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뉴스

마메라는 이름의 고백 소설 – 마메 쿠로구치 디자이너, 쿠로구치 마이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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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메라는 이름의 고백 소설 – 마메 쿠로구치 디자이너, 쿠로구치 마이코

2023.10.06

by 안건호

    키가 자그마한 탓에 친구들로부터 ‘콩’이라는 뜻의 ‘마메(豆)’로 불렸다는 디자이너, 쿠로구치 마이코. 그녀는 스물다섯 살이 되던 2009년에 그 별명을 딴 브랜드, 마메 쿠로구치를 설립했다.

    마메 쿠로구치 디자이너 쿠로구치 마이코. Courtesy of Mame Kurogouchi

    이세이 미야케에서 2년간 일하며 경력을 쌓던 마이코가 어린 나이에 브랜드 론칭을 결심한 이유는 명확했다. 일본의 수공예 장인들이 사라져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후, 전통 공예 기법을 지켜야겠다는 생각에서였다.

    마메 쿠로구치 설립의 원동력이 사명감이었다면, 브랜드를 추진하는 힘은 일상에 있다. 숲이 울창한 나가노현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며 보았던 풍경, 현재는 삶 자체에서 찾아내는 아름다움이 마메 쿠로구치 컬렉션에 그대로 녹아 한 권의 자서전처럼 펼쳐진다.

    한적한 오후, 도산공원 근처 편집숍에서 마주한 쿠로구치 마이코(Maiko Kurogouchi)는 ‘마메’라는 별명처럼 자그마한 체구에 단정한 단발머리를 하고 있었다. 그녀는 일본에서 챙겨온 다기로 차를 내리며 <보그>가 던지는 질문에 답했다. 조곤조곤하지만, 울림이 있는 목소리로.

    만나서 반갑다. 한국은 처음인가?

    코로나 이전에만 몇 번 와본 적 있다. 오랜만에 방문하니 설렌다.

    고향이 나가노현이다. 패션을 꿈꾸기에 완벽한 곳은 아니었을 듯싶다. 성장기는 어떻게 보냈나?

    나가노현은 시골이기 때문에, 어릴 때는 패션이 무엇인지 정말 모르고 자랐다. 볼 수 있는 매거진도 없고, 쇼핑할 수 있는 곳도 없으니까. 하지만 나가노현은 풍경이 정말 아름답다. 봄여름에는 산이 아름답고, 겨울에는 눈이 잔뜩 내리고… 어릴 때는 자연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다. 농사를 짓던 할머니, 할아버지에게도 많은 것을 배웠고.

    패션 디자이너라는 꿈은 어떻게 키우게 됐는지 궁금하다.

    어릴 때부터 소꿉놀이를 하거나,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다. 특히 공주를 그리며, 예쁜 드레스가 여성을 더 아름답게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때부터 ‘드레스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문화복장학원(文化服装学院)에 진학한 뒤, 이세이 미야케에서 경력을 시작했다. 거기서도 정말 많은 것을 배웠다. 디자이너로서 갖춰야 할 애티튜드, 장인 정신의 중요성, 다양한 최신 기술을 알 수 있었다.

    2010년 마메 쿠로구치를 론칭할 때 고작 스물다섯 살이었다. 브랜드를 시작하기에는 어린 나이 아닐까.

    이세이 미야케에서 일할 때 일본 곳곳의 의류 공장을 돌며 수공예 장인들을 만났다. 대부분 나이가 정말 많은 분들이었다. 은퇴를 하며 폐업하는 공장도 여럿 있었고. 누가 뭐라도 하지 않으면 그들이 오랫동안 지켜온 기술과 장인 정신이 사라질 것이라고 여겼다. 일종의 사명감을 갖고, 다소 무모하게 마메 쿠로구치를 론칭했다.

    2023 F/W 컬렉션. Courtesy fo Mame Kurogouchi
    2023 F/W 컬렉션. Courtesy fo Mame Kurogouchi
    2023 F/W 컬렉션. Courtesy fo Mame Kurogouchi

    마메 쿠로구치만의 특징은 실루엣이다. 언제나 물 흐르는 듯 느껴지는 유려한 실루엣의 영감은 어디서 받나?

    첫 번째로 꼽을 수 있는 것은 일본의 전통 복식이다. 그중에서도 우아하고 편안한 기모노로부터 많은 영감을 받는다. 그다음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은 몸, 몸의 곡선이다. 인체의 곡선보다 아름다운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곡선 이야기를 꺼낼 줄 알았다. 컬렉션을 살펴보며 직선보다는 곡선을 선호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그 이유가 궁금하다.

    몸의 곡선과 옷이 그 곡선을 감싸는 방식에서 아름다움을 느낀다. 기본적으로 인체가 직선으로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에, 지나치게 직선적인 옷은 어색하게 느껴진다. 액자에 몸을 억지로 끼워 넣은 것 같은 느낌이라고 할까? 옷이란 인체 본연의 곡선을 가리는 것이 아니라, 살려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나 역시 여성으로서 많은 신체적 콤플렉스를 갖고 있었다. 그런 불안감을 감춰줄 수 있는 옷을 만들고 싶었다. 내가 지금 입고 있는 마메 쿠로구치의 옷이 내게 자신감을 심어주는 것처럼!

    항상 자신이 디자인한 옷을 입고 있는지?

    언제나 그렇다. 내가 직접 만든 옷을 입는 것만큼 즐거운 일도 없다.

    본명은 쿠로구치 마이코(Maiko Kurogouchi)지만, 어린 시절 별명 ‘마메(豆)’를 활용해 브랜드명을 지었다. 개인적인 경험, 감상에서 영감을 많이 받을 것 같은데.

    체구가 작은 탓에 친구들이 마메(콩)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마메라는 단어에는 많은 뜻이 함축되어 있다. 부지런하고, 충실하다는 뜻도 있다. 자수 기술처럼 섬세한 수작업을 좋아하기 때문에 브랜드명으로 제격이었다.

    브랜드 마메 쿠로구치는 내가 쓰는 사소설(마이코는 사소설(私小説)이라고 표현했다. 일본 특유의 문학 장르인 사소설은 작가의 경험을 토대로 쓴 일종의 고백 소설이다)과 같다. 내가 걸어온 길, 내가 사랑하는 모든 것을 브랜드에 담아내고 싶다. 바로 이 점이 마메 쿠로구치를 특별하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그건 쿠로구치 마이코밖에 할 수 없는 이야기니까!

    정확하다.

    개인적인 이야기가 담겨서일까? 컬렉션을 보며 무척 시적이라고 느꼈다. 어떤 면에서는 덜 파괴적이고, 어두운 앤 드멀미스터가 연상되기도 했고. 어떤 마음가짐으로 컬렉션을 구상하는지 궁금하다.

    누구나 그렇듯, 나 역시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을 지녔다. 하지만 나는 일상에서 마주치는 모든 것으로부터 아름다운 면을 찾으려 노력한다. 내가 최상의 상태에 있건, 최악의 상태에 있건 상관없이 말이다. 누구나 봤을 풍경과 사물에서 아름다움을 찾아 이를 표현하려 하기 때문에 시적이라고 느낀 게 아닐까?

    컬렉션을 구상할 때 늘 생각하는 것은 벤토(도시락)다. 쌀밥을 메인으로 하되, 쌀과 어우러지는 밑반찬이 다양하게 준비되어 있는 그런 벤토. 컬렉션은 잘 차려진 벤토 같아야 한다. 컬렉션의 ‘기본 아이템’은 쌀밥 역할을 한다. 어떤 컬렉션 피스와 매치해도 어울려야 하니까. 컬렉션의 색깔과 무드가 드러나는 아이템은 반찬이다. 이렇게 균형 잡힌 컬렉션을 선보이려고 한다.

    마메 쿠로구치는 최근 대나무와 관련된 공예 기법에 푹 빠져 있다. Courtesy of Mame Kurogouchi

    장인 정신과 수공예 역시 마메 쿠로구치의 키워드다.

    모든 아이템을 수작업으로 제작하는 건 불가능하다. 대량생산 역시 패션의 중요한 측면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브랜드의 시그니처가 된, 다양한 공예 기법이 들어가는 PVC 백 역시 초기에는 내가 전부 손으로 만들었다. 지금은 생산량이 훨씬 늘어 그럴 수 없지만, 결국 패션 아이템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사람의 손길을 거쳐야 한다. 내가 패션을 사랑하는 이유 역시 이런 면이다. 둘 사이의 관계를 설명하자면 패션이 수공예 기법의 ‘지킴이’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소중한 것들이 소실되지 않게 하는 그런 지킴이 역할.

    언제나 일본의 전통 공예 기법을 조명한다. 그 끌림은 어디서 오는지, 그리고 미래에 다른 나라를 방문해 그곳의 전통 공예 기법을 활용할 계획이 있는지 궁금하다.

    일본 공예에 끌리는 것은 본능과도 같다. 일본의 장인들을 만나고, 그들로부터 공예를 배워 컬렉션에서 선보이는 과정 자체가 재밌게 느껴진다. 많은 장인을 알게 될수록 끝 모를 일본 공예의 세계에 더 깊이 빠지는 기분이다. 물론 해외 수공예 기법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다. 물론 더 이상 조명할 일본의 장인들이 없다고 느껴지는 순간, 해외 장인들을 찾아 나서지 않을까?

    해야 할 숙제가 많다. 꾸뛰르에 대한 관심도 분명히 있지 않나?

    물론이다. 기회만 주어진다면 언제든지! 주위에 많이 소문내주길 바란다(웃음).

    오래된 공예 기법을 현대적으로 재탄생시키는 일이 쉽지는 않을 거다. 장인 정신이란 영원히 유효한 것이라, 현대적으로 만들 필요가 없을까?

    나 역시 같은 질문을 던진다. 평생 그 일만 해온 장인들과 함께 일하는 것은 분명 쉽지 않다. 존경심을 표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단지 장인들의 기술을 활용하는 것에만 그쳐서도 안 된다. 내가 찾아낸 정답은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아내는 것이다. 공예 기법을 현대적으로 재탄생시키기보다는, 내 이야기를 담아 개인적인 무언가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공예뿐 아니라 예술 자체에도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한국의 아티스트, 서도호의 팬이라 밝힌 적도 있고. 예술과 패션의 관계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유기적인 관계다. 패션은 예술로부터 영감을 받고, 예술은 패션으로부터 영감을 받고! 나 역시 학창 시절에 박물관과 갤러리를 자주 방문했다. 그 후 하나의 작품 뒤에 많은 이야기가 숨겨져 있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예술에 더욱 깊게 빠져들었다.

    마메 쿠로구치가 소비자에게 어떤 의미를 가졌으면 좋겠나?

    그들에게 선물하고 싶은 감정은 편안함이다. 신체적인 편안함과 심리적인 편안함을 모두 추구한다. 그리고 그 편안함 안에서 모두가 자신감을 얻었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쿠로구치 마이코가 생각하는 현대 여성의 본질이란?

    자유, 그리고 자유를 향한 어린아이 같은 갈망.

    Courtesy of Mame Kurogouchi

    #Women Designers

    사진
    Courtesy of Mame Kurogouchi
    디자인
    한다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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