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대 패션사 수업: 디올의 뉴 룩, 할리우드 섹시 스타, 꾸뛰르의 황금기
굳이 따지자면 1950년대 스타일은 1940년대 후반에 탄생한 것으로 보아야 옳다. 학계에서도 1950년대 패션사는 1947년에서 1957년까지로 정의한다. 이는 크리스챤 디올이 직접 브랜드를 운영한 10년의 짧은 시기와 일치한다. 디올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21세의 이브 생 로랑은 1957년 브랜드를 맡게 되었고, 비트족(Beatnik)에서 영감을 받아 완성한 1960년 디올 컬렉션은 1950년대의 끝이자 새 시대의 징표가 된다.
지독한 혐오와 수치로 가득하던 시대, 패션의 화려함은 극에 달한다. 세상은 아름다움이 절실히 필요했고, 패션 산업은 이에 답했다. 전시 배급과 긴축정책 따윈 잊고 싶은 전 세계인의 열망이 투영된 결과였다. 또한 제2차 세계대전의 종전을 축하한다는 의미는 여성성의 부활을 기념하는 것이기도 했다. 잘록한 허리, 볼륨감 있는 스커트, 완벽하게 세팅된 헤어와 시의적절한 액세서리까지 말이다. 옳고 그름과 관계없이 모자와 장갑, 핸드백까지 갖추고, 머리카락 한 올의 흐트러짐도 허용치 않는 그 시대 미의 기준은 여성이 다양한 패션과 화장을 경험할 기회가 된다. 본질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던 여성에게는 이 10년이 한 걸음 후퇴한 시기로 기억될 수도 있지만, 근사한 룩으로 가득했음은 부인할 수 없다.
#1950년대 여성 트렌드
모래시계 실루엣이 지배하다: 디올의 뉴 룩 선도
1947년 크리스챤 디올이 ‘뉴 룩 코롤 라인 컬렉션’에서 선보인 실루엣은 1950년대를 지배했다. 여성스러운 실루엣을 과장되게 표현한 웨이스트 드레스는 빠르게 움직이는 시계추를 표현한 것이었다. 전쟁이 한창이던 1940년대에는 날렵한 숄더와 슬림한 힙을 강조한 남성적 실루엣이 유행했다. 하지만 종전 선언은 어깨를 패딩으로 부드럽게 둥글렸고, 허리는 빅토리아 시대의 비율로 잘록하게 만들었으며, 엉덩이는 튤과 크리놀린의 힘을 빌려 과장되게 부풀린다. 목표는 극도로 ‘여성스러운’ 실루엣이었다.
1952년 3월 1일 <보그> 컬렉션 기사에서는 이를 다음과 같이 간결하게 표현했다. “모든 것은 허리 라인에서 시작된다. 허리는 시선을 사로잡는 부분이다. 새롭게 높아지거나 낮아지거나, 둘 다일 수도 있지만, 항상 그곳에 있고 늘 강조되며, 그렇기에 패션은 어느 때보다 여성스러워 보인다.”
‘뉴 룩’이라 불린 이 스타일은 디올이 주도한 것으로 유명하지만, 동시대 디자이너들 또한 각자의 방식으로 미학에 동참한다. 발렌시아가, 발망, 자크 파스(Jacques Fath), 하디 에이미스(Hardy Amies) 등은 10년의 대부분을 매우 화려하고 여성스러운 드레스를 만들어내는 데 썼다.
꾸뛰르의 황금기: 군사점령 이후 파리의 재도약
“파리 꾸뛰르 의상 조합(Chambre Syndicale de la Couture)은 이번 파리 컬렉션에 소개된 모든 출판물에 ‘저작권 보호 모델-무단 복제 금지’라는 문구를 넣어줄 것을 요청했으며, 이는 모든 모델에 적용됩니다. 물론 오리지널 모델을 구매한 매장과 제조업체에는 적용되지 않습니다.” 이 공익광고는 1951년 9월 15일 <보그>의 ‘파리 컬렉션 노트’에 실렸다.
이는 참혹하던 독일 점령기를 딛고 재건된 ‘파리 꾸뛰르’가 전 세계인의 끝없는 욕구를 충족시켜주고 있었다는 의미다. 꾸뛰르 디자인을 베낀 모조품 암시장이 번창했고, 미국 백화점은 기억력 좋은 사람들이 파리에서 지켜본 것들을 빠르게 스케치해 몇 주 만에 복제품을 걸었다.
오늘날 패션 역사학자들은 1947년에서 1957년에 이르는 10년(무슈 디올이 디자인하던 시기)를 꾸뛰르의 ‘골든 에이지’라 부른다. 사치스러운 옷을 터무니없는 가격에 구매해 호화로운 생활을 이어가던 시기로, 꾸뛰르 디자이너들이 그 순간을 만들었다. 아름다움의 한계에 도전하듯 디자이너들이 제각기 최상의 노하우를 발휘하던 골든 에이지는 1950년대가 끝날 무렵, 영 패션과 우주 시대의 미학으로 대체된다.
직선적인 실루엣이 등장하다: 패션계로 돌아온 샤넬
뉴 룩이 등장한 지 5년쯤 지났을 때, 새로운 실루엣이 출현한다. 패션에 절대적인 유행이란 없으니까. 엄격하던 모래시계 실루엣은 점점 부드러워진다. 고집을 내려놓고 디올은 H라인과 Y라인을 선보인다. 1950년대가 두 삼각형이 마주 보는 실루엣으로 시작했다면(모래시계), 마지막은 몸을 스쳐 지나가는 공중그네 모양이나 A라인 셰이프로 끝났다.
1958년에는 밑단이 점점 올라가고 스커트가 퍼지면서 ‘미니스커트’의 길을 열었지만, 그 속도가 그리 빠르진 않았다. 그 사이 디자이너들은 허리는 덜 강조하고, 연속성 있게 떨어지는 라인을 부각한 세련되고 곧게 뻗은 건축적인 실루엣에 매료되었다. 이런 변화는 샤넬이 이끌었는데, 그녀는 전후 명성을 지키기 위해 조용히 지내다가 1954년 2월 5일(샤넬이 늘 선호하던 날짜이자 행운의 숫자) 화려하게 복귀했다. 그녀는 탄력 있는 저지 소재로 만든 곧고 깔끔한 라인의 수트를 선보였다.
섹시 스타와 나쁜 남자들: 마릴린, 그레이스, 오드리, 제임스, 말론, 엘비스!
할리우드 스타들은 늘 대중문화에 영향을 미쳤지만, 1950년대에는 남녀 주인공들이 패션의 신과 여신으로 떠올랐다. 컬러 필름의 도입으로 영화 의상이 큰 영향을 미쳤으며, 에디스 헤드(Edith Head), 윌리엄 트래빌라(William Travilla), 오리 켈리(Orry-Kelly) 같은 의상 디자이너의 패션 감각이 크게 기여했다.
영화 <사브리나>(1954)에서 지방시를 입은 오드리 헵번, <신사는 금발을 좋아한다>(1953)에서 윌리엄 트래빌라의 옷을 입은 마릴린 먼로, <나는 결백하다>(1955)에서 에디스 헤드의 섬세한 블루 드레스를 입은 그레이스 켈리, <카르멘 존스>(1954)에서 메리 앤 나이버그(Mary Ann Nyberg)의 컬러풀한 옷을 입은 도로시 댄드릿지까지, 화려한 패션의 향연이었다.
남자들에게도 아이콘은 있었다. 말론 브란도가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1951)에서 입은 평범한 화이트 티셔츠가 패션계에 파장을 일으킨다. 그가 입은 티셔츠는 나쁜 남자의 표식이 되었고, 제임스 딘이 <이유 없는 반항>(1955)에서 청바지와 매치했을 때는 과거의 격식을 무시하는 젊음의 표식으로 변화한다. 여성 패션이 성숙해지고 유지 관리가 필요한 스타일로 변화하는 동안, 남성 패션은 소년 같은 편안함을 중시했다.
스틸레토의 등장: 높고 가느다란 슈즈의 인기
누가 스틸레토를 발명했는지 알 수 없다. 그러니 스틸레토란 이름의 출처 또한 불분명하다. 이탈리아어로 단검을 뜻하는 단어는 처음엔 신발의 뾰족하고 슬림한 앞코를 설명하는 데 사용되었지만, 곧 높고 가느다란 힐을 뜻하게 된다. 확실한 건 세 디자이너가 이 스타일을 지지했다는 사실이다. 로저 비비에, 살바토레 페라가모, 앙드레 페루지아다. 1950년대 초반부터 힐의 인기가 높아지기 시작했다는 사실 또한 확실하다. 슬림하고 투박하지 않은 슈즈는 당대 우아한 패션의 완벽한 마무리가 되어주었다.
당시 로저 비비에는 크리스챤 디올의 신발을 디자인하고 있었다. 비비에의 이름은 신발 안쪽에 크리스챤 디올의 이름과 함께 표시되었는데, 모든 협력자 가운데 비비에만 오직 디올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유일한 아티스트라는 징표였다.
오늘날은 잘 알려지지 않은 신발 기술자 앙드레 페루지아는 1950년대 초 스틸 소재 힐로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1951년 11월 15일 <보그>에서도 앙드레 페루지아의 라인스톤이 세팅된 섬세한 디자인의 스틸 힐을 소개했다. “위에 보이는 새로운 서스펜션 샌들. 얇은 금속 조각 위에 서 있는 것은 저녁을 위해 고안된 가장 멋진 슈즈 아이디어다. (옆에서 보면 굽이 전혀 없는 것처럼 보인다. 얇은 줄의 라인스톤만 보일 뿐이다.) 여전히 앙드레 페루지아의 꿈인 은은하고 슬림하며 인상적인 이 샌들은 미국의 I. 밀러(I. Miller) 작업실에서 이어질 것이다.”
이탈리아의 살바토레 페라가모는 통상 나무로 제작되던 스틸레토 힐에 스틸 로드를 삽입해 인정받았다. 마릴린 먼로 등 할리우드 스타들과의 관계 덕분에 그의 디자인이 더욱 주목받았다.
#1950년대를 대표하는 디자이너
크리스챤 디올, 발렌시아가, 멩보쉐(Mainbocher), 파캥(Paquin), 피에르 발망(Pierre Balmain), 자크 파스, 노먼 노렐(Norman Norell), 네티 로젠슈타인(Nettie Rosenstein), 베라 맥스웰(Vera Maxwell), 위베르 드 지방시(Hubert de Givenchy), 에밀리오 푸치, 클레어 맥카델(Claire McCardell), 보니 캐신(Bonnie Cashin), 폴린 트리제르(Pauline Trigère), 하디 에이미스, 노먼 하트넬(Norman Hartnell), 에드워드 몰리뉴(Edward Molyneux), 딕비 모턴(Digby Morton), 크리드(Creed), 찰스 제임스(Charles James) 그리고 피에르 가르뎅.
#1950년대 남성 트렌드
전후 여성들이 디올의 뉴 룩을 입었다면, 남성들은 새빌 로의 재단사들이 선사하는 뉴 에드워드 룩을 만끽했다. 슬림한 컷의 수트로, 때로는 스리피스, 때로는 벨벳 칼라가 들어간 것을 의미했다. 재킷은 싱글 브레스트 디자인이었으며, 액세서리는 중절모와 은색 뚜껑이 달린 지팡이였다.
말론 브란도와 제임스 딘이 스크린에서 보여준 데님, 티셔츠, 스니커즈 같은 젊고 반항적인 룩 외에도 1950년대에는 완전히 새로운 스타일도 등장한다. 영국의 청소년 서브컬처를 지배한 ‘테디 보이’ 또는 ‘테즈’ 룩이었다. 테디 보이들은 슬림한 수트와 바지를 입고 앞머리에 기름을 발라 뒤로 넘겼다. 엘비스 프레슬리가 이 테디 보이 스타일을 미국으로 가져와 폭발적인 인기를 얻기 전에 이미 영국 뮤지션들에게 큰 반향을 일으킨 미학이었다.
#1950년대 문화적 배경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세계는 스크린으로 <로마의 휴일>의 오드리 헵번을 만났다. 할리우드는 마릴린 먼로, 에바 가드너, 어사 키트, 제인 맨스필드, 엘리자베스 테일러 등의 섹시 스타들이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1956년 히치콕 감독이 가장 좋아했던 금발 스타는 할리우드를 떠나 몬테카를로에서 헬렌 로즈(Helen Rose)가 디자인한 레이스 웨딩드레스를 입고 모나코의 레니에 왕자(Prince Rainier)와 결혼했다. 왕족 이야기가 빠질 수 없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1953년 노먼 하트넬의 드레스를 입고 영국 왕위에 올랐다. 그녀가 통치를 시작한 때는 긴축 시기 이후 궁중 무도회가 다시 열리는 시기와 맞물렸고, 이런 행사가 영국 디자인에 날개를 달아주었다.
1952년 잭 케루악은 <길 위에서>를 출간했고, 맨해튼의 그리니치빌리지를 본거지로 삼고 살아가던 비트족의 열렬한 지지를 받는다. 음악계에서는 엘비스 프레슬리가 무대에서 매혹적인 몸짓으로 가정을 분열시키며 ‘골반의 엘비스’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 외에 리틀 리처드, 빙 크로스비, 레이 찰스, 프랭크 시나트라 등 여러 가수들이 있었다.
1959년 세계 최초의 바비 인형이 탄생했다.
#패션사수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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