 감동을 선사하는 소통의 드라마.

    “완벽하게 나를 위한 개였지.” 태어난 지 6주 된 카타훌라 핏불 믹스견은 작은 털 뭉치 같았다. 채닝 테이텀은 작은 털 뭉치에게 룰루라는 이름을 지어줬고, 사냥개 혈통을 이어받은 룰루는 크고 튼튼하게 자랐다.

    하지만 룰루는 태어난 지 11년이 된 지난 2018년에 암으로 눈을 감았다. 채닝 테이텀은 룰루가 세상을 떠나기 전 며칠 동안 함께 자동차 여행을 떠났다. 그리고 모종의 교훈을 얻었다. “룰루와 함께한 마지막 며칠 동안 항복하고 수용하는 법을 배웠다.” 채닝 테이텀이 룰루와 함께한 여행은 결국 사랑하지만 보내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배웅 같은 여정이었던 셈이다.

    룰루와 함께한 여정에서 돌아온 채닝 테이텀은 친구에게 그 여행에 관해 이야기했고, 이는 점차 다양한 이야기 양상으로 발전되기 시작했다. 개와 함께 하는 여행 버킷 리스트 같은 이야기를 하다 보니 좀 슬프다는 느낌을 받기도 했다. 한편으로 그건 자신과 룰루가 겪은 경험과는 무관한, 또 다른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재미있고 웃기면서도 때때로 미친 소리처럼 들렸다.

    그래서 그런 이야기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마음을 갖게 됐고 영화로 만들어보기로 했다. 채닝 테이텀이 출연한 <매직 마이크>의 각본과 제작을 맡았던 레이드 캐롤린이 각본가로 참여했다. 이렇듯 주연뿐 아니라 레이드 캐롤린과 함께 공동 연출자로 이름을 올린 채닝 테이텀의 감독 데뷔작 <도그>는 그가 11년 동안 함께한 반려견 룰루와 사별하는 여정에서 길어 올린 모티브로 시작된 영화다.

    이라크 파병 중 발생한 교전으로 인해 얻은 부상 후유증으로 전역한 잭슨(채닝 테이텀)은 일용직을 전전하면서도 군대에 복직할 기회를 얻고자 노력하던 중 형제처럼 지내던 전우가 자동차 사고로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동료들이 마련한 추모식에 참석한다. 그곳에서 상관으로부터 뜻밖의 제안을 받는다. 죽은 전우가 돌보던 군견 룰루는 잭슨처럼 이라크에서 얻은 외상성 후유증으로 쉽게 길들이기 쉽지 않은 상황이라 안락사가 결정된 상황이다.

    다만 안락사 실시 전에 살아생전 룰루를 돌본 전우의 장례식에 데려가야 하는 상황인데 부대에서 2,400km나 떨어진 장례식장까지 개를 인도할 수 있는 인원이 없기에 이라크 파병 시절 함께 생활한 경험이 있는 잭슨이 룰루를 인도하고 송환하는 임무를 맡아주면 군 복무를 재개할 수 있도록 추천해주겠다는 것. 잭슨에게는 마지막 기회였다. 그렇게 잭슨과 룰루는 함께 먼 길을 떠난다.

    당연한 말이지만 <도그>가 잭슨과 룰루가 무탈하고 원만하게 2,400km를 달려가는 이야기라면 애초에 영화 자체가 존재할 까닭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영화를 보기 전부터 예감하는 대로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 통제하기 어려운 개를 차에 태우고 먼 길을 달리는 과정이 만만할 리 없고, 그 과정은 매 순간 좌충우돌의 연속이다.

    룰루는 입질에 대비해 씌워놓은 입마개도 발버둥 쳐 벗어버리더니 심지어 자신을 가둬둔 케이지마저 박살 낸다. 잭슨이 잠시 차를 비운 사이 카 시트를 사냥이라도 하듯 물어뜯고 넝마로 만들어버린다. 여간내기가 아니다. 하지만 그 모든 난리 통이 온전히 룰루 탓만은 아니다. 개도, 사람도 고루 문제다.

    힙스터의 도시라 불리는 포틀랜드에서 ‘뜨밤’을 기대한 잭슨은 룰루를 홀로 차에 남겨두고 인근의 펍을 찾는다. 그리고 많은 여자를 만나긴 하지만 하나같이 통하지 않는다. 군 복무 시절 무용담이나 늘어놓는 잭슨은 포틀랜드 여자들에게는 너무 낡은 존재다. 하지만 예사롭지 않은 기운을 가진 두 여자가 잭슨의 구원투수로 나선다.

    덕분에 잭슨도 고대하던 밤에 당도했다고 믿었건만 포틀랜드는 그렇게 만만한 도시가 아니다. 길을 지나가던 남자는 동물 복지에 관심이 많았는지 차 안에 갇혀 홀로 짖고 있는 룰루를 구해주겠다는 명분으로 차 뒤 유리를 박살 내고 만다. 덕분에 그 남자의 팔도, 잭슨의 기대감도 함께 박살 난다. 그리고 이건 시작에 불과하다.

    개와 인간의 우정과 여정을 그린 버디 무비이자 로드 무비라 할 수 있는 <도그>는 뻔한 길을 갈 것처럼 보이지만 생각지 못한 방향으로 거듭 경로를 이탈하는 영화다. 단순히 정리하자면 말이 통하지 않는 개와 인간의 갈등과 화해를 그린 작품이라 할 수 있겠지만 영화가 그리는 여정이 그렇게 단순하기만 한 건 또 아니다.

    트로이 전쟁 이후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에 예기치 않은 복병들을 만나 긴 세월을 허비하는 오디세우스의 서사시를 그린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처럼, 룰루와 잭슨의 여정은 둘의 관계만으로 점철된 것이 아니라 그 사이사이에 등장하는 인물들과 맞물린 예상치 못한 사건 사고와 함께 예측할 수 없는 정체와 우회와 전진을 반복한다.

    그런데 이 모든 여정은 실상 서로 말이 통하지 않는 잭슨과 룰루가 한배를 탄 관계로 거듭나기 이전에 일찍이 한배를 탔던 공통분모의 인연에서 비롯된 일이다. 미국을 횡단하며 돌발적인 소동을 겪는 잭슨과 룰루의 여정은 미국 사회에서 살아가는 다양한 사람들의 군상을 마주하는 경험으로 거듭된다. 가끔씩은 감을 잡을 수 없게 위험천만한 예감을 부르는 상황에 직면하기도 하지만 잭슨과 룰루가 대면하는 이들은 하나같이 각자의 방식으로 각기 다른 터전을 일구며 자기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다.

    그 모든 조우의 경험은 잭슨과 룰루가 먼 타국까지 날아가 수호한다고 믿었던 미국이라는 세계를 채우고 이루는 갖은 군상이기도 하다. 동떨어진 먼 세계에서 미국의 가치를 지킨다고 믿었던 사람과 개는 각기 다른 외상에 시달리며 자신들이 지켜내던 세계의 이방인처럼 자국을 여행하는 존재로 전락한다.

    그런 의미에서 <도그>는 자신들의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여전히 고향에 안착하지 못한 인간과 개의 동병상련에 관한 영화처럼 보인다. 아찔한 부상까지 입고 전쟁터에서 고향으로 돌아왔건만 되레 새로운 삶을 일구지 못하고 다시 군대로 들어가길 고대하는 잭슨과 전장을 누비며 고국을 위해 헌신했음에도 안락사당할 위기에 놓인 룰루의 처지는 서로 닮았다.

    군인과 군견으로 복무하다 전쟁 후유증에 시달리게 된 잭슨과 룰루에게 중요한 건 고국에서의 삶이겠지만 그들에게 고국은 살아가기 갑갑하거나 살아갈 기회를 박탈하는 땅이다. 결국 죽은 전우의 장례식장으로 향하는 잭슨과 룰루의 여정은 전쟁의 후유증에 시달리며 기댈 곳을 찾지 못하던 두 전쟁 영웅이 연대하며 새로운 전우애를 다질 기회의 시간이 된다.

    목적지에 다다를수록 잭슨의 차는 만신창이가 되지만 잭슨과 룰루의 친밀감은 점차 두터워진다. 룰루를 목적지에 데려다주는 것이 군 복무를 재개할 기회라고 여기기만 했던 출발선의 잭슨은 목적지에 다다를수록 주객이 전도된 감정을 느낀다. 삶을 회복할 기회를 얻기 위해 룰루를 감내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출발했지만 정작 목적지에 도착하고 나니 룰루의 안위를 살피는 데 진심이다.

    그리고 점점 걱정되기 시작한다. 처음 부대에서 떠나올 때보다 많이 온순해지고 사람을 잘 따르는 룰루가 안락사당하지 않도록 재평가받을 수 있길 바란다. 떠날 때 갖고 있지 않았지만 돌아올 때는 갖고 돌아온 마음이 거듭 룰루를 향한다. 결국 그렇게 두 개의 삶이 하나로 중첩된다.

    “영화나 다큐멘터리에 나오는 모든 남자는 부대 안에 있는 개를 단순히 그저 개로만 보지 않았다. 군인이자 형제자매였다. 영화가 끝날 때쯤 우리 주인공인 잭슨도, 관객도 룰루를 그렇게 느꼈으면 좋겠다. 우리가 이 영화 제목을 <도그>라고 지은 이유도 그렇다.” 채닝 테이텀과 <도그>를 공동 연출한 레이드 캐롤린 감독의 말은 결국 이 단순해 보이는 영화를 나름의 방식으로 새롭게 보기를 권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찍이 채닝 테이텀과 함께 전장의 군견에 관한 다큐멘터리 <War Dog: A Soldier’s Best Friend> 제작에 참여한 바 있었던 레이드 캐롤린은 보이지 않는 선을 넘고 싶었다.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

    관객은 잭슨의 시선으로 룰루를 볼 것이다. 잭슨과 룰루는 함께 전장을 누빈 만큼 오랜만에 룰루와 재회한 잭슨이 반가움을 느끼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지만 그와 별개로 삶에 새로운 기회를 가져다줄 여정을 무사히 마치고자 하는 마음이 더 커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그 여정 끝에 룰루에 대한 애틋함을 느끼는 잭슨의 태도가 영화 밖의 관객에게도 여실히 전해진다는 건 중요하다. 잭슨뿐 아니라 관객에게도, 군견이라는 종이 아니라 룰루라는 이름이 좀 더 명확하게 다가온다.

    <도그>는 소통이라는 뻔한 주제를 군더더기 없이 설득시키는, 두 존재가 만나 알 수 없던 마음과 연결되는 ‘미지와의 조우’ 같은 영화다. 비록 개와 인간의 우정을 다룬 영화라는 점만으로도 이미 많은 것이 읽히는 영화이고, 어느 정도 예상 가능한 영화이기도 하지만 결코 심심하지도, 식상하지도 않은 감흥과 감동을 선사한다. 읽히는 내용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긴 여정과 함께 느껴지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통하지 않는 마음이 끝내 통하기까지 그 모든 과정은 결코 헛되지 않다. 순수하긴 하나 마냥 순진하지 않은 진심이 느껴진다.

    민용준(영화 저널리스트 &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사진
    Courtesy Phot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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