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아버지의 가구 여행, 이정재와 폴랑 폴랑 폴랑

2024.06.27

by 김나랑

    아버지의 가구 여행, 이정재와 폴랑 폴랑 폴랑

    1960년대 실험적인 가구 디자인으로 세계적인 인기와 명성을 누린 피에르 폴랑. 그의 유산을 이어나가는 가족 프로젝트 폴랑 폴랑 폴랑이 배우 이정재와 협업해 서울에서 아시아 첫 회고전을 열었다.

    이정재와 벤자민 폴랑이 아티스트컴퍼니 사옥 지하에 전시된 ‘듄’ 소파에서 포즈를 취했다.

    10년 전쯤 동료 에디터가 피에르 폴랑(Pierre Paulin) 책을 보여준 적이 있다. 파란색 ‘오렌지 슬라이스(Orange Slice)’ 의자를 조형적으로 촬영한 사진이 커버에 담긴 책을 보여주며 그는 잔뜩 흥분한 목소리로 요즘 가장 핫한 가구라고 말했다. 패션 하우스에 영입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들이 고가의 디자이너 가구와 예술 작품으로 사무실을 꾸미는 게 유행하던 때였고, 니콜라 제스키에르가 루이 비통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임명된 지 얼마 안 된 무렵이었다. 제스키에르의 두 번째 루이 비통 컬렉션인 2015 리조트 쇼가 열린 몬테카를로 대공궁에는 피에르 폴랑의 상아색 ‘오사카(Osaka)’ 소파가 우동 면처럼 꿈틀대는 형상으로 길게 누워 게스트를 맞았다. 그리고 2014년 말 디자인 마이애미에서 제스키에르와 루이 비통은 1970년대에 피에르 폴랑이 허먼 밀러사를 위해 디자인했지만 실제 상품화되지 못한 프로토타입 가구를 처음 공개했다. 이 프로젝트를 구현한 것이 피에르 폴랑의 아내 마이아(Maia)와 아들 벤자민(Benjamin), 며느리 알리스(Alice)가 함께 운영하는 폴랑 폴랑 폴랑(Paulin, Paulin, Paulin)이다.

    “제스키에르가 우리 가구에 관심을 가진 것이 분명 큰 도움이 됐어요. 그리고 갑자기 모든 패션 브랜드에서 접근하기 시작했죠. 우리는 브랜드와 더 이상 일하지 않기로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런 식의 소통은 정체성과 통제력을 잃게 만들고 이용만 당하기 십상이니까요.” 벤자민은 크림색 소파에 비스듬히 기댄 채, 아내 알리스가 패션계에서 일할 때 아제딘 알라이아나 릭 오웬스 등 독립적으로 운영하는 브랜드에서 경험을 쌓은 게 도움이 됐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알라이아가 제스키에르보다 훨씬 먼저 피에르 폴랑 가구를 주문했다고 덧붙였다. 파리 마리냥 거리(Rue de Marignan)에 자리한 알라이아 부티크는 피에르 폴랑 가구로 가득하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이제 사람이 거주하는 집을 위해서만 가구를 제작합니다. 생산과 판매는 크게 중요하지 않아요. 피에르 폴랑 가구를 정말 좋아하고 실제로 즐기는 이들에게 특권을 주고 싶어요. 그게 폴랑 폴랑 폴랑이 출범한 목적이기도 하고요.”

    나폴레옹 3세 통치 기간에 사용된 S자형 벤치 ‘콩피당(Confident)’에서 영감을 받아 1968년 디자인한 ‘파사 파스(Face à Face)’ 소파.

    고집스러워 보이는 회색 곱슬머리에 날카로운 눈빛의 벤자민은 아버지 피에르 폴랑을 꼭 닮았는데, 그래서인지 그 옆에 앉은 이정재는 점잖고 산뜻해 보였다. 벤자민과 이정재는 지인을 통해 처음 친분을 맺었고 그 인연으로 피에르 폴랑의 아시아 첫 전시를 아티스트컴퍼니 사옥 1층과 지하에서 열었다. 배우가 되기 전 이정재가 공간 디자이너를 꿈꿨다거나, 배우가 된 후에도 몇몇 공간을 직접 디자인한 적이 있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피에르 폴랑에 대해 처음 알게 된 건 30대 초반, 2000년대 초 무렵이었어요. 가구 숍이나 매거진, 영화를 통해 익숙하던 가구가 그의 작품이란 걸 알게 된 거죠. 디자인이 워낙 모던해서 그렇게 연륜 있는 디자이너일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그가 한국에 피에르 폴랑을 소개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앰배서더라고 여긴 벤자민은 먼저 협업을 제안했고, 이정재는 단순히 수익 창출을 위한 사업이 아니라 아버지의 유산과 업적을 잘 운용하려는 폴랑 폴랑 폴랑의 방향성에 주목했다. “최근 10년 동안 디자인이나 가구 전시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폭발적으로 높아지는 걸 지켜봤습니다. 저 또한 흥미로운 전시를 관람하기도 하고요. 협업 제안을 받았을 때 프랑스를 대표하는 디자이너의 전시가 우리나라에서 열린다면 좋은 기회가 될 거라고 여겼습니다.” 이정재의 말에 벤자민은 웃으며 덧붙였다. “함께해달라고 매달렸어요! 감각적인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우리가 먼저 제안했습니다. 폴랑 폴랑 폴랑은 패밀리 프로젝트이자 재단인 만큼 우리가 원하는 방향, 즉 아버지가 살아계셨다면 흔쾌히 허락했을 방식을 택하는 것이 중요하거든요. 우리의 방향을 이해하고 도와주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 말입니다.” 실제로 그는 홍보나 마케팅 측면에서 크게 도움이 될 수 있지만 폴랑 폴랑 폴랑의 정체성을 지키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해 협업 제안을 거절한 적이 꽤 많다고 말했다. 그중에는 원래 디자인을 자신이 재해석하고 싶다고 제안한 버질 아블로나 아티스트 다니엘 아샴도 포함된다.

    1973년 네덜란드 가구 제조업체 아티포트(Artifort)를 위해 디자인한 ‘그루비(Groovy)’ 체어.

    피에르 폴랑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5년부터 1차 오일 쇼크가 일어난 1970년대까지 프랑스가 경제 호황을 누린 ‘영광의 30년’ 시기에 급부상했다. 선명한 캔디 컬러에 신축성 있는 원단을 사용한 조각 같은 의자는 당시 미드 센추리 디자인에 신선함을 불어넣었고, 기존 가치와 질서에 저항하는 68운동, 모즈 문화, 미래주의와 결을 같이하며 큰 인기를 누렸다. 1969년 프랑스 대통령으로 취임한 조르주 퐁피두는 부진한 디자인 산업의 부흥을 위해 엘리제궁의 대통령 거처를 리뉴얼할 인물로 젊은 폴랑을 선택했다. 벤자민과 이정재가 앉아 있는 ‘알파(Alpha)’ 소파도 엘리제궁 프로젝트를 위해 디자인한 가구 중 하나다. “엘리제궁을 위해 제작한 후 1973년 50개를 생산하고 단종됐습니다. 아버지는 좀 더 확장한 에디션의 알파 컬렉션을 리네 로제사와 출시하고 싶어 했지만, 제조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는 이유로 거절당했어요. 그 대신 유사한 디자인에 좀 더 저렴하게 제작할 수 있는 버전으로 출시된 게 ‘펌킨(Pumpkin)’ 체어였습니다.” 벤자민은 알파 소파의 볼록한 유닛 사이에 손을 쑥 집어넣어 보이며 각기 따로 제작해 천을 씌운 유닛을 연결하는 게 피에르 폴랑이 의도한 원래 디자인이었다고 설명했다. “전시된 가구 대부분이 제작비 등의 문제로 가구 회사에서 생산을 거절한 프로토타입이에요. 나는 어릴 때 바로 그 가구 사이를 뛰고 구르며 자랐죠. 그래서 제일 좋아하고, 가장 중요합니다. ‘타피 시에주(Tapis-Siège)’나 ‘듄(Dune)’도 폴랑 폴랑 폴랑에서 제작하기 전에는 생산된 적도, 판매된 적도 없습니다. 한마디로 여기 있는 가구는 후에 제작된 초기 버전인 셈이죠.” 피에르 폴랑도 팬데믹 때 대중적으로 인지도를 높인 디자인 가구 중 하나로, 프랭크 오션과 카니예 웨스트, 킴 카다시안의 집에 듄 소파가 있는 사진이 SNS에 퍼지면서 소셜 미디어와 유명 뮤지션 사이에서 인기를 끌었다. 폴랑 폴랑 폴랑을 운영하기 전 음악계에 종사한 벤자민의 인맥이 예상치 못한 가속도로 작용한 시기였다. 랩뮤직 쪽에 아는 사람이 많아서 버질 아블로나 카니예 웨스트 같은 이들에게 가구를 소개할 기회를 수월하게 마련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다른 디자인 가구 브랜드가 인플루언서들의 사랑을 받은 것이 우연과 행운의 조합이었을지 몰라도, 폴랑 폴랑 폴랑의 경우는 아니었다. “10대 시절 랩뮤직에 푹 빠져 있을 때만 해도 아버지의 디자인 작업과 내가 좋아하는 것 사이엔 아무런 상관관계도 없었죠. 이제는 세계적인 랩 뮤지션이 시계나 차, 주얼리 대신 디자인 가구를 사고 있어요. 정말 흥미롭고 상징적인 변화라고 느낍니다. 그 변화를 일으켰다고 주장하려는 건 아니지만, 거기 일조했다는 게 기뻐요.”

    성형 폼으로 만든 조각품 같은 형태가 특징으로 1967년부터 1968년까지 1년 동안만 생산한 ‘F572’ 체어.

    거대한 오리가미를 연상케 하는 타피 시에주는 일본을 방문한 피에르 폴랑이 다다미에 매료되어 1972년 디자인한 것이다. 피에르는 여러 나라를 여행했으며 우리나라도 여러 차례 방문했다. 벤자민은 일고여덟 살 무렵 1988년 서울 올림픽 직전에 아버지를 따라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다. 벤자민은 아버지가 어느 나라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개인적인 감상을 말해준 적이 없지만, 그의 디자인을 통해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가구박물관에서 18세기 초에 제작된 가구를 본 순간 아버지의 디자인에 영향을 미쳤다는 걸 단박에 알아차릴 수 있었죠.”

    아시아와 서울에서 피에르 폴랑을 공식적으로 소개하는 첫 자리인 만큼 이번 전시는 시대별로 대표적인 작업물과 1968~1972년에 디자인한 모듈식 가구를 선보이는 데 초점을 맞췄다. 특히 지하에 전시된 가구는 전시 공간의 특징을 고려해 신중하게 고르고 설치한 것이다. 아티스트컴퍼니는 지난해 프리즈 서울 장외 전시로 LG전자와 협업한 디지털 아트 전시를 이 공간에서 진행했다. 그동안 맡은 배역 중 피에르 폴랑 가구와 잘 어울리는 캐릭터로 영화 <정사>의 우인을 꼽은 이정재는 이 공간을 문화적인 공간으로 활용할 가능성을 비쳤다. “아티스트컴퍼니의 팬뿐 아니라 여러 사람에게 프로젝트나 전시를 통해 좋은 볼거리를 제공하고 교감할 수 있는 기회의 장소로 계속 활용하면 좋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이 모든 대화의 중심에 있지만 정작 이 자리에 없는 피에르 폴랑이 어떤 아버지였는지 문득 궁금해졌다. “다정했지만 몰두하는 타입이었고 일을 놓지 않았습니다. 매우 예민하고 모든 걸 쏟아붓는 분이셨죠.” 피에르 폴랑 전시는 아트 플랫폼 ‘아투(@artue.io)’가 디지털 파트너로 참여했으며, 올해 프리즈 서울이 열리는 9월 8일까지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전시된 의자와 테이블을 사용해볼 수 있고 우리나라 페인팅 작가들의 작품도 함께한다. (VK)

    에디터
    김나랑
    송보라(컨트리뷰팅 에디터)
    사진
    양중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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