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로가 된 예술

Living

미로가 된 예술

2022-11-20T21:42:50+00:00 2022.11.11|

토비아스 레베르거가 ‘프리즈 런던’에 거대한 미로를 창조했다. 봐도 되는 것과 보면 안 되는 것,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은 무엇일까.

‘미로 속으로(Into the Maze)’(2022), Duration : 03:36, Hardware : LG SIGNATURE OLED R, Details : Sculpture with Mdf, Paint, Metal, Digital Video with Sound on LG OLED R, 151×163.4×46.5cm, Accompanied by the Soundtrack ‘Nyx’ by DJ Sven Väth

매년 이맘때 영국 런던 리젠트 파크에는 대형 천막이 들어선다. 세계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아트 페어 ‘프리즈 런던(Frieze London)’ 개막 때문이다. 녹음이 여전한 공원을 가로질러 천막으로 입장하면 수백 개의 갤러리 부스에 예술을 열망하는 사람들과 작품이 한데 엉켜 별세계가 펼쳐진다. 혼돈의 카오스 가운데 토비아스 레베르거(Tobias Rehberger)의 거대한 미로가 관람객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인다. 강렬한 패턴과 색상으로 시각적 유희를 전하면서도 다층적인 질문을 던지는 토비아스 레베르거는 설치, 조각, 이미지, 건축 등 경계를 끊임없이 넘나드는 예술가다. 흑백의 기하학적 패턴으로 감싼 다양한 크기의 육면체로 구성된 2022년 작품은 ‘미로 속으로(Into the Maze)’라는 제목 그대로 미로에서 길을 잃은 듯한 감각을 선사한다. 그 가운데 위장술을 발휘한 듯 숨어 있는 건 LG 롤러블 올레드 TV다. 말려 올라갔다가 내려가는 롤러블 TV의 특징은 작가가 2009년부터 다양한 맥락에서 확장해온 위장 기법(Camouflage)인 대즐 페인팅(Dazzle Painting)을 만나 “무언가를 보지 못한다(Not seeing something)”는 역설을 전한다. 강렬한 패턴은 그 자체로 눈길을 끌지만 카멜레온처럼 TV를 숨겨주는 기능을 발휘하는 지점도 흥미롭다. TV 화면에서는 DJ 스벤 페스(Sven Väth)의 사운드트랙 ‘Nyx’와 함께 또 다른 기하학적 패턴이 재생되며 작품에 리듬을 더한다. 이번 전시는 케빈 맥코이(Kevin Mckoy), 배리 엑스 볼(Barry X Ball) 등 세계적인 예술가와 협업해온 LG전자 올레드 아트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앞서 프리즈 서울에서도 아니쉬 카푸어(Anish Kapoor)와 함께 미디어아트를 선보인 바 있다. ‘프리즈 런던’이 개막한 날, 자신이 창조한 육면체에 앉아 있던 토비아스 레베르거에게 작품을 둘러싼 질문을 던졌다. 다행히 그와의 대화는 흑백 미로에서도 길을 잃지 않았다.

당신의 작품을 만날 때마다 어떤 집에 살고 있는지 궁금했다. 강렬한 패턴과 색상으로 가득한가.

집의 계단, 벽과 천장이 오렌지색이다! 하지만 내 작품을 집에 보관하지는 않는다. 집에는 오로지 다른 작가의 작품만 보관한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 해병대가 개발한 위장 기법인 대즐 페인팅은 당신의 작품 세계에서 주요하게 자리한다. 이번 작품이 기존 작품과 다른 점은 무엇인가.

카무플라주 패턴을 사용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그중 하나는 일종의 ‘보면 안 되는’ 아트워크를 만들고 싶기 때문이다. 카무플라주 패턴은 본래 위장용이지 않나. 그런 점에서 오는 강렬함이 있다. 롤러블 TV와도 어울리는 패턴이다. 우리는 TV를 활용해 무언가를 보지만 그 무언가가 영원하지는 않다. 그 점이 카무플라주 패턴의 본질과 잘 맞아떨어진다고 생각했다.

TV는 보는 용도지만 무엇이든 송출할 수 있는 고정화되지 않은 존재이기도 하다. 기술이 발달해 스크린이 접히고 화질도 굉장히 선명해져서 때로는 현실보다 더 선명하게 보이기도 한다. 이런 변화는 TV라는 존재를 다르게 보게도 하나.

이미지의 퀄리티가 매우 달라졌다. 마치 사진을 보는 것처럼 선명하지 않나. 그래서 TV를 활용해 더 다양한 작업이 가능해졌다. 예전에는 TV 화면이 픽셀 같았다. 그래서 화면상에는 뭐가 있는지, 화면 뒤에는 무엇이 있는지에 집중했다. 예전과는 달리 화면의 앞뒤가 매우 명징해졌다.

‘Into the Maze’는 흑백이 주를 이루지만 당신은 정말 색깔을 과감하게 쓴다. 그 자체로 시선을 잡아끄는데, 평소 색을 사용할 때 어떤 방향성이 있나. 아니면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당신의 자아가 결정하나.

그런 질문을 자주 받지만, 잘 모르겠다. 이번에는 박스 형태를 활용했기 때문에 흑과 백의 콘트라스트를 보여주고, 때때로 오렌지색을 활용하면 흥미로울 것 같았다. 그냥 그게 가장 어울릴 것 같았다.

그동안 베니스 비엔날레, 부산현대미술관 등에서 공간 자체를 작품으로 탄생시켰다. ‘프리즈 런던’의 공간은 어떤 영감으로 작용했나.

베니스 비엔날레의 공간은 일종의 바였고, 부산현대미술관의 공간은 전시장 겸 카페 같았다. 이렇게 공간마다 주는 느낌이 다르고 공간의 용도가 다르면 시작점 역시 달라진다. 공간을 마주할 때마다 각기 다른 시작점과 관점을 갖고 생각을 펼쳐나간다.

공간을 작품으로 삼으면 영속성을 가질 수 없다. 그에 대한 아쉬움은 없나.

공간을 일시적으로 써야 한다는 생각으로 디자인해본 적은 없다. 공간까지 작품의 일부 또는 일종의 조각이 되도록 한다. 물론 작품이 언젠가 철거되어야 한다는 것은 매우 아쉽다.

관객을 작품 속으로 자주 끌어들인다. 예술을 대하는 당신의 태도와 연관이 있을 것 같은데 지양하는 태도가 있나.

허세만 가득한 예술은 좋아하지 않는다. 그 어떤 특별한 프로젝트라도 일상생활에 자연스럽게 융화될 수 있어야 한다. 너무 신성시하려는 예술은 질색이다. 예술은 늘 함께할 수 있는, 우리 삶의 일부여야 한다. 그 반대는 좋아하지 않는다.

‘보이는 게 다가 아니다’라는 역설이 꾸준히 작품의 중심에 있다. 점점 더 시각에 매몰되는 우리 삶의 방식이 당신을 계속 이 주제에 머물게 하는 걸까.

나는 언제나 어떤 환경에 처함으로써 우리가 받는 영향에 관심이 있었다. 무엇을 단순히 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한가운데에 놓이게 될 때 말이다. 르네상스 시기부터 예술에는 비주얼적 ‘트릭’이 사용되었다. 그림 한 점에도 수많은 트릭이 존재하지 않나.

그렇다면 시각이 아닌 후각이나 촉각과 같은 감각은 어떤가.

흥미로운 방식으로 사용된다면, 예술품의 일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전통적인 의미에서 ‘아트’는 비주얼이다. 비주얼이 아트의 한 면이라면, 다른 한쪽은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촉각과 후각을 사용하게 된다면, 예술이 아닌 음식에 적용할 것이다.(웃음)

작품 제목이 내용을 함축적으로 보여주면서도 위트가 있고 허를 찌른다. ‘신세 졌습니다, 저에게 아무것도 안 주셔도 됩니다(You owe me, I don’t owe nothing)’, ‘무지개를 보고 싶다면 비를 견뎌야 한다(If you want the rainbow, you gotta put up with the rain)’ 등이 그랬다. 제목 ‘미로 속으로(Into the Maze)’는 어떻게 짓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이번 작품의 제목은 조금 덜 유머러스하다.(웃음) 비디오에서도 미로 속으로 비행을 하는 듯한 느낌이 들지 않나. 프로젝트의 시작점이 TV였고, 조각을 하며 그것이 러시아 인형 마트료시카 같다는 생각을 했다. 미로란 길을 찾아도 또 잃는 곳이기 때문에 그렇게 짓게 됐다.

관객으로 하여금 세상을 낯설게 바라보게 하는 작품을 선보인다. 그런 당신이 요즘 새롭게 관심을 가진 것이 있다면.

2~3주 전 처음 NFT를 발매했다! 흥미로운 뉴 미디어라고 생각한다. 메타버스에서 사람들이 새로운 세계를 꾸려나가는 것 역시 흥미롭다. 디지털 세상에서는 현실에선 불가능한 것이 가능하지 않나. 아직 흥미를 엄청나게 끄는 NFT 프로젝트는 없는 것 같지만, 곧 나타날 거라 확신한다.

한국에서는 아트에 대한 관심이 매우 뜨겁다. 소수의 컬렉터가 예술품을 향유하던 시대에서 벗어나 본인만의 안목으로 작가를 찾고 투자하는 Z세대가 늘었다.

좋은 현상이다. 유명 작가의 작품만 구매하면, 명성이 높지 않은 작가의 작품은 완전히 놓치지 않나. 그리고 그 유명 작가 역시 무명 시절을 거쳤다. 사람들이 예술에 흥미를 갖는 이유는 매우 다양하다. 투자하고 싶어서, 비주얼 자체에 끌려서 혹은 작품에 흥미로운 생각이 담겨서. 어떤 관점을 갖고 예술을 보느냐에 따라 다르다. 투자 목적만으로 예술품을 구매하는 사람은 많은 것을 놓치게 된다. 물병으로 물을 마실 수도 있지만 머리를 내려치는 데도 사용할 수 있다는 개념과 똑같다. 좋은 예술품에는 세상을 바라보는 훌륭한 관점이 분명 존재하고, 내가 가장 흥미를 느끼는 것도 그런 부분이다. 예술품의 도움을 받아 생각을 넓힐 수 있었다. 나에게 이것이 예술의 존재 이유다.

늘 전 세계를 누빈다. 다음 작품은 언제 어디에서 만날 수 있을까.

동시다발적으로 많은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어떤 프로젝트는 10년이 걸리기도 하고. 때론 20개가 넘는 프로젝트를 동시에 진행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다음 만남이 언제, 어디서 이뤄질지는 나도 모르겠다. 일단 런던에서 일정을 마친 후에는 비엔나로 출국한다. 연극 무대를 디자인했는데 그 연극을 개막하기 때문이다.

수십 년 동안 작품 활동을 해온 원동력에 대해 마지막으로 묻고 싶다.

세상에는 아직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들이 많이 남아 있다! 궁금증이 나를 움직이는 원동력이다. 어떤 것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하고 싶어서 많이 배우고 있다. 세상에 내가 불분명하다고 느끼는 것이 있는 한 동력을 잃지 않을 것이다. (V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