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드

디저트 세계의 클래식

2023.05.17

by 조소현

    디저트 세계의 클래식

    인스타그램의 현란한 디저트 사이 은은하게 빛나는 박준우의 클래식한 디저트.

    효율적인 운영을 위해 식당에 브레이크 타임이 필요하다는 데 동의한다. 하지만 세상이 정해놓은 세끼 식사 시간 외에도 칠링한 화이트 와인 한 잔에 치즈 몇 조각이 필요한 순간이 있다. 테라스에 앉아 햇살 섞인 바람을 맞으며 목구멍으로 이들을 넘길 때 복잡하던 머리는 비워지고 텅 빈 마음은 차오른다. 박준우 셰프의 서촌 오쁘띠베르(Aux Petits Verres)는 그런 종류의 여유를 선사하는 곳이다. 정오부터 늦은 밤까지 언제든.

    오쁘띠베르 1층의 커다란 창으로는 사계절이 지나간다. 오랜 세월 중국집이던 건물의 변모가 흥미롭다.
    2층은 와인을 마실 수 있는 공간으로 꾸몄다. 창밖 한옥 지붕 풍경과 나무와 청색이 어우러진 인테리어가 아늑하다.

    디저트에 애정이 있는 사람이라면 2013년경 레몬 타르트를 맛보기 위해 오쁘띠베르에 길게 늘어선 줄에 동참한 역사가 있을 것이다(2013~2015년까지 운영했던 오쁘띠베르는 2023년 다시 문을 열었다). 하얀 장미꽃 같은 모습을 한 레몬 타르트는 박준우가 <마스터 셰프 코리아>에서 선보인 덕에 스타처럼 떠올랐는데, 그 맛은 화려하기보다 달콤하고도 쌉쌀하며 신맛이 났다. 한 입에 매혹하기보다 두고두고 찾게 되는 맛. 어떤 음식을 먹은 후에도 자연스럽게 이어진 맛. 혹은 공복에도 떠오른 맛. 젤라틴 없이 오로지 레몬과 달걀 맛에 집중한 레몬 타르트는 박준우가 벨기에에 거주하던 시절 친구로부터 배운 전통 레시피를 따랐다. 덕분에 레몬 타르트는 유행으로 끝나지 않고 9년이 지난 지금도 오쁘띠베르의 메뉴판 한쪽에 자리한다. 오쁘띠베르의 정체성은 인생의 일부분을 유럽에서 보낸 박준우의 기억에서 출발한다. 학창 시절 골목을 누비며 들락거린 유럽의 카페에 대한 노스탤지어다.

    2013년 서촌에 줄 서기 열풍을 견인한 타르트 3종. <마스터 셰프 코리아> 미션에서 선보인 레몬 타르트가 특히 인기가 높았다.

    오랫동안 중국집이던 건물에 새롭게 자리한 오쁘띠베르의 메뉴는 예전보다 한층 확장되었다. 레몬 타르트를 비롯, 타르트 3종은 건재하고 ‘메르베이유’와 ‘피낭시에 가르니’를 새로운 시그니처 메뉴로 선보인다. 슬라이스한 초콜릿을 뿌린 메르베이유는 프랑스 북부와 벨기에에서 사랑하는 전통 디저트다. 머랭 쿠키와 샹티이 크림을 샌드해 만드는데 ‘경이롭다’는 이름처럼 경이로운 기쁨을 안긴다. 박준우는 완전히 ‘시골풍’으로 선보인다고 설명했는데, 실제로 ‘핫플’ 카페의 모던한 메르베이유와 비교해보면 달콤하면서도 담백해서 오히려 여운이 남는다. ‘피낭시에 가르니’는 박준우가 자체 개발한 디저트로 크림을 채운 피낭시에다. 바닐라, 라즈베리, 피스타치오 등 종류만 10여 가지가 넘는데 ‘가득 차다’라는 ‘가르니’ 뜻 그대로 크림이 가득 들어 있다. 프랑스 전통 파이 ‘키슈’ 역시 인상적인 메뉴다. 바삭한 반죽에 대파, 염소 치즈, 연어, 엔다이브 등 다양한 재료를 넣어 달걀과 생크림을 채워 구웠는데, 그 자체로 식사가 될 정도로 든든하다. 그 밖에도 바닐라 에클레르, 머랭 케이크, 초콜릿 슈는 물론 알코올이 들어 있는 바바 오 럼, 초콜릿 트러플까지 선택지가 다양하다. 음료 메뉴에서도 느껴지는 건 파리 뒷골목 어딘가에서 들어간 카페의 풍경이다. ‘아메리카노’가 아닌 ‘카페 알롱제’가, ‘카페 라테’가 아닌 ‘카페 오레’가 달콤한 디저트와 함께한다. 공간 크기와 관계없이 믿음직한 메뉴로 가득한 유럽 카페처럼 이곳에도 박준우와 소믈리에가 엄선한 와인과 맥주 리스트가 빼곡하다. 치즈, 올리브 등 곁들일 수 있는 간단한 안주는 물론 파스타, 가지 오븐 구이 같은 온기 있는 음식도 내놓는다.

    새로운 시그니처 메뉴로 떠오른 메르베이유. 라즈베리, 레몬 등 4종이 있다.
    또 다른 시그니처 메뉴 피낭시에 가르니. 10여 종을 선보인다.
    프랑스 전통 파이 키슈. 쌉쌀한 맥주에 곁들이기 좋다.
    치즈, 샤퀴테리, 올리브 등 6,000~7,000원대로 즐길 수 있는 가벼운 안주. 그라스 와인을 권장하는 카페다운 메뉴다.

    박준우는 “유럽 지방 도시의 투박한 디저트와 음식에 대한 향수가 있다. 우리나라로 치면 동네 백반집에서 먹던 맛을 재현하는 셈인데 요즘 카페가 워낙 모던함을 추구하다 보니 오히려 클래식함이 개성이 됐다”며 오쁘띠베르를 설명했다. 9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의 가게 이름은 ‘작은 유리잔’이라는 뜻의 오쁘띠베르다. 프랑스 카페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집에만 갇혀 있던 여성들이 카페가 생기면서 바깥세상으로 나갔다고 전해진다. 이후 예술가들의 사교의 장으로 더 널리 퍼졌고. 공간과 공기, 음식과 음료로 위무하고 위로받는 곳. 오늘날 카페의 ‘작은 유리잔’이 우리에게 선사하는 건 내면의 외출인지도 모르겠다.

    오쁘띠베르가 박준우의 유럽 경험에서 비롯되었듯 그의 요리에는 맛있는 사연이 있다. 얼마 전 출간한 요리책 <식탁 위의 작은 순간들(Petits Moments à Table)>에는 36가지 레시피와 그에 얽힌 이야기, 와인 페어링이 담겨 있다. 이야기꾼으로서 그의 면모를 확인할 수 있는 책이다.
    포토
    오쁘띠베르, 더테이블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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