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대양의 느낌

2024.03.14

by 정지혜

    대양의 느낌

    이 지면에 써온 글 어딘가에는 ‘영화와 물’에 관한 내 사심 어린 고백이 차곡차곡 쌓여 있으리라. 자연스러운 일이겠지만, 영화에 관해 쓰고 말하는 일을 하면 할수록 내가 관심 두고 있는 영화와 관심을 덜 두게 되는 영화가 무엇인지 그 경계가 점점 더 뚜렷해지는 것 같다. 좋아하는 쪽을 향해 에너지를 집중하고 싶다. 조금 더 가까이 두고 오래 보고 싶은 영화, 궁금하고 탐색하고 싶은 영화를 한 번이라도 더 만날 수 있다면 낭비 없이 힘껏 그것에 관해 쓰고 말하고 싶다. 그런 내게 현재로서 가장 매혹적으로 다가오는 영화는 물을 닮은 영화라고 답하겠다. 이때의 물은 물의 속성, 특성, 물의 다양한 형태, 물이 있는 지정학적 위치, 물을 사유하는 방식과 철학에 관한 것이다. 영화와 물 저마다의 어떠한 면모 때문에 서로 연관 짓고 심지어 닮았다고 느끼는가. 얼마간은 직관적으로 그러하고 또 얼마간은 경험적으로 그러하다. 정제된 언어로 설명해내는 게 나의 과제다. 까다로운 작업이기도 하고 방대한 작업이 될 수도 있겠지만 불가능하고 곤란한 일은 아니다. 부족하나마 이런저런 탐색을 거듭하며 내 느낌을 설명해보려 한다. 그러다 이 책을 만났다. 영화와 물을 이어보려는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연구, 영화학자이자 평론가 에리카 발솜의 <대양의 느낌: 영화와 바다>(2024, 현실문화)다.

    에리카 발솜, ‘대양의 느낌: 영화와 바다'(2024, 현실문화)

    ‘영화사 전반에 걸쳐 특정한 모티프 한 가지를 추적하는 일은 필연적으로 특이하고 시네필적인 작업이다.… 이 책에서 나는 내 전문 분야를 반영하여 아티스트 필름과 다큐멘터리에 큰 관심을 기울이지만, 바다가 스크린 위에 나타난 무수한 방법에 대한 폭넓은 설명을 제공하기 위해 시작부터 대중적인 장르 또한 다루려고 했다. 하지만 <대양의 느낌: 영화와 바다>는 포괄적이거나 체계적이지 않다. 특히 매우 방대한 주제를 다루는 탓에 나는 늘 이 책이 너무 짧고 압축되어 있다고 느낀다.… 나는 독자들이 이 책을 결정적인 진술보다는 편파적이고 도발적인 샘플링으로, 다른 사람들이 이어갈 수 있는 겸손한 출발로 접근해주기를 바란다.’ -한국어판 서문 中

    영화와 물—여기서는 좀 더 구체적으로 바다—의 연관성, 상호성, 닮은 지점을 발견하는 이가 있다는 사실에, 그 생생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데 기쁘다. 나는 에리카 발솜의 연구에 기대 나만의 ‘영화-물’에 관한 지도를 만들어가고 싶은 ‘다른 사람들’ 중 한 명이다. 책은 다섯 가지 주제로 구성돼 있다. 바다의 자연적 우발성, 해저 촬영의 매력, 영화 속에서 연안 노동자와 이민자를 그리는 방식, 전 세계를 순환하는 물질성이 그것이다. 이것을 하나씩 경유하며 영화 속 바다의 역사를 가늠할 수 있다. 특히 저자는 고전 영화부터 비교적 최근의 영화까지 구체적인 영화 사례를 두고 설명을 이어가며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

    ‘대양의 느낌’이란 무엇인가. 저자는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정의와 확장을 연구의 출발로 삼는다. 프로이트에게 ‘대양의 느낌’은 나와 외부 세계 사이의 끊을 수 없는 유대감에 가까운 것으로 무한성, 무경계성, 상호 연결성의 감각에 가까운 것이다. 이것은 프로이트가 크리스티안 그라베의 희곡 <한니발>(1835)에서 발견한 중요한 구절과도 긴밀하게 이어진다. “나는 이 세상 밖으로 떨어질 수 없다. Out of this world, I cannat fall.”(12쪽) 여기에 더해 저자가 말하는 ‘대양의 느낌’은 이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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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 사이를, 공동체 사이를, 그리고 인간과 비인간 사이를 연결하는 바다의 역할을 탐구하면서 바다를 주제이자 방법으로 받아들인다. 바다를 방법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물속 깊은 곳에서 어떤 친밀감과 책임감, 결속이 생겨나는지 보기 위해 지배의 오만을 거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책은 영화사 전반에 걸친 전 세계의 다양한 영화를 살펴보면서 바다라는 심오하게 신화화된 장소가 어떻게 관계성의 형태를 활성화하는지, 또 어떻게 개인을 넘어, 단일한 영토를 넘어, 자연과 문화 사이 이분법을 넘어서는 사고를 촉구하는지 논의한다.’(14쪽)

    그렇다면 ‘대양의 느낌’을 탐구하는 데 영화에 기대는 이유는 무엇인가. ‘영화는 카메라의 자동 기법 automatism을 통해 시간에 따라 변화하는 흔적을 기록한다… 영화는 글이나 그림과 다르게 물리적 현실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는 예술이다. 외부 세계, 기술, 미적 의도 사이 만남의 산물인 렌즈 기반 이미지 lens-based image는 외부 세계에 불가분하게 속해 있다. 그라베의 말을 바꿔 말하자면, 영화는 세상 밖으로 떨어질 수 없다… 이 분명하게 공언된 의존 관계, 이 결속 안에서, 렌즈 기반 이미지는 대양적이다.’(20쪽) 좀 더 설명을 덧붙여보자. ‘영화 이전에 어떤 매체도 시간 속에서 세계의 흔적을 포착하는 일을 하지 못했다. 영화는 카메라의 비인간적 자동 기법 nonhuman automatism의 도움을 받아 인간의 의도나 통제 밖에 존재하는 순간과 움직임을 기록할 수 있다. 세계 속 무엇인가가 영화에서 재현되고, 그 안에서 모습을 바꾼 채 보존된다. 얼마 가지 않아 내러티브의 지배력이 커지기 시작했지만 영화의 진정한 소명은 틀림없이 회화와 문학에 만연한 인간중심주의, 약호화된 메시지, 그리고 미리 부여된 의미에 대한 도전에 있었다.(23~25쪽)

    세계의 우발과 우연, 예측 불가능성을 탐구하는 기계장치를 통한 재현의 예술인 영화야말로 바다의 속성을 포착하려는 시도와 무관하지 않다. 바다만큼 우연성과 예측 불가능성이 넘실대는 곳이 또 있는가. 바다는 불투명하며 그 속을 가늠할 수 없다. 그리하여 바다는 언제나 인간에게 호기심과 두려움의 대상이었고 가능성과 불가능성의 세계였으며, 삶과 죽음의 시공간이었다. 그런 바다를 통해 ‘다시 한번 영화, 우연, 불확실성 사이의 결속에 대해 성찰할 수 있는 수단’(30쪽)을 마련할 수 있다면, 이것은 세계와 영화를 다르게 이해하는 방편이자 세계와 영화로 향하는 또 다른 통로가 돼줄 것이다. 심지어 바다는 영화가 시작된 최초의 순간부터 그 모습을 유유히 드러내고 있었으니 더 말해 무엇할까. 루이 뤼미에르의 <항구를 떠나는 배>(1895)가 이 책의 첫 번째 영화로 언급된 건 당연하다. ‘뤼미에르의 <항구를 떠나는 배>에서처럼, 이 주인 없는 바다의 비인간적인 inhuman [인간의 것이 아닌] 광활함은 무빙 이미지의 비인간적인 [자동화된] 기록 과정과 협력해, 자연의 복잡성을 ‘해결’하겠다는 오만한 어리석음을 일깨운다.’(36쪽)

    그리고 바다 앞에서 우리가 느끼는 양가적 감정이야말로 극장에서 영화를 볼 때의 느낌과 크게 다르지 않다. ‘바다와 하나가 되는 느낌, 나와 외부 세계의 경계가 흐릿해지며 “자아의 온전함이 상실되”는 이 초월적인 체험은 우리가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경험과 유사한 구석이 있다. 영화를 보면서 대양의 느낌을 회복할 수 있다면, 우리는 영화를 통해 우리가 “이 세상 밖으로 떨어질 수 없”음을, 우리가 “완전히 그 안에 있”음을 확인할 수도 있을 것이다.’(116쪽) 역사의 말이 적확하다. 여기에 약간은 다른 방향에서 바다와 영화에 관해 말하고 싶다. 그것은 때때로 우리는 바다와 영화 앞에서 하나 됨을 느끼는 게 아니라 도무지 이해할 수 없고 불가해한 세계가 내 앞에 있음을 느낀다. 바로 그때 나와 바다, 나와 영화 사이에 메울 수 없는 거리가 있음을 알겠다. 그럼, 그라베의 말을 이렇게 다시 쓸 수 있을까. ‘우리는 이 세상 밖으로 떨어질 수 없다. 또 우리는 이 세상 안으로 완전히 들어설 수도 없다.’ 바다 앞에서 나는 영화라는 세상을 그렇게 이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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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Yes24,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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