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물’은 겨울 안의 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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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물’은 겨울 안의 온기

2023-01-27T22:13:53+00:00 2023.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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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왔으면 해.” 눈을 기다리는 마음을 안다. 몇 해 전부터였을까. 여름과 가을부터 그해 겨울의 눈을 기다리곤 했다. ‘내리는 것’으로 치자면 비도 있겠지만, 눈, 특히 눈 내리는 풍경에는 뭔가 더 각별하고 애틋한 구석이 있다. 눈은 ‘내린다’기보다는 ‘오는 것’만 같아서일까. 고개를 들어 눈이 오는 하늘길을 가만히 보고 있자면 세상의 시간과 공간이 잠시 아득해지고 이상한 구멍이 생긴 듯하다. 느린 듯, 빠른 듯, 알 수 없는 속도로, 소리도 없이, 내게로 오고 있는 저렇게나 작고 하얀 신비의 무리라니. 눈은 눈으로만 맞는 게 아니라 온몸으로 끌어안을 수밖에 없다. 그 앞에서 말은 얼마간 무용하다. 하지만, 눈은, 눈이 오는 풍경은 오래지 않아 사라질 것이다. 정수리, 손바닥, 코트 자락에 닿자마자 순식간에, 볕 앞에서는 한순간에. 언제나 그렇듯 반짝임은 그렇게도 짧다.

안녕달 작가의 ‘눈, 물'(2022, 창비)

‘눈이 왔던가. 왔던 눈은 어디로 갔는가.’ 그림책을 쓰고 그리는 안녕달 작가의 <눈, 물>(2022, 창비)은 ‘눈이 되어 온 것’, 하지만 ‘왔다는 흔적만 있을 뿐 사라진 듯한 눈’을 향한 연가(戀歌)다. 제목처럼 눈과 물, 그 사이에 반점이 찍히기까지, 눈이 녹아 물이 되고 물 자국으로 남기까지의 시간. 누군가는 이 사이의 시간을 어떻게든 막아보려 애쓰고, 연장하려 애달파한다. 사랑하는 존재를 잃지 않기 위해 온몸으로 내달려본 적 있는 이라면, <눈, 물>이 그러한 마음의 자국임을 금방 눈치챌 것이다.

“겨울밤, 여자는 어쩌다 눈아이를 낳았다.” <눈, 물>은 그렇게 시작한다. 눈의 아이가 여자에게 왔으므로. ‘여자는 자신의 온기가 무서워 눈으로 담을 쌓았다.’ 아이가 사라질까 가까이 다가갈 수 없기에. ‘저 너머에서 초록이 몰려왔다.’ 야속한 봄기운이 밀려오고 있으므로. 그때 여자의 눈에 전단 하나가 들어온다. ‘언제나 겨울’이라는 문구. 눈아이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언제나 겨울’을 구해야만 한다. 눈아이에게 금방 돌아오겠다는 말을 남긴 채 여자는 ‘언제나 겨울’이 있다는 도시로 향한다.

@changbi_insta

여자와 아이가 머물던 외따롭고 고요한 곳과는 완전히 다른 도시로 시공이 바뀔 때, <눈, 물>은 세심하게도 종이의 질감까지 달리해가며 두 세계의 격차를 전달해온다. 약간의 까슬까슬한 감각이 살아 있는 종이에서 매끈하고 미끈한 종이로의 전환은 여자가 겪을 세계가 얼마나 다른지를 읽는 이의 손끝으로 느끼게 한다. 화려한 불빛, 커다란 광고판, 얼굴도 표정도 보이지 않는 수많은 인파, 째깍거리며 잘도 흐르는 시간, ‘파라다이스’, ‘더 빨리’, ‘SALE 놓치지 마세요’, ‘모두 가질 수 있어요’, ‘신용 불량자도 대환영’, ‘1분 급전’, ‘취업 알선’, ‘오늘 인력’… 도시는 이 모든 달콤한 말과 시린 빛에 둘러싸여 있다. 맨발인 여자는 그곳의 영원한 이방인, 없는 존재로 보인다. ‘언제나 겨울’을 사기 위해 여자는 도시에서 마주할 법한 온갖 임시직을 전전할 것이다. 언제까지 계속되는 걸까. 눈아이에게 돌아갈 수는 있는 걸까. 투둑투둑. 바로 그때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여자가 팔던 아이스크림이 비에 젖는다. 땅으로 흐르더니 형체를 잃고 금세 빗속으로 사라져버렸다. 이제 더는 미룰 수 없음을 직감한 여자는 결심한 듯 ‘언제나 겨울’을 파는 상점으로 달려간다.

‘마침내 여자가 겨울을 들고 돌아왔을 때 방에는 작은 물웅덩이만 남아 있었다.’ 눈아이는 그곳에 없는 듯 있고, 있는 듯 없다. 허무하고 끔찍한 결말이라고 해야 하는 걸까. 아니다. 여자가 눈아이를 포기하지 않았으므로 이것은 끝이 아니다. 여자의 온기는 겨울 안에 오래도록 머물 것이다. 겨울이 늘 희망을 상징하는 봄의 반대말일 필요는 없으므로. 우리에게 온 것은 그렇게 쉬이 사라지지 않을 것이므로. 사랑이 있는 한은.
봄이 오기 전 <눈, 물>을 만나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