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호기심 넘치는 긍정주의자, 마크 뉴슨과 함께 보낸 오후

2023.05.27

by 김나랑

    호기심 넘치는 긍정주의자, 마크 뉴슨과 함께 보낸 오후

    2023 밀라노 디자인 위크에서 루이 비통은 마크 뉴슨과 협업한 ‘호기심의 트렁크’를 선보였다. 호기심 넘치는 디자이너이자 인터뷰 중에도 샴페인을 놓지 않는 긍정주의자와 함께 보낸 오후.

    밀라노의 팔라초 세르벨로니(Palazzo Serbelloni) 안뜰에 들어서자 거대한 은빛 건축물이 압도적이다. 루이 비통 메종의 정규 프로그램인 노마딕 건축(Nomadic Architecture)의 일환으로 프랑스 건축가 마르크 포른(Marc Fornes)이 설계한 노마딕 파빌리온(Nomadic Pavilion)이다. 뉴욕을 기반으로 한 프랑스 건축가 마르크 포른 특유의 유기적이고 독특한 형태의 건축물로, 얇게 양극 산화한 알루미늄 1,600개로 만들었다. 어떤 알루미늄은 두께가 1mm에 불과하다. 입장하니 드니 빌뇌브 감독의 영화 <컨택트>의 우주선 안에 들어선 것처럼 신비롭다. 그간 루이 비통 메종은 샬롯 페리앙(Charlotte Perriand)의 ‘물가 위의 집(La Maison au bord de l’eau, 2015)’, 마티 수로넨(Matti Suuronen)의 ‘푸투로 하우스(Futuro House, 2017)’, 조르주 캉딜리(Georges Candilis)의 ‘헥사큐브(Hexacube, 2018)’, 반 시게루(Shigeru Ban)의 ‘페이퍼 템퍼러리 스튜디오(Paper Temporary Studio, 2019)’를 선보였고 지난해에는 스튜디오 로켈(Studio Rochel)의 노바 하우스(Nova House)를 피아차 산 바빌라(Piazza San Babila)에서 공개했다.

    루이 비통은 팔라초 세르벨로니에서 또 하나의 작품을 선보였다. 마크 뉴슨이 디자인한 ‘호기심의 트렁크(Cabinet of Curiosities)’다. 루이 비통과 마크 뉴슨이 협업해온 ‘페가수스(Pégase)’ ‘호라이즌(Horizon)’ 러기지 라인을 잇는 신작이다. 호기심의 트렁크는 모노그램 패턴 장식의 클래식한 외관부터 소유욕을 자극한다. 180도로 열리는 내부는 메탈에 가죽 커버를 씌운 큐브 19개로 이뤄진다. 세 가지 컬러와 크기로 출시된 큐브를 사용자가 커스터마이징할 수 있는데, 1,000여 가지의 다른 모양이 가능하다. 총 40개만 출시하며, 모두 마크 뉴슨의 서명을 새긴 금속 장식으로 마감한다. 그의 서명이 오브제를 넘어 작품이라는 의미니까. 세계적 명성과 반하게(혹은 어울리게) 직접 만난 그는 고향인 호주의 날씨처럼 환하고 에너제틱했다. 마린 스트라이프 티셔츠를 입고 샴페인을 즐기던 그가 대답을 이어갔다.

    루이 비통과 협업해온 이전의 트렁크는 여행자를 위해 좀 더 가볍고 기능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했다. 여행이 잦고, 이동 시 짐을 최소화하는 당신의 생활양식에서 기인했다. 반면 호기심의 트렁크는 가구나 조각품처럼 육중한 무게와 클래식한 외관이 압도적이다. 이동보다는 장식 기능을 중시한 것 같은데? 그간 루이 비통과 협업한 작품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일단 무겁다(웃음). 기능을 가진 작동하는 조각품이랄까. 만약 당신이 호기심의 트렁크를 소유한다면 내부는 비워둬도 좋다. 솔직히 난 트렁크 안에 아무것도 없을 때가 더 사랑스럽다. 그런 면에서 더 조각품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이 안에 많은 것을 수납할 수 있기에 더 매력적이다. 비싼 것, 싼 것, 귀한 것, 추억 어린 것, 좋아하는 책을 넣고 원하면 개개인의 보물 상자로 만들 수 있다.

    당신이라면 호기심의 트렁크에 무엇을 넣겠는가? 처음엔 완전히 비워둘 거다. 아마 1년도 안 돼 꽉 찰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대부분 여행지에서 사온 물건이 될 거다. 나는 사물과 장소를 연관 짓곤 한다. 내가 머문 곳, 내 과거, 내 역사를 상징적인 물건으로 기념한다. 그래서 집에 자잘한 물건이 어디 둬야 할지 모를 정도로 많다. 아마 이것들이 호기심 트렁크에 한자리씩 차지할 거다. 이 트렁크의 또 다른 장점을 알려줄까? 내 과거사(물건)를 그만 보고 싶다면 트렁크를 접으면 된다. 게다가 무거워서 누가 훔쳐갈 수도 없다.

    트렁크 내부의 색감이 노랑, 빨강, 초록 등 경쾌하다. 이 색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처음엔 모든 색을 다 시도했고 선택이 곤란할 정도로 다 좋아 보였다(웃음). 무엇보다 노란색만큼은 빼고 싶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색이기도 하고 왠지 루이 비통과 어울린다. 노란색은 밝고 활기차고 현대적이면서도 전통적이기 때문이다.

    호기심(Curiosities)이란 수식어가 붙은 이유는 트렁크의 어떤 특성 때문인가? 프랑스어로 ‘Cabinet des Curiosités’란 표현은 역사적인 의미가 있다(16~17세기 탐험가들이 자신들의 캐비닛에 희귀한 물건을 전시했다). 당시 트렁크에는 궁금하고 신기하고 희귀한 것으로 가득했다. 어떨 땐 어디서 왔는지, 왜 갖고 있는지 알 수 없어 트렁크의 주인에게도, 보는 이에게도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그래서 호기심의 트렁크가 이 작품에 어울리는 멋진 이름이라고 생각했다.

    당신은 호기심이 많은가? 물론! 호기심 탐구는 디자이너가 가져야 할 덕목이다. 궁금해하는 것을 넘어서 ‘왜 이럴까?’ ‘왜 더 좋을 수 없지?’ 같은 질문을 던진다. 세상이 완벽하다면 내 직업은 더 이상 필요 없을 거다.

    주로 비행 중 작업한다고 들었다. 영화도 보지 않고 머릿속으로 계속 작품을 구상하는 ‘상상의 낙서’를 한다. 계속 무언가를 생각하고 창조하는 과정이 힘들진 않나? 이를 계속할 수 있는 원동력은 호기심 말고 또 무엇인가? 디자이너는 열정이 필요하다. 뭔가 하고 싶다는 욕구 말이다. 하나 더 덧붙이면 세계를 여행하며 영감을 받는다. 그곳만의 문화, 그 문화가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 생경한 언어, 다른 표현 방식이 자극을 준다. 디자이너는 다른 문화가 일으키는 충돌,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 그것이 이 직업의 매력이다.

    디자인할 때 컴퓨터보다 노트 스케치를 고집하는 이유는? 앞으로도 펜과 종이를 많이 사용할 거다. 스튜디오에서 나 말고는 모두 컴퓨터를 사용한다. 인내심이 부족한 나는 컴퓨터가 느려서 쓸 수 없다. 아날로그 방식으로 빨리 일을 처리하고 싶다. 내가 직원들과 세대가 다르기 때문이다(웃음). 만약에 컴퓨터 모니터에 손을 넣어서 일을 처리할 수 있다면 그때 쓸 거 같다. 무엇보다 디자인할 때 정교한 컴퓨터 프로그램이 도움을 줄 수도 있지만, 그것이 창의성을 발현시키지 않는다.

    작업 말고 생활도 아날로그 방식을 선호하는가? 인터넷이나 TV는 거의 보지 않고 책을 가까이하고 자연으로 여행을 떠나는 것처럼 말이다. 물론 그렇다. 시간이 갈수록 더 아날로그화되는 것 같다. 예를 들어 문자보다 전화를 선호한다. 아니, 전화가 더 빠르고 자연스럽지 않나? 요즘은 다들 전화를 기피하는 것 같다.

    디자이너로서 고민은 무엇인가? 혹은 개선하고 싶은 것은? 항상 10~15개 프로젝트를 동시에 진행한다. 하나가 마무리되면 다른 일은 중간 정도 진행됐고, 새로운 제안이 들어온다. 그것도 각기 다른 나라, 장소, 사람들과 말이다. 나는 “많은 일이 일어나고 있다”고 표현하곤 한다. 한마디로 바쁘지만 그것을 굳이 개선하고 싶지 않다.

    작업량이 주는 스트레스는 어떻게 감당하는가? 직업이니까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40여 년 가까이 해왔기에 나름의 체계가 생겼다. 시작할 때와 멈출 때를 잘 안다. 20년 전과 비교하면 작업 속도가 두 배 빨라졌다. 효율은 높아졌고. 게다가 나는 하나에 오래 집중하면 금세 질려버린다. 그래서 일부러 다른 일을 벌이는지도 모른다.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갖고 늘 학습하려 한다. 아마 세상에서 배우기를 가장 좋아하는 사람 중 한 명일 거다. VL

      사진
      COURTESY OF LOUIS VUITT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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