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궁 3관왕, 임시현은 다시 훈련을 시작했다
파리 올림픽 폐막식이 열린 날, 임시현은 다시 훈련을 시작했다. 양궁 3관왕에 빛나는 그녀가 올림픽의 무게감과 날아오는 벌을 대하는 태도.
양궁 3관왕, 한국 여자 양궁 단체전 10연패, 올림픽 MVP 타이틀, 인생 첫 올림픽에 출전한 임시현의 명중 소식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임시현은 2024 파리 올림픽의 전무후무한 히로인이다. 항저우 아시안게임에 이어 올림픽에서 또 한 번 달성한 3관왕의 기록은 양궁 종목 사상 최초의 일. 그는 현지에서 파리 올림픽을 취재한 기자단을 대상으로 진행한 투표에서 최다 득표하며 독보적인 MVP로 선정됐다. 스포츠를 넘어 패션, 건축, 예술까지, 4년 뒤에는 로스앤젤레스로 이어지며 한층 뜨거운 문화 축제로 거듭날 올림픽은 21세 임시현에게 꿈처럼 완벽한 터닝 포인트가 돼줬다. 승리의 여신이 등을 떠미는 듯한 비현실적인 감각 속에서 놀란 토끼 눈을 한 임시현이 이번에는 <보그> 카메라를 응시한다. 2024 파리 올림픽의 공식 후원사인 루이 비통도 함께했다. “연습복과 경기복 말고 평소에는 원피스 같은 단정하고 러블리한 옷을 즐겨 입어요. 이번 촬영에서 화살통을 멜 때 착용한 케이프와 별 모양 귀고리가 아주 마음에 들었어요.” 올림픽 내내 모두의 이목을 집중시킨 새하얀 유니폼을 벗어 던지고 루이 비통의 실루엣을 과감하게 휘감은 임시현이 동행한 관계자의 조언대로 낯선 경험을 최대한 즐긴다. 174cm의 큰 키에 좋아하는 캐릭터 열쇠고리가 주렁주렁 달린 크로스백을 메고 촬영장에 등장한 소녀의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겉으로 보기에는 조용조용하지만 갖고 있는 에너지와 활력이 대단하군요.” 인터뷰를 마치고 먼저 퇴장한 대중문화 저널리스트 강병진의 귀띔대로다. 임시현은 밤늦도록 이어진 촬영에서도 드문드문 호탕하게 웃으며 여유를 과시했다. 우리의 가슴을 저릿하게 만든 그 단단함과 대범함으로, ‘슈퍼에이스’ 임시현이 뜨거웠던 여름과 벌써부터 시작한 다음 행보에 대한 최신의 감정을 조준했다.
8월 6일 귀국했어요. 무엇을 가장 먼저 했나요?
올림픽을 준비하면서 잠을 잘 못 잤거든요. 그래서 집에 오자마자 이틀 정도 그냥 푹 쉬었습니다.
귀국 전날에는 어땠나요? 경기도 끝났고 금메달도 땄기 때문에 자유롭게 파리를 즐기지 않았을까 싶었어요.
현대자동차그룹 정의선 회장님께서 만찬을 준비해주셨어요. 에펠탑이 보이는 곳에 모여서 함께 건배하면서 축하했죠.
올림픽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일반인 입장에서는 하필 대회 10연패의 기록을 앞두고 국가대표로 선발된 기분이 어땠을까 싶었어요.
부담이 안 됐다면, 거짓말이죠. 진짜 역사적인 기록이지만, 우리한테는 첫 도전이니까요. 또 앞서 열린 양궁 월드컵에서는 3차에 금메달을 땄는데, 1·2차에서 금메달을 놓쳤거든요. 그때 언론에서 “양궁 최약체 팀이다”라는 이야기가 있어서 좀 힘들었어요. 그래도 우리끼리는 “그냥 도전해보자. 성공 못하면 잠깐 욕먹고 마는 거지 뭐···” 이런 이야기를 했죠. 우리의 새로운 도전이 역사가 되는 건 너무 감사한 것 아니냐고.
단체전에서 활을 쏘는 순서는 1번이 전훈영 선수, 2번이 남수현 선수, 마지막이 임시현 선수였습니다. 이 순서로 정해진 건 어떤 이유 때문인가요?
훈영 언니는 경력도 많고 실력도 갖추고 있기 때문에 충분히 리드할 수 있다고 판단한 거죠. 수현이는 언니들이 앞뒤에서 받쳐주면 조금 더 편하게 실력 발휘를 할 수 있을 거란 맥락이었어요. 그리고 저는 이제 마무리인데, 압박감이 있을 때 더 강한 경기력을 보여준다고 칭찬해주셨어요. 저는 ‘그런가 보다. 내가 진짜 그런가?’라고 여겼죠.(웃음)
네덜란드와의 준결승에서 4세트 전에 승점이 4:2로 밀리고 있었습니다. 그때 바로 한국 팀 선수들이 모두 10점을 쏘았습니다. 그때 기분은 어땠나요? ‘이제 됐다!’ 이런 느낌이었을까요?
그보다는 ‘역시 우리는 위기에 강해. 맞아, 이게 우리 대표 팀이지’ 이런 느낌이었어요. 그런 ‘똥바람’은 진짜 오랜만이어서 어려움이 있었는데, 그런 위기에도 세 명이 다 잘 쏘는 걸 보고 자부심이 살짝 느껴졌어요.
단체전에서 중국과의 결승전이 인상적이었어요. 슛오프까지 갔는데, 마지막에는 표적심이 2발의 화살 위치를 확인하는 상황까지 갔습니다.
너무 떨리고 살짝 두렵기도 한 마지막 화살이었어요. 선수들은 전광판으로 보기만 해도, 저게 10점에 물린 건지 안 물린 건지 다 알거든요. 훈영 언니의 화살을 봤을 때는 100% 10점이었어요. 그리고 수현이가 9점을 잘 쏴주었고, 제 차례가 되었죠. 그런데 또 10점에 물린 거예요. 이미 우리끼리는 난리가 났어요. 소리도 질렀죠. 그때 감독님이 “일단 진정하고 기다리자”고 하셨어요. 상대 팀에게는 그게 매너니까요.
이제 8월 2일입니다. 개인전 경기가 열린 날이었습니다. 32강전에서 임시현 선수가 활을 쏠 때 두 마리의 벌이 날아들었는데, 이때 벌을 의식했나요?
보이긴 했는데··· 경기에 집중하다 보면 엄청 신경 쓰이지는 않거든요. 벌보다는 화살이 어디에 맞았는지가 너무 중요하니까요. 그런데 예선전을 했던 경기장에도 벌이 많았어요. 그래서 제가 예선전 전날부터 향수를 아예 뿌리지 않았죠. 이번 올림픽 경기 중에 향수를 한 번도 쓰지 않았어요. 그런데도 벌이 많이 날아오더라고요.
개인전 결승전이 열리기 전날에는 혼성 경기가 있었습니다. 이 경기는 어떻게 준비했나요?
김우진 선수가 심리적으로 의지가 많이 됐어요. 항상 “최선의 방어는 공격이다”라고 말씀해주시거든요. “네가 아무리 방어하면서 해봤자 화살은 모이지 않는다”고요. 과녁까지 거리가 멀잖아요. 그만큼 변수가 많아요. 또 우리가 쏘는 감이 항상 똑같을 수는 없거든요. 이때 공격적으로 하지 않으면 시간만 가고 화살이 더 나가버려요. 그래서 저도 자신 있게 도전하려고 했어요.
역시 양궁 세계관 최강자들끼리 나눌 법한 대화군요. 8월 3일에는 개인전 결승전이 있었습니다. 개인전 준비는 혹시 별도로 하나요?
감독님, 코치님이 다 똑같이 봐주세요. 많은 분이 궁금해하는 게 있더라고요. “왜 임시현 선수에게만 감독님이 들어가냐”, 또 “왜 임시현 선수만 하얀색 유니폼을 입냐” 이런 질문이었어요. 그것도 예선전 기록으로 결정되는 거예요. 예선 랭킹 1위에게는 감독님, 2위에게는 코치님이 붙어주시죠. 유니폼도 랭킹이 높은 선수가 먼저 색을 고를 수 있는 권한이 있고, 나머지 선수가 다른 색깔을 선택하게 되어 있어요.
개인전 결승전을 앞두고 남수현 선수와 나눈 이야기는 없었나요?
“우리의 첫 올림픽인데, 우리가 준비한 것들을 최대한 보여주자”고 했어요. 그리고 서로 한 번 안아줬던 것 같아요.
개인전 금메달까지 기록하면서 임시현 선수의 첫 번째 올림픽이 끝났습니다. 가장 먼저 떠오른 기억이 무엇이었나요?
김문정 코치님과 훈련한 기억이 계속 떠올랐어요. 제가 힘들었을 때, 코치님이 항상 “넌 분명히 된다”는 말씀을 계속해주셨거든요. 그래서 메달도 김문정 코치님께 가장 먼저 보여드렸어요.
경기 후 스마트폰 확인했을 때, 축하 메시지가 많이 와 있었을 것 같습니다. 가장 먼저 회신한 사람은 누구였나요? 가족이었나요?
아, 조금 감동이 없을 수도 있는데 제 친구였어요. 유도를 하다가 역도로 넘어간 친구인데, 자기 일처럼 저를 응원해줬거든요. 그러면서 심리적으로 잘 잡아주었죠. ‘이 금메달은 나 혼자 잘해서가 아니라 그 친구가 내 멘탈을 잡아주었기 때문에 나온 결과가 아닌가’란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제일 먼저 답장을 했어요.
감동적인데요?(웃음) 초등학생 시절 축구와 양궁 중에 무엇을 할지 고민했다는 기록을 봤습니다. 축구까지 고민했을 정도면 원래 운동을 좋아했을 것 같아요.
진짜 좋아했어요. 힘든 거 좋아하고, 땀 흘리는 거 좋아하고, 뛰어다니는 거 좋아하고. 축구공 차는 것도 아주 좋아했어요. 그런데 그때 아빠가 축구는 너무 힘들다고 하시면서 운동이 그렇게 하고 싶으면 양궁을 먼저 해보라고 하셨죠.
그런데 양궁도 재미있었군요.
네. 처음에 양궁을 좋아했던 이유는··· 이게 선수들끼리 동아리처럼 하는 거였거든요? 그때 선생님이 쉬는 시간마다 피구를 하게 해주셨어요.(웃음) 그때 피구 하는 게 정말 재미있었어요.(웃음)
그래도 피구 때문에 양궁을 계속하진 않았을 것 같아요. 또 다른 재미가 있었을 것 같은데요.
제가 겁쟁이인데, 또 지는 건 싫어해요. 그런데 양궁은 자기 것만 잘하다 보면 이기거든요. 만약 태권도나 유도를 했으면 “때리지 마세요. 쳐다보지 마세요” 그랬을 것 같은데, 양궁은 저의 결과로만 이기는 거잖아요. 저는 그게 좋았어요.
상대 팀이 있지만, 상대 팀이 없는 것 같은 경기군요. 그러면 요즘도 같은 매력을 느끼는 건가요? 지금은 또 달라지지 않았나요?
양궁은 장비를 가지고 하는 경기여서, 뭔가 딱딱 맞아떨어져야만 좋은 결과가 나와요. 그때 화살에 대한 통제감을 느낄 때가 있어요. 내가 계산한 대로 꽂히는 느낌, 시위를 당기면서 ‘이거 10점이다’ 하는 순간의 느낌··· 그때 ‘내가 이 맛에 양궁을 계속하는 거지’라고 생각해요.
2028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을 당연히 목표로 하고 있을 겁니다. 이번에 낸 성과 때문에라도 더 많이 주목받을 것 같아요.
일단 4년 후에 다시 올림픽에 출전할 수 있게 최선을 다할 거고요. 그런데 지금은 올림픽보다 내년에 있을 광주 세계선수권대회를 목표로 하고 있어요.
현재 앞두고 있는 경기는 언제인가요?
9월 23일에 전국 남녀 양궁 종합선수권대회가 있는데, 그 경기부터 다시 뛰게 되어 있어요.
그러면 곧 다시 훈련을 하겠군요?
네. 오늘도 훈련하고 왔는걸요.
양궁 선수로서 어떤 미래를 꿈꾸고 계획하나요?
다른 것보다 양궁 선수라는 직업을 꽤 오래 하고 싶어요. 그래서 지금 저에게는 다치지 않는 게 최우선 목표예요. (V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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