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뉴스

인공지능이 트렌드를 분석한다면?

2023.02.23

by 안건호

    인공지능이 트렌드를 분석한다면?

    챗GPT(ChatGPT)를 아시나요? 오픈AI가 개발한 대화형 AI 서비스, 챗GPT는 거의 모든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습니다. ‘안티 패션이 뭐니?’, ‘2023년의 패션 트렌드는?’ 같은 질문에도 막힘없이 답변을 쏟아내죠. 이 정도라면 실직자가 되는 건 시간문제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 정도입니다.

    AI가 모든 것을 지배하는 디스토피아가 현실이 되는 지금, 주목해야 하는 실험이 있습니다. 아티스트 잭 크레빗(Zak Krevitt)이 <보그 US>와 협업한 ‘가장 트렌디한 룩 11’ 프로젝트죠. 11개 룩의 탄생 과정은 매우 간단합니다. 남성복 시즌이 끝난 뒤 <보그> 에디터가 트렌드를 분석해 9개 키워드를 뽑아냈습니다. 크레빗은 이 9개 키워드와 이미지를 바탕으로 AI 모델을 트레이닝시켰고요. 그 결과는? 가장 현대적이고 직관적인 ‘트렌드 리포트’의 등장이죠!

    @eljosecriales

    @eljosecriales

    AI가 꼽은 11개 룩을 살펴볼까요? 위의 사진은 모두 AI가 만든 합성물, 즉 허구라는 것을 염두에 두시고요!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치마를 입은 AI 모델들입니다. 특히 타탄 패턴 팬츠 위에 치마를 레이어드한 룩은 지방시 컬렉션을 연상시킵니다. 구찌와 마틴 로즈가 선보인 ‘남성용 미디스커트’에서 직접적으로 영감을 받은 듯한 룩도 있죠.

    Courtesy of Givenchy

    Courtesy of Givenchy

    Courtesy of Gucci

    Courtesy of Martine Rose

    @zak_krevitt

    @eljosecriales

    지난 시즌에는 프라다와 생 로랑을 필두로 유독 타이트한 실루엣이 눈에 띄었죠. 좀 더 전형적인 남성복 실루엣으로의 회귀라고 할까요? AI가 이 트렌드를 놓칠 리 없습니다. 후드를 뒤집어쓰고 롱 드레스를 입은 룩에서는 젠더리스라는 키워드도 읽을 수 있죠.

    Courtesy of Prada

    @zak_krevitt

    Courtesy of Saint Laurent

    Courtesy of Dries Van Noten

    시스루 톱 또한 빼놓을 수 없죠. 여성복 컬렉션에서 시작된 이 섹시한 트렌드를 남성복 디자이너들 역시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있거든요. 생 로랑의 시스루 톱과 드리스 반 노튼의 트리플 벨트 팬츠가 특히 인상적이었는지, 크레빗의 AI 모델은 둘을 합쳐놓은 듯한 룩을 선보였습니다.

    @zak_krevitt

    @zak_krevitt

    @zak_krevitt

    @eljosecriales

    이 밖의 룩 역시 다양한 트렌드를 충실히 반영합니다. 디올, 펜디, 돌체앤가바나 등 여러 브랜드의 룩을 연상시키는 것은 물론이고요. 이미지로 이뤄진 리포트이니, 웬만한 트렌드 분석 글보다 이해하기 쉽고 효율적이죠.

    잭 크레빗은 이번 프로젝트가 패션에 관한 것이 아니라 데이터 과학과 패션을 엮은 실험의 일종이라 밝혔습니다. AI 관련 기술의 급격한 발전에 우려를 표하는 사람들은 이해하지만, 그럴 필요 없다는 말과 함께 말이죠. 그도 그럴 것이 AI가 선보인 룩은 ‘사람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는 괴물 같은 인공지능’이 무에서 유를 창조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보그> 에디터와 잭이 AI 모델에게 트렌드 관련 키워드와 컬렉션 이미지를 제공했기 때문에 가능했죠.

    챗GPT는 ‘모 가수가 쓸 법한 가사를 써줘’라는 요구 역시 충실히 이행합니다. 가수 닉 케이브는 챗GPT가 쓴 ‘닉 케이브식 가사’가 적힌 팬레터를 받자, 이를 공공연히 비판했죠. 창작, 특히 작곡은 고통에서 비롯되기에 아무 경험도 없고 감정도 느끼지 못하는 알고리즘이 쓴 가사는 ‘쓰레기’일 수밖에 없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워딩이 조금 과격하긴 하지만, 닉 케이브의 이야기는 패션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습니다. 옷을 만들어내고 컬렉션을 선보이는 것 역시 누군가의 고통과 감정, 경험이 동반되지 않는다면 불가능한 일이죠.

    수십 개 컬렉션을 분석하고 어떤 종류의 톱이 가장 자주 등장했는지, 팬츠의 평균 기장은 몇 센티였는지와 같은 리포트는 AI가 작성하는 것이 훨씬 정확할 겁니다. 하지만 어떤 컬렉션이 왜 감동을 주었으며 역사에 남을 가치가 있는지에 대한 글을 쓰는 것은 AI보다 사람이 하는 게 더 맞습니다. 사람이 만든 것은 사람이 가장 잘 알아보는 법이니까요.

    에디터
    안건호
    포토
    Courtesy Photos, Instagram

    SNS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