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리트 웨어는 이제 그만! 돌아온 ‘블랙 수트’
최근 몇 년간의 맨즈웨어 트렌드를 한마디로 정리하면 ‘스트리트 웨어’로 충분합니다. 뎀나, 매튜 윌리엄스, 버질 아블로 같은 젊은 디자이너들이 발렌시아가, 지방시, 루이 비통 같은 하우스 브랜드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부임한 것만 봐도 알 수 있죠. ‘스트리트 웨어의 럭셔리화’ 덕분에 럭셔리 브랜드의 진입 장벽이 낮아지는 등 많은 긍정적 변화가 있었지만, 맨즈웨어에서만 느껴지던 중후함이나 품위 같은 가치는 점점 잊히고 있었습니다. 이런 가치가 사라질까 봐 두려웠던 걸까요? 2023 S/S 시즌의 런웨이는 ‘클래식한 남성’의 상징과도 같은 검정 수트로 가득했습니다.
가장 먼저 포문을 연 것은 뉴욕 패션 위크의 피터 도입니다. 너무 클래식해 자칫하면 뻔할 수 있는 주제인 검정 수트. 닳을 만큼 닳은 주제를 새롭게 풀어내기 위해 피터 도가 주목한 포인트는 바로 비율과 실루엣! 쇼 시작을 알린 NCT 제노가 입은 아워글라스 실루엣의 수트 재킷과 스티치 디테일이 돋보이는 거대한 실루엣의 수트 재킷 모두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아워글라스 재킷의 라펠에 새틴 소재를 활용하고, 오버사이즈 재킷의 라펠 역시 그 거대한 실루엣에 걸맞은 사이즈로 제작해 엘레강스함을 살리는 것 역시 잊지 않았죠.
프라다 맨즈웨어를 이끄는 미우치아 프라다와 라프 시몬스 역시 검정 수트에 주목했습니다. 최근 많은 럭셔리 브랜드가 큼지막한 로고를 넣은 디자인을 피하는 만큼, 프라다 역시 수트 라펠 사이로 브랜드 로고를 조그맣게 노출하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최근의 미니멀 트렌드에 부합하는 히든 버튼 디자인의 재킷도 돋보입니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프라다 수트 룩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점은 바로 슈즈! ‘검정 수트’ 하면 생각나던 더비 슈즈나 부츠가 아닌 밝은 컬러의 운동화를 함께 매치했습니다. ‘수트에는 구두’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났을 뿐인데, 완전히 새로운 수트 룩이 탄생했죠.
에트로는 이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다 못해 이를 깨부수기까지 했습니다. 클래식한 검정 수트의 이너로 플로럴 패턴 셔츠를 선택한 것은 물론, 발이 훤히 드러나는 플립플롭을 매치했거든요. 이어서 등장한 모델은 심지어 맨발이었습니다. 다가오는 봄여름, 수트를 입을 때 슈즈는 마음 가는 대로 선택해도 좋다고 말하는 것 같군요.
분명한 것은 클래식한 검정 수트에서만 느낄 수 있는 기품과 품위가 존재한다는 점입니다. 유일한 고민거리는 이를 어떻게 ‘지루하지 않게’ 소화하느냐죠. 2023 S/S 런웨이를 복습하다 보면, 그 고민이 해결될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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