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 마르타 메자로스, 메건 투히와 조디 캔터 #멋진 ‘언니’에게_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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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 마르타 메자로스, 메건 투히와 조디 캔터 #멋진 ‘언니’에게_1

2023-01-27T19:12:43+00:00 2023.01.26|

아침을 비추니 불안의 밤이 오는가. 그런 당신에겐 언니가 필요하다.
마음의 끈을 연결하고 싶은 멋진 여성들.

‘Finger Play-057’, 100×80cm, Digital Pigment Print, 2019

마르타 메자로스

뜨거운 아흔 작가(作家)를 풀어 쓰면 ‘집을 짓는다’ 정도가 될까. 오랫동안 이 말의 의미를 마음에 품어왔다. 이때의 집이란 자기만 살겠다는 철옹성이 아니라 자기식으로 집을 짓고 길을 내 세상과 만나는 고유한 방식, 그러한 태도로 만들어질 창작의 전도(全圖)에 가까울 것이다. 어쩌면 이러한 작가의 집 짓기는 매번 ‘그 후’에나 비로소 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단 한 번의 구축과 완성으로 영원한 집을 얻는 게 아니라 늘 새로 이 지음으로써 유지되고 살아나는 집, 집 이후의 집, 무엇보다 작가가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을 갱신함으로써만 가능한 집. 그런 작가의 집, 지도, 지평을 흠모하며 마음의 눈으로 오랫동안 들여다보고 싶다.

그런 나의 시선은 1931년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태어난 용감하고 다부진 한 소녀에게로 향한다. 스탈린 치하 소비에트, 나치, 격렬한 이념 대립과 긴장 속 유럽의 한가운데. 조각가이던 소녀의 아버지는 정치적 이유로 무참히 처형됐고 어머니 역시 알 수 없는 이유로 실종된 뒤 세상을 떠났다. 하루아침에 고아가 된 소녀는 정치적, 심리적 디아스포라로서 10대를 맞는다. 소녀에게 유일하게 남은 삶의 출구가 있다면 그건 영화, 오직 영화뿐이었다. 당시 헝가리에서 여성으로서 영화를 만드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생각한 영민한 소녀는 감시와 통제 속에서 홀로 모스크바로 영화 유학을 떠난다. 그 후 부다페스트로 돌아온 소녀는 10여 년간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들며 분투한다. 소녀의 눈은 그때만 해도 영화의 중심에 좀처럼 등장할 수 없던 외로운 여성에게로 향했다.

그리고 마침내, 장편 극영화 데뷔작 <소녀>(1968)로 소녀는 세상에 영화감독으로서 자신의 이름을 정확히 알리기에 이른다. 그녀의 이름은 마르타 메자로스(Márta Mészáros). 그 후 <입양>(1975)으로 메자로스는 여성 감독으로서는 처음으로 베를린국제영화제 최고상인 황금곰상의 주인공이 된다.

메자로스는 우리에게 좀 더 친숙한 이름일 프랑스의 아그네스 바르다, 페미니스트를 자처한 체코의 베라 치틸로바와 동시대를 살아낸 유럽의 대표적인 여성 감독이다. 그녀들이 활동을 시작하던 무렵의 영화계는 남성의 세계였고 여성 감독은 귀하다 못해 희귀한 존재였다. 그런 상황에서 그녀들은 서로의 존재를 강렬히 인식했을 것이다. 작업을 같이 하거나 작업의 결이 비슷한 건 아니지만, ‘나와 같은 여성 감독이 저 멀리서 영화를 만들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서로의 거울이자 의지와 자극이 됐을 게 분명하다. 안타깝게도, 지금 우리 곁에는 메자로스만 남았지만, 다행스럽게도 메자로스는 여전히 뜨겁다. 아흔 살 생일을 맞아 진행한 <가디언> 인터뷰에서 그녀는 이미 다음 영화의 시놉시스를 썼고 하루라도 빨리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의지를 강하게 내비쳤다.

메자로스의 초기 극영화에서 자기 충족을 향해 나아가는 여성을 만날 수 있다. 그녀들이 그리는 사랑, 연애, 결혼, 모성, 가족의 형태는 기성의 가족주의를 답습하거나 기존 질서로 편입하지 않고 섣불리 그 전복을 시도하지도 않는다. 대신 그 중간 지대 어딘가에서 자기만의 길을 모색하는 듯하다. 계급적, 계층적으로 다른 처지에 있는 메자로스의 여인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으며 그 영향 아래서 자기 길을 찾는다. 메자로스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자신의 집을 또 한 번 짓기에 이른다. 이른바 자기 반영적 일기 영화 연작의 시작이다. 헝가리와 유럽의 정치사와 가족의 비극적 역사, 그 속에서 삶의 유일한 불꽃이었던 영화를 향한 사랑을 극영화와 다큐멘터리 푸티지의 조합으로 다시 써 내려가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칸국제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을 받은 <내 어린 날의 일기>(1984)를 시작으로 <내 사랑의 일기>(1987), <내 부모님의 일기>(1990)에 이어 2000년 <어린 빌마(Little Vilma: The Last Diary)>까지 그야말로 대장정이 일단락됐다. 3부까지 영화의 중심 화자인 소녀 율리는 영화와 함께 성장했고 극 중 영화를 사랑하는 율리는 마침내 영화 안에서 자기만의 영화를 만들기에 이른다. 율리는 작가 메자로스의 페르소나, 메자로스와 역사를 잇는 영화적 영매인 셈이다.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영화를 통해, 자신을 가장 고통스럽게 한 역사를 증언하고 기억하고 기록한다는 건 얼마나 과감하고 무모한 일인가. 메자로스의 놀라운 결단과 뚝심 앞에 보는 내가 되레 단단해지는 듯하다. 역사의 무게에 짓눌리지 않고 맹렬히 살아남은 소녀는 여성의 이름으로 영화의 역사를 써 내려왔다. 여전히 현재진행형으로 자기를 넘어서려는 작가 마르타 메자로스의 다음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 이유다. 정지혜 영화 평론가

 

메건 투히, 조디 캔터

여성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 사람들 나는 유명인을 멘토로 소개하는 것이 늘 조심스럽다. 미투 운동으로 수많은 유명인이 나락으로 굴러떨어지기 전부터 그랬다. 우상을 세우고 무너뜨리는 것은 미디어의 주요 활동 중 하나다. 기자라면 그 과정에서 검증할 시간과 도구가 충분치 않거나, 석연찮은 구석이 있음에도 스스로 타협할 수밖에 없는 순간을 종종 맞는다. 내가 인터뷰한 정치인, 장인, 예술가, 연예인을 몇 년, 몇 달, 짧으면 며칠 후 사회면에서 보는 일도 종종 있었다. 성공한 여성 기업가가 알고 보면 직장 내 여성 착취 주범이거나 사방에 강연을 다니는 언론인과 교수가 사내에선 월급 루팡이라거나 훌륭한 예술가가 알고 보면 술버릇이 한심하다는 정도는 놀랍지도 않다. 하지만 냉소적으로 굴 필요는 없다. 나는 여전히 자신의 결함을 극복하기 위해 싸우는 훌륭한 사람이 많다는 것을 안다. 우리가 기억할 것은 멘토는 우상의 동의어가 아니며 우리는 그들로부터 긍정적 영감만 취하면 된다는 점이다. 여기에 합의한다면 우리는 무궁무진한 멘토를 찾아내고, 그들의 성취를 지표 삼아 더 멀리 나아갈 수도 있다.

최근 내 삶과 일에 가장 자극을 준 인물은 미국의 여성 저널리스트다. 영화 <그녀가 말했다> 실제 모델이기도 한 메건 투히(Megan Twohey)와 조디 캔터(Jodi Kantor)가 그들이다. 그들은 2017년 하비 와인스타인 사건을 탐사 보도해 퓰리처상을 받았다. 알다시피 수많은 영화인에게 용기를 주어 추가 폭로를 이끌어내고, 할리우드를 비롯한 세계 영화계가 성범죄 방지 시스템을 도입하게 만들고, 문화 예술계 안팎으로 미투 운동을 확산시키는 기폭제가 된 기사였다. <뉴욕 타임스>는 ‘언론계의 성배(마이클 코넬리의 소설 <시인>에 나온 표현)’라고까지 불리는 미디어다. 우리는 그런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냉혈한 엘리트고 조직의 후광을 이용해 쉽게 취재원에게 접근했을 거라고 상상한다.

하지만 메건 투히와 조디 캔터의 책, 그 책을 바탕으로 한 영화에서 드러난 캐릭터는 우리의 상상과는 조금 다르다. 조디 캔터는 그 전에 이미 미국 직장 내 여성 처우를 취재해 스타벅스, 아마존 등 굴지의 기업이 가이드라인을 재정비하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여자들로부터 성폭력 증언을 끌어내는 건 그에게도 힘든 일이었다. 조디 캔터는 도널드 트럼프 성폭력 폭로 기사를 쓴 메건 투히에게 도움을 청했다. 메건 투히는 그 폭로 기사로 큰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트럼프는 대통령이 되었고, 투히는 트럼프 지지자와 보수 언론으로부터 불링을 당하고 산후 우울증을 겪으면서 고비를 맞고 있었다. 조디 캔터는 하비 와인스타인 기사가 유명 여배우들과 한 명의 악당에 대한 것이 아니라 일하는 여성의 안전을 위협하는 시스템에 대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 취지에 공감한 투히는 성폭력 피해 여성의 증언을 끌어내는 노하우를 알려준다. ‘다른 여성을 돕는 일’이라는 점을 설득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 <뉴욕 타임스> 경영진과 편집부의 전폭 지원이 더해지면서 세상을 바꾼 기사가 탄생했다.

위대한 일을 해내기 위해 초인이 될 필요는 없었다. 영화 <그녀가 말했다>에는 조디 캔터가 애슐리 주드의 실명 인용 허가를 받고 편집부에서 울음을 터뜨리는 장면이 나온다. 그들은 그렇게 끝없이 거부당하고, 아찔한 실수를 하고, 자책하고, 두려움에 떨고, 좌절하면서도 앞으로 나아갔다. 미국과 달리 ‘나라를 구한 언론’이라는 신화적 서사가 존재하지 않는 대한민국에서는 그저 부러운 이야기다.

여기까지가 대중에게 알려진 스토리다. 이 이야기에서 너무 아름답고 감동적이라 동화처럼 보일 지경인 대목을 거둬내보자. 정의 구현에 나선 기자들, 자신을 위해서라면 못할 행동을 다른 여자들을 위해 해낸 여자들, 그 용기가 모여 이뤄낸 커다란 변화… 그 모두를 제거한 뒤에도 한 가지 교훈은 남는다. 메건 투히와 조디 캔터가 자기 일을 정확히 아는 사람들이었다는 점이다. 나는 영어에서 ‘일을 잘한다’가 ‘They know what they do’라고 표현되는 것에 흥미를 느낀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들은 언론이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 그 안에서 자신의 역할이 무엇인지, 조직의 힘을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 심지어 자신의 불완전함을 극복하기 위해 누구에게 도움을 청해야 하는지를 알았다. 나는 이것이 나 자신을 비롯해 모든 사회인이 기억하고 본받을 자세라고 생각한다. 크든 작든 자기 일의 맥락을 알고, 그것이 사회에 미칠 영향을 알고, 긍정적 결과를 위해 당장 필요한 일을 하는 것. 인류 전반의 멍청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힘은 결국 여기에 있지 않겠는가. 이숙명 칼럼니스트 (V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