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 묻지 마세요!”
요즘 애들이 다른 만큼 요즘 시니어 세대도 다르다.
나는 40대 중반이다. 이름 모를 들꽃이 예뻐 보이고 자꾸만 단톡방에 ‘좋은 생각’을 발췌해 올리고 싶은 나이라고 짐작하면 틀렸다. 대학교수 친구는 고교 동창 단톡방에 K-팝 댄스 커버 영상을 올린다. 영상이 주로 강사님과의 1:1 레슨 장면인 걸 보면 역시 늙어서 하는 취미가 돈을 팍팍 쓸 수 있어서 재미있다는 생각이 든다. 또 다른 친구는 메타버스에서 K-팝 아이템 스토어를 운영한다. 흔히 밀레니얼을 인터넷 시대의 총아로 묘사하지만 인터넷 사용 능력만 따지면 PC 통신, 조립 컴퓨터, 설치형 홈페이지와 블로그 시대를 겪어온 X세대가 그들에 뒤지지 않는다. 친구의 주 고객은 초등학생이다. 친구 생각으로는 그렇다. 가끔 라이브 쇼를 진행하는데 고객들로부터 춤춰달라, 애교 부려달라 요구를 받으면 자괴감이 든다고. 하지만 고객들은 내 친구가 몇 살인지 알 길이 없고, 초등학생처럼 보이는 그 고객들도 실은 뒤늦게 K-팝에 빠진 영감이거나 메타버스 시장조사 중인 마케터일 수 있다. 그들이야말로 컴퓨터 뒤에서 내 친구를 향해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역시 요즘 초딩은 달라. 벌써 인터넷으로 돈을 벌잖아.” 멀티 정체성 시대에 나이가 웬 말이냐. 동창 모임에 다녀온 나는 이 시대 ‘나잇값’의 변화를 실감했다.
얼마 전 TV에서 서핑하는 70대 여성을 보고 ‘요즘 할머니들은 다르네’라고 생각했다. 아마 내 친구들도 ‘요즘 노인’의 함의를 갱신하며 늙어갈 것이다. 조 바이든은 취임할 때부터 나이가 많다고 우려를 샀다. 연임에 도전할 때가 되자 “나도 내가 몇 살인지 모른다”며 관련 질문을 피했다. 그러니 심각한 국제 정세를 고려해 여기서 그의 나이를 밝히진 않겠다. 아마 60에서 100살 사이겠지. 어차피 그게 그거다. 세상은 항상 ‘요즘 애들’에게 베이비 부머니 X세대니 밀레니얼이니 젠지니 레이블을 붙이고 열렬히 분석하지만 그 ‘요즘 애들’이 커서 중년이 넘어가면 ‘기성세대’로 대충 뭉뚱그려서 유행 지난 장난감 상자에 던져 넣고 잊어버린다. 꽉 막히고 노쇠하고 감성 없고 촌스럽고 발가락 양말 신고 꽃 사진이나 수집하는. 그런데 막상 내가 그 퇴역 장난감 상자에 뛰어들고 보니 여기도 꽤나 여러 부류가 있어서 놀라곤 한다. 갓 70 된 내 양친이 이유 없이 골골대거나 사소한 신체 기능을 잃어가는 것과 달리 나이를 잊은 그분이 정정하게 정치 활동을 하는 것만 봐도 나이로 사람을 평가하는 건 부질없다. 물론 이건 나이 든 내 생각일 뿐이다.
정대건의 소설 <GV 빌런 고태경>은 데뷔작으로 별 재미를 못 보고 좌절한 20대 영화감독이 ‘GV 빌런’ 고태경을 좇으며 삶의 희망을 발견하는 내용이다. 주인공은 영화 팬들에게 악명 높은 ‘GV 빌런’이 자기가 좋아했던 영화의 조감독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그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찍기로 한다. 그 선택에는 이러다 자기도 고태경처럼 업적 없이 늙어버릴지 모른다는 젊은 영화인의 공포가 담겼다. 소설은 구세대 영화인 고태경이 끝내 장편 데뷔를 포기하지 않고 시나리오를 써대는 모습을 민망하지만 숭고한 도전처럼 묘사한다. 고태경의 세계는 빛바랜 흑백사진처럼 낡고 멜랑콜리하다. 아주 재미있는 소설이다. 특히 내가 재미있게 본 포인트는 GV 빌런 고태경 씨가 불과 50대라는 사실이다.
고태경이 GV마다 베레모를 쓰고 등장한다기에 처음에 나는 그가 임권택 감독 세대인가 했다. 내 주변에도 20년 넘게 장편 데뷔를 못하고 시나리오만 줄곧 써대는 50대 영화인 친구들이 있는데 아무도 베레모 같은 건 쓰지 않는다. 동네방네 제작자니 투자자니 하는 사람들이 또래다 보니까 자기가 원로라는 의식도 없다. 20대부터 하던 일을 어쩌다 보니 50대까지 하고 있을 뿐 그 사이 철이 더 들지도 않았다. 그래서 나는 이 소설을 아주 좋아함에도 50대 영화인 친구들에게는 추천할 수 없었다. 그들은 아직 너무 팔팔한 나머지 자기들을 뒷방 늙은이 취급하는 사람이 있으면 상대를 창문 밖으로 메다꽂거나 3시간 동안 ‘데드풀’ 스타일 사캐즘을 늘어놓아 상대방 귀에서 피가 나게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내가 20대에 인터뷰한 당시 60대의 임권택 감독과 이태원 사장도 그랬다. “원로나 거장이란 소리 듣기 싫다. 같이 늙어가는 처지에.” 그땐 나도 어려서 ‘역시 성공한 어른들은 겸손하시구나’ 생각했는데 중년이 되어 나이에 대한 체감이 달라지고 보니 아찔하다. 우리는 같이 늙어가는 처지가 맞았고, 그때 그분들이 자신의 미래가 아닌 과거에만 관심 갖는 어린 기자를 창밖으로 메다꽂지 않은 데 감사한다. 60대면 젊다는 이 감각조차 내 나이를 말해주는 것이라면, 그 말도 맞다.
10대, 20대에는 네 살에 피아노곡을 만들었다는 모차르트의 일화 같은 것에 혹했다. 천재와 영재를 구분하지 못했다. 나이 먹은 사람들의 성취는 당연한 것이고, 어릴 때의 성취만 한 인간의 뛰어남과 특별함을 증명하는 줄 알았다. 12년 공교육으로 남은 평생이 결정된다는 가치관을 너무 강하게 주입받은 나머지 그 후의 인생은 자동으로 딸려오는 보너스인 줄 알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인가 중노년의 성취에 더 관심이 간다. 19세 임윤찬의 연주에 감탄하는 만큼 70대 정경화가 매일 연습을 한다는 소리에 감동한다. 세상이 알아주는 업적이 아니어도 좋다. 뒤늦게 한글을 배운 시골 할머니들이 비뚤비뚤한 글씨로 써 내려간 시를 보면 왈칵 눈물이 나고 40대, 50대에 자격증을 따거나 새로운 운동을 시작하거나 외국어를 배우는 사람들이 이제 나의 위인이다. 철저히 외모를 관리해서 20대처럼 차려입고 사진을 찍어 올리는 중년 인스타그램 인플루언서들에게도 경외심이 든다. 자기가 젊다는 착각에 빠져 20~30세 어린 직원에게 연애를 거는 식의 추악한 망동은 당연히 지양되어야 한다. 하지만 무언가 긍정적인 것을 시도하기에 ‘너무 늙었다’는 프레임에서 탈출하는 일체의 행동에는 박수를 보낸다. 그리고 날이 갈수록 그런 시도를 하는 사람들이 자주 눈에 띈다. 취업, 결혼, 출산, 육아, 내 집 마련 같은 통과의례가 과거보다 지연되기도 했고, 은퇴 후 생존 연령이 길어지면서 죽을 때까지 자기 갱신을 하며 인생을 이모작, 삼모작 해야 한다는 압박이 생긴 탓도 있다. 의료 기술, 미용 기술의 발달로 신체 노화가 느려지기도 했다.
올해 대한민국은 ‘한국 나이’를 버렸다. 전 국민이 한 살씩 차감되었다. 하지만 그 뉴스에 별 감흥이 없었던 건 이제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걸 진심으로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오래전 광고에서 저 문구를 들었을 때는 그저 돈 많고 놀기 좋아하는 주책바가지 아저씨들에게 아첨한다고만 생각했다. 성인으로 25년쯤 살아보니 나이 먹는다고 인간의 근본이 어디 가는 건 아니다 싶고, 50에도 60에도 나는 나겠구나 예상이 된다. 그렇다면 남들도 마찬가지가 아니겠나. 100살 노인에게도 아이 같은 면이 있고, 꿈이 있고, 호기심이 있고, 감성이 있고, 개성이라는 것이 있지 않겠는가. 그걸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보니 한두 살은커녕 수십 년 나이 차도 대수롭지 않게 된 것이다. 이런 마당에 국가가 나이 한 살 깎아주는 게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어차피 서른다섯 넘으면 자기 나이 기억 못해서 누가 물어보면 출생 연도부터 대답한 뒤에 부랴부랴 암산을 하고는 ‘내 나이가 이렇게 많았다니!’ 놀라는 게 인간 아닌가?
61세에 첫 오스카 주연상을 쟁취한 양자경은 “여성들이여, 당신들의 전성기가 지났다는 말은 믿지 마세요”라는 수상 소감으로 화제를 모았다. 물론 양자경이 보통 인간은 아니다. 그는 어지간한 20대 배우들보다 멋진 근육과 운동 능력을 가졌고, 여러 언어에 능통하고, 40년 동안 연예 활동과 사생활 모두에서 존경할 업적을 쌓았다. 하지만 할리우드에서는 무술 배우 이미지를 차용한 타입 캐스팅에 주로 소모되었고,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주연은 남성인 성룡에게 먼저 기회가 갔다. 양자경이 할리우드에서 대단히 중요한 작품을 맡거나 ‘예스 마담’ 시절에 준하는 화제성을 회복할 거라 기대한 사람은 없었다. 나이, 성별, 인종 모든 게 불리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그는 2022년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할리우드 역사를 다시 썼다.
모든 인간이 60대에 오스카 주연상을 받거나 우주 비행사가 될 수는 없다. 하지만 인간에게는 저마다의 전성기가 있고, 그게 언제일지는 아무도 모른다. 은퇴 후 40년을 더 살아내야 하는 시대에 나이 먹고 일 끊길 불안이나 건강 걱정 따위가 없을 수는 없다. 그건 나이 먹기의 유일한 단점이다. 하지만 걱정한다고 하늘에서 돈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생체 시계가 거꾸로 돌아가는 것도 아니다. 걱정할 시간에 운동하고 공부하며 미래의 전성기에 대비하는 게 낫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그것도 파이 소수점 아래 세 번째 숫자처럼 늘 가물거리고 도통 입에 붙지 않는. 그러니 우리에게 필요한 건 바이든 같은 자세다. 내 나이가 뭐, 왜, 어때서. (V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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