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대 패션사 수업: 플래퍼, 보브 커트, 광란의 시대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1918년부터 대공황이 시작된 1929년까지의 기간을 흔히 ‘광란의 20년대(Roaring Twenties)’라 부른다. 전쟁의 여파로 유럽은 침체기에 빠지고, 미국은 어느 때보다 급격한 경제성장을 겪은 시기. 그렇다면 1920년대 패션계에는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수잔 렌글렝(Suzanne Lenglen)은 장 파투와 함께 스포츠 스타일의 전성기를 열어젖혔고, 아르데코라는 거대 예술 사조는 패션에도 영향을 끼치기 시작했다. 역사상 가장 아이코닉한 패션 아이템으로 꼽히는 가브리엘 샤넬의 ‘리틀 블랙 드레스’가 탄생한 것도 1920년대였다. <보그>는 1926년 10월 1일 ‘겨울 모드의 탄생(The Debut of the Winter Mode)’ 이슈를 발행하며, ‘리틀 블랙 드레스’를 최초의 대량생산 자동차였던 포드의 모델 ‘T’와 비교했다.
1920년대 <보그>의 커버는 조르주 르파프(Georges Lepape), 에두아르도 베니토(Eduardo Benito), 윌리엄 볼린(William Bolin) 같은 일러스트레이터의 그림이 장식했다(카메라로 촬영한 사진이 최초로 표지에 등장한 것은 1932년이다). 직선과 곡선의 조화가 돋보인 이들의 그림은 아르데코 양식이 널리 퍼지는 데 기여했다. 당시 여성들은 클로슈 모자를 쓰고, 드롭 웨이스트나 튜브 형식 드레스를 즐겨 입었다. 1920년대에 등장한 지그재그 모양을 이루도록 밑단을 자르는 ‘행커치프 헴라인’ 역시 파격적이었다.
#1920년대 여성 트렌드
톰보이 룩
당시는 각진 블레이저처럼 전형적인 ‘남성용’ 아이템을 여성에게 허락하지 않았다. 여성복과 남성복의 경계는 1966년 이브 생 로랑의 ‘르 스모킹’이 등장한 뒤 본격적으로 흐려지기 시작했으니까. 하지만 1920년대에는 전조 증상이 등장했다. ‘라 가르송(La Garçonne)이라고 불리는 ‘소년 같은’ 스타일이 대두한 것. 가르송 스타일의 핵심은 여성의 신체를 부각하지 않는 것이었다. 여성들은 펀칭이나 허깅 디테일 대신 몸의 곡선에 맞춰 떨어지는 드레이핑 디테일을 찾기 시작했다.
라 가르송 스타일을 대표하는 브랜드가 바로 프레메(Premet)다. 하우스의 디자이너 샬롯 레빌(Charlotte Révyl)은 1924년 2월 <보그> ‘꾸뛰리에와의 대화’에서 흥미로운 코멘트를 남긴다. “머리는 짧고, 모자는 작아졌습니다. 보트넥이나 롱 슬리브처럼 남성스러운 옷이 유행하고 있죠. 지금 여성들에게서 페미닌한 분위기는 느껴지지 않습니다. 치마 밑으로 살짝 드러나는 얇은 발목 정도를 제외하면 말이죠.”
보브 커트
1920년 5월 <새터데이 이브닝 포스트>에 스콧 피츠제럴드의 글이 실린다. 단편소설 제목은 ‘버니스, 단발로 자르다’. 보브 커트라고도 불리는 단발머리가 유행할 조짐은 1920년대로 접어들기 전부터 있었다. 1915년 댄서 아이린 캐슬(Irene Castle)은 수술 이후 편의를 위해 머리를 짧게 자른다. 귀를 겨우 덮을 정도로 짧은 머리를 띠로 고정한 그녀의 헤어스타일은 이후 ‘캐슬 밴드’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다. 이후 무성영화계의 스타였던 루이스 브룩스(Louise Brooks), 조세핀 베이커 등이 보브 커트를 선보이며 유행에 불을 지핀다.
극소수의 도전적인 여성만 머리를 짧게 자른 것도 아니었다. 1920년대 말에는 일반 대중 역시 보브 커트를 받아들였으니까. <보그>는 1926년 2월 뉴욕과 파리의 고급 레스토랑에서 식사하는 세련된 여성들은 하나같이 ‘짧은 머리’를 하고 있다고 보도한다.
짧아지는 헴라인
여성들이 허벅지를 훤히 드러낸 채 거리로 나서기까지는 40년 정도 남았지만, 당시에도 헴라인은 분명 짧아지고 있었다. 1920년대를 거치며 드레스와 스커트는 서서히 발목, 종아리를 거쳐 무릎 바로 밑까지 올 만큼 짧아졌다. 여성들은 다양한 컬러의 스타킹을 신으며 전례 없는 자유를 만끽했다.
플래퍼 스타일
당대 멋쟁이를 지칭한 용어, 플래퍼(Flapper). 플래퍼는 짧은 치마를 입고, 짧은 머리를 휘날리며 파티를 즐겼다. ‘플래퍼’라는 단어의 기원에 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전해진다. 신발 버클을 풀어 헤쳐 발걸음을 뗄 때마다 펄럭거리는(Flap) 소리를 내던 젊은이들로부터 시작됐다는 설과 빅토리아 시대에 어린 매춘부를 지칭하는 단어에서 유래했다는 설이다. 플래퍼를 아니꼽게 보는 시선이 사라지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1917년 <보그>는 ‘플래퍼에게 낙인을 찍지 마세요’라는 제목의 기사를 발행했다. 프란세스 마리온(Frances Marion)의 1920년 영화 <더 플래퍼>의 대성공 이후 모든 여자아이는 플래퍼가 되길 꿈꾼다.
클로슈 모자
20세기 초반의 멋쟁이 여성들은 모자 없이 외출하는 법이 없었다. 1900년대에는 ‘팬케이크 햇’이라고도 불리는, 챙이 넓고 얇은 모자가 크게 유행했다. 그 후 모자 크기는 점점 작아지기 시작했고, 1920년대에는 종을 닮은 모양의 클로슈 햇이 인기를 끌기 시작한다. 전설적인 밀리너, 카롤린 르부(Caroline Reboux)가 불러일으킨 바람이었다. 귀를 겨우 덮을 정도로 조그맣던 클로슈 햇은 보브 커트와 ‘영혼의 단짝’이었다.
리틀 블랙 드레스
1926년 가브리엘 샤넬이 선보인 리틀 블랙 드레스(LBD)는 모던 그 자체였다. 장례식에 갈 때나 입던 컬러 블랙이 ‘가장 클래식한 컬러’로 거듭난 것도 전부 LBD 덕분. LBD는 다른 드레스와 달랐다. 섹시한 매력을 머금고 있었지만, 모든 것이 간결했다. 비록 샤넬은 크레이프 드 신 소재로 드레스를 만들었지만, 절제된 실루엣으로 누구나 다른 소재를 활용해 비슷한 디자인의 드레스를 만들 수 있었다. 꾸뛰르의 ‘민주화’가 시작된 것이다. 이후 여성들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검정 드레스를 입기 시작했다.
로브 드 스타일
부풀린 듯 과장된 실루엣과 화려한 장식. 1920년대를 대표하는 또 하나의 트렌드 ‘로브 드 스타일(Robe de Style)’ 드레스는 치마 부분의 개더링과 페미닌 무드로 대표된다. 프랑스 출신의 꾸뛰리에 잔느 랑방을 비롯해 많은 디자이너가 ‘라 가르송’ 스타일과 완벽하게 대척점에 있는 로브 드 스타일 드레스를 선보였다.
#1920년대를 대표하는 디자이너
가브리엘 샤넬, 엘사 스키아파렐리, 잔느 랑방, 칼로 자매(Callot Soeurs), 장 파투, 마들렌 비오네(Madeleine Vionnet), 마담 셰뤼(Chéruit), 폴 푸아레, 노먼 하트넬(Norman Hartnell), 소니아 들로네(Sonia Delaunay), 레니(Jane Régny), 잔느 파캥(Jeanne Paquin) 그리고 프레메.
#1920년대 남성 트렌드
1920년대 여성복 트렌드를 선도하던 도시가 파리였다면, 남성복 트렌드는 런던이 정의했다. 특히 훗날 에드워드 8세가 되는 웨일스 공은 남성 복식사의 흐름을 뒤바꿔놓은 인물이다. ‘소프트 테일러링’을 선호한 그 덕분에 남성들은 스리피스가 아닌 투피스 수트를 찾기 시작했고, 핀스트라이프 패턴과 트위드, 플란넬을 입기 시작했다. 윈저 공처럼 ‘새빌 로풍으로’ 차려입는 게 하나의 유행이 된 것. 골프용 7부 바지 ‘플러스 포(Plus Fours)’와 옥스퍼드의 뱃사공들이 입던 옷에서 유래한 와이드 팬츠 ‘옥스퍼드 백(Oxford Bags)’ 역시 신사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 그렇다면 당시 가장 큰 인기를 끈 액세서리는?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 속 남성이 쓸 법한 보울러 햇!
#1920년대 문화적 배경
1918년 ‘할렘 르네상스’가 시작되며 대중들은 처음으로 흑인 문화에 주목하게 된다. 1920년대에는 본격적인 ‘재즈 에이지’가 도래하며 듀크 엘링턴 같은 재즈 뮤지션의 밴드가 인기를 얻었다. 제임스 프라이스 존슨(James Price Johnson)이 작곡한 뮤지컬용 재즈곡 ‘더 찰스턴(The Charleston)’이 히트한 뒤, 조세핀 베이커는 1925년 파리에서 찰스턴을 추며 세계적인 댄서로 자리 잡는다. 당시 테니스 여제였던 수잔 렌글랭과 꾸뛰리에 뤼시앵 를롱(Lucien Lelong)의 만남은 패션과 스포츠가 훌륭한 한 쌍이라는 사실을 증명했다.
#패션사수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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