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가장 멋진 남자들은 ‘이걸’ 입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남자들에게 공통점이 생겼습니다. 다시 ‘핑크’를 입고 있다는 것이죠.

해리 스타일스는 월드 투어 무대에 핑크 니트를 입고 등장했고, 제이콥 엘로디, 앤드류 가필드, 라이언 고슬링 역시 핑크를 즐기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핑크를 입은 남성을 더 자신감 있고 감성적인 사람으로 인식한다는 코튼 USA의 조사 결과도 등장했습니다. 팬톤 연구팀은 핑크가 남성들에게 이처럼 많이 소비된 적이 없다고 말하고요. 하지만 인류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은 아닙니다. 핑크는 원래 남성의 색이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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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데 크게 도움은 안 되지만 재밌는 역사 이야기, 좋아하시나요? ‘하이힐이 원래 남성용 신발이었다’, ‘토마토가 한때 독초 취급을 받았다’ 같은 것 말이죠. 핑크의 역사도 비슷합니다.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핑크를 여성의 색으로 여기지만, 100여 년 전만 해도 정반대였습니다.
먼저 핑크의 탄생을 살펴보겠습니다. 현재까지 알려진 가장 오래된 컬러는 핑크입니다. 호주국립대학교 연구진은 모리타니 사하라 사막 암석에서 약 11억 년 전 생물의 색소 흔적을 발견했습니다. 당시 원시 바다에 살던 시아노박테리아(Cyanobacteria)가 남긴 화석 색소였죠. 인류가 옷을 만들어 입기 훨씬 전부터 핑크는 존재하고 있었던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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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역사에서 핑크가 본격적으로 존재감을 드러낸 건 14세기 무렵입니다. 베네치아 상인들은 아시아에서 베르치노(Verzino) 나무를 수입했고, 이 나무 가루로 은은한 핑크 염료를 만들었습니다. 당시에는 오늘날처럼 밝고 선명한 핑크가 아니라 훨씬 차분하고 부드러운 색조에 가까웠죠. 그리고 이 색을 가장 좋아했던 사람들은 궁정의 남성들이었습니다.

실제로 어린 시절 루이 16세 초상화에는 핑크색 의상이 등장합니다. 영국 화가 조지 롬니(George Romney)의 작품 ‘울라스톤의 하얀 아이들(The Woolaston White Children)’에서도 유일하게 핑크를 입은 인물은 아들입니다. 화가 조반니 바티스타 티에폴로(Giovanni Battista Tiepolo)가 즐겨 사용했던, 이른바 ‘티에폴로 핑크’ 역시 남성 귀족의 우아함을 표현한 색으로 유명했죠.
핑크가 대중적으로 확산한 건 19세기부터입니다. 빅토리아 시대에는 화이트 컬러 아동 속옷이 널리 사용됐는데, 세탁과 표백이 쉬웠기 때문이에요. 상류층이 남들 하는 걸 그대로 따라 할 리가 없죠. 이후 상류층을 중심으로 아이들에게 다양한 컬러를 입히는 것이 유행처럼 번졌습니다.
그때부터 남자아이들은 핑크를 입었습니다. 정확히는 지금의 베이비 핑크보다 진한 스칼릿에 가까운 색이었죠. 당시 사람들은 스칼릿을 용기와 대담함, 남성성의 상징으로 여겼고, 핑크 역시 그 연장선에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반면 여자아이들은 성모마리아를 상징하는 블루를 주로 입었고요. 1918년 미국 잡지 <언쇼스 인펀츠 디파트먼트(Earnshaw’s Infants’ Department)>는 ‘핑크는 더 강하고 단호한 색이기 때문에 남자아이에게 적합하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지금 읽으면 고개가 갸웃해지지만, 당시에는 매우 일반적인 인식이었죠.

그렇다면 세상은 언제부터 핑크를 여자아이의 색으로 받아들이게 되었을까요? 결정적인 전환점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였습니다. 백화점과 아동복 브랜드들이 남아는 블루, 여아는 핑크라는 공식을 적극적으로 밀어붙였죠. 장사를 위해서입니다. 첫째가 입던 옷을 둘째가 그대로 입을 수 있다면 새 옷을 살 필요가 없습니다. 하지만 성별마다 색을 확실히 구분하면 이야기가 달라지죠. 아이가 태어날 때마다 새로운 옷장을 꾸려야 했습니다. 부모들은 더 많은 옷을 사고, 브랜드는 더 많은 옷을 팔 수 있었죠. 지금은 너무 당연하게 느껴지는 ‘남자는 블루, 여자는 핑크’라는 공식이 사실은 꽤 성공적인 마케팅 전략이었던 셈입니다.
이후 핑크는 점점 여성성의 상징으로 굳어갔습니다. 남성이 핑크를 입는 것 역시 어색하게 여겨졌죠. 원래 남성들이 즐겨 입던 색이었는데도 말입니다. 물론 예외는 있었습니다. 모든 것이 자유롭게 해석되던 1960~1970년대 유니섹스 문화가 잠시 이런 경계를 흐려놓았죠. 하지만 1980년대 초음파 기술이 보편화되면서 상황은 다시 달라졌습니다. 부모들은 아이가 태어나기 전부터 성별에 맞는 옷과 장난감을 구매했고, 핑크와 블루의 구분도 더욱 뚜렷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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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영원한 건 없습니다. 특히 패션에서는 더 그렇죠. 영원할 것 같던 스키니 진도 사라지고, 로우 라이즈도 돌아왔으니까요. 시간이 지나면 규칙은 결국 다시 뒤집힙니다. 존 웨인도 핑크 셔츠를 즐겨 입었고, 엘비스 프레슬리 역시 무대 위에서 핑크를 선택했습니다. 영화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와 <그리스>, 드라마 <마이애미 바이스> 같은 작품들도 핑크를 남성 패션으로 자연스럽게 보여줬죠.


패션계 역시 한몫했습니다. 결정적인 인물은 디자이너 엘사 스키아파렐리입니다. 1930년대에 마젠타에 화이트를 섞어 전례 없이 쨍하고 강렬한 핑크를 만들고, 이를 ’쇼킹 핑크(Shocking Pink)’라 명명했습니다. 그리고 가운, 향수 패키지, 광고까지 쇼킹 핑크를 사용했죠. ‘브랜딩’이라는 개념조차 없던 시대에 컬러를 아이덴티티로 만든 최초의 사례입니다. 이후 재키 케네디(Jackie Kennedy) 같은 스타일 아이콘들이 핑크를 즐겨 입으며 대중화에 불을 붙였고, 1957년 영화 <파리의 연인(Funny Face)>에서 패션 잡지 편집장(케이 톰슨 분)이 “레드는 죽었고, 블루는 끝났다, 지금부터는 핑크!“를 선창하는 오프닝 넘버 ‘Think Pink’는 그 분위기를 완벽하게 포착했습니다.

결국 핑크는 남성의 색이었다가, 여성의 색이 됐다가, 다시 모두의 색이 됐습니다. 생각해보면 핑크는 아무 잘못도 없었습니다. 수백 년 동안 의미를 붙였다 떼었다 한 건 사람들이었죠. 그러니 진한 핑크든 연한 핑크든 상관없습니다. 작은 액세서리 하나로 시작해도 좋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핑크로 맞춰도 좋습니다. 원래 남자의 색이었다는 사실까지 알고 나면 더욱 마음 편하게 입을 수 있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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