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반가웠어요, 비비언 고닉!

2023.02.18

by 정지혜

    반가웠어요, 비비언 고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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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에 번역된 비비언 고닉의 책 <사나운 애착>(글항아리, 2021)과 <짝 없는 여자와 도시>(글항아리, 2023)를 차례로 읽었고, 이제 그 마지막 <아무도 지켜보지 않지만 모두가 공연을 한다>(바다출판사, 2022)를 펼쳐 들었다. 1935년생으로 저널리스트, 비평가, 에세이스트로 활동해온 고닉의 이력을 생각하면, 그녀의 방대한 작업의 극히 일부만 읽은 셈이다. 그럼에도 이 세 권을 관통하는 건 “나는 여자이고 뉴요커이며 주로 글을 써서 먹고사는 사람”(p. 177)이라는 자기 정체성의 자각이다. 아마도 고닉의 다른 글과 책에도, 그 사이사이에도 이런 생각과 경험이 유유히 흐르고 있지 않을까 싶다. 무엇보다 한 작가의 책을 거듭해 읽을 때만 얻을 수 있는 즐거움이 있다. ‘아, 지난번 책에서 고닉이 걸었던 뉴욕의 그 거리잖아. 아, 정말이지 엄마와 친구 레너드는 고닉의 인생에 상당한 지분을 가진 인물들이네. 아, 이 문장을 쓸 땐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 게 분명해’와 같은 나름의 알은체를 하고 알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이다. 괜히 고닉과 나 사이에 내적 친밀감이 생긴 것 같다.

    비비언 고닉의 <아무도 지켜보지 않지만 모두가 공연을 한다>(바다출판사, 2022) @badabooks

    이번 책에는 일곱 편의 에세이가 실렸다. 그 가운데는 그녀 삶에 깊이 자리 잡은 페미니즘에 관한 이야기도 있다. 1970년 11월 고닉은 <빌리지 보이스>의 취재차 여성 해방 운동가들을 만난다. 슐라미스 파이어스톤, 앨릭스 케이츠 슐먼 등 전설의 이름들. 고닉이 ‘계시적 첫 순간’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강렬한 경험이었지만, 이 만남의 기쁨이 고닉 삶의 진정한 가치로 진화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내 삶을 지배하는 힘은 오직 나 자신의 생각을 꾸준히 다스리는 일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는 통찰이었다. 말로 하기는 쉽지만 해내려면 평생이 걸리는 일이었다. 나는 마치 처음인 것처럼 책상 앞에 앉아 생각을 유지하는 법을 배우고자 했다. 생각을 통제하고, 확장하고, 내게 도움이 되도록 만드는 법을. 그러나 실패했다. 다음 날 나는 다시 책상 앞에 앉았다. 또 실패했다. 사흘 뒤 나는 다시 책상으로 기어갔고, 패배한 채 책상을 떠났다. 하지만 그다음 날이 되자 내 머릿속의 안개가 걷혔다. 다루기 힘들게 느껴졌으나 실은 간단했던 글쓰기에 대한 문제 하나를 풀자 가슴에 얹혀 있던 돌 하나가 치워지는 것 같았다. 숨쉬기가 수월해졌다. … 종교적 열정으로 만들어진 수사법은 내 안에서 사라지고 매일의 노력이 가져다주는 안심되는 고통이 그 자리를 채웠다. … 나를 구원해주는 것은 ‘일’이 아니었다. 매일의 고생스러운 노력이었다. 날마다 노력하는 일은 내게 일종의 연결이 되었다. 연결되는 감각이란 강해지는 느낌이었다. 강해진 나는 내가 독립적인 사람이라고 느끼기 시작했다.”(p. 58~59)

    @badabooks

    고닉은 매일 자신과 마주했고 싸워나갔다. 그 힘으로 고닉은 뉴욕에서 혼자 살며 계속 글을 썼던 게 아닐까. “내가 받아들일 수 있는 가장 힘겨운 진실을 꾸준히 바라볼 때 나는 조금 더 나 자신에 가까워진다”(p. 61)고 말하듯, 그녀는 ‘힘겨운 진실’을 외면하지 않았다. 외면하지 않았기에 세상과 연결될 수 있었다. 연결됨을 느끼기에 비로소 두려울 게 없었다. “나를 자기 연민에서 구하고,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싶은 마음”(p. 61)과 만난 것이다. 고닉이 이해하고 받아들인 페미니즘이란 구체적이고 일상적인 매일의 일상을 살아가게 하는 힘이다.

    편지 쓰기에 관한 단상을 풀어낸 에세이도 인상적이다. 한때는 삶의 한 방식이던 편지 쓰기가 어느 순간부터 전화로 대체된 걸 두고 생각을 이어나간다. (휴대전화 문자와 SNS 등으로 수시로 연락을 주고받는 지금의 상황 앞에서 고닉은 어떤 생각을 할까.) 과연 무엇이 달라진 것일까. “편지 쓰는 일은 내가 상상해낸 다른 사람의 존재 앞에서 나의 생각들에 혼자 몰두하는 일이다. 나는 상상 속에서 나 자신의 이야기 상대가 된다. … 그 즐거움은 말로 하는 대화가 데려갈 수 없는 곳으로 그를 데려갔다. 그로 하여금 자신 안에 있는, 편지가 아니었으면 갈 길이 없었을 장소들에 비집고 들어가게 했다. 그 편지들은 세상을 이해하고, 자신의 혼돈을 꿰뚫어 보며, 쓰는 것으로부터 자신이 무엇을 느끼는지 알아내고자 한 갈망의 기록이다. 다른 종류의 내적인 추구다. 다시 말해, 지도에 없는 공간으로의 여행이다.”(p. 235)

    통찰이 어린 이런 글을 써 내려가던 고닉은 곧이어 자신이 얼마나 모순적인 인간인지를 거리낌 없이 폭로한다. “나는 편지 보내는 일을 감행해보고 싶었지만, 그 마음이 그렇게 절실하지는 않았다. 이야기를 하고픈 충동을 잃는 일은 힘들었지만, 감수할 만한 고통이었다. 감수할 만한 고통이었기에 나는 그것을 감수하며 살고 있다. 그것을 감수하며 살기에 나는 나도 모르게 속해 있는 세계에서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p. 236~237) 고닉의 글이 주는 매력은 여기에 있다. 한편으로는 사태를 둘러싼 깊은 이해를 유도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신랄한 자성의 목소리 내기, 그리고 이 둘 사이를 거침없이 오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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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진실로 만들어낼 수 있는 단 한 가지는 우리가 쓴 작품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지성과 상상력과 손으로, 니체가 말한 것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사숙고를 거쳐 해낸 작업들이 결국에는 세상을 다시 만들어냅니다.” 작가 에드먼드 윌슨의 말을 인용하던 고닉은 이번에도 재빨리 다음과 같이 자신을 돌아본다. “그와는 반대로, 작업을 하지 않는 일, 심사숙고를 회피하는 일 역시 세상을 만들어내는 일이다. 편지를 쓰고자 하는 욕구가 내 안에서 유산될 때마다 나는 내가 비난하는 세상을 만들어낸다. 이야기를 하고픈 충동을 표류시킨다. 소음이 세상에 만연하게 내버려둔다. 편지 쓰기가 고귀한 일인 게 아니다. 자신을 온전하게 표현할 수 있는 사람으로 남아 있는 것이야말로 고귀한 일이다.”(p. 237)

    읽기를 통해 한 사람과 만났다. 뉴욕에서 혼자 살며 글을 쓰는 이 여성은 자신을 온전히 드러내기 위해 부단히 실패했다. 계속 뉴욕을 걸었고, 다시 책상 앞으로 돌아와 글을 썼다. 만나서 반가웠어요, 비비언 고닉!

    프리랜스 에디터
    정지혜(영화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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