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혈사제 2’, 귀하디귀한 B급 드라마
5년 만에 돌아온 <열혈사제 2>(SBS)는 여전히 자기 사명에 충실하다. 코미디, 액션, 풍자를 다 잡았다. 박보람 감독 표현에 따르면 ‘유쾌, 상쾌, 통쾌’다.
박재범 작가는 <김과장>(KBS, 2017), <열혈사제>(SBS, 2019), <빈센조>(tvN, 2021) 등 낮은 시청률로 출발해 반전을 이룬 작품이 많았지만 이번에는 첫 방송부터 최고 시청률 15.4%를 기록했다. 이는 곧 <열혈사제> 브랜드의 매력을 증명하는 수치이기도 하다.
이번 작품에도 작가의 인장은 뚜렷하다. 마약 범죄가 청소년까지 위협할 정도로 일상화된 현실을 비판하지만 그것을 표현하는 과정에서 경계 없는 상상력을 선보인다. 종교, 시사, 고전, 영화, 만화 등 다양한 레퍼런스를 적재적소에 활용하고, 풍자, 패러디, 희화화 등 여러 코미디 문법을 능란하게 구사한다. 충분히 대중적이되, 한국 TV 드라마의 보수성을 지루해하는 B급 콘텐츠 팬들도 넉넉히 포용하는 드라마다.
시즌 2 첫 장면에서 김해일(김남길) 신부는 불교 승려복을 입고 나온다. 나쁜 놈들이 사찰을 밀고 신도시를 지으려 하자 스님으로 위장하고 있던 해일이 그들을 추풍낙엽처럼 쓸어버린다. 이 장면에서 악당 중 한 명은 <범죄도시 3>(2023) ‘초롱이(고규필)’ 패션을 입고 있다. <열혈사제> 시리즈 고정 출연자인 고규필에게 보내는 오마주다. 구담경찰서 강력팀장이자 해일을 보호하는 ‘꼬메스’인 대영(김성균)은 부산으로 내려간 해일을 따라가기 위해 미친 척 ‘푸바오’ 흉내를 내서 병가를 받는다. 김해일이 바티칸의 보호를 받는 유서 깊은 비밀 집단 소속이라며 그럴듯한 조직도를 읊어대는 대목에서는 <빈센조>가 떠오른다. 이들 작품에서 이탈리아 마피아와 바티칸 비밀 조직은 한국 범죄물의 리얼리티를 벗어나 화끈한 해결책을 가능케 해주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 같은 역할을 한다.
이번 편이 주목하는 사회악은 마약 카르텔이다. 해일은 성실한 학생이 마약으로 쓰러진 데 분노한다. 수사에 미온적인 경찰 대신 말단 조직원들을 몇 놈 두들겨 패고 언론에 공개한 후 그가 찾은 실마리는 ‘불장어’라는 인물이다. 그러나 불장어 뒤에는 더 무시무시한 악당들이 도사리고 있다.
영화 <범죄도시> 시리즈가 매번 새로운 악당을 내세워 화제몰이를 하듯, 이번 시즌 <열혈사제>도 메인 악역의 존재감을 키우는 데 공을 들였다. 어릴 때 외국에 입양되어 동남아 마약왕으로 성장한 김홍식(성준), 비리 검사 남두현(서현우)이 각기 행동파, 두뇌파 악당으로 콤비를 이룬다. 특히 초반에는 김홍식 캐릭터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그는 한국행 비행기에서 고추장을 요구하며 승무원을 난처하게 만든다. 언성을 높이지는 않지만 원하는 것을 갖기 전까지 절대 물러서지 않겠다는 집요한 태도가 엿보인다. 옆자리 사람이 고추장 튜브를 건네자 온화한 미소를 보이더니 금세 끔찍한 일화를 늘어놓아 긴장을 조성한다. 시장에서 ‘마약김밥’을 파는 상인에게 “내 라이벌”이라며 농을 던지는 것도 그의 차분한 표정 뒤에 감춰진 과시욕과 지배욕을 잘 드러내는 디테일이다. 이 캐릭터의 잔혹성이 처음으로 발현되는 순간은 비리 형사들과 대면할 때다. 커미션 인상을 요구하는 형사들을 잠자코 지켜보던 홍식은 갑자기 냉동 사체들을 보여주고 형사 한 명의 목을 찌른다. TV 드라마 치고 수위가 높지만 정의 구현 판타지의 카타르시스를 높이는 데는 유효한 연출이다. 이로써 드라마는 본격적으로 긴장 국면에 돌입한다. 배우 성준은 특유의 온화한 분위기를 살짝 뒤틀어 쉽게 타인의 호감을 사지만 곧 기대를 배반하고 마는 아슬아슬한 캐릭터를 매력적으로 연기한다.
김남길의 긴 팔다리를 이용한 시원시원한 액션은 여전히 즐겁다. 이하늬의 복귀도 반갑다. 큰 정의를 위해 사소한 불의를 불사한다는 건 이 시리즈 캐릭터들의 특징인데, 그건 여성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성적 매력과 사회의 성별 고정관념마저 목표 달성에 이용하는 박경선 검사(이하늬)는 여성주의 관점에서 보면 미묘한 존재다. 하지만 장르적으로는 분명 재미있는 캐릭터이고, 온갖 스테레오타입을 비틀어대는 드라마의 개성과도 잘 맞아떨어진다. 예컨대 <열혈사제 2>에서 해일은 신학교 학생이 폭행 사건에 휘말리자 경찰서에 가서 호들갑스럽게 울먹이며 사과를 한다. 순수하고 여리고 상처받기 쉬운 신앙인 이미지를 이용해 궁지를 모면하려는 것이다. 종교인들에게는 불쾌할 수도 있지만 스테레오타입의 허점을 비꼰다는 점에서는 통쾌하고, 김남길의 능청스러운 연기가 더해져 웃음을 유발한다. 여성 캐릭터들도 이 같은 전략의 연장선에 있다. 다만 박경선이 김해일의 조력자로 자리를 굳히면서 캐릭터의 의외성과 긴장감은 줄어들었고, 이를 부산경찰청 마약수사대 무명팀 형사 구자영(김형서) 캐릭터가 보완한다. 자신의 여성성을 이용해 마약 조직원에게 접근하다가 다음 순간 건조한 얼굴로 해일에게 총을 겨누기도 하는 인물이고, 배우 김형서 특유의 섹시, 순수, 광기가 뒤섞인 입체적 이미지가 보는 재미를 더한다.
여러모로 <열혈사제 2>는 5년간의 기다림이 무색하지 않은 속편이 될 듯하다. 시즌 1에서 성공한 전략을 공식화하는 작업도 충실히 이루어지고 있다. ‘구벤져스’ 캐릭터 메이킹이 끝난 상태에서 전개되는 만큼 이야기의 속도와 유희의 밀도는 더 높아졌다. 전 시즌을 안 보고 감상해도 무리는 없다. 하지만 어차피 한번 시작하면 빈지 워칭을 멈출 수 없을 것이다.
<열혈사제 2>는 2024년 11월 8일부터 금·토 오후 10시 SBS에서 방송되고 있다. 디즈니+, 웨이브, 시리즈온에서도 감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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