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르사주’ 기록이 그렇다 해도 이 영화는 상관없다

Living

‘코르사주’ 기록이 그렇다 해도 이 영화는 상관없다

2022-12-29T16:00:04+00:00 2022.12.29|

왜곡하는 것이 아니라 선택한다는 것, <코르사주>는 선언하는 영화다.

엘리자베트는 15세 무렵 합스부르크 왕가의 오스트리아 황제 프란츠 요제프 1세의 황후가 됐다. 기록에 따르면 엘리자베트는 외모에 대한 집착이 대단했다고 한다. 굵고 긴 머리 손질에만 하루에 3시간을 할애하고, 2주에 한 번씩 코냑과 달걀노른자로 머리를 감았다고 한다. 19.5인치까지 허리둘레를 조이는 코르셋을 착용하는 데도 긴 시간이 소요됐고, 나이가 들면서 주름살을 병적으로 두려워한 나머지 생송아지 고기를 얼굴에 감싸고 잠을 잤다고도 하며 식사량을 엄격하게 제한하는 식단을 고수하고 승마, 체조 등 철저하게 운동 시간을 준수했다.

이런 강박은 이른 나이에 시작한 궁중 생활에서 느낀 압박감과 시어머니와의 불화, 불과 두 살의 나이에 죽음을 맞이한 첫딸 조피에 대한 상실감 등에서 비롯됐다는 설이 유력하게 언급된다. 한편으로는 자유분방한 성격에 흡연을 즐겼으며 당대 왕실 분위기에서 보기 드물게 등 뒤에 돛대 모양의 문신을 새겨서 남편과 불화를 겪었다고도 한다. 기록된 바로는 그렇다.

비키 크립스는 엘리자베트의 전기를 읽고 기이한 슬픔을 느꼈다. 15세 무렵에 결혼해 오스트리아 제국의 황후 자리에 오른 엘리자베트의 삶은 ‘여자로 산다는 것이 뭔가 불공평하다는 느낌’으로 전이됐다. 엘리자베트를 통해 느낀 모종의 슬픔은 배우로서 자신의 경력을 이어가는 와중에 두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살아가며 수용하는 다양한 혼란과 모순의 경험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그리고 희미하게 남겨진 슬픔은 자각으로 이어졌다. 보다 복잡한 캐릭터의 내면을 받아들이는 연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해내고 싶다는 것을 느꼈다. “누군가를 만족시킬 필요도 없고, 설명할 필요도 없고, 상자에 들어가듯 규격화될 필요도 없는 여성 캐릭터를 보여주고 싶었다.” 엘리자베트는 비키 크립스에게 그런 인물이었다.

“역사적 의미로 보자면 올바른 영화는 아니겠지만 그녀에 관해 읽어낸 내 관점을 충실히 반영하고자 노력했다.” 19세기 오스트리아 제국의 황후로 잘 알려진 엘리자베트에 관한 영화 <코르사주>를 연출한 마리 크로이처 감독은 역사가 기록한 엘리자베트를 재현하는 영화를 만드는 데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애초에 이 영화를 만들게 된 계기도 <코르사주>의 주연배우 비키 크립스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어느 날, 비키 크립스는 마리 크로이처 감독에게 “‘시시’에 대한 영화를 만드는 건 어때?”라고 물었다. ‘시시’는 엘리자베트의 별명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마리 크로이처 감독은 관심이 없었다. 오스트리아 사람인 자신의 입장에서 엘리자베트는 그저 진부한 기념품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비키 크립스가 남긴 물음표는 쉽게 사라지지 않았고, 엘리자베트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뜻밖의 관점을 발견하게 됐다.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는, 르네 마그리트의 유명한 그림 ‘이미지의 반역’에 적힌 문구처럼, <코르사주>는 엘리자베트에 관한 영화지만 엘리자베트를 재현한 영화가 아니다. 더 정확하게는 파이프라고 인식하는 것을 거부하는 파이프 그림처럼, 엘리자베트라는 여성을 묘사하지만 기록에 입각한 엘리자베트를 그리기를 거부하는 영화처럼 보인다.

“어차피 이건 다큐멘터리가 아니다. 어떤 식으로든 허구적인 영화일 수밖에 없다.”

마리 크로이처는 엘리자베트를 기록한 역사적 주관에 <코르사주>를 가둘 필요가 없다고 느꼈다. 엘리자베트에 대한 다양한 기록을 살펴본 마리 크로이처는 기록자에 따라 그녀에 대한 묘사가 조금씩 다르다는 것을 알았고, 결국 사진과 영화가 그러하듯이 객관적인 기록이라는 것 역시 주관적인 견해에 영향을 받은 결과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제목으로 사용한 단어 ‘코르사주(Corsage)’는 극 중에서 등장하는 코르셋을 지칭하는 것이기도 한데 19세기 프랑스에서는 여성의 몸매 자체를 가리키는 용도로 사용한 단어였다고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엘리자베트가 부재한 신이 단 하나도 없는 이 영화가 선택한 ‘코르사주’라는 제목은 일종의 선언 같다. 19세기 왕실에 실존하던 비운의 미녀로 회자되는 엘리자베트는 당대의 셀러브리티이자 가십걸이었다.

<코르사주>의 극 중 초반부에서 엘리자베트를 황후로서 맞이하는 헝가리 고위 관료는 세간에 도는 황후의 몸매에 대한 풍문을 언급하거나 외적인 미모를 받들듯 평가하며 남성의 시각에 그녀를 가두려 한다. <코르사주>는 이에 나름의 방식으로 대항하는 엘리자베트의 심상과 내면을 재해석하고 재발견함으로써 여성을 바라보고 판단하고 평가하는 그 모든 시선과 관점과 잣대의 선입견과 고정관념과 편견을 ‘미러링’해 보여주겠다는 야심의 선언처럼 보인다. 이것은 인물을 조명하는 영화가 아니다.

1877년 12월 오스트리아 빈에서 시작해 1878년 10월 이탈리아 안코나에서 끝나는 <코르사주>는 엘리자베트가 40세를 맞이한 1년여의 시간에 초점을 맞춘다. 황후의 생일을 기념하는 식사 자리에서 정작 주인공의 얼굴만 어둡다. 시어머니의 은근한 비아냥을 감내해야 하는 탓이기도 하겠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그녀의 내면에서 자라나고 있다. ‘마흔부터 인간의 몸은 시들고 헐거워지며 구름처럼 음울해진다’는 우울한 생각이 마흔 살의 나이와 함께 깊숙이 뿌리내린다.

심지어 정신 병동의 철창 침대에 갇힌 여성 환자들의 모습에서 자신의 현실을 본다. 일찍이 나랏일에 뺏긴 남편은 기댈 대상이 아니다. 갑갑한 궁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여행을 떠날 기회가 오면 지체하지 않는다. <코르사주>는 황후 엘리자베트로부터 시대의 억압을 견디기 힘든 당찬 여성의 삶을 추출해내고 우울과 고독에 잠식당할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내면을 추측하도록 이끈다.

엘리자베트는 거듭 죽음을 열망하고 종종 시도한다. 죽음을 갈망하거나 감행하는 그녀에게 사람들은 그런 언변이나 행실이 신에 대한 모독이라 지적한다. 자신의 삶을 선택할 권리는 없지만 타인의 시선에서 삶을 절제해야 하는 책임만 가득하다. 제국의 운명을 다스려야 한다는 자신의 본분을 설명하는 황제 요제프(플로리안 테히트마이스터)는 엘리자베트가 그걸 대표하는 얼굴이 되면 된다는 의무를 강요한다. 남편의 삶이 부차적인 황제에게 중요한 건 아내가 황후라는 사실이다.

심지어 황태자 루돌프(아론 프리즈)는 어머니의 정숙을 주문하고, 어린 막내딸 발레리(로자 해야이)조차 황후의 지위에 어울리는 방정한 품행을 요구한다. 세상 모두가 바라는 그녀의 삶과 그녀가 바라는 자신의 삶 사이의 괴리는 좀처럼 메워지지 않는 것이다. 끊임없이 연기하는 자아를 요구하는 지위에 갇힌 삶은 머물러도 머문 것이 아니고, 떠나도 떠난 것이 아니다. 틈틈이 일말의 일탈이 가능하지만 대체로 허탈하고 답답할 뿐이다.

“잡을 수 있는 게 없거든. 나 자신 말고는. 때론 그조차도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지.” <코르사주>가 묘사하는 엘리자베트는 만만치 않은 노력과 인내에도 온전히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기가 버겁다는 것을 스스로 인지한다. 동시에 사회가 요구하는 비좁은 규격에 자아를 욱여넣고 규정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면서도 그로부터 밀려오는 스트레스의 정체를 가늠하지 못하던 당대의 여성을 비롯해 계급적 부조리를 자연법칙처럼 받아들이며 살아가던 대부분의 삶 자체에 대항하는 존재처럼 보인다.

<코르사주>는 그런 구시대적 삶에 독특한 물음표를 불어넣는 영화적 숨결에 가깝다. 실존 인물의 삶을 가둔 시대적 분위기를 재현하고 그런 현실을 감당하는 이의 심리를 현대 관점에서 추측하고 묘사하고 연출한다. 기록으로 확인할 길이 없는 내면을 작가적 관점에서 추출하고 상상해 창작한다. 그럼으로써 구시대의 억압을 전시해야 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성의 관성에서 이탈해 왜곡과 오류의 비판을 기꺼이 감내해서라도 현시대에 어울리는 질문으로 뛰어들겠다는 야심을 세워 넣는다.

놀라운 건 <코르사주>가 기록된 사실에 의거한 시대극의 관성을 거부하는 인물 묘사를 넘어 당대 시대에 존재할 수 없었던 것을 목격하거나 듣게 만든다는 사실이다. 이를테면 건물 벽에 있는 전기 플러그를 꽂는 콘센트가 고스란히 노출되거나 플라스틱 막대와 소화기, 비상구 표지판처럼 당대에 존재했을 리 없는 물건이 무심하게 등장한다. 심지어 전기가 들어오는 센서 등처럼 반응하는 조명의 유무를 의심하게 만드는 장면도 있다.

게다가 1970년에 발표된 크리스 크리스토퍼슨의 넘버 ‘Help Me Make Through the Night’를 핑거 스타일 주법으로 연주한 바이올린 음에 맞춰 부르는 악사의 노래가 등장하기도 하고, 1964년에 발표된 마리안느 페이스풀의 넘버 ‘As Tears Go By’를 하프 연주와 함께 노래하는 장면이 등장하는 것도 예사롭지 않다. 이를 통해 <코르사주>는 시공간의 정보와 감각을 작정하고 왜곡해버린다는 인상을 스스로 거머쥐는 것처럼 보이는데 이는 이 영화가 어느 시대를 위해 만든 작품이 아닌 것을 넘어 해당 시대에 만연하던 관념 자체를 거부하려 한다는 태도의 반영처럼 보인다.

동시대에 존재했지만 엘리자베트가 만났다는 기록적 정황이 없는 루이 르 프린스와의 만남을 묘사하고 활동사진을 찍는 장면도 의도적이자 핵심적인 은유처럼 보인다. 최초의 활동사진 발명가로 꼽히는 루이 르 프린스가 찍는 무성 영상의 주인공이 된 엘리자베트는 소리까지 담아낼 수 없는 카메라 너머에서 지르고 싶고, 하고 싶은 말을 마음껏 내뱉는다.

이는 <코르사주>가 과거의 실존 인물을 도구 삼아 만든 영화라는 사실을 시대성에 어울리는 상징적 장면으로 표현해낸 영화적 은유이며 <코르사주> 역시 시대성에 걸맞은 영화라는 사실 자체를 각성시키는 하나의 장치처럼 보인다. 동시에 타인의 시선과 기록을 의식하고 규정당해온 여성의 삶에 있었을 법한 이면을 자유롭게 기록한 가상의 결과물에 대한 상상력을 발휘하는, 창작자이기에 자신이 애정을 지닌 캐릭터에게 선사할 수 있는 해방감을 선물하는 장면처럼 보이기도 한다.

결과적으로 <코르사주>는 엘리자베트의 육체와 시대를 빌려 현대적 관념이 반영된 대체 역사물처럼 보인다는 점에서 분명 급진적인 작품이라 흥미로운 동시에 시대적 한계에 갇힌 인간에 대한 비판적 견해를 드러내기보다는 현대인의 관점으로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구태의연한 풍경으로 관찰할 기회를 제시한다는 점에서 세심한 작품이기도 하다. 선악의 구도로 캐릭터의 당위를 옹호하기보다는 당대에는 당연하게 여겨지던 규범의 한계에 순응하는 이들이 받아들이는 태도를 자연스럽게 그려내며 엘리자베트의 체증을 현실적인 체험으로 끌어올릴 정서적 병풍을 확보해냈다.

그럼으로써 21세기를 살아가는 관객에게 악몽 같은 시간 여행의 체험을 선사하는 동시에 동시대의 부조리나 편견을 살피게 만드는 거울 같은 스크린을 마련한 것 같다. 그런 면에서 <코르사주>는 외적으로 <마리 앙투아네트>나 <브리저튼> 같은 작품을 연상시키는 측면도 있지만 <스펜서>나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와 함께 나열하는 것이 더 어울리는 영화처럼 보인다. 현대성을 장식하는 작품이 아니라 진일보한 현대의 관념에 이입하도록 사실을 캔버스 삼아 허구의 가능성을 과감하면서도 저돌적으로 시험한다.

<코르사주>가 비록 엘리자베트의 죽음을 직접적으로 묘사하는 것은 아니지만 영화의 말미는 분명 그녀가 평소 바라던 바를 이행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에서 완벽하게 역사적 사실과 결별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며 동시에 이는 영화의 오프닝 시퀀스와 상반되듯 연결된 수미상관의 묘미를 선사하는 엔딩 시퀀스처럼 보인다는 점에서도 흥미롭다. 거대한 궁궐 내의 좁은 욕조에 몸을 누이고 숨을 참는 법을 익히던 엘리자베트로 시작한 영화는 선상으로 나아가 창창대해로 하강하는 엘리자베트가 비로소 수면에 닿는 순간으로 끝을 맺는다.

좁은 욕조에서 숨을 참다가 상승하는 엘리자베트의 모습이 되레 갑갑한 현실을 상기시킨다면 너른 바다의 일부가 되겠다는 듯 스스로를 내던지며 하강하는 엘리자베트의 모습은 해방의 쾌감으로 환기된다. 인위적인 풍경에서 숨을 삼키던 이가 자연적인 풍경에서 스스로 숨을 거둔다는 선택은 각기 다른 수면 위의 풍경을 운명처럼 받아들이는 자와 끝내 선택하려는 자의 차이를, 가능한 것이 없었던 시대와 가능한 것을 말할 수 있는 시대의 대비가 선명하게 제시하고 체감하도록 이끄는 권유에 가깝다. 시대에 갇히길 거부한 여성의 역사를 새로 쓰는 영화도 제 운명을 선택한다. 담대하고 섬세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